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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적인 게임: 착취 웨어(엑스플로테이션 웨어)
등록자 : 이안 부고스트 Ian Bogost
가마수트라 등록일 : 2011 년 5 월 3 일
[신랄한 비판을 있는 그의 설득적 게임 칼럼 중에서, 학술적인 개발자 부고스트는 게이미피케이션 (gamification:기업이 의도적으로 사용자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게임과 무관한 사이트에서 앱에서 게임이 연관된 개념을 활용하는 것 ) 중심사상을 살펴보고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새로운 구조 속에서 전체를 논의해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나는 눈에 띠는 여드름이나, 파티 불청객 또는 케이티 페리 이어웜(Katy Perry earworm)처럼 게이미피케이션을 무시하려고 애써왔고, 거기서 도망치고 싶어했다. 그러나 최근 그 개념의 등장은 내 자신이 그것에 대해 귀를 막고 눈을 감으려고 해도 소용없는 전략인 것을 깨닫게 하였다. 심지어 우리의 목표는 반대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그 반대를 더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게이미피케이션의 호소하는 바를 더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4 월초에 대학 작문과 대화(4Cs) 연간회의에서 발표하였다. 4Cs 는 작문과 수사학, 게임개발자 회의인데 비디오 게임 공동체이며, 작문과 수사학(미사여구) 공동체로 표현하고 있다. 이 회의는 거의 대부분은 12 개의 즉흥적 세션이다. GDC 는 큰 개발자들, 편집자들, 하드웨어 판매자들에 의해 운영되는 저녁파티를 자랑하고 있으며, 4Cs 는 텍스트북 편집자에 의해 운영되는 파티들을 뽐내고 있다. 시시한 플랫폼 대신에, 피어슨과 베드포드 세인트 마틴 같은 회사들은 엘보 패치와 트윈 셋을 유치하길 희망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이윤이 되는 웨어들의 엄청난 수량을 구매하는 것을 착수하길 원한다.
나의 두 번째 책, ‘설득력 있는 게임들’은 비디오 게임과 그 평론에 대한 내용이다. 그러나, 더 전통적이고, 느리게 움직이고 있는 미사여구 공동체 중에서 느리게 흡수가 되었다. 이것은 첫해에 내가 그 회의에서 연설하기로 되었는데, 그리고 내가 내 생각을 이 많은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게 퍼트리길 열망하였다
결국, 대학을 다니는 사람들은 작문 수업을 듣게 되어있다. 우리는 대화가 소프트웨어에 의해 종종 증가되고 있으므로, 이러한 수업들을 담당하는 선생님들은 계산이 작동하는 법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확실하게 보장해야만 한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대학 작문과 대화를 가르치는 교수를 포함한, 대부분의 강사들을 위한 새로운 영역이다 그러나 질의응답 시간 동안에, 한 참석자가 작문 수업에서 학생들의 성과를 향상시키기 위한 관련성에 관한 “게이미피케이션”의 사용 가능성에 대한 설명을 물었을 때 놀라게 되었다. 절차적 수사학에 관한 나의 작업이 진행중인 것을 알지 못하는 한 학자도 거기에 있었고, 그는 최신 시장 유인책으로 친밀한 사람이었다.
단어의 힘
역설적으로, 그 대답은 수사학에 관한 모든 것에 답할 수 있는 것이었고, 게임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줄 수 있는 명칭들 보다 그런 아이디어들이 존재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길 좋아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명칭들은 그 지위를 진보시킬 수 있는 강력한 방법들을 제공한다.
UC 버클리(Berkeley) 인지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eoff)는 이러한 원칙으로 그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는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언어 안에서 세계를 틀에 넣거나, 사람들이 개념화하는 방법이 정치가들의 행동에서 보다 정치학에서 더 큰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논쟁하였다. 예를 들면, 보수주의자들은 세금을 도둑으로 여기는 구상을 함으로 부분적으로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반대하게 된다.
