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하려고 했더라? 게임 내 문지방 효과
작성자: 데일 돕슨(Dale Dobson) 작성일: 2013년 6월 10일
사건 분할 이론
게임 산업이 성숙하고 게이머들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다음과 같은 묘한 경험을 하는 이들이 더 많아지는 것 같다. “다른 공간에 가서 무언가 할 일이 있다. 그래서 그리로 가는데, 그곳에 도착할 즈음에는 무엇을 하려고 했었는지를 까맣게 잊어버린다.”
인간의 두뇌가 기억이 형성되는 방식에서 일종의 I/O 버그를 갖는다는 것이 최근 여러 과학적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2007년 발표한 <Event Segmentation Theory>이라는 논문(요약 1 )에서 잭스(Zacks), 스피어(Speer), 스왈로우(Swallow), 브레이버(Braver), 레이놀즈(Reynolds)는 인간의 기억 시스템을 "작업 기억(working memory)"과 "사건 경계(event boundaries)"이란 용어로 유형화하고 있다.
제프리 M. 잭스(Jeffrey M. Zacks) 박사와 그의 팀은 인간의 단기 기억이 경험을 압축하고, 그 간격을 예측과 가정으로 채우면서 공간과 에너지를 절약한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신발 한 짝을 신거나 다른 사람이 신는 장면을 보았을 때, 인간은 그 이후의 기억을 “잘라내”고 비워둔 채로 그 사람이 다른 쪽 신발도 신었을 것이라고 생각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이 시각적인 틈을 자동으로 채운다는 것을 알아냈다. 인간은 자신이 "보는"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 두뇌가 자기 마음대로 이미지의 대략적인 윤곽을 기록하면서, 적절하게 가정하거나, 심지어 기억을 처리하고, 돌이켜보고, 저장할 때 세세한 부분을 만들어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잭스의 이론은 인간이 "사건 경계"에 기초해 기억을 조직하기도 한다는 것을 제시하여, 이런 이해를 시간의 영역으로 확장시킨다. 즉 인간은 자신이 기억하는 이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에, 그 이전에 예측 가능한 다른 사건들도 발생했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러한 기억의 단축은 대부분의 경우 신뢰할만하고(마술사나 사기꾼들은 이를 잘 이용한다), 인간은 최근의 사건들에 대한 기억을 만족할 수 있을 만큼 정확하게 보존한다. 그런데 인간의 두뇌가 출입문과 창문, 통로, 그 밖의 물리적인 경계들을 처리해야 할 경우 가끔씩 오류를 범하는 것 같다. 이런 것들은 인간의 작업 기억의 측면에서 볼 때 주요 사건 경계인데, 우리 두뇌는 이를 통과할 때 작업 기억을 모두 지워버리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다 그래" 학파의 연구가 약간 위로가 된다. 2011년에 발표된 <문지방 효과: 추가 연구(Walking through doorways causes forgetting: Further explorations)>(pdf 파일 2 )에서 라드반스키(Radvansky), 크라비에츠(Krawietz), 탬플린(Tamplin)은 이 현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이 물리적인 경계를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는 유목민이어서일 수 있다. 인류가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동안 전 지구에 흩어진 탐험의 경향이 있는 종임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있다. 그리고 인간이 익숙한 영토에서 벗어나 새로운 위험과 기회가 있는 새로운 땅으로 이동할 때에는, 추측을 포기하고 인식을 새롭게 하고 발생할지 모를 모든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세상은 인간보다 더 빨리 변했다. 인간의 낡은 시스템은 세렝게티를 떠나거나 베링 빙하기 육교를 건널 때까지는 잘 작동했다. 다만 현대 사회에서는 이게 약간 불리한데, 거실에서 주방으로 갈 때에도 맥락을 바꿔버리기 때문이다.
라드반스키(Radvansky) 박사는 2006년 연구에서 이것이 현실에서 나타나는 현상임을 입증했다. 2011년 연구는 이 현상이 가상 현실 속에서도 발생한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이 연구는 "문지방 효과 (doorway reset)" 가 사실은 인간에게 일반적인 근본적인 두뇌 현상이며, 가상 현실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현상임을 제시하고 있다.
