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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선 음악 예능, 레트로와 비대면 시대의 조우

글. 조성경(칼럼니스트)

뜨고 지는 TV 예능 가운데 최근에는 음악 예능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현재진행형인 트로트 광풍을 증명하듯 트로트 가수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들이 관심을 끌고 있고, 하반기까지 신규 트로트 예능이 줄을 이을 예정이다. 또한, 코로나19로 인한 여파로 스튜디오 녹화물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 속에서 흥행에 성공하는 프로그램들을 들여다보면, 이들을 관통하는 인기 비결이 따로 있다.

트로트 저 너머 레트로

요즘 트로트 아이템들이 방송가에 넘쳐나고 있다. 특히 〈사랑의 콜센타〉(TV조선)는 시청률 20%대를 유지하며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다. 〈사랑의 콜센타〉는 시청률 35.7%로 방송가를 평정한 〈내일은 미스터트롯〉(TV조선)의 톱7이 출연하는 스핀오프 프로그램으로, 후광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트로트 열풍의 정점을 찍은 〈미스터트롯〉의 후광이라고만 하기에는 그 인기를 다 설명할 수 없다.

사실 지난해 시작한 트로트 열풍 전에는 레트로 열풍이 있었다. 몇 해 전부터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복고에 대한 향수는 〈무한도전〉(MBC)에서 펼쳐진 ‘토토가’가 기폭제가 돼 폭발적인 레트로 열풍으로 이어졌다. 1980~90년대 음악들이 다시금 주목받으며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고, 그 분위기 속에 자리를 잡은 〈슈가맨〉(JTBC)은 시즌을 거듭했다. 유튜브에서는 옛 가요들의 라이브 스트리밍이 인기를 끌면서 ‘온라인 탑골공원’이라는 신조어가 나오기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과거 음악방송을 자료로 퀴즈나 토크를 펼치는 레트로 음악 예능들이 줄지어 나왔다.

지금의 트로트 열풍도 레트로 열풍의 연장선상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의 음악들을 되돌아보다 보니 트로트까지 시야가 트인 것이다. 무엇보다 〈사랑의 콜센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는 점에서 다른 트로트 예능 혹은 레트로 음악 예능과 비교가 된다.

1970년대 DJ에게 음악을 신청하던 ‘음악감상실’의 감성까지는 아니지만, 신청곡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나 받던 것으로서 다분히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묻어있다. 〈사랑의 콜센타〉는 특정 시간 동안 전국 각지에서 걸려온 전화를 통해 신청자들의 사연과 신청곡을 들어주며 아날로그 감수성을 자극한다. 프로그램명까지 ‘콜센터’가 아닌 ‘콜센타’라고 표기해, 촌스러운 느낌으로 옛 감성을 더했다.

전화 연결 방식은 SNS를 선호하는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다소 구시대적이라는 느낌을 줄지 모른다. 그러나 레트로 감성을 높이는 한편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신청자의 목소리 등 리액션이 여과 없이 반영돼 소통의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주는 게 분명하다. 시청자 입장에서도 〈미스터트롯〉 때 애정을 준 가수들과 이야기 나눌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고, 안방극장에서 보고 듣는 재미도 크다.

몸은 멀어도 마음은 가까이

〈사랑의 콜센타〉는 임영웅, 영탁, 이찬원, 김호중, 정동원, 장민호, 김희재 등 〈미스터트롯〉 팬들의 사랑을 한껏 받아 일약 스타로 떠오른 톱7이 펼치는 일종의 팬서비스 무대다.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해 가수들도 한껏 열린 마음으로 방송에 나선다. 신청자들의 전화와 신청곡에 열과 성을 다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을 또 한 번 흐뭇하게 하고 있다. 최근 방송에서는 한 신청자의 애달픈 사연에 모든 출연진들이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가수들이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모습은 팬들의 참여 의지를 높이고,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하는 마음의 구속력을 높이고 있다.

‘랜선 이모’, ‘랜선 남친’ 등의 말이 반영하듯 요즘은 SNS에서 맺어진 다양한 관계에 익숙하고 소통을 당연시 혹은 중시하고 있다. 〈사랑의 콜센타〉는 이러한 랜선 소통과는 조금 다르지만, 전화의 아날로그적인 특징이 사람들을 서로 소통하고 교감하게 만드는 큰 장점이 있다. 더욱이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비접촉 시대를 살게 된 사람들은 세대불문 간접 소통에 더 익숙해졌다.

