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의 재정의: 유튜브 다큐성 콘텐츠
글. 차우진(평론가)
수년 전, 콘텐츠 스타트업에서 일할 때 나의 미션은 모바일에 최적화된 오리지널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것이었다. 유튜브에서 웹드라마와 예능 콘텐츠가 빵빵 터지던 때였다. 하지만 콘텐츠 스타트업이 대체로 그렇듯 우리에게는 예산도, 시간도 많지 않았다. 믿을 건 오직 아이디어뿐이던 때, 매일같이 팀원들과 회의를 하고 업계 사람들을 만나고 콘퍼런스를 다녔다. 그러던 중 나온 아이디어가 다큐멘터리였다.
다큐멘터리는 돈보다는 시간과 진정성이 필요한 장르다. 진정성이란 말을 정의하기는 정말 어렵지만, 개인적으로는 ‘생각과 말과 행위를 일치시키려고 애쓰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삶을 존중하려는 생각을 자신의 말과 행위로 실천하려는 노력. 콘텐츠에 있어서는 기획 의도를 제작 과정과 결과에 온전히 반영하려고 애쓰는 것. 다큐멘터리는 바로 이 점이 가장 중요했다.
또 하나 필요했던 것은 다큐멘터리의 재정의였다. 흔히 생각하는 다큐멘터리는 〈인간극장〉이나 〈다큐 3일〉같은 콘텐츠다. 그러나 모바일의 다큐멘터리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뉴스도 아니고 교양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예능 프로그램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이걸 예능 콘텐츠로 소비하겠지만 우리는 이걸 다큐멘터리로 인식해야 해.” 회의 중에 나온 말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기획은 끝내 빛을 보지 못했다. 회사 사정상 예산이 줄었고 이 기획을 제작할 만한 상황은 다시 오지 않았다. 그리고 2020년, 그때의 친구들을 만나 ‘요즘 유튜브에 다큐멘터리 콘텐츠가 늘었다’는 얘기를 나눴다. 예전의 우리가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며, 씁쓸하지만 나름 의미 있는 감정을 주고받았다. 그건 일종의 응원이었다.
확실히 유튜브 콘텐츠 중에 다큐성 콘텐츠가 늘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MBC 시사교양 PD 출신인 최별 PD가 만드는 ‘오느른’이 있다. 이 콘텐츠는 방송사가 소속 직원의 브이로그를 업무로 인정한 첫 사례로도 화제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콘텐츠를 일종의 미니 다큐라고 정의한다.
30대 MBC PD가 전라북도 김제의 오래된 집을 사서 고치는 과정을 찍어 유튜브에 올렸고, 입소문을 타면서 25만 명이 넘는 구독자가 생겼다. 오느른은 ‘오늘을 사는 어른들’이라는 뜻으로 내일이나 미래 대신 오늘의 자신에게 집중하자는 맥락이다. 주인공이 새로 산 폐가를 사람이 살 만한 상태로 만들고, 그러는 동안 인연을 맺게 된 이웃들과 만들어가는 사소한 에피소드가 이야기의 전부다. 물론 그 과정이 험난하지만. 이웃에는 이 동네에 이사 온 지 70년 됐다는 95세 동네 친구가 있고, 오래된 집에 자리 잡고 사는 고양이가 있다.
유튜브 채널 ‘오느른’
출처 : 오느른 YouTube댓글 창에는 ‘시골 인심이 예전 같지 않다’, ‘여자 혼자 시골에서 사는 게 걱정된다’는 훈수부터 ‘보는 내내 힐링된다’거나 ‘알고리즘이 나를 여기로 인도해서 보다보니 웃다가 울다가 1화부터 정주행 중이다’라는 댓글까지, 온갖 반응이 살아 숨 쉰다. 오느른의 힘은 바로 이 살아 숨 쉬는 댓글들이다. 주인공이 가감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었기 때문에 들을 수 있는 다양한 의견이다. 유튜브에서는 ‘척’이 통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오느른 외에도 유튜브 다큐멘터리, 혹은 차별화된 다큐성 콘텐츠들이 있다. 뉴미디어 팀인 ‘닷페이스’는 뛰어난 영상미와 스토리텔링으로 유명한 콘텐츠를 만든다. 재일한국인들의 삶을 음식 다큐멘터리에 담은 〈소울푸드〉 시리즈, 몰카 범죄를 제도와 가해자 관점으로 다룬 〈몰카랜드〉 시리즈와 미성년자 성매수자들을 만나는 〈H.I.M.〉, n번방 사건을 밀착 취재한 〈N번방: 텔레그램 내 성착취〉, 간호사들의 삶을 통해 한국의 의료계 현실을 다룬 〈간호사, LIFE〉, 그리고 동성애 치료라는 명목으로 벌어지는 비인권적인 세태를 고발하는 〈구원자:Save Me〉 같은 시리즈는 시사와 다큐의 영역을 넘나들며 저 멀리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소수자 이슈를 내 주변의 이야기로 만든다.
