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개연성: 처리 집약성과 사회 실험
작성자: 이안 보고스트(Ian Bogost) 작성일: 2012 년 5 월 23 일
1987 년, 기획자 크리스 크로포드(Chris Crawford)는 과정 집약성(process intensity)의 개념을 “데이터 대신에 과정이 강조되는 정도"라고 설명했습니다. 크로포드에 의하면 데이터가 ‘표, 이미지, 사운드, 텍스트'를 일컫는다면 ‘과정’이란 ‘알고리즘, 수식, 분기’와 관련된 개념입니다. 데이터 집약적 프로그램이 프로그램이 바이트를 여기저기 전송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소모한다면, 과정 집약적 프로그램은 수치를 처리하는데 시간을 할애합니다.
크로포드에게 과정 집약성이란 알고리즘과 정보 사이의 간극을 이해하는 이론적인 틀일 뿐만 아니라, 하나의 미학적인 원리이기도 합니다. 크로포드가 확신하는 바로는 “데이터 처리야 말로 컴퓨터의 본질”이기 때문에, 데이터를 저장하거나 옮기는 일에만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은 낭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과정 집약성을 감히 “소프트웨어의 가치를 평가하는 유용한 기준"이라고 단언합니다.
워드프로세서에서 비디오게임에 이르기까지 데이터 자체보다 그 처리에 치중한 “비트 대처리 비율”이 높은 결과물은 그렇지 않은 것이 비해 더 낫고 더 바람직한 컴퓨터 미디어의 예가 될 수 있다고 크로포드는 이야기합니다.
그가 쓴 글에서 그는 낮은 과정 집약성의 예로 1983 년 레이저디스크로 출시된 ‘Dragon’s lair’를 들었습니다 (“비트 대 처리비가 형편없었죠-“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애니메이션이 차지하는 비중은 컸지만 비디오 데이터와 유저 입력을 처리하는 부분이 매우 적었기 때문입니다.
크로포드는 자신의 게임 Balance of Power 를 이와 대조적으로 바람직한 과정 집약성의 표본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 게임은 원조를 보낸다던지, 갈등을 고조시키고 해소한다던지 하는 유저의 조작에 따라 내란, 경제, 알력, 혹은 나라 사이의 신뢰 관계 등을 알고리즘적으로 분석함으로써 냉전 시대를 지정학적으로 재현해냈습니다.
거의 책 한 권 두께가 되는 길이의 매뉴얼에서 크로포드는 자신이 강조하고자 했던 네 가지의 지정학적 요소를 정리해 놓았습니다. 내란, 쿠데타, 핀란드화[역주: 냉전시대의 비공산국가들이 소련에 대해 취했던 유화적인 태도], 위기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Dragon’s Lair 가 타이밍이라는 한 가지 처리를 제외하고는 시청각 애셋에만 집중했다면, Balance of Power 는 추상적인 데이터 집합을 독립적으로 조작하는 여러 가지 처리 과정에 중점을 뒀던 것입니다.
크로포드는 1984 년에 출간된 “The Art of computer Game Design”에서도 똑같은 개념을 감각 중심성(instantiality)과 절차 중심성(procedurality)으로 양분하여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동적인 과정보다 사전 처리된 불변성 애셋(invariable asset)에 치중할 때 게임이 감각 중심성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분은 게임 사이즈가 4 에서 64k 정도였던 1980 년대 초반의 현업 게임 개발자들에게는 손에 잡히는 명확한 것이었습니다. 가능하다면 데이터 대신에 코드로 공간을 채우는 쪽이 더 넓고 조밀한 경험을 집어넣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이런 고민은 의미가 없지만, 특정 분야에서 절차와 자료의 상대적 분포라는 기본 개념은 게임의 형식적 구조를 파악하는데 유용합니다.
2000 년대 중반이 되어 과정 집약성은 새로운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2006 년에 있었던 SIGGRAPH 기조연설에서 그렉 코스티키언(Greg Costikyan)은 감각 중심적 게임이 매체의 발전을 막고 있다는 이유로 폴리곤 덩어리와 판에 박힌 데이터보다는 상호작용 과정을 지지하였습니다. 코스티키언은 게임에 투입되는 노동력(즉 비용)의 80 퍼센트 이상이 그래픽 애셋을 구축하는데 쓰이는데, 이는 달리 말하면 우리가 지난 30 년간 과정 집약성보다 데이터 집약성에 집중해 왔음을 말한다고 통탄했습니다.
실제로, 인력에 투입된 비용은 실용적이지 못했습니다. 절차적 접근이 미학적 관점에서 옳다는 접근이 통하지 않는 대신, 경제적 이유에 의해 조금씩 관점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AAA 급 게임 생산에 필요한 비용 증가는 게임 기획에서 과정 중심적 방법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습니다. 이것이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난 것이 윌 라이트(Will Wright)가 만든 스포어(Spore)의 절차 중심적인 저작 툴과 게임입니다.
그러나 코스티키언이 지적한 대로, 절차적 컨텐츠가 반드시 게임플레이 상의 절차 집약성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노아 워드립-프룬 (Noah Wardrip-Fruin)의 비평에서처럼 중심 논제는 컴퓨터 작업에서 얼마나 많은 양의 처리가 이루어졌느냐가 아니라 그런 작업이 행동 처리의 상대적 집약성을 얼마나 표출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과정 집약성과 감각 집약성은 어떤 부분의 계산 플랫폼이 어디에 기반하고 있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습니다. 3D 게임 엔진과 같은 절차적 컨텐츠 생성법은 기존의 데이터 중심적인 설계 패러다임에 과정 집약성을 증가시키는 것뿐입니다. 토이스토리나 몬스터 주식회사와 같은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들과 비교해 봅시다. 절차적 방법을 통해 캐릭터의 애니메이션과 배경효과를 만들어내는데 많은 노력이 투입되었지만, 결과적으로 보자면 그것은 절차 중심적이었다기 보다는 감각 중심적인 것이었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필름 상영이란 정지화상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더그 윌슨(Doug Wilson)이 말하는 “과정 집약성 축소”의 미학
컴퓨터의 “본성”에 대해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크리스 크로포드의 과정 집약성은 미학의 범주에 속해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미덕’ 이 아닌 하나의 ‘양식’으로 간주되어 묵살되거나 거절될 수 있습니다. “과정 집약성 축소”를 내세운 게임 기획자 더그 윌슨이 바로 그렇게 한 사람입니다.
