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방송이 직면한 콘텐츠 편성의 현실은 냉혹하다. 방송 환경의 급변으로 시청자 확보가 갈수록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지상파방송에 해당하는 지역방송이 케이블방송이나 위성방송, IPTV 등 유료 채널과 벌이는 경쟁도 힘든 상황인데, 이제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 빠르게 성장하는 OTT와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갈수록 첩첩산중을 벗어나지 못하는 지역방송 편성 전략의 현실. 지역방송 편성의 앞길에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까? - 글. 이진로 (영산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방송통신위원 지역방송발전위원)
지역방송 편성 전략의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그동안의 주요 연구를 간략히 살펴보자. 2003년 방송위원회가 발표한 <지역방송발전위원회 종합보고서>에는 다매체, 다채널 시대 지역방송 프로그램 경쟁력 확보를 위해 지역방송의 주시청시간대(Prime Time, 이하 프라임타임) 편성제 도입을 비롯해 자체 제작 확대와 공동제작 활성화 등의 방안을 담았다. 이들 내용은 이상적으로 타당했지만 현실적으로 한계를 지녔다. 지역방송 프로그램 프라임타임 편성의 경우 1단계 자율적 유도를 거쳐 2단계로 방송법을 개정하여 지역방송의 자체 제작 프로그램 제작 활성화 및 편성 확대 제도화 등 실효성을 확보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이러한 프라임타임 편성과 자체 제작 확대 계획은 성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 계획이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우수한 콘텐츠 제작을 감당할 충분한 인력과 예산이 필요했지만 지역방송사의 경영 현실은 이를 뒷받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례로 SBS와 제휴 관계에 있는 지역민방 9개사의 경우 2007년 1,900억 원이었던 광고수입이 2012년 1,569억 원, 2017년에는 1,098억 원으로 하락했음은 지역방송이 최소의 인력과 제작비에 바탕을 둔 저비용 고효율 편성 전략을 요구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정이 어려운 가운데 지역방송 제작 현장에서도 편성 전략에 대한 고민이 끊이지 않았다. 설경철(2003)은 지역 MBC의 시청률 추이를 관찰한 끝에 2002년 추동계 편성 개편 이후 토요일 아침 시간대에 편성된 <출동 6mm 현장 속으로>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서울의 키스테이션1) 에서 동일 시간대에 편성한 프로그램보다 시청률이 높게 나오는 상황에 주목했다. 일반적으로 지역방송의 시청률이 키 방송사 시청률의 절반에 불과한 상황에서 나타난 의외의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프라임타임에 편성된 지역방송 프로그램의 질이 우수하지 않을 경우 다른 채널과 경쟁하여 시청자를 확보하기 어려웠다. 반면에 <출동 6mm 현장 속으로> 프로그램의 성공은 시청자 분석을 통해 시청자들이 선호하는 프로그램 포맷을 시청이 편리한 시간대에 틈새 편성한 데 있었다.
해외 주요 국가의 사례를 통해 지역방송 편성 전략의 특징을 살펴보겠다. 이은미(2005)는 미국 지역방송의 성공 사례 중 하나로, 지역 이슈를 밀착 취재해 틈새시장을 확보하는 편성 전략을 꼽았다. 그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인구 규모가 큰 대도시의 경우 지역 관련 메인 뉴스를 매일 2건 정도 집중 보도하고, 탐사보도를 매주 2회 내외 편성했으며 스포츠 뉴스와 지역자체 프로그램 등을 확대했다. 반면 소규모 도시의 경우 지역뉴스에서 철저할 정도로 골목기사를 제공해 지역방송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지역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지역방송의 존재 이유이자 미래의 생존전략임을 지적한다.
미국 지역방송 WRAL TV의 편성전략 사례에 대한 최근 분석도 비슷한 주장이다(임승환, 2016).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위치한 WRAL 방송국은 민간 기업인 캐피탈방송사(Capital Broadcasting Company)가 운영하는데, 주의 수도인 랄리(Raleigh)와 채플힐(Chapel Hill), 더램(Durham) 등을 주요 가시청권역으로 삼고 있다. 이 방송국의 편성 전략 특징은 지역 밀착에 있다. 구체적으로 평소 주중에는 매일 9시간 30분의 지역 뉴스를 방송하고, 매주 1차례 30분 동안 <On the Record>라는 집중 인터뷰 프로그램을 제작, 편성하고 있다. 또한 6주에서 8주 간격으로 자체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내보내고, 고등학교 미식축구 경기인 <Football Friday>와 고등학생 대상의 퀴즈쇼도 편성한다. 지역뉴스는 전체 주중 프로그램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고, 주말에는 네트워크 키스테이션이나 외주 제작사와 프로그램 유통 기능을 수행하는 신디케이션(Syndication) 프로그램을 더 많이 편성한다.
