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예술인가? 게이머는 예술가인가?
작성자: 다비 맥데빗(Darby McDevitt) 작성일: 2013 년 3 월 12 일
“상호작용성(interactivity)이란 단어는 참 재미있는 단어다. 말이 안 되게도 이전 예술에서는 하지 않았던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며, 상호작용성의 방식으로 보는 사람이 참여하는 예술만이 흥미로운 예술이기 때문이다. 상호작용성의 예술에서 관객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창작자의 창작에 한 부분이 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대개 이는 이문을 열지, 저 문을 열지 정도를 선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훨씬 의미 있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 브라이언 에노(Brian Eno)
운명의 여정
댓게임컴퍼니(ThatGameCompany)의 <저니(Journey)>에서 긴 망토를 입고 수심에 가득 찬 작은 등장인물로 일렁이는 사막을 횡단해 씁쓸한 결말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온라인으로 게임을 했을 것이고 여정의 일부는 자신과 똑같은 다른 등장인물과 동행했을 것이다.
나와 같은 경험을 했다면 동행한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지나치게 답답하고, 조심스럽고, 호기심이 과한 바람에 동행한 사람 중 일부는 따로 가겠다고 하기도 하고 뒤에 오던 사람들에게 많이 따라 잡히기도 했다. 머나먼 산 정상을 향한 첫 여정에서 나는 총 아홉 명의 사람들과 동행을 했고 다들 나름대로의 변덕스런 방식으로 나의 여정을 돕기도, 방해하기도 했다.
처음 게임을 했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두 순간이 있다. 게임의 구슬픈 중간 부분에서 운 좋게도 경험이 많은 플레이어와 짝을 이루게 됐다. 그 사람은 혼자서 날아다니는 굶주린 감시병들의 눈을 피해 긴 어둠의 지하 묘지를 안전하게 안내해주었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말이다. 게다가 내 걱정을 너무 많이 해주어 거의 당황스러울 정도로 감동했다. 그러나 슬프게도 잠시 동안 게임을 멈추는 바람에 한마디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헤어지게 됐다.
나중에 게임의 마지막 겨울 부분에서는 친한 척이나 도움을 정말로 싫어하는 것 같은 사람을 만났다. 게임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계속 붙어 있으면 서로 ‘열’이 생성되어 소중한 스카프가 충전되는 등 확실한 이익이 있는데도 그 사람은 가까이 오는 걸 싫어했다.
사람을 꺼리던 익명의 그 사람은 마치 나에게서 더러운 병균이라도 뿜어져 나오는 듯 나가 가까이 가려고 할 때마다 요리조리 피했다. 빨리 충전이 필요해 휙 가까이 다가가면 거칠게 길을 틀어 가능한 한 나에게서 멀리 떨어지려고 했다. 마지막 단계에 도달할 쯤에는 나 혼자 남았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서로 그렇게 맞지 않으며 함께 했던 여정은 사실 나의 <저니>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대본 없이 우연히 진행되는 여정은 결국 나만의 것이었다. 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세 시간 동안의 아름다운 여정 속에서 내가 느낀 감탄과 공감과 무관심을 똑같이 느끼며 나와 똑같은 경험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만의 게임’을 경험한다는 이런 개념은 물론 수없이 많은 게임들이 표방하는 바이며 <팩맨(Pac-Man)>, <테트리스(Tetris)> 같은 초기 비디오 게임도 게임을 할 때마다 완전히 다른 게임을 제공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본적인 개념에 <저니>는 섬세하게 선택한 내러티브(narrative)를 더해 게임을 하는 사람이 감정적으로까지 게임에 몰입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내러티브가 더해진 모든 게임이 이렇게까지 새로운 흥분을 일으킬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정확히 무엇 때문에 <저니>는 다른 많은 게임과 다른 것일까?
<저니>의 내러티브만 놓고 보면 그저 쓸만한 이야기일 뿐이다. 잠들지 않는 오랜 유령들이 수시로 지나쳐가며 쇠락한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탐욕에 가득한 눈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저 멀리 보이는 산에서 불빛이 번쩍이는, 멸망한 도시의 폐허 속에서 마치 시지푸스의 신화에서처럼 아무리 노력해도 수포로 돌아가고 마는, 흔하고 쓸쓸한 이야기일 뿐이다. 어떤 철학적 은유를 갖다 붙여도 다 그럴듯해 보일 만큼 모호한 전형적인 종말론적 상징이다. 분명 조셉 캠벨(Joseph Campbell)을 운운하는 학부 논문이 이미 진행 중일 거다.
설계 면에서 보면 몇 가지 곤혹스러운 특징이 있다. 우선 게임에서 두드러진 기법 중 하나로 단순히 반복되는 스카프 모으기는 <저니>를 마치는 데 사실 필요가 없다. 인내심이 필요한 탐험을 좀 가볍게 바꿔주는 설계일 뿐이다.
스카프를 모으는 일은 분명 심리적 효과가 있다. 고작 50센티가 겨우 넘는 스카프를 매고 4미터에 가까운 멋진 휘장을 휘날리는 사람들 옆을 절뚝이며 지나가기란 좀 민망하다. 하지만 일찌감치 스카프를 모을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첫 스카프를 빼고는 그냥 그대로 게임을 끝까지 했다. 스킬 레벨이 어떻든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울 때마다 다음 단계로 통과하는 편리한 방법이 있었다.
그러나 필요한 기능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지 않다고 해도 <저니>는 이따금씩 단순한 기능의 합 이상을 해낸다. 모래 서핑이나 활공 등 단순하지만 우아한 이동 방법은 재미있고 아름다운 영상과 나른한 음악, 길게 이어지는 리듬과 어우러진 세상은 절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러나 다른 어떤 매체도 따라 할 수 없을 <저니>의 가장 큰 혁신적인 기능은 즐거운 멀티플레이어 시스템이다. 초대 같은 것이 없이도 <저니>는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과 여정을 함께하며 매번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한다. 완전히 간단해 보이지만 결국 감정적으로 몰입하게 하는 방식이 바로 <저니>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이점이 초현대적인 매체만의 독특한 힘을 작지만 분명하게 보여준다. 꽤 오래 전부터 게임에서 제시되어왔지만 비디오 게임의 영역이 점차 넓고 깊어지면서도 확실하게 보여주지 못했던 바로 그 힘이다.
다시 말해 <저니>는 그 동안 단순히 예술의 정의에 들어맞는 것이 아닌 뭔가 새로운 것으로 예술의 정의를 바꾼 많은 존경 받는 비디오 게임에 가장 최신판이다. 오래된 구식 개념으로나마 이러한 중요한 변화에 대해 보다 분명하게 생각하고 논의하고자 하는 게 본 글의 목적이다.
※ 자세한 내용은 첨부(PDF)화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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