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노트북: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러의 세 가지 문제
작성자: 어니스트 애덤스 (Earnest Adams) 작성일: 2013년 4월 8일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에 대해서 써야겠다고 마음먹은지 18 년 만에 (물론 다른 주제들도 많이 생각했다), 지난 2 월 나는 드디어 영국 티스사이드 대학(University of Teesside)에서 이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 주제는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의 몇 가지 문제에 대한 해결안(Resolutions to Some Problems in Interactive Storytelling)>이고, 내가 지난 몇 년간 작성했던 보고서와 강의들에 대한 분석이자 회고록이다. 이번달 칼럼에서 나는 이를 몇 가지 결론으로 요약해 보고자 한다. (전체 보고서를 읽고 싶은 독자들은 여기 1 를 클릭하면 더 많은 논제들을 찾아볼 수 있다.)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 밝혀둘 것이 있다. 내 논제는 플레이어가 스토리의 이벤트에 액션으로 참가하는 싱글-플레이어, 아바타 베이스의 게임에 한정된다는 점이다. 멀티플레이어 스토리텔링이나 아바타 베이스가 아닌 게임 (‘심즈(The Sims)’와 같은), 또는 ‘다음에 뭘 읽을까’ 결정하는 것이 독자의 유일한 참여인 스태틱 하이퍼텍스트(static hypertext)형의 게임은 해당되지 않는다.
나의 작업은 지난 1995 년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GDC)에서 "인터랙티브 무비의 도전 과제(The Challenge of the Interactive Movie 2 )"라는 강의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인터랙티브 무비는 당시 CD-ROM 의 발명에 이어 새롭게 떠오르는 개념이었다. 강의 제목은 이 아이디어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지만, 나는 “인터랙티브 무비의 도전 과제”라는 제목은 결국 좋은 비디오 게임 만들기를 위한 강의라고 결론을 내렸다. 마케팅 부서에서는 계속 이 멍청한 제목을 달아야 한다고 주장하겠지만 말이다.
강의 도중 나는 모든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러가 부딪칠 수밖에 없는 몇 가지 핵심 문제를 설명했다. 몇 년 후 나는 이들을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러의 세가지 문제점(Three Problems for Interactive Storyteller 3 ),"이라는 제목으로 초기 디자이너 노트북(Designer’s Notebook) 칼럼에 다시 소개했다. ‘기억상실증(Amnesia)’, ‘내부 일관성(Internal Consistency)’ ‘내러티브의 흐름(Narrative Flow)’의 세가지 문제점으로 나누어 분석했다.
나는 이 문제들이 해결되기보다는 끌어안고 가야 하는 인터랙티브 매체의 근본적인 문제라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 문제들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사실상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적어도 나 스스로는 만족한다.
그럼, 가장 쉬운 것부터 시작해 보자.
기억상실증 문제
플레이어가 게임 월드에 들어올 때 기억상실증 상태로 시작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본인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뭘 하려고 했었는지 모두 잊어버린 것이다. 게임업계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대책이 부족하다. 초기 상업용 컴퓨터 게임에서는 플레이어에게 매뉴얼을 읽도록 했다. 이후 우리는 튜토리얼 레벨, 긴 내러티브 문구 (<오오카미(Okami)>), 또는 멘토(mentor) 캐릭터의 긴 설명에 노출되도록 하는 (<플레인 스케이프 토먼트(Planescape: Torment)>) 등의 대책을 마련해 왔다.
플레이어에게 아바타가 실제로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설정해 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가장 안 좋은 사례이다. -- 나는 이것은 너무 저급한 솔루션이라고 보고, 트윙키 자기부정 증세 (Twinkie Denial Condition4) 라고 부르기로 했다.
결국 내가 깨달은 것은 이것이 다루기 힘든 문제가 아니며, 비디오 게임에만 한정된 문제도 아니라는 점이다. 모든 종류의 스토리에는 관객에게 셋팅과 캐릭터를 소개하는 도입 과정이 필요하다. 영화에서도 때때로 오프닝 나레이션을 사용하기도 한다. 특히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로케이션인 경우, 카사블랑카(Casablanca)나 스타워즈(Star Wars), 반지의 제왕(The Fellowship of the Ring) 같은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다.
