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의 끝 : 한 인디 스튜디오의 이야기
작성자: 트리스탄 클락(Tristan Clark) 작성일: 2012년 11월 6일
뉴질랜드는 분명히 사업을 시작하기 가장 쉬운 나라이다. 그래도 그 쉽게 끝나는 서류작업에도 나는 항상 분개했다. 주식? 디렉터? 연차 보고서? 그게 뭐든. 게임 만드는 일에 방해만 될 뿐.
내 이름은 트리스탄 클락이다. 2006 년 중반에, (생각보다 게임 디자인에 정말로 더 관련이 있는) 영문학 학위를 받은 후, 론칭 패드 게임(Launching Pad Games)이라는 회사를 차렸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것인지도, 심지어는 내가 뭘 모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더 알지 못했지만, 맹목적인 믿음에 매달려 모든 의혹을 떨쳐 버리고 그것에 상관없이 도전해 볼 결심이 서 있었다.
이제 론칭 패드 게임의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그 회사의 중심을 이루었던, 작지만 놀라운 팀에 대해서, 그리고 게임을 만들면서 배운, 종종 고통스러운 교훈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고 한다. 2012 년 중반 현재, 우리는 회사 운영을 일시적으로 중단해야 했다. 그러므로 완전히 즐거운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나는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에서 당신이 우리의 실수와 성공 모두로부터 무언가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초기: <패션 스타(Fashion Star)1>
2006 년이었다. 나는 살면서 게임을 끝내본 적이 없었다. 물론, 다양한 형태로 약 5 년간 빈둥거리다 서서히 사라진 RPG 를 포함해서 열 개 남짓한 게임을 시작해 본 적은 있었다. 여기서 한 가지 교훈. 직접 RPG 를 만들지 마라. 극히 소수가 드물게 해낼 수 있을 뿐이다 (스파이더웹 소프트웨어(Spiderweb Software) 훌륭하다!). 대부분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장차 시누이가 될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가 내 닌텐도 DS 를 이리저리 만지다가 사람에게 옷을 입히는 게임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내가 만들 수 있겠어!”라고 생각했다. 게임이 완성될 수 있었던 이유? 이건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라고 내 자신을 속였고, 난 그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그 방법이 효과가 있었다.
퍼블리셔를 섭외해서 얼마간의 돈을 선불해 달라고 설득했던 것도 도움이 되었다. 플랫폼과 타겟 마켓을 정했고, 2006 년에 누가 생각해도 확실한 게임의 장은 가벼운 다운로드 게임을 제공하는 온라인 게임 포털 사이트들이었다. 빈 로베(Vin Rowe)에서 괜찮은 계약 삽화가를 발견했을 땐 너무나도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적은 수당을 받고 작업했는데, 이는 내가 연락을 주고 받은 다른 모든 이들과 반대였다. 다른 이들은 – 매우 타당하게도 – 아직 학생인 사람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높은 비용을 요구했다.
어쨌든, 빈의 도움으로, 프로토타입을 만들어서 여기저기 다녔다. 몇 주 안에, 오베론 미디어(Oberon Media)가 계약을 하자고 연락이 왔고 – 일단 계약을 하고 나자, 내게는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무엇보다도,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게임을 완성할 것이라고 보장했다.
LPG 최초의 게임. 나는 아직도 이게 놀랍다.
나는 주로 혼자 일하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의 첫 번째 게임을 완성한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싶다. 이건 극복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장애물이다. 왜냐하면, 일단 게임 하나를 완성하면, 그 다음부터는 게임을 완성할 줄 알기 때문이다 – 게임 개발은 습관을 만드는 것과 같다. 게임을 출시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루덤 데어 챌린지(Ludum Dare Challenge)2 같은 것을 해보기를 추천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처음에 모든 것이 놀랍도록 잘 진행되었다. 그 때만 해도 순진해서 퍼블리싱 계약을 따내는 게 얼마나 드문 일인지를 몰랐다. 그러나, PC 다운로드 옷 입히기 게임인 <패션 스타>를 만들기까지는 아직 대단히 힘든 12 개월이 남아 있었다. <패션 스타>는 빅 피시 게임(Big Fish Games) 같은 포털 사이트에서 20 달러에 출시되었고, 2007 년부터 지금까지 약 십만 개가 팔렸다. 개발자로서 내 몫은 5 년에 걸쳐 2 만 5 천 달러 정도였다. 집에 보내는 편지에 쓸 만큼 자랑할 일은 아니었지만, 난 기뻤다. 아니, 내가 처음으로 만든 게임이 출시되어 얼마간의 돈을 벌어서 황홀했다.
여러 가지 교훈을 배웠다. 프로토타입을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 게임의 핵심 부분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걸 6 개월 뒤에 깨달았다. 게임이 패스가 여러 개 있는, 제대로 된 어드벤처 게임의 모습을 띠기 시작했다. 개발 과정을 아주 많이 거슬러 올라가며 시간을 낭비한 후에야, 처음에 의도했던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다양한 옷을 입혀볼 수 있는 옷 입히기 시뮬레이터. 그래, 분명 이거였다.
내가 12 개월의 개발 기간 동안 오직 한 번 게임 파일을 백업했다는 걸 알면 개발자들이 또 기뻐할 것이다. 이 생각만 하면 아직도 심장이 뛴다.
