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만들어가는 방송영상콘텐츠의 미래
<포스트-넷플릭스 시대, 방송영상콘텐츠의 글로벌 도약을 위한 조건> 취재기
글. 오정수 (편집부) / 사진. 이대원
2000년대 초반까지도 K-포맷의 해외시장 진출은 상상도 못했다. 그 뿐인가? ‘넷플릭스’라는 거대한 공룡이 태어날지 이로 인해 방송영상콘텐츠 시장이 어떻게 변할지도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 포스트-넷플릭스 시대, 앞으로의 10년을 위해 방송영상콘텐츠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콘진원)이 공동주최한 <2019 콘텐츠산업포럼>이 지난 6월 18~20일, 25~27일까지 총 6일간 서울 광화문 CKL스테이지에서 개최됐다. <2019 콘텐츠산업포럼>은 정책, 패션, 음악, 이야기, 방송, 금융 등 총 6개 분야에 걸쳐 진행되었다. 이중 6월 26일 열린 방송 분야 포럼 중 <포스트-넷플릭스 시대, 방송영상콘텐츠의 글로벌 도약을 위한 조건>을 소개한다.
- 발제1 조영신 실장 (SK브로드밴드)
현재 넷플릭스라는 거대 공룡을 중심으로 올해 3월 출시한 ‘애플TV+’와 곧 출범할 ‘디즈니 플러스’, ‘워너 미디어’ 등이 글로벌 OTT 시장에 가세할 것입니다. 이렇듯 다양한 OTT 플랫폼 출격으로 경쟁이 치열해지고, OTT 시장은 확장되겠지요. 디즈니나 애플, 워너가 나와도 지금처럼 1위 사업자인 넷플릭스가 생존하게 될 지 궁금해질 것입니다. 더불어 콘텐츠 제작자들은 이 상황을 콘텐츠 수급의 기회로 여기고 있지만, 실상은 다를 수 있습니다.
디즈니의 과거 행보를 볼 때, 디즈니 플러스는 90% 이상을 자사 콘텐츠로 채울 것입니다. 애플TV+는 여러 OTT를 패키징해 제공하는 플랫폼이기 때문에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지 않지요. 이처럼 다양한 OTT 플랫폼이 증가해도, 콘텐츠 사업자들이 상상하는 것만큼 콘텐츠 수급이 증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를 살펴보시면 수많은 콘텐츠 라인업 중 가장 많이 보는 것은 오리지널 콘텐츠가 아닌 외부에서 수급한 콘텐츠입니다. 이 콘텐츠들이 자체 공급처로 빠진다면 다시 넷플릭스의 경쟁력에 대한 질문이 남습니다.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증가시켜야 하니 자금 사정이 어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로서는 부채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과 함께 다른 돌파구를 찾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OTT에 대한 정의가 다시 필요해집니다. 넷플릭스나 워너는 구독모델입니다. 하지만 한 쪽에서는 2018년부터 조금씩 광고 베이스의 VOD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최근 북미 시장에서 핫한 플랫폼은 ‘플루토 TV(Pluto TV)’와 ‘로쿠(ROKU)’입니다. 플루토는 지불 능력이 낮은 밀레니얼 세대는 괜찮은 광고영상이라면 떠나지 않는다는 점을 착안해 본격적으로 광고를 넣어서 서비스를 제공하였습니다. 로쿠는 에그리게이터 서비스 플랫폼이었는데 구독 VOD 시장의 성장이 정체된다면, 여기서 수익을 얻는 로쿠의 성장도 정체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2019년 로쿠가 다시 성장하는데, 로쿠는 광고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이는 광고 기반 VOD 시장이 열렸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광고 중심의 시장으로 변모하는 가운데 콘텐츠 사업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고, 얻을 수 있을까가 중요해집니다. 여기서 ‘미디어 클라우드’가 나옵니다.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면 가입자가 늘어날수록 클라우드 비용도 증가합니다. 기존 방송시장에서 콘텐츠를 제공했던 사업들이 OTT 시장으로 많이 진입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입니다. 따라서 다양한 채널에서 자사의 OTT를 보유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넷플릭스라는 한 회사가 기존 모든 방송시장에 도전자로서 각인되었고,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겨 많은 콘텐츠 사업자가 넷플릭스와의 관계에 기쁨을 토로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장이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콘텐츠 사업이 무엇을 고민해야할지가 중요해질 것입니다.