TV 쇼에서도 시간이 촉박하면 캐릭터들이 대화 초반부터 서로 이름을 부르도록 설정하기도 한다. 유명한 랜드마크 (골든 게이트 브릿지,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등)를 세트에 포함한다든가,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면 마을 이름이 써 있는 로드 사인을 보여주는 등의 방법도 있다.
경험 있는 작가는 좀 더 교묘한 방법으로 플레이어에게 장소와 캐릭터를 소개해 줄 수 있다. 주인공이 보고 듣는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게임은 보여주기만 하는 미디어와는 달리 추가적인 문제도 안고 있다. 플레이어가 콘트롤을 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도 좋은 방법과 나쁜 방법이 다 있다.
아바타가 특정 직업을 가진 게임에서라면 – 축구선수, 군인, 댄서 등 – 게임월드에 트레이닝 캠프나 연습실을 포함하면 플레이어들이 다른 위험 없이 게임을 무난히 따라갈 수 있다. 이 부분은 나의 또 다른 칼럼"나쁜 튜토리얼을 만드는 8 가지 방법 (Eight Ways to Make a Bad Tutorial5)" 에 더 자세히 논의되어 있다.
결국 나는 이건 단지 장인정신의 문제라고 결론 내렸다. 기억상실의 문제는 능력있는 작가가 있다면 해결 된다. 게임에서는 게임월드를 소개할 시간이 TV 나 영화에서보다 더 많다. 이 부분을 소홀히 한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내부 일관성의 문제
사람들이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의 도전과제에 당면할 때 늘 고민하는 문제가 있다. 어떻게 하면 플레이어에게 액션의 자유를 주면서도 일관성 있고 조직적인 스토리 경험을 선사할 수 있을까? 플레이어에게 자유를 많이 주면 플레이어가 스토리를 왜곡시켜 버릴 수도 있다. 플레이어의 자유와 스토리의 일관성은 부정적 상관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플레이어가 게임 스토리를 훼손시키는 세가지 형태가 있다. 게임월드를 파괴하는 것 (보통 스피치를 사용하여 원래 없던 것들을 들여오는 행위), 자신의 캐릭터를 망가뜨리는 것 (아바타의 정의와 어긋난 방식으로 행동하기 – 강의에서 나는 수퍼맨이 불타는 빌딩에 갇힌 우는 아이를 무시하고 지나치는 경우를 예로 소개한 바 있다.), 그리고 플롯 자체를 위반하여 이야기가 이상해지는 경우 (예를 들어 한 물체를 파괴했는데 나중에 원래의 플롯에 따라 이 물체가 다시 나타남) 등이다.
물론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플레이어의 자유를 차단함으로써 이러한 행위를 사전에 방지한다. 많은 게임에서는 사전에 주어진 대화 목록만 사용할 수 있게 해서 플레이어가 게임월드와 상관 없는 이야기는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플롯에서는 플레이어가 나중에 필요한 물건은 훼손할 수 없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예를 들어 <그랜드 테프트 오토(Grand Theft Auto)> 게임에서는 미션을 주는 사람들은 해칠 수 없고, 심지어 이들을 찾을 수 없게 해 놓기도 한다.) 그리고 수퍼맨이 아기를 무시한다면, 패배 조건이다. 게임 오버.
어떤 디자이너들은, 특히 크리스 크로포드(Chris Crawford)와 앤드류 스턴(Andrew Stem)같은 사람들은 이러한 솔루션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 그들은 플레이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수 조건이며, 인터랙티브 스토리는 그에 적응해야 한다고 본다. 비디오 게임에는 스토리를 아예 넣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한다. 이 입장도 지지를 얻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너무 극단적이다.
생각할수록 우리는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이 특정 모습이어야 한다는 근거 없는 가정 속에 스스로를 가두어 놓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다음과 같은 가정들이 수년간 존재해 왔다.
