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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ISSUE 3

SPECIAL ISSUE 3

한국의 넷플릭스, 넷플릭스의 한국

글. 홍일한 (와이낫미디어 전략기획이사)

지난해 4월, 넷플릭스 CEO 리드 헤이스팅스가 2018년 한 해 콘텐츠에 80억 달러 예산 집행 계획을 밝혔을 때 세계 방송사들과 제작사들은 환호를 보냈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시장도 넷플릭스의 투자 우선순위에 들어있었을까? 넷플릭스의 글로벌 영향력이 점점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넷플릭스와 국내 방송사·제작사와의 관계를 짚어 본다.

2015년 ‘넷플릭스서비시스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넷플릭스가 한국 시장에 문을 연 지 만 4년이 지났다. 그동안 CJ ENM, JTBC 등 몇몇 방송사는 넷플릭스를 통해 자사 콘텐츠의 적극적인 유통을 도모해 수익을 올렸고, 일부 제작사는 글로벌 넘버원 플랫폼의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 제작 기회를 잡아 도약을 꾀하고 있다. 반면 지상파 3사는 자사 플랫폼인 POOQ 위주의 사업 추진에 무게추를 두며 외산 플랫폼에 콘텐츠를 공급하지 않기로 잠정 합의, 넷플릭스를 견제해 왔다.

그러던 지상파 연합의 입장에도 변화가 생겼다. 지난 1월 발표한 SK텔레콤과의 OTT 플랫폼 공동사업 추진 과정에서 방송사당 연간 2개 이내의 작품을 ‘글로벌 OTT’에 공급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이다. 소위 ‘넷플릭스 쿼터’를 수립하고 정해진 룰 안에서 수익성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넷플릭스는 국내 방송사에서 배정한 쿼터를 모두 수급할 수 있을까? 그중 일부 작품만 넷플릭스와 계약이 체결돼 방송사 간 콘텐츠 수익 불균형이 생긴다면 이후 방송사와의 관계는 어떤 양상을 보이게 될까? 넷플릭스는 국내시장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킹덤> 이후 확장되고 있는 넷플릭스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의 향방은 어떻게 될까? 그 막후의 셈법과 정보전은 지금도 복잡하고 치열하다.

공생일까?

아무리 큰 플랫폼일지라도 그 자원은 유한하며, 넷플릭스도 예외는 아니다. 2018년 4월, CEO 리드 헤이스팅스가 TED에 나와 2018년 한 해 80억 달러(약 9조 5,512억 원)에 달하는 콘텐츠 예산을 집행할 것이라 이야기하자 청중들은 환호하며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그는, 그 돈을 전 세계시장에 나누어 쓴다면 결코 큰 금액이 아니라며 진지한 고민을 전했다. 경쟁자는 계속 늘어나는데, 각 경쟁자가 저마다 다른 시장에 전략적으로 투자를 집중한다면 넷플릭스는 이를 어떻게 방어해야 하는가? (디즈니는 폭스 인수를 통해 13억 인구의 인도 시장에서 최고 점유율을 보유한 OTT 핫스타1)를 얻게 됐다.) 당연하게도, 넷플릭스는 우선순위 높은 시장에 많은 펀드를 배분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한국은 그들에게 몇 순위일까?

  • 넷플릭스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 좌측부터 <범인은 바로 너><킹덤><페르소나><첫사랑은 처음이라서>

    출처 : Netflix

한국 시장의 우선순위가 더 오르고 투자가 늘어나려면 우수한 성과를 내부적으로 증명해야 하는데, 넷플릭스의 한국 오리지널이 대단한 퍼포먼스를 보인 사례는 아직 많지 않다. 대규모 마케팅 비용을 집행한 <킹덤> 정도가 공개 당시 반향을 일으켰으나 종영 이후로는 높은 화제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아직 국내시장성이 없다는 극단적 판단은 내리지 않았겠지만, 넷플릭스가 다수 영미권 국가에서 맛봤던 폭발적 성장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다. 그렇다면 넷플릭스와 국내방송사, 제작사의 관계는 어떨까?

Money, Global

현재 방송사와 제작사가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유통하는 주된 이유는 판권을 제공해 얻게 되는 높은 콘텐츠 판매 수익이며, 넷플릭스 오리지널 제작을 추진하는 것은 완전한 제작비 회수와 더불어 글로벌 OTT와의 협업을 통한 레퍼런스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송사나 제작사가 직접 글로벌 유통을 진행할 경우 주 거래는 한국 콘텐츠 소구력이 높은 일부 시장 위주로 진행하게되며, 지역별로 복잡하고 지난한 협상 과정을 지나야 한다. 그러나 넷플릭스와 거래하게 되면 한 번의 장기 계약으로 전세계 판권을 높은 가격에 판매할 수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을 제작하는 경우 외주사로서 제작비 전체의 회수를 보장받는 동시에, 글로벌 플랫폼 편성이라는 후광 효과로 크리에이터, 캐스팅, 스태프 등 팀 구성이 수월해진다. 별도의 유통 수익을 올릴 수는 없지만, 세계 최대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 시청자들과 만날 수 있다는 점, 이를 통해 맺은 관계가 후일 글로벌 사업 진출에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도 주요 협업 고려 요인이다.

