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상륙 4년, 그리고 유튜브 시대 방송사들의 전략
글. 김조한(뉴아이디 이사)
넷플릭스가 한국에 상륙한 지 4년이 지났다. 찻잔 속의 태풍이라 불리던 넷플릭스는 한국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OTT 서비스 중에서 가장 많은 MAU(Monthly Active User :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접속한 사용자의 수)를 기록하고 있다. 아이지에이웍스의 6월 모바일 인덱스에 따르면 토종 OTT 서비스인 웨이브(WAAVE)가 271만 명, 티빙(TVING)이 138만 명, 왓챠(WATCHA)가 43만 명을 기록했는데, 넷플릭스는 이 모두를 합한 숫자보다 큰 466만 명이라는 데이터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넷플릭스의 성장 원동력으로 그들의 오리지널 콘텐츠뿐만 아니라 한국 방송사들의 콘텐츠도 꼽힌다는 것이다. 아래 넷플릭스 한국 TOP 10 콘텐츠를 보면 4, 5, 7위를 기록한 넷플릭스 오리지널을 제외하곤 모두 한국 방송사에서 제작된 콘텐츠들이다. 한국에서는 드라마 방영이 끝나면 시청자들이 찾는 빈도가 현격히 떨어지는데 반해, 넷플릭스는 미국에서의 〈프렌즈〉, 〈오피스〉의 사례처럼 계속 시청하게 만드는 경험도 만들 수 있다. 그 예로, 한국 TOP 10 콘텐츠 중 8위를 기록한 〈김비서가 왜 그럴까〉(tvN)의 경우 2년 전에 방영한 작품이다. 그때도 인기를 끈 작품이지만, 〈이태원 클라쓰〉(JTBC) 성공 이후 박서준의 팬이 된 시청자들이 콘텐츠를 다시 찾아본 케이스가 아닌가 싶다.
[그림 1] 넷플릭스 한국 TOP 10 콘텐츠, 2020. 10. 20. 기준
출처 : 넷플릭스지상파 3사에게는 웨이브, JTBC와 CJ ENM에게는 티빙이 있지만 방송사들은 가장 많은 돈을 주는 플랫폼에 콘텐츠를 공급하고 싶어 한다. CJ ENM과 JTBC의 주요 드라마들의 경우 넷플릭스에 동시 공급하고, 그렇지 않은 콘텐츠는 티빙에 공급을 한다. 넷플릭스와 경쟁이 아닌 공존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심지어 〈킹덤〉, 〈시그널〉(tvN)의 김은희 작가와 〈도깨비〉(tvN), 〈태양의 후예〉(KBS2)의 이응복 감독이 만드는 〈지리산〉의 경우 오랜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하는 전지현, 주지훈이 합세한 작품으로 중국 OTT 플랫폼인 아이치이(IQ.com)에 글로벌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광고 수입과 IPTV와 같은 디지털 판매, 해외 유통이 나날이 어려워지는 환경에서 제작비 수급이 힘든 대작들은 글로벌 OTT 플랫폼과 손을 잡는 것이 필수가 되었다.
[그림 2] 글로벌 OTT 플랫폼으로 변신한 아이치이(IQ.COM). 〈지리산〉이 내년에 독점으로 공개될 예정이다.
출처 : 아이치이방송사뿐만 아니라 OTT 플랫폼 입장에서도 이렇게 손을 잡는 것을 포기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일본에 하나의 사회적 현상을 만들었던 〈사랑의 불시착〉(tvN)의 경우 tvN이 넷플릭스에게 해외 독점권을 준 케이스로 넷플릭스가 2020년 일본 시장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키우게 만든 콘텐츠다. 스튜디오 드래곤이 제작하고 SBS에서 방영했던 〈더 킹: 영원의 군주〉(SBS)의 경우 상반기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넷플릭스 TV 시리즈 Top 10에 오르기도 했다. 방송가에서는 아쉬운 콘텐츠였어도 넷플릭스에겐 효자 콘텐츠였다는 이야기다.
관계자들에 의하면 넷플릭스는 앞으로 3년간 한국 콘텐츠 시장에 북미, 유럽 다음으로 많은 돈을 투자하여 콘텐츠를 육성할 것이라고 한다. 미국 OTT 플랫폼이 미국에서 론칭할 때 드는 비용 정도를 투자한다고 하니 실로 엄청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현재 한국 넷플릭스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콘텐츠의 총 개수는 4,380개로 그중에서 영화가 2,923개다. 드라마와 예능을 다 합쳐도 1,457개. 가까운 일본의 경우 5,338개이며 TV 시리즈 비중이 1,875개이다. 넷플릭스의 경우 영국을 제외하곤 6,000개 이상의 콘텐츠를 서비스하고 있는 국가는 없다.