게임 속의 문
그럼 이런 것들이 게임 디자인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인간은 속이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 존재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두뇌는 가상 현실을 실제인 것처럼 받아들인다. 바람의 흐름이나 냄새 같은 사실성이 결여되어 있고 빛이 실제와 다르게 빛나는데도 그렇다. 우리가 주변에 있는 것들을 파악할 때 이용하는 기초적인 매핑 회로는 실제에서와 똑같이 효과를 발휘한다. 이러한 인공적인 환경을 이해하고 만드는 것, 그리고 그 가상 현실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에 있어서도 문은 어떤 역할을 담당한다. 현실세계에서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물론 이런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기 전부터 게임 디자이너들은 인간의 경험에서 문이 갖는 의미를 인식하고 있었다. 인간에게는 문을 경계로 사용하려는 자연적인 경향이 있으므로 문은 기술적으로 편리하다. 이 글에서 우리는 몇 가지 구체적인 사례들을 살펴보고, 문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이해가 비디오 게임 디자인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악용될 것인지를 생각해볼 것이다.
<조크 I>
크라우서(Crowther)와 우즈(Woods)가 개발한 원작 어드벤처 게임 <콜로살 케이브 (Colossal Cave)>는 켄터키 주 매머드 동굴의 기암괴석을 모델로 제작되었기에, 이야기할 만한 문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후속작인 <조크 I (Zork I)>에는 주목할 만한 문이 몇 개 있다.
문
<조크>의 첫 번째 문은 하나의 징조라는 의미에서 주의를 다른 곳으로 완전히 돌리는 수단이다. “위대한 지하 제국(Great Underground Empire)”으로 들어가는 입구 역할을 하는 작고 하얀 집의 정문은 판자로 막혀 있어서 실제로는 열리지 않는다. 나중에 집 안으로 들어가면 거실 깔개 아래에 두 번째 문이 있는데, 이 문은 함정문이다.
경험
첫 번째 문은 플레이어의 주의를 돌려, 옆쪽으로 돌아가 주방 창문을 강제로 열어 슬그머니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내는 걸 방해한다. 그리고 두 번째 문을 열면 플레이어는 어둠 속으로 떨어지고, 다음 진행은 이렇다.
“함정문이 꽝 닫히고 누군가가 그것을 판자로 막는 소리가 들린다.”
플레이어의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일
하얀 집의 정문은 플레이어를 매혹시키는 출입문이지만, 디자이너는 우리의 예상을 훨씬 앞서 나갔다. 절대로 열리지 않는 이 성가신 문은 사실 막다른 궁지가 아니다. 원초적인 지붕 아래에서 이 문의 역할은 집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욕망을 부추기는 것이다. 결국 플레이어의 길을 막는 문이 있다면, 그 뒤에는 반드시 바람직한 무언가가 있다. 그래서 플레이어는 다양한 마법 주문을 시도하고 인벤토리의 아이템을 무작위로 사용하거나 무력을 사용해 본 다음, 곧 집으로 들어가는 다른 방법이 있는지 궁금해 하기 시작한다. 정문 대신 주방 창문을 통해 집으로 들어감으로써 이 간단한 퍼즐을 푸는 것은 플레이어가 게임에서 거두는 첫 성과이다. 그리고 거실에 들어가 그 문을 안쪽에서 볼 때 플레이어는 마음 속으로 다음과 같이 임무를 체크한다. “정문 침투 완료! 하얀 집 탐사 완료!”
<조크>의 두 번째 문은 만족스럽기보다는 좀 무섭다. 60자에 못 미치는 구식 ASCII 텍스트 속에서, 지상의 세계를 남겨둔 채 플레이어는 어둠 속에 갇힌 것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사례이다. 즉 보이지 않는(하지만 소리는 들리는) 매개체에 의해 갑자기 함정문이 닫히고, 이것은 분명한 출발점이 된다. 플레이어는 돌아갈 수 없으며, 앞으로 무엇이 펼쳐질지 알지 못한다. 플레이어의 머리 속은 자동으로 재설정되고 발생할지 모를 모든 일에 대비하게 된다. 이때 플레이어의 박동수가 조금 증가한다. 플레이어가 마법의 검을 가지고 있다면 위험이 다가올 때 그 검은 빛나기 시작할 것이고, 그 검을 깜빡하고 놓고 갔다면 모험은 훨씬 짧아질 것이다. 이 지점까지 플레이어가 해낸 건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다. 적어도 인간의 두뇌는 그렇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 자세한 내용은 첨부(PDF)화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