뿐만 아니라 노래 혹은 음악이라는 소재는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쉽게 교감하게 만드는 매개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배경음악이 쓰이는 이유를 봐도 음악의 교감 효과가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사랑의 콜센타〉는 음악을 주요 소재로 하는 예능으로서 소통에 교감을 더해 시청자들의 마음을 더욱 끌어당길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음악 예능에서도 남다른 교감의 힘을 여실히 보여줬다. 코로나19 사태로 해외 버스킹 계획에 차질이 생긴 〈트롯신이 떴다〉(SBS)가 ‘랜선 버스킹’으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가수들은 랜선으로 연결된 팬들의 얼굴을 보고 무대를 펼치게 됐는데, 뜻밖에도 출연자들이 더 감동하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출연자들이 웹캠으로 전해오는 화면 속 팬들과의 예상치 못했던 교감이 큰 감동을 준 것이다. 팬서비스로 무대에 나섰던 가수들이 오히려 팬들로부터 힘을 얻었다.

주현미는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장윤정은 눈시울을 붉히며 각자의 느낌을 고스란히 전했는데 지켜보는 시청자들까지 덩달아 남다른 감흥에 젖게 됐다. 랜선이어도 교감의 힘은 강력했고, 전파를 타고 온 화면에까지 그 여운이 진하게 전해졌다. 쌍방향 소통의 힘이 오롯이 방송 효과로 나타나 랜선 버스킹을 관람하려는 사람들의 온라인 관객 신청이 늘어나고 있다.

〈사랑의 콜센타〉와 〈트롯신이 떴다〉가 공교롭게도 트로트 가수를 주요 출연진으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트로트 열풍에 편승해 효과를 봤다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소통과 교감이라는 매력 포인트가 확실하다는 점이 두 프로그램이 다른 트로트 프로그램들과 확실히 비교되는 차별점이자 인기 비결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나 생활 속 거리두기가 일상이 된 현재 두 프로그램은 모두 적극적으로 심리적 거리 좁히기에 집중했다. 그러고 보면 두 프로그램은 모두 레트로와 비대면 시대의 조우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위기 속 돌파구와 기회

이 두 프로그램들을 비롯해 최근 생긴 음악 예능들이 모두 스튜디오물이 되고 있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모두 코로나 사태 이후 시작한 프로그램들로서 코로나 여파로 영향을 받은 제작 환경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그동안 관객 앞에서 펼쳐지던 〈불후의 명곡〉(KBS2)이나 〈복면가왕〉(MBC) 등은 관객 없는 무대로 방송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마냥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코로나19로 인한 제작 환경의 변화가 방송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기회를 잡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코로나 위기가 아니었다면 〈트롯신이 떴다〉와 같은 트로트 레전드들의 랜선 버스킹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제작진이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었을까?

〈사랑의 콜센타〉도 마찬가지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미스터트롯〉의 스핀오프는 지난해 〈미스트롯〉의 스핀오프 〈뽕 따러 가세〉에서 송가인이 했듯 현장을 다니며 팬들을 만나는 형식의 〈뽕 따러 가세2〉였다. 그러나 코로나19로 난관에 부딪히면서 팬과의 전화 소통 형식으로 바꿔 〈사랑의 콜센타〉가 탄생하게 됐다.

스튜디오 녹화는 코로나로부터 안전을 담보하는 방안이기도 했지만, 야외 녹화와 비교해 돌발변수가 적고 비용도 적게 든다는 점에서 큰 장점이 있다. 코로나로 당면한 위기는 제작진에게 비용 절감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도 안겨준 셈이다.

〈사랑의 콜센타〉는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흥행에 다가갔다고 볼 수 있다. 노래방 대결이라는 대중들에게 익숙한 놀이문화를 프로그램에 녹인 것이 그렇다. 노래방 대결은 〈트롯신이 떴다〉에도 등장했고, 과거 많은 예능들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된 아이템이자 지금도 사랑받는 스튜디오 예능의 소재다. 많은 아이돌 가수들이 자신의 SNS를 통해 코인노래방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내보내 인기를 끌기도 한다. 노래방은 가수들에게도 대중들에게도 익숙하고 즐거운 놀이이면서 관심을 끌기에도 좋은 방송 아이템인 것이다.

결국, 위기에도 기회는 있다는 말을 이 같은 음악예능들이 증명하고 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처럼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 코로나라는 악재까지 더해져 제작진들이 더욱 갈피를 잡기 어려운 지금이, 새로운 방송 강자가 탄생할 순간일 수 있다. 코로나19가 아니었더라도 모바일 시대의 도래로 개인화가 속도를 내면서 비접촉·비대면 소통이 편해진 대중들은 다양한 방식의 쌍방향 소통으로 스타들과의 심리적 거리 좁히기를 기대할 것이다.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그 안에서 새로운 스타도 탄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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