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N 핫트렌드 4
경험 전달로 문화까지 전파하는 K-콘텐츠
글. 김교석(대중문화평론가)

콘텐츠의 특징은 경험을 전달해 문화까지 전파한다는 점이다. 예능 프로 <장사 천재 백사장>과 <서진이네>는 우리의 식습관과 분식 문화를 체험하게 했고, <오징어게임>은 한국 놀이 문화를 알렸다. 음식, 관광 등 K-콘텐츠의 문화적 파급 효과가 어디까지 미칠지 궁금해지는 요즘이다.

<오징어게임>의 한 장면 ⓒ넷플릭스

tvN <윤식당>, <현지에서 먹힐까>, JTBC <비긴어게인>, MBC에브리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등 2017년 전후 등장한 한류 예능 시리즈의 기획 의도는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하는 데 있다. 국내 톱스타들이 인지도와 유명세를 지우고도 매력적으로 다가갈지, 우리 음식이 입맛에 맞을지, 우리 문화와 상품에 호감을 가질지, 그러니까 우리의 것을 과연 좋아해 줄 것인지 그 반응을 지켜보는 호기심과 설렘이 한류 소재 예능의 출발선이었다.

그러나 2023년 현재 더 이상 “김치를 아느냐”고 묻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왔다. BTS, 블랙핑크, <기생충>, 그리고 <오징어게임>까지 K-콘텐츠와 K-팝은 세계적인 트렌드를 넘어 각 분야에서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다. 배우 정유미를 보고 ‘아시안 뷰티’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손님이나, 달짝지근한 닭강정에 환호하는 유럽인들을 보여주면서 느낀 왠지 모를 뿌듯함과 판타지는 익숙해졌다.

<장사 천재 백사장> 포스터 ⓒtvN

콘텐츠라는 경험을 통한 문화 전달

드라마와 영화, 음악 등의 문화 콘텐츠가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호감과 관심을 키웠다면 예능은 우리의 일상과 문화를 보다 직접적으로 접하고 경험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멕시코의 한적한 휴양지에 분식집을 차린 tvN <서진이네>에서 인상 깊은 장면은 출연자들을 알아보는 손님들의 리액션이 아니라 설탕이 뿌려진 (한국식) 핫도그와 가래떡 떡볶이와 함께 나오는 가위를 본 손님들의 반응이다. 요리에 설탕을 잘 쓰지 않는 문화권에선 설탕이 전면에 드러난 음식은 그 자체로 새로운 문화 경험이다. 가위로 음식을 손질하는 것 자체가 신기한 문화권에게 떡볶이는 맛도 새로운데 가위로 직접 잘라 먹는 색다른 재미까지 더한다.

음식에 대한 향토 자부심이 대단한 나폴리에서 한식당을 차린 tvN <장사천재 백사장>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만날 수 있다. 이 예능은 ‘백종원이 해외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을 품고, 아직 한식이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도시에서 한식을 소개한다. 그리고 언제나 역시나 답을 찾아내는 백종원은 현지 손님들에게 한식을 새로운 식문화 경험을 곁들여 제공한다. <기생충>에서 봤던 ‘짜파구리’를 전문가의 솜씨로 내놓는다. 또한 국밥은 아시아권에서도 특별한 우리만의 식문화인 ‘말아 먹는’ 방식을 매장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가이드 영상으로 제작해 신기하고 재밌는 체험을 맛보게 한다.

K-콘텐츠는 K-컬처 확산의 원동력

콘텐츠를 통해 경험을 전함으로써 보다 폭넓은 문화를 전파한 대표적인 예가 <서진이네>에서 멕시칸의 ‘맵부심’을 자극한 불닭볶음면 시리즈다. 2014년 유튜브 ‘영국남자’ 채널에 올라온 불닭볶음면 먹기 영상을 시작으로 한국의 매운맛에 도전하는 ‘Fire Noodle Challenge’가 전 세계 각국에서 수년간 이어지면서 한국 라면은 대표적인 글로벌 먹거리로 우뚝 섰다. 챌린지 열풍이 본격화된 이후 불닭볶음면 시리즈의 수출액은 2015년 98억 원에서 2022년 4,800억 원 상당으로 7년 만에 50배가량 증가했다.

