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지만 진실: 우리는 수퍼마리오 브라더스가 언제 나왔는지 증명할 수 없다
by Frank Cifaldi [Business/Marketing, Design]
수퍼마리오 브라더스는 비디오 게임 역사상 최고의 보물 중 하나입니다. 다채로운 캐리턱와 숨겨진 비밀로 가득찬 거대한 세계는 이후에 나온 모든 액션-모험 게임의 디자인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이 게임은 수많은 속편, TV 쇼프로그램, 만화 책, 캐릭터 상품 심지어는 영화까지 양산해 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4천만 부 이상이 팔렸으며(지난 몇 십 년 동안 나온 다양한 포트와 리메이크 작품 제외), 1980년대 초반 거의 무료로 배포된 과잉 재고품으로 가득찬 과포화 상태 시장의 희생물인 미국 홈비디오 게임 업계를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게임이 언제 나왔는지 정확히 모릅니다. 사실 미국에서 게임이 몇 년도에 나왔는지 우리가 동의할 수 없습니다(일본에는 정확히 1985년 9월 13일에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이것은 Amelia Earhart나 우리가 이야기하는 Bermuda Triangle이 아닙니다: 이것은 지난 30년간 소개된 게임 중 가장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는 엔터테인먼트 제품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게임이 나온 날짜가 언제인지 알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최근에 이를 바로잡기로 결정했습니다. 수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북미에 퍼진 때를 최종적으로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이 혼란을 바로잡아 미래 역사 책과 위키피디아 같은 사이트에도 정확히 소개되어지길 원했습니다.
제가 그 답을 찾았을까요? 어느 정도는 그렇습니다. 검색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지 확인해 보십시오.
첫째, 역사 수업 1985년으로 돌아가서, 미국의 닌텐도는 아케이드 게임을 주로 취급하고, 휴대용 게임과 LCD 게임을 다른 회사에 라이센싱하는 매우 작은 벤처기업이었습니다(미국인은 ‘닌텐도’하면 ‘돈키콩-Donkey Kong을 연상합니다). 1월 동계 소비자 전자 쇼에서 닌텐도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 될 시작품을 발표했을 때, 바이어들은 비웃었습니다.
시스템은 1984년 150만 게임 카트리지와 함께2백 5십만 유닛을 내는 가정용 컴퓨터로 알려진 일본에서는 사이즈가 매우 컸습니다. 하지만 1983년 비디오게임 업계의 불황으로 인해 힘들어진 미국 소매업자들은 관심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비디오게임은 매장되어 버렸습니다: 장난감 가게의 독이었지요. 사람들은 5달러 파격 할인으로 그친 비디오 게임 거래로 인해 해고되었지요. 새로운 닌테도 게임이 얼마나 훌륭한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위험을 다시 감수하고 싶어하지 않으니까요.
미국의 닌텐도는 시장의 요구에 의해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어린이들이 비디오 게임을 사지 않기 때문은 아닌 것 같아 보입니다. 사실 1983년은 카트리지 세일로 기록적인 해였고, 오락실 기계가 쌓여만 갔습니다. 문제는 홈 게임이 오락실 게임과 비교하여 인기를 잃고 있었습니다.
한편 NES는 실제로 집에서 오락실 게임을 할 수 있는 비슷한 무언가를 제공하거나 , 닮은꼴 복사품을 제공하였습니다. 닌텐도 게임의 경우, 하드웨어는 실제로 오락실 게임과 같은 파워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오락실게임을 완벽히 재현해 놓은 것 같았습니다. 닌텐도 직원들은 닌텐도 게임이 그들의 손에 들어오는 즉시 팔려버리는 현상을 대화 주제로 삼곤 할 정도 였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엔터테인먼트의 형태인 고객 참여형 제품을 이용하고자 하는 고객 확보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광고 마케팅 담당자 게일 틴든이 말했습니다.