그런데, 넷플릭스가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보이는 국가는 대부분 영미 문화권이거나 대중의 영어 수준이 높은 시장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비영어권 국가에서 콘텐츠를 제작·수급한다면 넷플릭스의 글로벌 사업 관점에서는 효율이 낮다. 즉, 펀드 집중도가 낮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게다가 넷플릭스는 IP 권리를 나눠 갖는 공동 제작은 하지 않는다. 오리지널을 제작할 경우 제작사를 철저하게 외주 용역으로 사용하며 관련한 모든 권리를 가져간다. 여태까지 큰 성공을 거둔 한국 오리지널은 없지만, 만일 오리지널이 큰 성공을 거둔다 해도 제작사는 직접적인 비즈니스 효과를 누릴 수 없다는 말이다.

그나마 규모가 작은 제작사는 그 선택을 받기도 어렵다. 넷플릭스는 세계 최고의 OTT 기업인만큼, 그 관리 체계도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측이 디테일하게 참여하는 기획·개발 과정은 물론, 자체 관리 매뉴얼에 따른 치밀한 회계감사, 제작 관련된 모든 저작권 확보 및 제공, 종합편집본 심사 및 데이터에 대한 관리 등 ‘기한 내 제작을 원활히 마무리했을 경우’ 약속된 제작 완료수당을 받게 되는 제작사가 이 모든 프로세스를 원활하게 대응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모든 공식문서와 계약이 영어로 이루어지는 점 또한 높은 장벽이다.

물론, 작품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서비스된다는 것은 제작사와 방송사에게 큰 기회임이 분명하다. 콘텐츠를 지구 반대편까지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초연결시대가 제공하는 새로운 흐름일 것이다. 그러나 진열된다고 판매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며, 물리적 진열과는 전혀 다른 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에는 무한한 콘텐츠를 실을 수 있지만, 유한한 콘텐츠만이 대중의 선택을 받게 된다.

한계? 가능성!

멀티태스킹의 시대다. 우리의 하루는 더 이상 24시간이 아니며, ‘딴짓’하는 것이 일상인 시대다. 하지만 현재의 넷플릭스 콘텐츠는 ‘딴짓’을 허락하지 않는다. 대부분 영어로 만들어진 넷플릭스의 콘텐츠를 즐기기 위해서는 자막에 시선을 두며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한국의 언어와 정서로 만들어진 콘텐츠와 시간 점유율 싸움에서 쉽게 압도할 수 없는 구조다. 넷플릭스의 입장에서는 고객을 확보하기도, 수익을 내기도 상대적으로 유리한 영미 문화권에서 압도적 1위를 달성 또는 지켜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그런데 이는 디즈니나 워너와 같은 다른 경쟁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전체 OTT 시장 규모는 성장하고 있지만, 어느 시점에는 제로섬 게임의 경쟁이 그들의 주력 시장에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지금은 끊임없이 지켜내고 대비해야 하는 플랫폼 전쟁의 시대다. 1위 사업자인 넷플릭스는 우선순위 높은 시장에서 확실한 경쟁 우위를 점하고 나서야 비주력 시장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냉정하게 판단하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넷플릭스에게 있어 대단히 중요한 시장은 아니라는 말이다. 세계시장으로 영역을 넓혀보아도 아직 우리의 콘텐츠가 넷플릭스의 주력 시장에서 매력도가 높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 이는 국내의 규제나 국내 사업자 간 연대 전략 등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닐 것이다.

  • NETFLIX vs Disney vs warner media

그럼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와 우리나라 콘텐츠 업계에 분명 기회가 있다. 우리는 다양성이 강조되고 인류 보편적 가치가 존중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한국의 콘텐츠 제작 역량은 여러 시장에서 인정받는 수준에 이르렀고 현지화를 통한 성공 사례가 발굴되고 있다. 넷플릭스의 한국 사무소인 넷플릭스서비시스 코리아는 본사가 보유한 강력한 네트워크와 인프라에 접근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전 세계 콘텐츠 기업들 중에서 한국 시장과 가장 밀접한 접점을 갖추고 있다. 국내 우수 콘텐츠 기업들과 넷플릭스가 작은 국내시장을 두고 선을 긋기보다, 세계시장에서 통하는 성공의 흐름을 만들어 내기 위해 긴밀히 협력한다면 새로운 패러다임의 수립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공동의 성공을 위해 더욱 활발히 추진되는 파트너십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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