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23년 콘텐츠산업 현황과 전망을 대표하는 10개의 키워드를 소개했다. ‘콘고지신(온고지신+콘텐츠)’ 도 그중 하나. 최근 콘텐츠산업계에서 찾아볼 수 있는 ‘콘고지신’ 현상을 사례 위주로 정리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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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국에도 800만 관객이 본 〈탑건: 매버릭(2021)〉, 엔데믹 이후 극장 관객의 급감에도 불구하고 460만 관객을 동원하며 신드롬을 일으킨 〈더 퍼스트 슬램덩크(2023)〉, 역시 최근 개봉해 180만 관객을 넘으며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이 작품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옛 콘텐츠의 부활로서 큰 성공을 거둔 작품들이라는 점이다.
〈탑건: 매버릭〉은 〈탑건(1986)〉의 후속작으로 무려 36년 만에 돌아왔고, 〈더 퍼스트 슬램덩크〉도 원작 만화가 나온 지 무려 25년 만에 영화로 돌아왔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도 마찬가지다. 닌텐도의 아케이드 게임으로 시작해 1981년 동키콩의 오락실 게임으로 큰 인기를 끌었고, 1983년에는 마리오 브라더스라는 이름으로 출시되기도 한 게임이 약 40년 세월을 넘어 영화로 만들어졌다. 옛 콘텐츠가 새로운 생명력을 갖고 돌아와 대중적인 사랑을 받은 것. 이러한 현상을 이른바 ‘콘고지신(온고지신+콘텐츠)’이라 부른다.
‘콘고지신’은 언뜻 보면 ‘복고 현상’처럼 보인다. 실제로 〈탑건〉이나 〈슬램덩크〉를 보고 슈퍼 마리오 게임을 했던 세대들은 새로 만들어진 작품들 속에서 여전히 젊은 톰 크루즈나 폭소를 터트리게 만드는 강백호, 또 추억 속 게임의 동키콩과 마리오를 보는 것만으로도 복고 감성에 빠져든다. 하지만 ‘콘고지신’ 콘텐츠들은 추억을 느끼는 기성세대들만이 아니라 당대를 전혀 경험한 적이 없어 오히려 새롭게 느끼는 젊은 세대까지 열광하게 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복고 현상’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영화 <탑건: 매버릭> ©롯데엔터테인먼트
젊은 세대가 이러한 콘텐츠들에 열광하게 된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먼저 이 작품들은 이미 한 세대가 검증한 명작들이라는 점이다. 시대가 바뀌어도 명작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을 만큼의 충분한 매력을 갖고 있다. 그러니 그 매력을 십분 살려 현재적 관점이나 눈높이로 리메이크한 이 작품들은 젊은 세대에게도 통하게 된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경우 원작 만화에서의 주인공은 강백호였지만, 영화는 만화에서 다소 소외되었던 송태섭을 주인공으로 세움으로써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을 아우르는 현 젊은 세대의 중요한 정서 중 하나인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를 저격했다.
과거 TV시리즈로 나왔을 때만 해도 워낙 애니메이션의 완성도가 낮아 원작 만화만큼 주목받지 못했지만,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3D 애니메이션으로 경기 장면의 박진감을 높임으로써 관객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탑건: 매버릭〉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무인 조종이 생겨날 정도로 전투기 조종사의 역할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 마치 구시대의 영웅처럼 등장한 매버릭이지만, 그가 이 영화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은 마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게임에 익숙한 젊은 세대의 눈높이에 맞춤으로써 이들이 이 명작에 빠져들 수 있었던 이유다.
애니메이션〈더 퍼스트 슬램덩크〉© NEW
이처럼 옛 콘텐츠를 새롭게 재해석해 부활시킨 ‘콘고지신’ 콘텐츠는 그래서 폭넓은 세대를 하나로 끌어안는 힘을 발휘한다. X세대에게는 자신이 경험한 과거에 대한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Z세대에게는 경험하지 않은 새로움이 ‘힙한’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여기에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아날로그 경험에 대한 욕망이 더해져 있다. Z세대는 자신만의 개성과 경험을 갖기를 원하지만, 그들이 태어날 때부터 마주한 디지털 세상은 아이러니하게도 ‘몰개성화’가 그 특징이다. 이것은 디지털 문화가 복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더 새로운 자기만의 경험을 원하는 현 세대가 아날로그를 찾는 역전이 일어난다. 스마트폰 카메라 대신 필름 카메라를 찾고, 음원을 듣는 대신 레코드판을 찾는 일이 벌어지는 이유다.
애니메이션 〈아기공룡 둘리 : 얼음별 대모험
리마스터링〉© 제이콤, 워터홀컴퍼니
폭넓은 세대를 아우르는 콘고지신 콘텐츠는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는 데도 유리하다. 부모와 아이가 같이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란 시너지 효과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접점이 생겨난다는 점에서 폭넓은 소비가 가능해지고, 캐릭터 기반의 다양한 마케팅을 통해 막강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국내에 열풍을 만들었던 ‘포켓몬 빵’ 대란이나 마시마로 굿즈는 대표적인 사례다. 다양한 괴물 캐릭터를 가진 독특한 세계관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포켓몬스터(1996)〉는 〈포켓몬 고(2016)〉 같은 증강현실 기반의 게임으로도 만들어졌고, ‘띠부띠부실(뗐다 붙였다 하는 스티커)’ 모으기 열풍을 만든 포켓몬 빵 대란으로도 이어졌다. 또 2000년대 젊은 세대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마시마로’ 같은 토종 캐릭터 역시 최근 들어 다양한 상품들과 협업하는 굿즈로 재탄생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폭넓은 세대를 소구할 수 있다는 이점에 세대 소통의 의미까지도 확장되는 콘고지신 콘텐츠는 중요한 문화 현상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단순한 ‘복고 현상’ 같은 유행이 아니기 때문에, 보다 지속적인 흐름의 경향을 띤다는 점이다. 올해만 해도 40주년을 기념해 극장판 애니메이션인 〈아기공룡 둘리 : 얼음별 대모험 리마스터링〉판이 재개봉하고, 1971년부터 1989년까지 방영됐던 최불암 주연의 인기 드라마 〈수사반장〉이 〈수사반장1963〉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전설의 고향〉의 대표적인 캐릭터였던 구미호는 〈구미호뎐(2020)〉으로 재해석되더니 이제 〈구미호뎐1938(2023)〉 같은 시리즈로 만들어지고 있다.
물론 콘고지신이 의미한 건, 잘 만든 콘텐츠는 시대를 넘어 전 세대에게 사랑받는다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이 안에 담겨 있는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과거와 현재,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접점은 문화 현상 안에서 중요하게 짚어봐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다. 옛 것을 낡았다며 그저 버릴 것이 아니라 거기서 고전적이지만 보편적인 것들을 뽑아내고, 그것을 현재화하는 작업은 어쩌면 예술이 늘 지향해왔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공유된 자산일 수 있는 과거의 문화적 유물들을 현재로 가져와 재해석하고 미래의 세대에게 전하는 것. 그것이 콘고지신이라는 콘텐츠산업의 중요한 경향 속에서 우리가 읽어내야 할 본질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