바이어들의 아이디어를 기다리는 대신 닌텐도는 팔리지 않는 재고를 쌓아두기 보다는 상점에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달콤한 거래를 제안하면서 리스크를 감수했습니다. 닌텐도는 미 판매 상품을 다시 사들일 것이며 심지어는 직접 와서 진열하고 게임을 보여줄 것입니다.
1985년 10월부터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계속된 뉴욕 주변 지역에까지 한정 테스트 시장 출시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닌테도의 “SWAT 팀”은 뉴저리의 해컨색에서 창고를 빌려 손으로 직접 재고를 나르고 장식하며, 진열대를 셋팅하고 고객들에게 직접 게임을 설명하여 주었습니다. 미노루 아라카와 회장 또한 계단에 TV를 직접 셋팅하곤 했습니다.
그당시 닌테도에서 근무한 호워드 필립이 말하기를 “회장님은 같이 일하던 사람들 중 그저 한 명이었습니다. 그는 그 곳으로 가 우리와 함께 많은 일들을 하셨지요. 그는 정말 친절한 분이셨습니다.”
테스트 시장은 모두 매진되지는 않았지만 전국적인 홍보 기회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Zapper light gun 과 R.O.B. the Robot accessories 을 과시할 목적으로Duck Hunt 와 Gyromite게임을 번들로 묶어 나갔습니다.
1986년 말 많은 국민이 시스템을 이용하게 되었으며 닌텐도는 수퍼마리오 브라더스를 포함한 시스템 옵션을 제공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매출 상승에 기여하였고, 홈비디오게임 산업을 회생시켰으며 거의 미국 5가정 중 한 가정에 NES를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전에도 이용 가능한 게임이었을까요?
1986년 신화 역사 책의 대부분이 수퍼마리오 브라더스는 1986년까지 미국에 출시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스티븐 켄트의 “The Ultimate History of Video Games”에서는 시스템이 뉴욕에 처음 등장했을 때에도 “소개 되지 않음”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크리스 콜러는 그의 저서 “Power-Up”에서 일본 비디오 게임이 전 세계의 여가 판도에 미친 영향과 게임이 “1986년에 도입되었다”라고 적혀있습니다. 트리스탄 도노반은 “Replay”에서 1986년 3월 미국에 나왔다고 말합니다.
저는 게임이 1986년에 나왔다는 것에 대해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심지어는 테스트 시장 출시에도 영향을 미친 2010년 제가 낸 논문에도 이 날짜를 사용하였습니다. 이는 날짜에 의문을 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연구를 처음 시도하게 해준 수퍼마리오브라더스 팬사이트 버섯 왕국(Mushroom kingdom)에 관한 논문을 의식한 제 실수에 대한 답변일 뿐입니다. 역사학자들이 뭐라고 말하던지 간에 논문은 게임이 언제 런칭 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추적하는 좋은 작업이었습니다.
켄트는 이를 명확히 하기 위해 닌텐도의 Howard Lincoln, Minoru Arakawa ,Howard Philips 이 게임은 출시 시점에는 이용 불가하였고 1986년 전국적 출시 이전에는 나오지 않았다고 말한 인터뷰 내용을 블로그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는 오락실 게임이 NES와 VS 버전보다 먼저 출시되었고 오리지널 오락실 버전은 1984년에 나왔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는 이전에 나온 초기 오락실 게임에 관한 역사적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으며 더 흥미로운 사실은 Shigeru Miyamoto 사장이 말하기를 수퍼마리오 브라더스의 전체 개발은 1985년 이전에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는 것입니다.
저의 기록을 살펴보면 현재까지 근무하고 있는 닌텐도의 Don James는 게임은 보통 테스트 마켓 출시 보다 4개월 이후에 출시된다고 2010년에 저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형사든 역사학자든 인간의 기억만을 가지고 고려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기억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문서화해야 합니다.
※ 자세한 내용은 첨부(PDF)화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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