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에서 정준하가 계속해서 반복해 부른 하이라이트 구절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나는 착한 순정남이고, 자상한 다정남이고, 의리 있고, 귀여운 남자라며 어필하는 사랑노래 같지만 가사 앞에 붙는 ‘보기보다는’, ‘생각보다는’이라는 말들을 보면 그가 대중들에게 하고 싶은 말 같기도 하다는 느낌이 든다. 유난히 대중들에게 비난과 질타를 받는 일이 잦았던 그. 대중이 자신에게 정을 주든 안 주든 자신은 늘 정을 주며 열심히 방송할 테니 조금 더 자신을 예뻐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을 담지는 않았을까. - 글. 박다영(추계예술대 영상시나리오학과 3학년)
그는 갓 나온 뜨거운 우동을 12초 만에 먹으면서 대중에게 식신 캐릭터를 더 강렬하게 보여준 후, 무한도전에 합류하게 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유재석을 비롯한 다른 멤버들은 절을 하다시피 하며 식신의 등장을 칭송하고, 자막마저도 그의 등장을 환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정준하가 등장하는 장면의 자막에는 해골이 가득해졌다. 밀라노 모델 특집을 위해 한 달 만에 18kg 가량을 감량하는 노력을 보였지만 멤버들은 그의 얼굴이 촛농이 흘러내리는 것 같다며 ‘정촛농씨’라 부르며 놀리기 바빴다.
그런 그를 한결같이 대하는 단 한 사람은 바로 박명수다. 박명수만큼은 정준하가 영입된 초반부터 그에게 호통을 치며 자신의 캐릭터를 극대화 시킬 수 있는 대상으로 대했다. 초반에는 정준하 역시 박명수의 태도에도 기죽지 않고, 오히려 더욱더 세게 나가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대응하는 것 같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토라지고, 진짜로 감정이 상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상극의 모습들이 웃음을 자아내고, 자주 삐치는 정준하만의 캐릭터가 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전성기 시절이었던 <노브레인 서바이벌> 때의 바보 캐릭터의 연장으로 미션의 룰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바보 형’ 캐릭터를 얻었다. 그러나 아무도 예상치 못한 ‘전자두뇌 정 총무’ 캐릭터로 대박을 터뜨리기도 했다.
<정 총무가 쏜다!> 특집은 정준하가 계산기 없이 눈대중과 머리로만 대략적으로 계산을 해서 오차 범위 내의 금액을 맞추는 미션을 해결하는 특집이었다. 그를 헷갈리게 하기 위해 회전초밥 집에서 각기 가격이 다른 여러 색깔의 접시들을 다 섞어 놨음에도 계산에 성공해 노홍철이 초밥값을 다 계산하게 만들어 버리기도 했다.
방송 후, 정준하가 이미지 때문에 바보연기를 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는 자신에게 캐릭터가 생기는 것을 누구보다도 반긴다. 새로운 캐릭터가 생기면 기존에 갖고 있던 캐릭터와 접목해 또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언니의 유혹> 특집 때, 방배동 노라 ‘정준연 언니’로 변신한 그는 뜨거운 대하 12마리를 1분 안에 먹어치우며 식신의 면모를 다시 한 번 더 보여줬고, 방송 말미에 나온 문학의 밤, 시 낭송에서는 특유의 감수성을 넣어 만든 음식 시를 통해 방배동 노라 캐릭터를 성공시키기도 했다. 바보에서 천재로, 남자에서 여자로. 그의 캐릭터 소화력 역시 식신다웠다.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방송을 더 재밌게 만들기 위한 그의 과한 욕심이었는지, 단순히 오해로 쌓인 구설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에게는 유독 많은 구설수와 시청자들의 질타가 있었다. 쌓여온 실망감은 그가 아무리 재밌는 캐릭터를 보여도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탓만 했던 과거의 행동들을 떠올리게 하며 현재의 그 자체를 호감으로 보기 어렵게 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 다시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던 건 인간성과 진심이 보인 무한상사의 만년 과장, 정 과장 캐릭터 덕분이었다. 뭐든 열심히 하려고 하지만 눈치가 없어서 자신보다 어린 유 부장에게 매일 혼나고, 박 차장에게는 무시를 당한다. 결국 정리 해고를 당해 오랜 기간 충성했던 무한상사에서 나와 방황하지만 다시 일어서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음식 장사를 성공시킨다. 구설수와 논란으로 마음고생을 하면서도 어떻게든 일어서고자 했던 실제 정준하와 정 과장이 겹쳐 보여서 더 감정 이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외에도 아프리카에서 만난 아기 코끼리 ‘도토’와의 교감을 나누면서 따뜻한 모습을 보여주며 도토 아빠라는 별명을 얻고, 가요제에서 도토의 이름을 넣어 만든 노래로 인기를 얻기도 한다. 또한 이때 처음 도전한 랩을 시작으로 <Show Me The Money 5(쇼미더머니 5)>(Mnet)까지 진출해 많은 이들의 예상보다 훨씬 더 진지하게 랩을 소화해 내면서 MC 민지 캐릭터를 얻기에 이른다.
무한도전은 그에게 있어서 인간극장 같은 프로그램이 아니었나 싶다. 식신으로 칭송받으며 등장했던 초창기의 그는 눈과 말투에서부터 자신감이 있었으며 그래서 박명수의 호통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전개와 대중들의 차가운 시선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 보고 한계를 느꼈을 것이다. 어떤 캐릭터가 사랑을 받았더라도 그 인기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 또한 깨달았기 때문에 무한도전이 후반으로 갈수록 더욱 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 같다.
되돌아보면 그는 늘 맨 밑에서 뿌리역할을 해주었다.높이 있는 야자수 열매를 딸 때 그는 맨 밑에서 멤버들의 무게를 묵묵히 견뎌냈고, 이로 차를 끌어야 할 때 그는 가장 많은 거리를 짊어졌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그보다도 얻은 게 훨씬 많았을 무한도전이 종영한 지금, 다시 출발점에 서 있을 그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총성이 힘차게 울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