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어도어 사태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는 ‘멀티 레이블 체제’는 K-팝이 더 성장하기 위해 꼭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멀티 레이블 체제는 어떤 시스템이고, 이 체제를 운영하는 데 중요한 것은 무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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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2일 하이브의 어도어 감사 소식으로 시작된 하이브-어도어 레이블의 갈등은 4월 25일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기자회견을 통해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그 가운데 많은 분이 질문을 던지는 부분이 바로 ‘멀티 레이블 체제’입니다. 민희진 대표는 기자회견 전인 4월 16일 하이브 내부 고발에서 ‘하이브는 멀티 레이블 체제에 대한 준비도, 이해도, 자세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강하게 체제를 비판한 바 있죠. 박지원 하이브 대표 역시 5월 2일 멀티 레이블에 대한 점검과 보완을 약속하며 사과했습니다.
K-팝의 멀티 레이블 체제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먼저 레이블과 기획사의 개념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레이블은 음반사를 지칭하는 개념입니다. 반면 기획사는 소속사입니다. 연예인을 관리하고 제반 활동 및 사업을 진행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K-팝의 경우 레이블과 기획사의 개념이 공존합니다. 창작가가 곧 제작가이자 기업 최고 경영자를 겸하는 형태로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이수만의 SM 엔터테인먼트, 양현석의 YG 엔터테인먼트, 박진영의 JYP 엔터테인먼트입니다. K-팝이 총괄 제작자의 역량을 떠나 세분된 육성 및 제작 시스템으로 체계화된 21세기부터 레이블이 소속 가수를 전담해 음악을 제작하는 전문 회사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전자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스크림 레코즈, 현재 프로듀서 테디의 독립 레이블로 기능하는 더블랙 레이블 등이 대표적이죠.
BTS의 기록적인 성공을 바탕으로 하이브는 멀티 레이블 체제를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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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의 거대한 성공으로 순식간에 3대 기획사를 뛰어넘는 실적을 거두게 된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풍부한 자본을 바탕으로 레이블 인수 합병을 통해 멀티 레이블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2018년 CJ ENM과의 합작 회사 빌리프랩을 설립하고, CJ ENM이 지분 51%를 보유하고 있던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했습니다. 2019년에는 방시혁 의장과 JYP 엔터테인먼트 시절부터 인연을 맺었던 소성진 대표의 레이블 쏘스뮤직을, 2020년에는 아티스트 지코가 설립한 레이블 KOZ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했습니다. 2021년에는 글로벌 확장을 위해 유니버설 뮤직 그룹 산하 게펜 레코드와 함께 하이브 아메리카를 설립했고, 이타카 홀딩스와 빅 머신 레이블 그룹까지 품에 안았습니다.
어도어는 성격이 다릅니다. 하이브가 공동 설립과 인수 없이 2021년 쏘스뮤직을 물적분할해 최초로 설립한 독자 레이블입니다. 방시혁 의장의 무게감이 상당한 빌리프랩, 빅히트뮤직, 쏘스뮤직과 달리 어도어는 민희진 대표라는 확실한 리더가 있습니다. 민 대표는 기획 전반에 깊이 참여한 뉴진스로 커다란 성공을 거두며 능력을 증명했죠. 민 대표의 내부 고발 및 불화는 멀티 레이블 체제 자체보다 체제를 운영하는 하이브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창작과 자율성을 보장해야 할 하이브가 역으로 레이블을 차별하고 경쟁 구도를 방치했으며, 뉴진스의 제작 포뮬러를 베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물론 어도어는 하이브가 인수한 레이블이 아닌, 하이브가 설립한 자회사라는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번 사태는 서로 다른 레이블 및 관계자들의 입장을 하나의 회사로 묶어내는 공동 의식 설정에 어려움을 겪었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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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가 지난해 매출 2조 원을 돌파하며 대기업으로 올라선 데는 멀티 레이블 체제를 통한 규모의 경제 실현이 주효했습니다. 하이브는 국내를 넘어 전 세계를 아우르는 거대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손해와 적자를 감수하고 해외 레이블까지 인수를 결정했습니다. 하이브와 어도어의 갈등은 K-팝 산업이 규모를 넓혀나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겪어야만 했던 과도기 속 결정적 사건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리고 고도성장에 열광하며 모두가 잊고 있던 진리도 일깨웠습니다. 음악 회사의 핵심 자산은 기업 구조와 경영인이 아닌 지식 재산권, 창작가와 창작물, 창작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글. 김도헌(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