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텐도 파워>, 미국에서 가장 오래 간행된 게임 잡지를 기억하며
작성자: 프랭크 사이팔디(Frank Cifaldi) 작성일: 2012 년 12 월 11 일
1987 년, 당시 닌텐도 미국 지사의 회장이었던 미노루 아라카와(Minoru Arakawa) – 닌텐도사 회장 히로시 야마우치(Hiroshi Yamauchi)의 사위 – 는 닌텐도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읽을 만한 잡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전에도 게임 잡지는 있었다 – 사실 여러 권 있었다 – 그러나, 악명 높은 1983 년 비디오 게임 위기가 닥치면서 비디오 게임 산업 전체와 더불어 모두 사라졌다. 그러나, 닌텐도를 통해 아이들이 아직 게임 구매에 관심이 있다는 게 입증되었으니, 게임에 관한 기사를 읽기 위해서 기꺼이 돈을 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해서 <닌텐도 파워(Nintendo Power 1 )> – 닌텐도가 이미 팬들에게 보내고 있던 펀 클럽 무료 소식지와, 게임 정보 전화 서비스의 지면 버전이 조합된 형태 – 가 생겨나게 되었다. <닌텐도 파워>는 새로운 류의 비디오 게임 잡지 가운데 첫 주자였으며, 2012 년 12 월 11 일에 최종호가 발간될 때까지, 뒤따라 생긴 다른 잡지들 – <일렉트로닉 게이밍 먼슬리(Electronic Gaming Monthly)>, <게임프로(GamePro)>, <게임 플레이어즈(Game Player’s)>, <비디오게임 & 컴퓨터 엔터테인먼트(VideoGames & Computer Entertainment)> 등등 –보다도 오래 살아남았다.
<닌텐도 파워>의 창간 편집자인 게일 틸든(Gail Tilden)과 하워드 필립스(Howard Philips)가 고맙게도 창간에 대한 그들의 추억을 공유해 주었다. <닌텐도 파워>는 – 좋든 싫든 – 어떤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가장 영향력 있는 정기 간행물 중 하나였다.
게일과 하워드는 예상 밖의 조합이었다 – 게일은 닌텐도사에서 마케팅과 PR 의 수장이었고, 하워드는 닌텐도사의 게임광인 게임마스터였다. 그러나 두 사람 덕분에 <닌텐도 파워>는 마케팅 도구와 게임 안내서 사이의 선을 잘 지킨 잡지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시작 하워드 필립스(이하 HP): 1985 년에 닌텐도를 론칭했을 때, 아이들이 게임에 대한 정보 – 출시 예정인 게임뿐만 아니라 그 게임을 플레이 하는 방법 -를 몹시도 알아내고 싶어한다는 걸 곧 깨달았다. 일본에서 닌텐도 이전에 패미콤(Famicom)이 판매되었을 때 같은 현상을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직원이 대여섯 명이 3 단계에서 세 번째 동전을 찾는 법 같은 걸 전화로 물어보는 소비자들에게 대답해 주는 일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비싼) 방법이었다. 우리는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그 중 한 가지 방법이 등록 카드를 사용해서 펀 클럽 소식지의 형태로 아이들에게 정보를 보내는 것이었다.
원본 이미지 링크: http://gamasutra.com/db_area/images/feature/183233/zelda-map.jpg
게일 틸든(이하 GT): 나는 광고 매니저로, 닌텐도의 PR 과 광고를 맡고 있었다. 우리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에 삽입 광고를 실어서, 소비자들이 이름과 주소를 보내오도록 애쓰고 있었다. 소비자들은 개인 정보를 보내면, 펀 클럽 회원이 되어서 소식지를 받아볼 수 있었다. 1987 년에는 그랬다.
데이터베이스가 점점 커져 가고 있었고, 더 이상 무가지를 만들지 않겠다고 결정을 내렸을 때에는 회원이 약 60 만 명에 이르렀던 것 같다. 이렇게 많은 수의 이들을 대상으로 무가지를 발행한다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
HP: 우리는 비용을 들여 소비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었다. 게임 상담 업무에 100 명이 넘는 직원이 투입되었던 것을 보면 그렇게 한 게 효과가 있었다. 그러한 소비자의 요구에 우리는 정말로 확실한 방법으로 응해야 했다.
GT: 결국, 그 일은 부담이 되었다. 왜냐하면 데이터베이스가 굉장히 빠르게 커갔기 때문이다. 우리는 게임 상담 서비스에 비용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엄청나게 수익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사실, 그건 여전히 마케팅 비용이 드는 일이었다. 그래도 게임 정보를 발송하는 비용을 충당하는 데에는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또한 우리는 최초의 <닌텐도 플레이어 가이드(Nintendo Player’s Guide)>를 들고 나왔다. 우리는 그 때 처음으로 많은 게임 정보와 맵, 그리고 게임과 게임플레이에 대한 일본 플레이어들의 반응을 모았다. 사실 우리는 그 가이드를 만들기 위해 일본에서 축적한 데이터를 사용했다.
<닌텐도 파워>는 그 아이디어와 펀 클럽 소식지를 조합한 것이었다. 아라카와 회장은 맵을 제공하고 게임을 깨는 것을 돕는 방식으로 게임플레이를 지원하여 게임에 대한 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이는 잡지가 일본에 여러 개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런 방식을 따르고 싶어했다.
원본 이미지 링크: http://gamasutra.com/db_area/images/feature/183233/rcr_1.PNG
HP: 일본에 <패미추(Famitsu)>와 <패미콤> 등등이 있는 걸 보면서, 나는 이 정말 두껍고 밀도 높은 잡지들을 일본에 정기구독 주문해서 달마다 받아보곤 했다. 창고에 잡지를 두고 열어 보면서 곧 출시될 멋진 새 게임들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스크린 샷 같은 것들을 보려고 돋보기를 쓸 뻔 하기도 했다. 당연히 미국 아이들도 이런 잡지를 보고 싶어할 거라고 생각했다.
GT: 일본에서는 아이들이 매 주 점프(Jump)와 같은 잡지를 사 봤다. 아라카와 회장은 미국에서 이런 일본의 종이 매체 문화를 일으키려고 애쓰고 있었다. 일본에는 매우 두터운 정기 구독자 층이 있었다. 회장의 자녀들은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일본어를 읽을 줄 알았는데, 일본 잡지를 정기 구독해서 읽었다. 아이들은 회장이 사 준 온갖 종류의 잡지를 탐독하곤 했다. 회장은 그게 일본만의 문화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그런 문화를 접해본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일본 잡지 출판업에 종사한 사람들을 써, 같은 관점으로 편집에 접근한 잡지를 만들고 싶어했다.
HP: 그래서 그 때 게일과 내가 <닌텐도 파워>를 만들기 시작했다. 게일은 모든 작업을 실제로 추진하는 힘이었다. 나는 플레이어의 관점에서 어떤 게임들이 좋았고, 왜 좋았는지 등과 같이 게임에 관련된 구체적인 사항들에 대해서 의견을 개진하는 역할을 맡았다. 인쇄 감리를 할 때는, “이 이미지가 뒤집혀서 찍혔어.”, “이 캐릭터는 여기에 나오지 않아.” 등과 같은 피드백을 제시했다. 잡지에 실린 게임정보가 부정확하면 아이들이 고민하게 되기 때문이다.
※ 자세한 내용은 첨부(PDF)화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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