전체 평균으로 보면 최소 25% 가량의 프로그램이 자체 제작, 방송되는데 이와 같은 편성 전략은 뉴스와 정보, 기부, 행사 등을 통해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국제적, 전국적 주요 이슈를 지역사회의 시각에서 전달함으로써 지역 시청자들이 해당 채널을 찾게 만든다. WRAL TV에서 주목할 것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해 TV 채널을 보완하고, 시청자의 온라인 동영상 시청 추세에 대응하여 다시보기 기능과 광고 포맷을 실험하는 등 미래에 대한 대비를 소홀히 하지 않는 점이다.
영국의 경우 지역방송 편성 전략에서 공영방송 BBC에게 지역의 제작 활동 확대를 요구하는 반면에 지역방송 연합채널인 ITV의 경우에는 수익성 약화됨에 따라 지역 관련 제작 부담을 크게 줄여주었다(이은미, 2005). 이에 따라 ITV는 채널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지역 시청자의 선택을 받기 위한 차별화 전략으로 지역뉴스와 고품질 프로그램 편성을 강화했다. ITV는 방송면허 획득 시 지역별 사정에 따라 뉴스는 최소 5시간 30분 이상, 시사 프로그램은 4시간 내외로 제작할 것을 요구받았고 위 전략은 이러한 제작 과정에 반영되고 있다.
프랑스의 민영 지역방송은 2005년의 경우 대도시와 중소도시(농촌) 지역에 모두 12개사가 운영됐는데, 뉴스와 시사, 스포츠 프로그램 등을 주로 편성했다(이은미, 2005). 대도시 지역방송 뉴스의 경우 해당 대도시에 발생한 주요 뉴스 8~10개를 심도 있게 분석, 보도함으로써 다른 채널과의 차별성을 추구하고, 시사와 스포츠 프로그램에서도 지역성을 강조했다. 인구 30만 내외의 중소도시 채널은 주변 농촌 지역 관련 내용과 동물, 식물, 지역의 자연자원 다큐멘터리를 편성하고, 스튜디오에서 지역 시청자 약 천 명과 직접 만나 스포츠, 문화, 여가생활에 대한 의견을 듣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등 생활 밀착과 시청자 참여 등을 중시한 편성 전략을 보여준다.
일본의 지역방송은 도쿄에 위치한 네트워크 키스테이션에 대부분의 프로그램과 수익을 의존하지만 지역 밀착 프로그램의 강화와 자사 제작 프로그램을 전국적으로 방송함으로써 다매체 다채널 시대의 생존 방안을 모색했다(이은미, 2005). 구체적인 예로는 주변 지역방송사와의 협력을 통한 공동제작 활성화를 비롯, 지역방송사 권역 내의 케이블 방송사와의 협력 추진, 위성방송을 통한 전국 채널 구성 참여, 같은 지역 지역방송사 간 협력, 드라마 제작 진출 등인데, 이는 채널, 매체, 지역을 초월한 편성 전략에 해당한다. 하지만 일본의 지역방송 편성 전략은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최근 일본 지역방송은 대규모 ‘인력감축→근무환경 저하로 인한 근로의욕 감소→자체 제작 비율 축소→수익성 중시에 따른 매출지상주의→지역방송의 신뢰 및 위상 저하’라는 악순환에 봉착해 있어 자체 제작 비율을 축소하여 수중계(受中繼, TV방송을 그대로 받아 라디오에서 중계 형식으로 동시에 방송하는 일)에 전념하거나 또는 방송 이외의 사업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김경환, 2017). 이러한 상황은 지역방송이 지역 프로그램 편성 전략만으로 현실을 타개하고 생존을 모색하기가 용이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지역방송의 편성 전략은 지역성이 높은 프로그램의 제작에 있는데, 내용상으로 지역 밀착적이고, 이슈 선정에서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현안이고, 접근 시각에서 지역 시청자의 이익에 기반할 것으로 요구받는다(한진만 외, 2010). 지역 밀착형 프로그램은 지역민의 이해와 관심을 담은 뉴스, 생활정보, 토론, 스포츠 등이 그리고 지역 현안 프로그램은 지역의 쟁점에 대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여론과 의견을, 지역 관점 프로그램은 국내외 주요 이슈에 대해 지역에 어떤 영향을 주고, 대처가 필요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을 각각 포함한다. 하지만 지역방송국의 경우 양질의 프로그램 제작에 수반되는 우수한 제작 인력, 충분한 제작비, 효율적인 제작 문화 측면이 미흡한 실정이다. 현실적 대안은 제한된 인력과, 제작비, 시설, 기술, 문화를 고려하여 시청률을 향상시키는 효율적인 편성 전략이다.
