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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꽃스튜디오
  • 저자이선철 (용인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 등록일 2013-12-17

감자꽃스튜디오



이선철 (용인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이렇게 공간이 변모하게 된 것에는 십여 년 전 연고라고는 전혀 없는 이 마을에 필자가 혈혈단신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며 청년기를 도시에서 문화예술기획일을 하며 보냈지만, 엉뚱하게도 자연친화적인 시골생활을 꿈꾸고 있었다. 그렇게 틈틈이 전국을 다니며 기회를 보던 중 교육청 인터넷에서 이 폐교를 발견하게 되었다. 학교는 문을 닫은 지 꽤 오래 되었던 데다가 이후에도 오랜 기간 동안 방치되어 있어 흉물스런 상태였다. 하지만 땅도 집도 없는 처지에 일단 넓은 실내외공간을 마음껏 쓸 수 있다는 점이 좋아서 덜컥 임대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수중에 가지고 있는 돈이라고는 기백만 원이 전부여서 우선 교실 한 칸만 원룸처럼 개조한 후 난생 처음 산골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꿈꿨던 삶을 실천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과연 오래 잘 적응할 수 있겠나 하는 염려도 없지 않았다. 처음부터 거창한 비전이나 치밀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하던 일의 경험과 진정성을 가지고 일을 만들다 보면 개인적으로도 재미있게 살고 지역에도 뭔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인 마음과 도전 의식이 힘이 되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당시 도지사와 군청 관계자들이 방문을 하게 되었고, 이 공간을 지역의 공공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한 방안이 모색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우선 군청은 교육청으로부터 건물을 매입하고 지자체는 급히 자투리 예산을 모았다. 부족한 자금은 문화부의 정책사업 지원금을 보태기로 했다. 일단 당면 과제는 공간의 개보수였다. 건물이라고는 하나 그냥은 도저히 쓸 수 없는 상태이다 보니 난관도 많았다.


건축가와 함께 머리를 맞대었다. 적은 예산의 한계를 극복하며 지역의 역사성을 살리고 전문적인 기능도 갖출 수 있도록 여러 마리의 토끼를 잡을 방법을 궁리했다. 결국 역설적이게도 원형의 보존과 과감한 디자인의 조화가 재생의 관건이었다. 아무리 낡고 쓸모없는 건물이지만 그래도 마을의 중심에서 주민들의 모교 역할을 했을 터라 이 공간이 헐려 나갈 때의 상실감이 클 것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기본적인 골격과 형태는 유지하는 대신 전면에 아트리움을 덧대어 외관상 현대적인 인상을 주고 실내는 용도별로 필요한 기능을 갖추어 나갔다.


이후 다양한 장르의 작가와 예술 강사, 문화예술 단체와의 협업과 문화기관의 지원을 활용하여 지역의 청소년들과 주민들, 그리고 취약계층을 위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읍내의 초, 중, 고등학교는 전교생이 국악을 하게 되었고 지역의 청소년들은 밴드와 영상, 연극, 무용, 아카펠라 등을 체험하게 했다. 또한 지역주민들의 동아리 활동과 장애인, 노인, 군 장병, 다문화가정 등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게 되었고, 지역 청년들의 문화인력 양성에도 힘을 쏟기 시작했다.


옛 학교에서 열리던 절기별 행사도 명칭과 취지를 살려 다시 개최하기 시작했다. 문화예술 동아리를 활용한 마을축제 <봄소풍>, 지역 아동들을 위한 방학 프로그램 <분교캠프>, 마을의 산림자원을 활용한 레포츠 축제 <가을운동회>, 그리고 지역 교회와 함께 주민들이 직접 만든 공연으로 꾸며진 학예회식 <성탄극장>을 열었다. 마을 이미지를 활용한 디자인 달력과 지역 전통예술 아카이빙, 젊은 지역예술가의 공연과 전시, 음반과 출판 작업도 기획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들은 당장의 소득창출이나 지역경제와는 무관한 것들이었지만 지역에서 문화에 대한 인식변화를 이끌어내고 일상 속에서의 친밀감을 높이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런 활동이 각종 온·오프라인 매체와 입소문, 강의나 교류 등을 통해 외부에 알려지면서 생긴 또 다른 변화는 방문자들의 증가이다. 이전에는 일부러 올 일이 없던 산골마을이었는데 이제 문화계는 물론 교육, 복지, 농촌 분야의 종사자와 단체들의 방문이 많아지게 되었고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들이 체류하는 동안 식사와 숙박 등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들이 원하는 전문적 프로그램의 제공은 감자꽃스튜디오가 담당하고, 숙식이나 체험 및 특산물 마케팅은 부녀회나 주민업소가 담당하였다. 이렇게 함으로 문화공간과 마을 간의 효율적인 역할분담이 생겨 주민의 펜션과 찻집, 부녀회나 가내 가공 등이 활성화 되는데 힘을 보태게 된 것이다.


이제 감자꽃스튜디오는 지난 십여 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지역에서 새로운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일종의 발전적 2기가 시작한 셈이다. 그동안 유휴시설의 재생이나 문화예술교육의 확산이라는 초기 역할을 넘어 본격적인 마을개발이나 고부가 특화사업의 기획 그리고 지역의 자원을 보다 전략적으로 엮어 공동체의 경제적 가치 창출을 극대화 하는데 견인역할을 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이러한 시도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문화 전문가와 공무원 그리고 주민의 상호이해와 협업이 절대적이다. 그리고 이의 원천적 동력은 바로 창의와 창조에서 비롯된다.




※ 자세한 내용은 첨부(PDF)화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