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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과 ‘교류’로 지속 확장하는 K-콘텐츠
글. 정덕현(대중문화평론가)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23년 콘텐츠산업 현황과 전망을 대표하는 10개 키워드를 소개하면서 ‘공감과 교류’를 그중 하나로 꼽았다.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팬들과 공감하고 교류하면서 글로벌 영향력을 높여온 K-콘텐츠만의 특성과 그 연원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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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야 완성된 작품을 극장에 선보이는 것이니, 그 과정에 대중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드라마처럼 매주 방영되는 콘텐츠는 OTT 시대에 접어들어 사전제작제가 정착되기 전까지는 매주 방영되면서 시청자들의 ‘실시간 참여(?)’가 이뤄지기도 했다. 주인공 캐릭터가 마음에 안 든다거나 공분을 일으키는 악역에 대한 ‘과몰입’으로 캐릭터를 바꾸라거나 혹은 악역을 응징하는 내용을 넣어달라는 요구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초치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실시간으로 제작하던 당시 상황에서는 이런 요구들이 실제로 반영되는 일도 적지 않았다. 물론 그건 완성도에 흠집을 내는 부정적인 영향도 있었지만 대중의 의견이 작품에 반영된다는 긍정적인 요소도 있었다. 실제로 K-드라마가 시청자들의 감정을 보다 깊게 건드리고 정서적인 반향을 일으키는 힘을 발휘한 데는 이런 ‘실시간 의견 반영 제작’이라는 진통이 역할을 한 부분이 있다.

유튜브를 통해 소통하는 방탄소년단 ⓒBANGTANTV

콘텐츠 이면에 존재하는 K-대중

지금은 대부분 사전제작제로 들어와 이런 극단적인 제작 방식은 과거의 유물이 되었지만, 대중들과 함께 소통하고 교류해 그 의견을 경청하고 반영하는 것은 K-콘텐츠의 중요한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봉준호 감독이 <괴물>이나 <마더>, <설국열차> 그리고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놀라운 예술성과 작품성을 아우르면서도 대중성을 놓치지 않는 영화들을 내놓은 데도 까다로운 한국 관객이 역할을 했다. 예술성은 높지만 대중성이 떨어지는 이른바 영화제 영화에 대해 ‘상 받으면 재미없다’는 식의 대중 평가를 감독들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유명한 평론가의 호평 하나보다 대중이 SNS 등을 통해 내놓는 입소문이 영화의 성패를 좌우하는 관건이 됐다. K-콘텐츠의 한 지분을 차지하는 건 그저 소비자의 위치에만 머무르기를 거부하는 독특한 우리 대중, 이른바 ‘K-대중’의 참여가 있었다는 것이다.

임영웅이 출연한 다큐멘터리 <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 포스터
ⓒ물고기뮤직, CJ ENM

글로벌 팝스타로 공고한 위치를 가진 BTS의 성장사를 들여다보면 이런 K-대중에 의해 ‘대중과의 소통과 공감’을 중요하게 여겨온 K-콘텐츠의 일면을 발견하게 된다. 대중과 함께 교류하고 공감하는 그 방식을 SNS와 같은 글로벌 플랫폼으로 옮겨 오면서 아미 같은 공고한 팬덤이 만들어졌다. 물론 거기에는 BTS가 계속 외쳐 왔던 ‘너 자신을 사랑하라(Love Yourself)’는 메시지가 하나의 거대한 공감을 불러일으킨 면이 크지만, 그것 역시 아티스트와 팬이 SNS를 통해 친밀하게 주고받아온 교류의 결과라고 볼 수 있었다.

온라인에서 공감대를 갖고 소통하던 이들이 오프라인(공연장)에서 모여 만들어내는 에너지는 그래서 상상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K-대중은 한국인들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소통과 교류의 방식을 함께하는 전 세계 모든 대중을 지칭하는 것으로 확대됐다.

육성 팬덤이 이끌어내는 공감과 교류

한국에서 그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계속 쏟아져 나오고, 거기서 배출된 스타들이 그 짧은 기간에 스타덤에 오르는 과정들을 보면 이른바 ‘육성 팬덤’이라 불리는 K-대중이 존재한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임영웅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TV조선 <미스터 트롯>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탄생한 이 스타는 영웅시대라는 팬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공연부터 다큐멘터리에 이르기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성공을 일궈냈다. 그가 출연한 다큐 영화 <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은 코로나19의 여파로 뜸해진 영화관까지 관객들이 찾아와 응원봉을 흔들며 영화를 관람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미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신드롬이 벌어질 때 함께 노래 부르며 영화를 관람하는 이른바 ‘싱어롱 상영회’가 그리 이상한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건, 이런 ‘참여형 관람’이 이미 과거부터 전해 내려온 우리의 문화 유전자에 각인된 것이기 때문은 아닐까. 장날 마당에서 벌어지곤 했던 ‘마당놀이’를 보면 이미 오래전부터 남달랐던 K-대중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마당놀이는 연희자와 관객 사이에 물리적인 경계가 없는 특징을 갖고 있다. 물론 보이지 않는 경계가 있어 연희자와 관객은 분명히 나뉘지만, 어느 순간 관객을 마당 안으로 끌어들여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 마당놀이가 가진 특징이다. 즉 우리는 공연 역시 관객과 함께 만들어가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이십세기폭스코리아㈜

K-대중을 바라보는 관점이 서구와 다르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남사당패의 ‘줄타기’에서도 발견된다. 영화 <왕의 남자>의 소재가 됐던 이 줄타기 장면을 보면, 그 줄이 지상에서 3미터 정도의 높이에 있어 연희자와 관객이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다. 반면 프랑스의 줄타기꾼 필리프 프티의 전기를 바탕으로 제작된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영화 <하늘의 걷는 남자>를 보면 무려 지상에서 412미터 높이의 세계무역센터 빌딩 위에서 줄타기를 하는 아찔한 장면이 등장한다. 스펙터클과 관람만 있을 뿐, 남사당패 줄타기처럼 재담을 주고받고 웃음이 터져 나오는 관객의 참여가 존재하지 않는다.

‘공감과 교류’는 글로벌 팬덤을 향하는 글로벌 콘텐츠의 필수 요소가 됐다. 거기서 국내는 물론, 해외 팬까지 함께하는 K-대중은 이제 콘텐츠의 결과물과 그 성패는 물론이고 제작 과정에까지 참여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그래서 K-콘텐츠들은 이제 어느 때보다 높은 수준의 ‘문화 감수성’을 갖춰야 한다. 한국만이 아닌 글로벌 대중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문화 콘텐츠를 해외에 선보이고, 더 많은 대중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 이제 타 문화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고증은 K-콘텐츠의 중요한 전제조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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