지역방송 편성 전략의 성공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녹록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OTT까지 가세한 콘텐츠의 무한경쟁 상황만으로도 버거운데, 광고매출액 저하, 수익성 악화, 기자ㆍ프로듀서ㆍ엔지니어 등 방송 제작자의 감축, 낮은 수준의 시간당 제작비, 제한된 콘텐츠 유통, 키스테이션과의 불평등 관계 등의 장애물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솔직하게 말하자면 성공적인 편성 전략은 현실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지레 포기하거나 좌절하자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쉽지 않은 성공을 향해 더 많은 지혜를 모으고 더 열심히 노력하자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첫째, 지역방송의 정체성을 살리는 지역 뉴스 중심의 차별화 편성 전략을 고민할 때다. 지역뉴스가 네트워크 뉴스 후반부에 전달되는 현재의 뉴스 포맷과 구성은 지역 뉴스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저하시키고, 뉴스 가치가 열등하다는 이미지를 형성할 것이 우려된다. 국내 방송에서 일반적으로 국내 뉴스 다음에 해외뉴스가 소개되듯이 지역방송에서도 지역 뉴스 다음에 네트워크 키 방송사의 뉴스가 나가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이준호, 2017). 작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역 시청자를 존중하고, 지역사회의 위상을 제고시키며 궁극적으로 지역방송의 지역성 수행에도 부응하기 때문이다.
둘째, 지역의 중요 행사를 비롯해 사건과 사고, 재난이 우려되는 기상 현상 등이 발생할 경우 지역 뉴스의 집중 중계방송을 검토하기 바란다. 미국의 경우 이런 이슈가 발생할 경우 하루 종일 네트워크 방송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지역 소식을 방송한다. 또한 지역 스포츠 경기, 행사·축제 등을 수시로 생중계하는데 이런 편성은 지역방송의 명제인 지역성을 강화하고 시청자들의 충성도를 높이면서 결국 수익 구조를 높이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임승환, 2016). 지역 시청자의 관심, 안위와 직결되는 내용은 호소력을 갖고 채널을 선택하게 만드는 킬러콘텐츠(Killer Contents)다. 한편 일부 지역 시청자와 네트워크 키 방송사가 수중계를 요구할 경우 온라인 홈페이지와 OTT 서비스를 통해 수용할 수 있다.
셋째, 지역방송이 다른 지상파 방송 채널의 네트워크 프로그램과 실력 편성으로 경쟁하기보다는 타 채널의 취약점을 찾아 보완 편성하는 방안이 효과적이다. 시청자 선호도 조사를 실시하고, 반영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프라임타임에는 다양화된 시청자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지역민 참여도가 높은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지역의 이슈를 다룬 다큐멘터리와 시사프로그램은 시청자 집중도가 높은 저녁 시간대에 편성하는 것이다. 매거진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가시청 수용자가 가장 많고 복합 시청 경향이 높아지는 아침 시간대에 배치, 프로그램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타이틀의 일관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저예산 효과를 높이기 위해 적절한 재방송 전략을 채택할 것 등이 제안됐는데(설경철, 2003) 아직 채택하지 않은 전략의 경우 이러한 사항들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최근 주목할 만한 지역방송 편성으로 지역 MBC 16개사가 공동기획하고 제작한 <지역독립선언>이 2018년 10월 1일부터 매주 월요일 밤 11시 10분 5주 연속 방송된 것을 들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충청권(세종), 전라권(광주), 경상권(부산), 강원권(평창) 등 4개의 지역 거점을 순회하며 지방자치와 분권의 화두를 토론과 쇼의 형식으로 제작, 총 5부작으로 방송되었다. 이 사례가 의미 있는 이유는 지역의 어려운 현실을 깨닫게 하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지역 시청자가 흥미를 가질 만한 수준 높은 공동제작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지역방송 편성 전략은 지역 시청자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필요한 시간, 효과적인 방식으로 충분히 보여주도록 결정하고 배치하는 작업이다. 편성 전략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지역방송이 개별 또는 공동으로 시청자의 방송 시청 행태를 정기적으로 조사하고,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포함한 다양한 플랫폼과 채널의 영향을 분석한 후 보다 많은 시청자 확보를 위해 경쟁 방송사와 확연히 차별되는 프로그램을 제작, 편성해야 한다.
* 참고문헌
ㆍ김경환(2017). 일본 지역방송의 지역성 강화를 통한 지역방송 활성화 사례 연구. 언론과학연구 17(4), 2017, 41-65.
ㆍ방송위원회(2003). 지역방송발전위원회 종합보고서.
ㆍ설경철(2003). MBC계열사의 로컬프로그램 제작 및 편성전략에 관한 연구 : 지역프로그램의 시청률 향상 방안을 중심으로. 청주대학교 대학원 석사논문.
ㆍ이은미(2005). 방송.통신 융합시대의 지역방송 위상재정립 연구. 방송위원회.
ㆍ이준호(2017). 지역방송발전 지원정책 모색. 지역방송발전위원회 발표자료(2017.5.11. 부산)
ㆍ임승환(2016). 미국 지역방송의 편성전략 고찰: 노스캐롤라이나 WRAL TV를 중심으로.
ㆍhttp://samsungpf.org/?mod=document&uid=783&page_id=2100
ㆍ한진만 외(2013). 지역방송정책론, 커뮤니케이션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