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숲>의 풀리지 않는 갈등
작성자: 이안 보고스트 (Ian Bogost) 작성일: 2013년 9월 5일
최근 <동물의 숲(Animal Crossing)> 시리즈가 닌텐도 3DS 로 나오면서 이 게임의 독특한 재미를 깨달은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 이 게임은 플레이어들과 비평가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매력과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 글은 <2007 book Persuasive Game>’에서 발췌한 이안 보고스트(Ian Bogost)의 논평으로, <동물의 숲>의 첫 에디션(2002 년 게임큐브(GameCube)를 위한 출시작)을 이안 보고스트 자신의 “절차적 수사법(procedural rhetoric)” – 아이디어를 일련의 규칙으로 논하는 방법-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디테일이 일부 변하긴 했지만, <동물의 숲>의 전반적인 주제에는 변함이 없다. 바로 ‘소비주의와 자연주의간의 이상하고 신비로운 갈등구조’이다.
닌텐도 게임큐브의 비디오게임 <동물의 숲>은 “동물 마을 시뮬레이터(animal village simulator)”라고 할 수 있다. 플레이어는 동물 만화 캐릭터들이 살고 있는 마을로 이사 와서 제일 먼저 집을 사고, 일을 하고 물건을 교역하는 등 활동을 통해 개인적인 세부환경 (microenvionment)을 구축해 나가게 된다. 이 게임에는 일련의 무해하고 일상적인 활동들 – 곤충 채집, 정원 가꾸기, 벽지 디자인 등 –이 담겨 있다. <심스(The Sims>)처럼, <동물의 숲>의 주요 메타포는 사회적인 교류와 가정 꾸미기에 있다.
게임큐브에서는 4 명까지 동시 플레이를 지원하지만, <동물의 숲>에서는 한 번에 한명의 플레이어만 플레이가 가능하다. 한 마을에 4 명의 플레이어까지 프로필 등록이 가능하고 실제로 플레이어들이 친구나 가족과 인터랙트할 수 있게 되어 있지만, 쪽지나 선물을 남겨 둔다든가 남은 일을 마무리해 준다든가 꽃이나 나무를 심어 주는 등의 간접적인 방법으로만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동물의 숲>에서는 게임 세계가 실제 세계와 연결되어 콘솔의 시계가 실제 날짜 및 시간과 동일하게 맞춰져 있다. <동물의 숲>에서는 시간이 리얼타임으로 흐른다. 밤에는 정말로 깜깜해지고, 겨울에는 눈이 내리고, 동물들은 할로윈 시즌이 되면 ‘trick-ortreating’ 을 나간다. 게임 시간이 리얼타임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게임을 동떨어진 세계가 아닌, 본인의 일상 생활의 일부로서 받아들이게 된다.
이렇게 게임과 실제 세계와 연결함으로서 플레이어들은 가족이나 친구와 협동하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이는 동시 멀티플레이어 게임에서는 불가능한 구조이다. 가족 전체가 게임큐브 하나를 공유하기 때문에, 고정된 환경의 게임 특성상 자연스럽게 서로 다른 일정을 가진 가족 구성원들간에 협동이 일어나게 된다. 예를 들어 아이가 오후에 화석을 발견해서 게임 속의 아버지 캐릭터에게 우편으로 보냈다고 하자. 잠자리에 들 시간, 아이의 아빠는 이 화석을 다음날 마을 갤러리로 가져가기 위해서는 먼저 중앙 박물관에 분석을 의뢰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비평가 커트 스콰이어(Kurt Squire)와 헨리 젠킨스(Henry Jenkins)도 이 게임에 대해 언급했듯이, “가족은 종류를 불문하고 점점 삶이 단절되어 가고 있다. 가족 모두가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일도 드물다. 하지만 <동물의 숲> 게임은 모두 함께 할 수 있다.”
게임에서 가장 까다로운 프로젝트는 본인이 산 집의 모기지 대출을 갚는 부분이다. <동물의 숲>에서 플레이어는 본인의 집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려면 플레이어가 게임 시작부터 진 빚의 상당부분을 먼저 갚아야 한다. 집을 업그레이드하고 나면 그보다 더 높은 리노베이션 모기지(renovation mortgages)를 지불해야 한다. 게임에서는 복리 등 장기대출에 부과되는 세부사항은 면제해 주지만, 게임세계에서 본인의 집을 더 좋게 바꾸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들어간다. 고기 잡기, 화석 발굴, 곤충 채집, 다른 마을 사람들을 도와주는 직업 등, 이 모두가 모기지를 갚거나 새 카펫이나 집을 꾸미는 장식품을 사기 위한 수입 창출의 방법이 된다.