이 밖에도 콘텐츠를 경험함으로써 우리의 일상 문화를 경험하게 되는 사례는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대만에서 <윤식당>이 방영할 때 한국의 불고기 양념장과 한국 호떡믹스 제품이 불티나게 팔렸고,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한창 인기를 누릴 때는 김밥용 김이 동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서진이네>의 한 장면 ⓒtvN

경쟁력의 핵심은 결국 ‘체험’

이처럼 문화 경쟁력의 핵심은 결국 ‘체험’을 이끌어내는 힘에 있다. K-콘텐츠는 K-푸드가 보여준 것처럼 문화적 호감을 기꺼이 경험으로 이어지게 이끈다. 이런 전파 양식은 다양한 산업에 영향을 끼치는 선순환의 브랜디드 콘텐츠 효과를 낳는다. 한국관광공사는 지난 5월에 방한한 외래 관광객이 86만 7,130명으로 지난해 동월과 비교해 398.6% 늘었다고 밝혔다. 올해 5월까지 누적 외래 관광객은 지난해 동기 대비 501% 증가했다. 또한 글로벌 여행 플랫폼의 조사에 따르면 서울은 전년 대비 검색량이 가장 많이 증가한 여행지 중 한 곳으로 뽑혔다. 서울이 인기 여행지로 급부상한 데는 K-콘텐츠의 인기 외에 별다른 요인이 없다.

<popeye>(뽀빠이)라는 일본 잡지가 있다. ‘도쿄에 사는 시티 보이를 위한 로컬 잡지’라는 확고한 정체성과 1976년부터 이어진 역사를 자랑하며, 2010년대 중반부터 세계적으로 맨즈웨어 열풍을 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한국의 2030세대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시티보이룩’을 창안하고 퍼트린 그 잡지다. 그런 감도 높은 이들이 2023년 7월호 주제를 ‘2박 3일 서울 여행’으로 잡았다. 참고로 이들이 지금까지 시티 가이드를 펴낸 해외 도시는 뉴욕, 런던, 파리, 포틀랜드였다.

우리 일상과 문화에 영향을 미쳐온 매체도 우리를 경험하고자 한다. <popeye>는 서울이라는 도시 콘텐츠를 ‘K-컬처를 키워낸 역동성과 다양성’이란 문화 코드로 풀어낸다. 그들이 주목하는 서울의 매력은 경동시장에서 찍은 커버부터 느낌이 온다. ‘핫플레이스’인 성수동에서 가정식 백반집인 온누리식당을, 삼각지에서는 차돌박이 전문점인 봉산집에서 한 끼를 권한다. K-팝 아티스트 뉴진스와 함께 대학로의 배우 권해효를 만나고, 공원 운동기구 사용 방법, 한강에서 라면 먹기 등 최대한 현지인처럼 도시를 체험하며 서울의 다채로운 문화를 깊숙이 느껴보길 제안한다.

뉴진스와 서울 시티 가이드를 특집으로 한 <popeye> 2023년 7월호

경험하고 감동하면 확산되리라

문화 콘텐츠는 경험을 이끄는 촉매다. 경험이 반복되고 쌓이면 일상이 된다. 즉 문화의 전파다. 불닭볶음면 챌린지가 시작된 지 10년이 채 되지 않은 지금, 불닭볶음면 시리즈는 중국, 유럽, 미국은 물론 아프리카, 중동, 동남아 등 전 세계 시골 구멍가게에서도 만날 수 있는 글로벌 비즈니스가 된 것처럼 말이다. 다시 말해, 한국의 매운맛에 도전한다는 재미를 담은 콘텐츠는 한국의 맛에 전 세계가 익숙해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한창 승승장구 중인 K-콘텐츠의 문화적 파급 효과가 어디까지 가닿을지 아직 알 수 없다. K-푸드처럼 성과가 확실한 분야가 있고, 관광처럼 기대가 되는 영역도 있다. 확실한 건 사람들을 움직이고 변화를 이끌어내고 싶다면, 저 깊은 곳에서부터 감화시키는 문화의 힘을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힘은 경험을 이끌어내는 데서 시작된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