그리고 보수적인 정치과학자 프랭크 룬츠(Frank Luntz)는 조심스럽게 구어적 문맥을 발전시키며 비즈니스를 세워나갔다. 그는 “테러와의 전쟁”(war on terror)와 같은 문구 때문에 사람들이 덕을 봤으며, 심지어 정치인들이 의도적인 정당 위치를 진보함에도 불구하고 “기후 변화”(climate change)와 같은 문구가 정치적 스펙트럼을 넘어 일반적인 말로 채택되어 매우 잘 쓰이는 용어이다.
“테러와의 전쟁”은 알 카에다(al-Qaeda) 같은 이상주의자 집단의 복합적인 가외의 정부 유도방책이 선과 악 사이에서 승리할 수 있는 투쟁이 되었다는 것을 제시한다. 그리고 “기후 변화”는 지구 온난화가 재앙이기 보다는 오히려 조절 가능한 현상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결국, 변화는 좋은 것일 수 있다.
룬츠(Luntz)는 이에 덧붙이기를, 문제는 당신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떻게 듣느냐라고 하였다. 그리고 게임에 관하여 우리가 이야기 할 때, 사람들은 종종 좋은 게 없다고 듣는다. 게임을 만드는 것은 엔터테인먼트 산업 밖에 호소하는 것이 무서운 일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리고 도전의 대부분은 맨 처음에 개념을 진보시키는 올바른 수사학적 배치를 포함하고 있다.
“진지한 게임들”의 수사학
우리는 이전에 여러 번 이러한 시나리오를 겪어보았다. 예를 들면, 1980 년대 정치적 격동과 1990 년대 에듀테인먼트 (오락성을 겸비한 교육용 상품) 같은 것이다. 최근에 대부분 진지한 게임들(Serious Games)은 또 다른 게임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일반적인 시도를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져, Serious Games 의 초창기 창업자 벤 쏘이어 (Ben Sawyer)의 후기 테그(tag)에 “오락성을 뛰어넘는” 으로 사용되었다. 진지한 게임들을 위한 어플리케이션 도메인은 많지는 않으나 비즈니스, 건강, 국방, 교육, 공공사업으로 명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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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산업은 “진지한 게임들”과 같은 어구를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꼭 비판주의자 같고 환원주의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마치 다른 게임들은 가치 없는 것이며 요점도 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다른 도메인에서 게임을 가져오는 업무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진지한 게임들”은 때때로 문제들을 제시하게 한다.
게임에 관해 어떤 마술적인 무언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들은 항상 긍정적으로 의견을 표출하지 않는다. 심지어 비디오 게임이 특별한 힘을 가졌고, 비디오 게임이 우리를 사로잡고 끌어당기는 힘이 있고 그것을 반복적으로 하게끔 만드는 힘이 있으며, 우리가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물건으로 존재하지도 않는 비디오 게임에다 돈을 마구 쓰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식으로 비난한다. 게임이 문화, 언론, 예술일 수 있다고 모두가 동의하지 않겠지만, 사람들 모두 게임이 강력한 힘이 있는 것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힘은 미스터리하고 아주 큰 블랙홀 같다고 여긴다. 그리고 사람들은 일부라도 그런 게임을 좋아할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그러나 게임은 또한 무서운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위와 같은 동일한 이유가 있다. 게임은 아주 사소하면서도 동시에 강력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진지한 게임들”은 어떤 특정의 수사학 목적을 가진다. 높은 수준의 정부와 기업 간부, 개인들을 돕도록 고안된 어구이다. 이를 테면, 설명된 테러를 인용한 게임, 진부하면서 강력한, 사소한 것들, 심지어 사소하게 만드는 것을 정확히 그 힘의 일부라고 할 수 있겠다.
당신이 그 어구를 좋아하든지 아닌지 여부와 관계없이, 진지한 게임들은 합당하게 이러한 목적들을 잘 돕고 있다. 그리고 게임이 중대한 토픽에 태클을 걸 수 있고 심오한 결과를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게임들은 정부와 기업적 측면에서 게임을 사용하는 프레임을 제공하는 방법을 지지하게 하고 있다. 진지한 게임이란 말이 모순 어법이라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요지를 놓친 것이다. 그것은 모순적으로 가정되어야만 했다. 사람들이 “진지한 게임”이라고 들었을 때, 모순에 대한 반박이 조용하게 해결되는 것이다.
※ 자세한 내용은 첨부(PDF)화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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