[그림 3] 넷플릭스 국가별 영화/TV 방송 콘텐츠 개수
미국 넷플릭스는 2017년부터 400여 개 정도 늘어난 게 전부인데, 그중에서 당연히 오리지널 콘텐츠 비중이 가장 높다.
참고로 한국에서 10월에 〈맨 인 블랙 인터내셔널〉, 〈옥토넛〉, 〈냉장고를 부탁해〉(JTBC)를 포함한 13개의 작품이 넷플릭스와 계약이 만료되어 사라질 예정이다. 콘텐츠 수에 큰 변화가 없어 보이는 이유는 늘어난 만큼 계약이 만료되는 콘텐츠도 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가 많은 콘텐츠를 구매한다고 해도, 그들은 자체 제작 비중을 높이는 중이며, 실제로 지상파 방송뿐만 아니라 다양한 케이블 콘텐츠도 구매를 하고 있다. 질 좋은 작품을 제작한다면 넷플릭스가 구매를 하겠지만, 모든 콘텐츠를 구매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매출이 큰 드라마의 경우 판매를 하는 주체가 방송사가 아닌, 제작사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 방송사들에게는 아킬레스건이다.
모두 넷플릭스만 바라보고 있는 입장이 된다면, 그들은 점점 더 체리 피커(Cherry Pcker, 어떤 회사의 제품이나 서비스 중 인기 있는 특정 요소만을 골라 경제적으로 취하려는 소비 현상을 비유하는 용어) 형태로 핵심 콘텐츠만을 취하는 입장이 될 수 있다. 드라마를 팔기 위해서 핵심 IP를 끼워줘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것. 2016년에 방송들이 외면하던 때와는 천지차이다. 내년에는 이 분위기가 더 가속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튜브는 어떨까. 유튜브에서 화제가 되면 덩달아 방송가에서도 화제가 될 정도로 유튜브라는 플랫폼의 영향력은 막강해졌다. 방송사들이 등한시하던 유튜브가 이제는 반대로 그들의 콘텐츠 소스가 되고 있는 것이다.
2019년을 기점으로 넷플릭스와 함께 방송사들이 문호를 활짝 연 곳이 유튜브다. 모든 방송사들이 유튜브 계정을 가지고 있고, 그들 콘텐츠의 주요 하이라이트를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했다. 넷플릭스의 MAU가 높다고 하지만, 한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사용시간이 긴 플랫폼은 단연코 유튜브다.
방송사의 시청 시간을 빼앗는 것이 유튜브와 넷플릭스라고 하면, 시청 시간을 더할 수 있는 플랫폼은 없을까? 해외 레거시 플랫폼들은 어떠한 행보를 보였을까? 개인적으로는 FOX(폭스)의 행보를 가장 눈여겨보고 싶다. 루퍼트 머독이 이끄는 폭스는 영화사, 그들의 방송 제작 스튜디오 등 FOX News와 방송을 제외하고 모두 디즈니에 넘겼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디지털 전략을 실행했다.
1) 새로운 방송 플랫폼을 인수하다
폭스는 지난 4월 미국의 최대 AVOD(광고 기반의 VOD 플랫폼) 플랫폼인 Tubi TV를 약 5,300억 원(4억 4,000만 달러)에 인수했다. Tubi TV는 광고계의 넷플릭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폭스가 Tubi TV를 인수한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들의 IP에 대한 매출을 확실하게 만들어 주는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Tubi TV는 3,300만 명이 2억 시간을 시청하는 플랫폼이다. 하루에 12분씩 시청을 한다는 이야기다(폭스가 인수한 후 시청시간과 사용자가 대폭 늘었다).
Tubi TV는 모바일에서 서비스를 하지만 모바일이 메인 플랫폼이 아니다. 인터넷에 연결된 TV가 메인이다. 그러다 보니 스마트 TV나 Roku와 같은 스트리밍 스틱에서 Tubi를 시청하면, 디지털화된 TV광고(TV용으로 제작된 스킵이 안 되는 광고)가 나온다. 광고 단가도 높지만, TV에서 OTT로 시청자가 넘어가면서 갈 곳을 잃은 광고주들이 찾는 곳이 되었다.
폭스가 Tubi TV를 인수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것은 가장 인기 있는 TV 콘텐츠를 Tubi TV에 공급한 것이다. 우리나라 〈복면가왕〉(MBC)을 리메이크한 〈The Masked Singer〉를 넷플릭스가 아닌 Tubi TV에 내보냈다. 〈The Masked Singer〉는 폭스의 TV 시리즈 중 첫 시즌 성적이 가장 좋은 핵심 콘텐츠였다.
