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사냥
-부분 유료화(free-to-play)게임의 윤리적 타당성에 대한 조명
작성자: 마이크 로스(Mike Rose) 작성일: 2013년 7월9일
"생일날 받은 돈을 써서라도, 더 싼 점심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아내에게 저녁값을 내게 하더라도 10~20 달러를 아껴서 스토어에서 쓸 요량이다. 나는 게임을 하고 있지 않을 때조차도 게임 생각만 하고 있다."
크리스는 20 대 중반부터 <팀 포트리스 2(Team Fortress 2)>를 즐기면서 여기 저기에 몇 달러씩 돈을 쓰기 시작했다. 최근 친구들이 모두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 버렸고 부인은 현재 야간근무 일을 하고 있는데, 크리스 혼자 온라인 TF2 커뮤니티를 위안 삼아 살고 있다.
처음에는 TF2 의 아이템 상자를 열기 위해 ‘키’를 몇 개 사는 정도였지만, 나중에는 상자의 내용물을 좋은 것 일부만 남겨 두고 나머지는 온라인 플레이어들에게 나눠주기에 이르렀다. 크리스는 ‘나눔(?)’을 통해 사회적 교류를 하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에 돈이 아깝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크리스는 보라색 봉인의 ‘특이한’ 아이템을 발견한다. 크리스는 "마치 흥분과 찬사가 뒤섞인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밖에 거의 나가지 않는 생활만 해 온 저로서는 구름 위를 걷는 듯 했어요.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점점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플레이 중독
그 후 약 6 개월동안 크리스는 은행 잔고가 완전히 바닥날 때까지 돈을 써댔다. 보라빛으로 포장된 픽셀을 발견하길 바라며 써버린 것이었다.
"저금한 돈이 순식간에 바닥나버렸습니다. 물론 애초에 통장잔고가 넉넉하지는 않았습니다." 크리스의 설명이다. "진짜 문제는 돈이 바닥났다는 사실이 아니었어요. 제 내면에 일어난 변화가 더 큰 문제였습니다. 마지막 한 푼까지, 음식이나 주거비용이 아닌 디지털 모자를 사는데 써버렸다는 사실 때문에 나중에 갑작스레 돈을 써야 할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 와중에 크리스는 건강에도 이상이 생겼는데, 가진 돈을 모두 TF2 에 써버린 뒤라 병원비를 지불할 여력이 전혀 없었다.
"한때 스팀(Steam)에서 제 신용카드를 막아버릴 정도로 상황이 악화된 적도 있었습니다. 제가 무슨 금융 사기꾼인 줄 알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콜 센터에 전화를 걸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아니요, 정말 제가 쓴 것입니다. 이 멍청한 게임의 가짜 모자를 사는데 마지막 한 푼까지 다 썼어요.’" 크리스의 설명이다. "게임 중독자들이 흔히 그렇듯이, 저의 사회성 결여도 문제를 악화시키는 데 한몫 했습니다. 직장 밖에서 만나는 이라곤 TF2 플레이어들뿐이었습니다. 직장에서도 늘 크레이츠를 열 생각만 했어요.이번에는 좋은 물건이 들어있기를 바라며 크레이츠를 개봉하는 일만 계속했죠."
통제 불능의 소비가 계속되면서 부인과의 관계도 악화됐다. 크리스는 결국 게임을 그만두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저는 뭔가에 중독돼 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진짜’ 중독에 비해 얼마나 더 심각한지 확실히 말할 수가 없습니다. 충동적인 도박 중독이 이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아드레날린을 상승시켜 주는 행위를 더욱 갈망하게 되고, 실체가 없는 감정에 기대어 발전이 전혀 없는 삶을 계속 살아가는 것입니다."
"새벽 3 시까지 맥주를 마시며 팀 포트리스 게임만 계속한 적도 있습니다. 보라색 글자가 있는 이 멍청한 모자를 좇으면서 도박 중독자들이 흔히 빠지는 오류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50 달러만 더 쓰면 이번에는 분명히 이길 거라고 생각한 것이죠." 크리스가 덧붙였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는 제가 디지털 모자를 사는데 100 달러를 썼을 뿐 아니라, 크레이츠 개봉의 유일한 목적은 달성하지도 못한 채 쓰레기만 잔뜩 열었다는 사실에 절망해야 했습니다."
엉망진창의 감정을 겪은 아침이 셀 수 없이 많았다. 크리스는 자신의 행위가 본인과 가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깨달았고, 스스로를 무가치한 사람이라고 자책하는 우울증에 계속 시달렸다. 그때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월급이 들어올 때마다 바로 사라지는 일이 반복됐다.