- 발제2 황진우 팀장 (CJ ENM 콘텐츠 엑티베이션팀 / FRAPA 이사)
오늘날 미디어 콘텐츠 산업의 가장 큰 특징은 글로벌 커뮤니티입니다. 이제 콘텐츠 산업이던, 미디어 콘텐츠 산업이던 비단 한 국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므로 글로벌 시장을 볼 수밖에 없고 그만큼 우리에게는 ‘기회가 많은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tvN <꽃보다 할배>, Mnet <너의 목소리가 보여>. 이 두 프로그램은 해외로 포맷이 수출돼 K-포맷의 이미지를 제고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K-포맷이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 기관의 도움과 전문 인력의 육성 덕분입니다. 이제는 콘텐츠 사업자들이 스스로 경쟁력을 갖춰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tvN <꽃보다 할배>의 미국 버전인 NBC <Better late than Never>
출처 : NBCMnet <너의 목소리가 보여>의 필리핀 버전 ABS-CBN <I Can See Your Voice>
출처 : ABS-CBN그렇다면 한국 포맷 사업자들은 어떻게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 다섯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먼저 포맷을 ‘글로벌 향’으로 준비하고 ‘내수용’으로 만드는 겁니다. 글로벌 시장 눈높이 ‘글로벌 스탠다드’를 적용한 K-포맷은 해외 관계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질 것입니다. 애초 글로벌 향으로 준비했기 때문에 포맷을 수출하는 데 시간도 절약됩니다.
다음으로, IP 인증 및 보호 노력을 확대해야 합니다. IP라는 결과물뿐만 아니라, IP를 창작하는 크리에이터들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포맷 전문 인력의 육성, 한국포맷 상품 경쟁력의 고도화가 필요합니다. 특히 고도화를 위해서 해외시장 리서치, 포맷을 현지화하는 구조화, 포맷 지침서와 다양한 툴을 가진 패키징, 해외 시장, 마켓 프로모션, 현지 사업자와 지속적인 협업을 통한 IP 자산화 진행 이 다섯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마지막은 혼돈의 시대를 받아들이고, 준비해야합니다. 이제는 절대적 강자가 없습니다. 틱톡, 퀴비와 같은 새로운 플랫폼들도 계속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K-포맷 제작자들은 어떻게 적응하고, 주요 플레이어로 정착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이 필요합니다.
K-포맷의 글로벌 도약의 결론을 말씀드리면, 함께 ‘협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tvN <꽃보다 할배>를 수출하면서 느꼈던 점은 해외는 ‘CJ’에서 만든 포맷으로 홍보되지 않고 ‘한국 포맷(K-포맷)’이라는 말로 전파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 포맷이라는 큰 틀에서 포맷 사업자 간에 협업할 때가 되었습니다. 한국 포맷이 지속적인 성장을 통해 획기적이고 크리에이티브한 상품이 되는 것은 이제 ‘우리’에게 달렸습니다.
왼쪽부터 배진아 교수(공주대학교 영상학과), 조영신 실장(SK브로드밴드 전략담당), 황진우 팀장(CJ ENM 콘텐츠 엑티베이션팀 / FRAPA 이사), 김대원 이사(카카오), 박원우 대표(디턴), 김희숙 팀장(한국콘텐츠진흥원 방송산업팀)
사회를 맡은 공주대학교 영상학과 배진아 교수는 발제를 맡았던 조영신 실장과 황진우 팀장에게 방송 환경의 새로운 변화에 대해 물었다. 조영신 실장은 “얼마 전 광고제에서 ‘컨버전스 TV’라는 용어가 언급됐다”라고 하며 “컨버전스 TV 이전에는 TV 분야와 디지털 분야를 나눠 맞춤광고를 진행했다. 하지만 근래에 ‘방송’이라는 용어가 무의미해졌다. 사람들은 TV 콘텐츠, 모바일 콘텐츠 정도로만 구분한다. 광고사업자나 수용자들도 두 분야를 구분하지 않는 만큼 훗날 TV와 디지털 분야의 통합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며, 더 나아가면 그 시장은 디지털 시장으로 통합되어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고 했다.
황진우 팀장은 발제에서 언급했던 이야기의 연장선상에서 다음과 같이 답했다.
“한국 방송 산업에 ‘글로벌 스탠다드’를 도입해야 한다고 본다. 10년 전과 다르게 지금은 한국 콘텐츠 사업자들의 크리에이티브한 역량에 대해 해외 사업자들은 의심하지 않는다. 이 시기가 한국 콘텐츠 산업의 성장 단계에 있다고 생각하고, 글로벌 시장에 더 큰 도약을 위해서는 산업적인 구조, 내부적인 정책 등의 개선이 필요하다. 그렇게 된다면 글로벌 스탠다드의 눈높이를 높일 수 있는 과정이 되지 않을까?”
글로벌 스탠다드를 강조한 황진우 팀장의 말처럼 디턴 박원우 대표 또한 K-포맷의 도약을 위해 이를 강조했다.
“국내의 콘텐츠 기획, 개발자들의 아이디어가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시장에 진출 방향을 잘 모르는 경우를 보았다. 좋은 포맷을 만들어 해외시장에 수출해 K-포맷이 훌륭하다는 것을 입증한다면 곧 글로벌 스탠다드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것이 K-포맷 성장에 가속화가 될 것이다.”