최근 Indie Connect 에서의 발언에 따르면, 윌슨은 The Graveyard, Proteus, Dear Estheras 와 같은 게임들은 게임 규칙의 설계보다는 주로 (어쩌면 오로지) 시청각적 설계에 초점을 맞춘 게임이라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이 세 게임은 각각 다른 보통 수준의 플레이 경험을 제공합니다. Graveyard 의 개발사 Tale of Tales 는 일전에 실시간-예술(real time art)과 비-게임(non game)이라는 용어를 통해 이러한 구분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앞서 말한 세 게임이 제한된 상호작용을 제공한다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크로포드와 코스티키언 둘 다 낮은 상호작용성이 낮은 절차집약성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앞서 말한 각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가볍고 접근이 쉬우면서 심지어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목표를 쫓으며 3D 배경을 탐험합니다.
심지어는 대중 시장을 겨냥한 대표작마저도 상호작용성이 낮은 기획을 수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윌슨이 지적한 바와 같이 이 회사의 타이틀인 ‘Flower’와 ‘Journey”에서는 기본 조작과 제한적 행위 만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게임은 레벨 진행을 피해가면서 그냥 주위를 이리저리 배회하는 것 만으로 게임 플레이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윌슨이 보기에 게임이 처한 진정한 문제는 상호 작용성이 아니라 구조입니다. 그에게 있어 Flower 는 게임 전반에 걸친 목표, 규칙, 도전 등을 추가하는 시점에서 초기의 노림수를 놓쳐버린 게임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와중에 게임의 강조점이었던 시청각적 체험이 퇴색되었다고 윌슨은 이야기 합니다.
이 논의를 좀 더 정식으로 전개했을 때, 윌슨은 로드 험블 (Rod Humble)과 브랜다 브레스와잇(Brenda Brathwaite)과같은 기획자를 적으로 규정하며 과정 집약성은 미학적, 심지어 정치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음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이 두 기획자는 작품의 의미를 시청각적 표현보다는 시스템에서 동작 방식이 갖는 의미(컴퓨터가 관여하든 아니든 간에)에 두는 철학을 수용한 사람들입니다.
험블의 추상적이고 실험적인 예술게임 The Marriage 는 이 방면에서는 매우 극단적인 예입니다. 그에 반해 Brathwaite 의 Train 은 시각적 요소로 객차와 구식 SS 타자기가 등장하지만, The Marriage 만큼 극단적이지는 않습니다. 윌슨은 이런 모호성에 주목하면서, Train 을 “조형 예술에 버금가는 게임 시스템”이라고 불렀습니다. 윌슨은 여기에서 출발하여 시스템 기획이 작품의 다른 측면을 부수적인 것으로 만드는 미학적 본질주의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질문하였습니다.
이러한 의문에 대해, 윌슨은 “형식화 된 시스템과 계산 알고리즘을 넘어선, 플레이어들이 자신만의 목적과 게임플레이를 만들며 경쟁할 수 있는 공간”을 설계하는 접근 방식을 택합니다. 그는 그가 만든 두 게임, B.U.T.T.O.N(Brutally Unfair Tactics Totally OK Now: 무식하고 불공평한 작전도 여기서는 모두 허용)과 Johann Sebstian Joust 를 이런 새로운 방식의 예로 들었습니다.
전자는 플레이어들이 컴퓨터가 선택한 제시문에 놀랍고 우스꽝스러운 방식의 행동으로 반응하며 Xbox 컨트롤러의 버튼을 누르려고 경쟁하는 파티 게임입니다. 그리고 후자는 PlayStation Move 컨트롤러를 써서 전통 놀이 King of the Hill 의 음악 버전을 조작하는 체감형 게임입니다.
B.U.T.T.O.N 에서, 플레이어는 컨트롤러 버튼을 누르려고 경쟁하면서 닌자 동작을 취하거나 바닥에 눕는 것과 같은 행동을 해야 합니다.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플레이어는 “무자비하고 불공평한” 방법을 포함, 어떤 방법을 써도 무방합니다. J.S. Joust 에서 플레이어는 Move 컨트롤러에서 일정한 가속도 임계값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 값은 게임을 구동하는 컴퓨터가 뿜어내는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의 템포에 따라 주기적으로 변합니다.
윌슨에게는 “과정 집약성”이란 이름으로 묶을 수 있는 설계 방식에 대해 두 가지 불만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그는 과정 집약성 축소가 규칙과 시스템 체험보다 시청각적 체험이 주는 즐거움과 더 긴밀한 연관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두 번째로 규칙에 제약을 두어 플레이어가 마음껏 실험을 해볼 수 없도록 하는 과정 집약성 확대를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즉 윌슨에 따르면 그의 게임은 기획 전략에 대안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의 제기에 대해, 질문이 하나 제기됩니다. 바로 B.U.T.T.O.N.과 J.S.Joust 같은 게임이 윌슨이 주장하는 것처럼 과정 집약성이 축소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 자세한 내용은 첨부(PDF)화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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