● “우리의 목표는 플레이어가 최대한 자유를 누리도록 허용하는 샌드박스를 창조하는 것이다.” 우리는 텍스트 어드벤처에서 어떤 명령이라도 타이핑하면 게임이 그것을 수행할 것이라는 환상을 플레이어들에게 심어주기 시작한 이래 줄곧 그렇게 믿어 왔다. 물론 이것은 불가능하지만, 우리들 마음 속 깊은 곳에 언젠가는 게임에서 그 정도의 힘을 부여할 것이란 비밀스러운 소망이 있다. 이 이상적인 믿음을 “어디든 가서 무엇이든 하라(goanywhere- and-do-anything)”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가정은 환상으로서는 멋지지만,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불필요하다. 전통적인 픽션에서도 주인공들이 신은 아니다. 그들이 무엇을 성취하고자 할 때의 니즈와 이에 방해가 되는 장애물들과 한계들간의 갈등이 바로 드라마틱한 긴장의 원천인 것이다. 또한 전통적인 픽션의 주인공은 원하는 대로 할 수 없다. 제임스 본드가 스파이를 그만두고 요리사가 된다면 전혀 말이 안 될 것이다. 또는 마이클 마티스(Michael Mateas)가 말했듯이, “왜 플레이어들에게 드라마틱 컨텍스트와 전혀 상관 없는 동사(verbs)들을 줘야 하는가?...’전통적인’ 게임에서도 플레이어가 활용할 수 있는 동사는 제한되어 있는데 말이다.”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경험이 제공하는 자유의 정도와 매개체는 해당 경험을 창조한 디자이너의 본래 의도에 맞게 작동해야 한다. 디자이너들이 이 자유를 최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가정은 비이성적이다.
● “인터랙티브 스토리는 게임이어서는 안 된다,” 이 말의 뜻은 플레이어가 인터랙티브 스토리 내에서 반드시 어떤 것을 “이겨서” 얻을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스토리답지 않을 테니까. 또한 인터랙티브 스토리가 많은 수의 메카닉을 포함할 필요도 없다. 여기서 가정은 진정한 인터랙티브 스토리를 경험한다는 것은 --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 게임을 하는 것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며 특정 가치를 최적화하려는 의무감에 시달리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켄 펠린(Ken Perlin)이 인터랙티브 스토리가 그 자체의 믿음성을 보존하기 위해 메카닉을 사용할 수도 있다고 제안했을 때, 나는 이 가정이 얼마나 제한적인지 깨달았다. 펠린은, “인터랙티브 스토리에서의 이벤트의 대가비용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정도와 정확히 비례해야 한다,” 후에 나는 이 문구를 "켄 펠린의 법칙(Ken Perlin's Law 6 )”으로 인용하였다. 플레이어가 다양한 액션을 하도록 할 수 있지만, 그 액션이 비현실적일수록 대가도 더 크다. 그 액션을 너무 자주 하면 더 이상 활용할 수 없게 된다. 나는 이것을 스토리의 ‘믿음성 예산’에 대한 플레이어의 ‘액션 비용 청구’라고 부른다.
● “플레이어는 어떤 규칙도 생각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 규칙을 생각하고 따르는 것은 게임적인 행위로서, 내러티브에 대한 몰입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상적인 인터랙티브 스토리는 명시적인 규칙이 없어야 하고 플레이어는 자발적으로 행동을 절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왔다. 플레이어가 어떤 것을 시도하든 게임이 적당한 방식으로 반응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가정은 물리적으로나 경제적인 면에서는 합당할지 모르지만, 사회적인, 특히 드라마틱한 영역으로 들어서게 되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우리는 게임의 메카닉을 이용하여 플레이어의 행위를 물리적인 면에서 가능한 한도를 제한할 수도 있고, 플레이어가 우리가 허용하는 물리적 액션만 할 수 있도록 인터페이스를 구성할 수도 있다. 그러나 플레이어가 다른 캐릭터들과 사회적인 교류를 하도록 하려면 플레이어에게 말하는 (또는 타이핑하는) 능력을 줘야 한다. 이는 그들이 어떻게 말을 해야 논리적인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플레이어들은 이미 MMOG 형의 규칙 준수에 익숙해져 있다. 다른 플레이어를 괴롭히면 쫓겨난다.
● “디자이너는 플레이어의 경험에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이 가정은 책이나 영화에서 기대되는 것을 확대 해석한 것이다. 영화나 책에서는 작가에게 책임이 있고, 관객이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으면 비난은 모두 작가에게 쏟아진다. 우리는 대체로 비디오 게임 디자이너도 똑같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게임을 디자인했으므로 무엇이라도 잘못되면 디자이너 탓이다.
그러나 이 관점을 인터랙티브 스토리에까지 적용한다면, 이는 플레이어가 무슨 행위를 하든 디자이너는 완벽한 스토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과한 요구이다. – 사실상 너무 지나친 요구이다.
※ 자세한 내용은 첨부(PDF)화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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