<동물의 숲>에서는 일상적인 일들을 반복하며 동시대의 물질 재산의 이상(ideal)을 구축하는 ‘절차적 수사법’을 사용한다. 당시 4 살이었던 내 아이가 이 게임을 진지하게 플레이하기 시작했을 때, 아이는 곧 게임의 딜레마를 알아차렸다. 한편으로는 과일과 벌레를 채집하여 번 돈으로 새 가구, 카펫, 셔츠를 사고 싶다. 하지만 이 돈을 모기지 갚는 데 쓰면 아빠처럼 큰 집을 가질 수 있다. 일단 모기지를 갚을 만큼 큰 돈을 모으고 나면, 마을의 상점 주인이자 부동산업자인 너굴(Tom Nook)가 집을 확장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해 온다. 업그레이드의 충동을 자제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너구리 누크는 플레이어가 상점에 올 때마다 리노베이션을 할 것을 계속 권한다. 우리 아들은 곧 자신이 빠진 함정을 알아차렸다. 물질을 더 축적할수록 공간이 더 필요하고, 그 공간을 확장하기 위해 빚을 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추가된 공간을 위해 더 많은 물질을 모아야 하는 식으로, 사이클은 계속된다.
1970 년대 심리학자들은 물질적 풍족에 동반되는 정신적 공허함과 죄책감을 가리켜 ‘어플루엔자(affluenza)’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 존 데 그라프(John de Graaf)와 몇몇 사람들은 최근 이 컨셉을 확대하여 모든 사회적 계급에서 벌어지는 빚과 물질적 자산의 동시 축적에 대한 개념을 설명한다. 문화적인 습관으로서의 쇼핑, 쌓여가는 빚, 파산 등이 이 현상을 보여주는 징후일 것이다. 현명하게 자산을 축적하고 불려나가는 법은 많은 어른들이 배워야 하는 교과서적인 상식처럼 되어 있다. 보통 우리는 소비는 줄이고 저축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배운다.
어플루엔자 현상을 나타내는 작품은 <동물의 숲> 말고도 많이 나와 있다. <심스(The Sims)>도 외로움과 불행한 감정의 해결책으로서 소비를 조장한다고 비판을 받아 왔다. 이 게임에 대해 수석 디자이너 윌 라이트(Will Wright)는 게임의 규칙이 물질적, 사회적 자본에 대한 평등한 추구라는 아메리칸 드림의 이상을 최적화된 균형 상태에서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심스는 재산이 많은 플레이어 캐릭터에 대해 더욱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또한 이들은 큰 집이나 온수 욕조가 있는 집을 좋아한다.
하지만 <동물의 숲>의 NPC 는 이렇게 세련된 형태가 아니다. 마을에 살고 있는 귀여운 동물들은 플레이어들이 마을에 한동안 안 들어오면 질책하기도 하지만, 플레이어의 자산 축적의 양이나 종류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때때로 동물들은 플레이어가 마을에서 입고 다니는 셔츠나 갖고 있는 가구 아이템 등에 욕구를 나타내며 거래를 하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종류의 거래는 드물고 매력적이다. 동물들은 상습적으로 “난 항상 이런 모던 램프가 갖고 싶었어!”라고 말하며 욕구를 드러낸다. 하지만 어플루엔자에 걸린, 즉 돈 쓰는 것 자체에 중독된 모습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동물의 숲>은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소셜 다이내믹을 시뮬레이션한 것이지만, 영화 ‘수상한 가족(Joneses)’에서처럼 이웃들과 재산을 비교하는 물질만능주의는 피하고 있다. 이 게임은 개인적인 부를 재결합하는 과정을, <심스>의 경제논리에 비하면 매우 추상적으로 실험하는 샌드박스 형태이다. 플레이어가 집 윗층을 증축할 돈을 벌기 위해 부지런히 일하는 동안에도 NPC 동물들은 변함 없이 작은 판잣집에 살고 있다. 이들은 소유물을 업그레이드할 생각이 없고, 집에 물고기, 바위, 과일로 만든 가구들만 가득한데도 별 고민이 없어 보인다. 이 금욕주의는 그냥 우연이며, 닌텐도에서 리데코레이션이 가능한 세련된 인공지능 시스템을 개발하는데 무심했던 탓이라고 반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절차적 관념(procedural abstraction)은 비디오게임의 전반적인 디자인과도 관련이 있다. <동물의 숲>의 동물들은 바깥을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 석양 무렵이 되면 현관에서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지나가다 멈춰서 플레이어가 고기 잡는 모습을 구경하기도 한다. 별 목표 없이 마을을 거닐기도 하며, 명절 때가 되면 커뮤니티 이벤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이들은 분명 소비자가 아니라 자연주의자들이다. 패리스 힐튼(Paris Hilton)이 아니라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인 것이다.