〈몰카랜드〉 〈간호사, LIFE〉
출처 : 닷페이스 YouTube닷페이스는 지속가능한 콘텐츠 비즈니스를 위해 ‘닷페피플’이라는 후원자 커뮤니티도 운영한다. 팬덤 비즈니스의 일환으로 정기후원자와 밀착된 관계를 맺는다. 닷페피플에게는 정기적으로 편지와 굿즈 박스를 보내는데, 굿즈는 주로 노트북이나 문구류에 붙일 수 있는 스티커다. 카페나 미팅 자리에서 닷페피플 스티커를 붙인 사람을 보면 초면에도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런 소속감을 기반으로 닷페이스의 영향력과 정체성을 만들어 간다는 점이 기존 콘텐츠 채널과의 차별화다.
한편 다큐멘터리 스타일은 다소 선정적인 소재와 접근 방식으로도 활용된다. 〈그것이 알고 싶다〉(SBS)가 대표적일 텐데, 유튜브에서는 ‘진용진’ 채널의 〈그것을 알려드림〉 시리즈나 지금은 잊힌 스타나 유명인을 찾아가는 ‘근황올림픽’ 채널 등이 그 사례다. 〈그것을 알려드림〉은 길티 플레저(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즐기는 행동)다. ‘수족관의 상어는 어떻게 옮기나?’, ‘시끄러운 오토바이 운전자는 안 시끄러울까?’ ‘상다리가 부러지려면 얼마나 차려야 할까?’ 같은 일상 소재 외에도 ‘서울사이버대학교에 다니면 인생이 달라질까?’, ‘보수 의원은 아베 욕을, 진보 의원은 김정은 욕을 할 수 있을까?’ 같은 미묘하게 기이한 소재도 다뤄버린다. 핵심은 영상의 주인공을 직접 만나는 데 있다. 유튜버 진용진은 질문을 제보로 받은 뒤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데, 구독자들은 여기에서 쾌감을 느낀다.
근황올림픽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지적 참견 시점〉(MBC)으로 화제가 되었던 송이 매니저의 근황부터, 90년대 댄스 그룹 잼의 멤버였던 ‘만복이’를 만나거나, 〈화성인 바이러스〉(tvN)나 〈렛미인〉(O tvN)의 출연자들을 짧게는 10년, 길게는 30년 만에 찾아가 근황을 듣는다. 왜 그동안 활동을 못했는지, 그 이후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그럼에도 여전히 이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과 방송에 나온 그들로부터 어떤 위로를 받고 어떤 공감을 했는지 등을 추억한다. 핵심은 인터뷰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이들의 근황이 추억에 그치지 않고 현재 진행형의 메시지를 던진다. 비록 자극적인 소재와 인물들이지만, 거의 편집 없이 제작되는 대화를 통해 콘텐츠의 전달력과 메시지가 부각된다.
앞서 진정성이란 생각과 말과 행위를 일치시키려고 애쓰는 과정이라고 했다. 유튜브의 다큐멘터리 스타일 콘텐츠들은 하나같이 레거시 미디어가 대체로 간과했던 소재, 혹은 시청률을 빌미로 왜곡된 이미지로 강렬하게 소모되고 순식간에 잊힌 인물들을 다룬다. 가치를 기준으로 보자면 평가는 달라지겠지만, 형식으로는 거의 동일하다.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을 다소 감상적으로 표현하자면 ‘진심’일 것이다. 방송가에서 진심이란 유니콘 같았다. ‘의미는 있지만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은 매우 강력하게 작동하는 논리였다. 그러나 유튜브에서는 오히려 솔직함, 진정성, 깨끗함이 미덕이 된다. 기계적인 투명성은 논쟁적이지만 강력한 설득력을 가진다. 여기서는 마침내 진심밖에 통하지 않는다. 구독자들은 끊임없이 진실을 요구하고 검증한다. 이 투명성이야말로 유튜브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핵심 엔진이다.
결과적으로 유튜브는 다큐멘터리의 개념과 정의를 재정의하도록 만든다. 오느른은 집을 구매하는 과정뿐 아니라, 이 콘텐츠를 두고 MBC와 담당 PD가 논의하는 과정을 담으면서 이런 논점을 돌파했다. 닷페이스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정기적으로 보여주면서 닷페이스의 문제의식과 구독자들 간의 거리를 좁혀 나간다. 근황올림픽과 진용진은 제보라는 형식으로 기획 단계부터 구독자들의 의견을 반영한다. 여러 논점들이 있지만 유튜브라는 시청 및 제작 환경은 기존 포맷의 정의를 바꾸거나 강화하거나 조정한다.
새삼 우리는 이 불확실의 시대에 어떻게 살 것인가. 유튜브의 다큐멘터리가 제기하는 질문은 뜻밖에도 바로 이런 것이다. 계획이, 전략이 과연 가당키나 한 것일까.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기획 의도와 결과물뿐 아니라 과정 그 자체를 그대로 보여주면서 완성된다. 여기서 21세기의 미디어는 이미지와 실체, 본심과 가식, 대화와 마음을 교차해서 보여준다는 걸 깨달을 수밖에 없다. 이 경계와 모순의 세계에서, 진정성이란 차라리 생존 전략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