박원우 대표
그렇다면 K-포맷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황진우 팀장은 ‘진정성’이라고 답했다.
“한국 포맷, 콘텐츠를 하나로 묶는 브랜드 작업이 필요하다. 이에 ‘진정성 넘치는 엔터테인먼트(AUTHENTIC ENTERTAINMENT)’라고 표현하고자 한다. 한국에서는 연예인들이 일반인과 같은 진정성 넘치는 활동을 보여준다. 전 세계적인 콘텐츠 선호도에서는 진정성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데, 우리는 이 점을 갖췄다. 실제로도 진정성이 담기면 시청자들은 더욱 열광한다. 단순한 재미를 뽑는 것이 아닌 진정성 녹아 있는 한국형 콘텐츠가 중요하다.”
이처럼 콘텐츠 산업계에는 다양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배진아 교수는 카카오 김대원 이사에게 포스트 넷플릭스 시대에 방송영상산업계는 무엇에 주목해야할지 질문했다.
“국내 OTT 서비스 규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글로벌 OTT 서비스, 국내 OTT 서비스의 경쟁이 치열하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과 국내 OTT 기업을 비교했을 때, 어깨를 나란히 하기엔 부족하다. 우리나라 OTT 기업이 그런 규제를 버틸 수 있을까를 냉정하게 보고,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이야기가 잘 이뤄진다면 한국의 방송영상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 도약하기 위한 조건을 마련하는데 긍정적인 영향이 끼치지 않을까?”
김대원 이사
김대원 이사는 이어 향후 5G가 하나의 화두가 될 것이며, 5G 관련 정책이 포용성을 넓히기 위해 제도와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지금의 5G는 얼마나 빨리 콘텐츠를 배달하느냐의 속도의 문제에 그친다. 5G가 좀 더 콘텐츠 산업에 활용되기 위해서는 ‘5G 콘텐츠’가 많아야 하고, 새로운 소비자들을 만족시키려는 새로운 생태계가 필요하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많은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정부차원에서 제도를 마련하는 등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다.”
정부와 산업계 차원에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던 김대원 이사의 말처럼, 방송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콘진원이 그리는 지원 정책과 방향은 무엇일까?
김희숙 팀장은 “콘텐츠 산업 포럼을 준비하면서 10년 전 콘텐츠 산업이 생각났고, 향후 10년을 어떻게 설계해야할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 주요 핵심 비전은 ‘수요자’ 중심의 콘텐츠 산업 성장이다. 기존에는 콘텐츠 기업에 제작비를 지원하는 정책에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전문적이고 창의적인 중견기업의 육성과 창작자, 제작자 육성에 무게를 실을 예정이다.”
이어 산업계 맞춤형 전문 인력 양성에 대해 고민한다고 밝혔다. 방송 산업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인력의 육성을 위해 방법을 모색 중이라 했다. 마지막으로 5G 기반의 뉴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했다.
“5G를 기반으로 미디어 산업이 많이 변하고 있다. 뉴콘텐츠에 대한 수요와 영역을 확장할 필요성이 있다. 또 기존 콘텐츠에 기술을 융합하는 방식의 뉴콘텐츠도 생각하고 있다. 이 세 가지를 바탕으로 내년 사업에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김희숙 팀장
마지막으로 포스트-넷플릭스 시대에서 국내 방송영상 콘텐츠의 글로벌 도약의 조건은 무엇인지 모든 토론자에게 공통된 질문을 던지고 포럼은 마무리되었다.
먼저 황진우 팀장은 ‘자신감’을 강조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내가 만든 프로그램들이 해외 시청자들도 소비하고 즐긴다는 생각을 하고, 자신감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김대원 이사는 산업계에 존재하는 ‘불필요한 경계’에 대해 언급했다.
“수용자들은 방송과 영상에 대한 경계를 구분짓지 않는데, 공급자는 이를 따로 나누고 고민하고 있기 때문에 수용자와 공급자 간의 괴리감이 발생한다. 불필요한 경계를 없애고 수용자와 공급자의 간극을 좁힐 방법을 고민해야할 때다”
박원우 대표는 좋은 콘텐츠를 위한 요건에 대해 말했다.
“좋은 콘텐츠가 가진 힘은 대단하다. 앞서 언급했던 많은 지각변동들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콘텐츠 제작자 개발자들에게 지원과 힘이 필요하다.”
배진아 교수
박원우 대표의 이야기를 들은 김희숙 팀장은 다시 한번 인재 육성에 관해 첨언했다.
“콘텐츠 창작자, 개발자들을 많이 키우는 것이 글로벌 도약을 위한 핵심이 될 것 같다. 이러한 부분들을 정책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많은 고민과 협력을 진행하도록 하겠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제시한 인사이트와 의견들을 통해 포스트-넷플릭스 시대, 우리의 대처 방안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만들어갈 방송영상콘텐츠 산업의 10년을 기대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