이 시기의 크리스의 행동은 비디오 게임 산업계에서 ‘고래(whale)’라고 부르는 전형적인 경우이다. ‘고래’란, 부분 유료화(Free-to-play)게임에 엄청나게 돈을 쓰는 사람들을 말하는데, 고래는 1%에 불과하지만 나머지 한 푼도 쓰지 않는 99%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돈을 소비하기 때문에 회사 입장에서는 비즈니스 모델을 유지하게 해주는 고마운 고객층이다.
크리스는 중독증이 의심할 바 없는 자신의 멍청한 실수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다음과 같은 의견 또한 제시한다. "저와 같은 ‘고래’를 착취하여 수익을 얻는 비즈니스 모델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의문을 품게 됩니다. 부분 유료화 게임은 몇 달러를 소비하는 플레이어들을 타겟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처럼 심리적으로, 사회적으로 약자에 속하는 사람들을 겨냥하여 수백, 심지어 수천 달러까지 쓰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드워크(woodwork)의 고래들
우리는 ‘고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부분 유료화 게임의 ‘고래’들을 추적하기로 결심했다. 시시한 물건을 큰 돈 들여 사야만 하는 물건처럼 느끼게 하는 게임 컨셉트로 플레이어들을 중독자로 만들고 있는 개발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궁금해진 것이다. 특히 이런 고래 플레이어들이 순수하게 자발적으로 수백, 수천 달러를 지출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무의식 중에 소비를 강요하는, 공정하지 못한 디자인으로 인해 조종당하고 착취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었다.
이것이 지난 두어달 간 내가 게임 포럼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플레이어들의 피해 사례를 알아보고자 대대적인 조사를 벌인 이유였다. 플레이어들이 부분 유료화 게임에 얼마나 많은 돈을 소비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알아봤다.
이쯤에서 밝혀둘 것이 있는데 내가 접촉했던 대부분의 고래 플레이어들은 수천 달러를 소비했는데도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경험이었다고 응답했다. 많은 플레이어들이 단순히 재미를 위해 많은 돈을 소비하고 있었고, 개발자들에게 그 대가를 지불하게 돼서 행복하다고 느꼈다.
다른 플레이어들도 부분 유료화 모델을 마음에 들어 했고, 만일 게임에 돈을 지나치게 쓴다고 느끼면 언제든 쉽게 멈출 수 있다고 응답했다. 부분 유료화 게임에 만족하는 소비자들은 얼마든지 있으며, 조사한 사례들 중 앞서 크리스와 같은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용당하는 소비자와 그렇지 않은 소비자의 비율을 비교하는 것은 논점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일이다. 아무리 극소수의 플레이어라고 해도 자제력을 잃고 인생을 망치기까지 한다면, 그 비즈니스 모델은 업계나 정부 차원에서 한번쯤 비판적으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
많은 고래 소비자들이 이 밸브(Valve)사의 팀 기반의 슈터 게임 <팀 포트리스 2>를 최고의 게임으로 꼽았지만, 그 외에 다른 타이틀들도 많이 언급됐다.
카일(Kyle)은 <플래닛사이드 2(PlanetSide2)>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경제적 위기에까지 봉착했다면서 이 게임을 ‘가장 위험한’ 게임으로 꼽았다.
"게임에 돈을 너무 많이 써서 요즘 집세도 못 낼 정도로 형편이 어려워졌습니다. 지난 1 월부터 몇 달간 생활비마저 부족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카일의 말이다. "음식값이 부족해서 일주일 내내 제대로 된 밥을 못 먹고 라면으로 때운 적도 있습니다."
카일은 클릭 몇 번으로 무기나 코스메틱 아이템을 바로 구매하는 과정에서 ‘즉각적인 만족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 결국 수백 달러까지 쓰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그 물건이 즉각 내 소유가 되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충동구매에 취약해지는 것입니다." 카일은 또한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집세를 못 내는 한이 있어도 저 물건은 반드시 사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어떻게든 해결될 것이라고 안이하게 생각했죠. 다소 곤란한 상황이 되더라도 지금 내 손안에 있는 이 아이템이 그만큼 귀중한 것이라고 착각에 빠졌던 것입니다."
카일은 <플래닛사이드 2>에 그렇게 돈을 많이 쓴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 아이템을 투자 차원에서 구매했던 것은 아닙니다. 영화표나 근사한 음식점에서의 저녁 식사와 마찬가지로 소비적인 엔터테인먼트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 게임이 나와 있는 기간이 6 개월이 될지, 1 년이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카일은 이렇게 덧붙인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저에게 아이템 구매란 현실보다 더 부자가 된 것 같은 환상을 심어주는 한 방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 세계에서 저는 낡은 자동차를 몰고 오래된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온라인에서는 사람들이 기꺼이 사지 못하는 멋진 물건들을 마음껏 살 수 있습니다. 특별한 사람이 된 것마냥 착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 자세한 내용은 첨부(PDF)화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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