이 수도원 집단같은 동물들은 마을의 가게 주인인 너굴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 플레이어가 모기지의 큰 부분을 갚고 나면, 너굴은 가게 문을 닫고 업그레이드를 시작한다. 게임이 시작할 때는 누크의 크래니(Cranny), 나무 판자집 형태의 가게에서 시작하지만, 끝날 때는 누킹튼(Nookington)이라는 2 층짜리 백화점으로 바뀐다. 너굴은 업그레이드를 할 때마다 상품 판매도 더 많이 할 수 있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너굴의 가게에 찾아오지 않으며, 종종 비난조로 얘기할 뿐이다. 동물들은 소비행위에는 욕구가 없어 보인다. 반대로 플레이어는 소비 제도에 완전히 종속되어 있다. 빚을 갚아야 하고, 물건을 사거나 팔아야 한다. 너굴은 물건을 팔아 부를 축적한다. 플레이어가 빚을 갚아 집을 업그레이드할 때마다 물건을 더 사들일 수 있게 되고, 그 때마다 너굴은 이를 상업적 레버리지로 이용하곤 한다. 이 빚과 뱅킹의 간단하고도 일상적인 연결고리는 대부분의 모기지 홀더들이 간과하기 십상인 다이내믹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바로 본인의 빚이 다른 누군가를 부자로 만들어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동물의 숲>은 이 관계를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으로 절차화하고 있다. 빚을 갚으면 너굴의 부는 늘어난다. 그러면 너굴은 이 부를 활용하여 플레이어들을 대상으로 더 많은 자본을 끌어들인다. 플레이어들의 리소스가 한정되어 있다는 점은 이 과정을 더욱 효과적으로 만든다. 플레이어가 더 소비할수록 누크는 더 많이 번다. 이 게임은 전체 사회의 금전적 거래를 플레이어와 너굴간의 교류로만 한정함으로서 부의 재분배 구조를 어린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절차화한 것이다. 너굴은 기업 부르주아의 축약된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동물의 숲>의 모호한 소비 관계를 더욱 촉진하는 다이내믹이 또 있다. 각 마을에는 분실물 센터이자 쓰레기 수거장으로 운영되는 경찰서가 하나씩 있다. 때때로 이 물건들은 이 경로를 통해 처리되고, 플레이어도 여기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져갈 수 있다. 플레이어는 또한 원하지 않는 물건을 쓰레기장에 버릴 수도 있고, 이 물건은 다음날 바로 사라지게 된다. 이 쓰레기장과 분실물 센터는 너굴의 가게와 플레이어간의 빚의 구조를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물질 자산을 모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이 공짜여도 가져가지 않는 쪽을 선택할 기회도 있는 것이다. 분실물센터는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도 가지려 하는 우리의 성향을 더욱 강조한다. 경찰서에 있는 경찰들은 늘 “이것은 당신 거죠? 가져가셔도 좋습니다.”라고 말한다. 물론 이 분실물센터에 있는 어떤 물건도 원래 플레이어의 것이 아니다. (마을 전체에 걸쳐 무작위적으로 놓여 있는 모든 아이템들이 이유 없이 늘 그곳에 존재해 온 느낌이다). 따라서 분실물센터에서 물건을 가져오는 행위는 늘 플레이어가 해당 물건이 필요한가를 결정하게 만드는 중요한 조건이 된다. 쓰레기장은 이 가치를 더욱 촉진한다. 플레이어는 어떤 것이라도 너굴한테 팔 수 있지만, 대신 쓰레기장에 버리는 쪽을 택함으로서 물건의 금전적 가치를 없애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플레이어가 쓰레기장을 이용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쓰레기장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물건의 가치를 완전히 없애 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게임의 소비 구조에 중요한 균형 요소가 된다.
물질 재료를 처리할 동기는 때때로 HRA(Happy Room Academy)에서 오기도 한다. HRA 는 게임에서 가장 신비로운 미지의 장소이다. 매일 플레이어들은 HRA 로부터 자신의 집에 대한 등급을 매긴 편지를 받는데, 편지에는 종종 불가해한 짧은 메시지가 쓰여 있다. HRA 의 로직은 복잡한 인테리어 디자인 시뮬레이션에 기반한 것이라고 하지만, 게임 내에서나 매뉴얼에서도 정확한 과정은 밝혀진 바가 없다. 이 로직을 디코드(decode)하기 위해 온라인 팬 사이트에서 컨설팅을 받는 플레이어들도 있다. HRA 에서는 가구를 동일한 시리즈로 매치했다던가, 한 방에서 벽지와 카펫을 매치시켰다는 등, 쉽게 점검이 가능한 목표에 대해 더 많은 점수를 준다. 하지만 이들의 위치, 플레이어가 해당 아이템을 어디에서 얻었는가, 혹은 은행에서 저축 계좌를 열었는가 등의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에도 등급을 매긴다. 플레이어들은 HRA 포인트를 무시해 버릴 수도 있지만, 편지가 매일 오기 때문에 결국 참여를 유도하게 마련이다.
※ 자세한 내용은 첨부(PDF)화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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