전년 대비 100% 이상의 성장을 기록하면서, 그들의 다음 행보는 FOX News와 함께 라이브 채널들을 Tubi TV에 공급한 것이다. 북미에서는 FAST(Free Ad-supported Streaming Television, 광고 기반의 무료 방송 플랫폼, 한국으로 보면 광고 기반의 실시간만 지원하는 웨이브라고 봐도 무방하지만 모바일 중심이 아닌 TV 중심이다)라고 하는 새로운 플랫폼들이 떠오르고 있는데, 그와 같은 행보를 취한 것이다.
또한 폭스는 Tubi TV뿐만 아니라 어찌 보면 그들의 경쟁 광고 기반의 무료 FAST 플랫폼인 쥬모, 삼성 티브이 플러스, LG채널, 플루토 TV 등에도 FOX News와 FOX Sports를 채널로 공급하고 있다. 시청자들이 방송은 떠났어도 넷플릭스와 같은 OTT 서비스를 보기 위해 TV를 떠나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했다.
2) 디지털에 유통할 수 있는 오리지널 방송채널을 만들다
[그림 4] FOX Soul 웹페이지 화면
출처 : FOX Soul폭스가 지난 1월 CES의 세션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위한 OTT이자 채널을 만든다고 발표했다. 이름은 FOX Soul로, New Streaming Network를 표방한다. 스트리밍 플랫폼 어디에라도 유통할 수 있는 방송 채널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모바일, TV용 앱도 있고,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으며, 앞서 말한 FAST 플랫폼에 무료 방송 채널로도 공급하고 있다.
폭스의 힘은 방송 채널로써 존재하는 것이다. 방송은 결국 많은 시청자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단순히 유료 방송 플랫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을 위해서 존재한다.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세대를 위한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하면, 폭스가 가장 잘하는 방송 채널로 풀어 나가려고 한다. 그게 FOX Soul이다.
3) 차별화 전략은 자신들이 잘하는 일을 더 강화하는 것
폭스는 〈The Masked Singer〉의 성공으로 시청자들이 몰입할 수 있는 콘텐츠를 또 한 번 리메이크했다. Mnet의 인기 방송인 〈너의 목소리가 보여〉의 영어 버전 〈I can see your voice〉가 그것이다. 방송이 가진 동시 시청의 힘을 최대한 활용한 콘텐츠이다. 이것은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잘 하지 못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OTT시대에 살아남는 방법은 그들과 차별화된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고, 자신들이 잘하는 영역을 잘 지키는 것이다. 폭스는 시청자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SNS에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제작한다. 그게 〈The Masked Singer〉, 〈I can see your voice〉이다. 이들은 유튜브 채널이나 다른 OTT에서 제작할 수 없는 콘텐츠에 주목해 시청자들이 머무는 장소에서 콘텐츠를 풀어가기로 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색을 잃지 않으면서 매출을 극대화할 수 있는 플랫폼을 운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방송을 돈을 내고 보지 않았듯이 광고를 보면서 볼 수 있는 방송 플랫폼을 발굴하는 것이다. 그것이 Tubi TV, FAST 그리고 FOX Soul이다. Tubi TV의 CEO인 파르하드 마사우디(Farhad Massoudi)는 이런 말을 했다. “시청자들의 주머니는 무한하지 않다. 구독 피로도는 결국 콘텐츠 업계에 큰 악영향을 줄 것이다.” 방송은 지난 100년간 광고 기반으로 운영되어 왔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바이아컴 CBS의 FAST 플랫폼인 플루토 TV는 방송사들이 만들어 놓은 라이브러리를 활용해 다양한 방송 채널들을 다시 만들어냈다. 그들이 잘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살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미국 방송사들이 마케팅을 제외하고 유튜브에 적극적으로 콘텐츠를 올리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자신들이 주도하는 플랫폼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 모바일이 먼저가 아닌 자신들이 잘한다고 믿는 TV라는 플랫폼에서의 도전.
넷플릭스도 유튜브를 활용한다. 하지만 그들의 하이라이트를 전부 보여주진 않는다. 자신들의 플랫폼으로 들어오게 만들고 싶게 만들 뿐이다. TV를 레거시 콘텐츠라 부르는 시대에, 우리는 모두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KBS)를 시청하며 열광했다. 방송사들이 넷플릭스, 유튜브와 함께 공존하는 방법은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