나는 <패션 스타>가 작고, 간단한 게임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내 생각은 완전히 틀렸고, 아무리 작은 게임이라도 얼마나 많은 일이 필요한지에 대해 중요한 교훈을 배웠다. 또한 내가 얼마나 다른 이들과 함께 일하고 싶어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다시 혼자 일하고 싶지는 않았다(빈은 미국에 있었고 나는 멀리 뉴질랜드에 있었다). 운이 좋게도, “제대로 된” 론칭 패드 게임 회사가 곧 시작될 예정이었다.
작게 시작하다: <런 부츠 런(Run Boots Run)3>
팀 노프(Tim Knauf)를 만난 건 <패션 스타> 출시 직전이었다. 한 파티에서 좀 취해 있었는데, 그가 나타나서 게임 개발을 좋아한다고 했다. 일주일 정도 뒤에 우리는 함께 일하기로 했다. 그렇게 쉽게 시작됐다.
재미있는 나날들이었다. 팀은 서점에서 일하고 있었고, 나는 이제 막 잡지사에 기술 분야 관련 기고자로 일자리를 얻은 터였다. 그러나 우리는 여가시간을 이용해 어떤 게임을 만들지 함께 생각했다. 작고, 간단하면서도 새로운 프레임워크를 빠르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이어야 했다. 이유가 어찌됐든, 우리는 플래시 게임을 만들기로 했다. 고장이 잘 나는 맥 버전 어도비 프로그램과 나의 애증 관계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런 부츠 런>은 간단한 엔드리스 러너 게임인데, 이런 종류의 게임들이 인기를 얻기 전에 개발되었다! 고양이..인 것 같은 어떤 것을 콘트롤하게 되는데, 레벨이 올라갈수록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게임이었다.
달려가면서 다이아몬드를 모을 수 있긴 하지만, 우리 초보적인 게임 디자인 스킬을 보여주는 우스운 사례로, 그게 아무런 효과는 없다. 다이아몬드가 게임플레이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낼 수 없었는데도, 어쨌든 게임 속에 넣어 두고 플레이어들이 기능적으로 쓸모 없음을 알고 난 뒤에도 다이아몬드를 모으려고 애쓰는걸 지켜봤다. 그 일이 적어도 내게는 플레이어들의 심리에 대해 더 잘 알게 해주는 경험이 되었다.
플레이어들이 당신이 만든 게임을 얼마나 잘 할 수 있을지를 절대로 과소평가하지 마라. 팀은 2 분 30 초 정도 길이의 비순환 뮤직 트랙을 만들었는데, 그 보다 훨씬 더 오래 게임을 해서 높은 점수들이 나오는 경우를 봤다.
게임을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고 생각하고 우쭐해 하다가는 플레이어들이 높은 레벨을 쉽게 깼을 때 한 방 먹은 기분이 들기 십상이다.
그렇거나 혹은 플레이어들이 속임수를 쓰거나. 아마도 전자의 경우일 것이다.
부츠는 고양이로 설정했으나, 플래시에서 꼬리를 움직이게 할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규모 늘리기 : <프리텐더(The Pretender)4>
게임 하나를 함께 출시하고 나자, 우리는 갑자기 플래시에 대해서 알만큼 알았으니 훨씬 더 복잡한 게임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과 자만심이 얽힌 비극적 이야기 있는 퍼즐/플랫폼 게임 3 부작이 그것이었다.
이것이 <런 부츠 런>에서 한 단계 발전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꽤 절제된 표현일 것이다. 이 게임을 만들면서 스토리텔링과 퍼즐 설계 실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었다. 팀과 나에게는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약 3 개월간의 개발 기간을 거쳐, 2009 년 6 월에 첫 번째 프리텐더 게임을 플래시게임라이센스(FlashGameLicense) 에 등록했다. 퍼블리셔들이 어떤 가격을 제시할지 보기 위함이었다. 몇 주 후에, 스필게임(Spill Games)과 5 천 달러에 스폰서십을 계약을 체결했다. 다른 웹사이트들에도 비독점적 제한 라이센스를 더 싸게 판 결과, <프리텐더> 첫 편은 9 천 달러 가까이 벌었다.
이 게임은 평가가 매우 좋았고, 소수의 사람들만이 풀 수 있는 아주 어려운 퍼즐을 설계하는 것이 얼마나 사디스트적으로 즐거운 일이 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보다시피, 벌어들인 돈이 회사의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하지 않았다.
이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 건, 우리가 3 부작을 목표로 하는 동시에 완전히 새로운 게임을 개발하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다른 게임들을 개발하는 와중에 <프리텐더>의 후속 게임들을 만들어 내느라 2011 년 11 월이 되어서야 3 부작 개발을 끝낼 수 있었다 – 거의 2 년 반이 걸린 셈이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바람에 게임 스토리를 항상 새롭게 기억해 내야 했고, 우리의 마음 속에서는 이미 과거로 밀려난 것에 대한 열정을 끄집어 내려 애써야 했다. 어떤 제품이나 프랜차이즈를 보완하거나 재탕하고 싶지 않다면, 절대로 연작 게임을 만들겠다고 약속하지 마라.
그래도, <프리텐더>의 팬들이 온라인에서 레벨에 대해 얘기하는 걸 보는 건 기분 좋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당신이 만든 게임을 깨는 법을 담은 동영상을 유투브에 자발적으로 만들어 올릴 때는 항상 기분이 좋은 법이다!
※ 자세한 내용은 첨부(PDF)화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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