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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非)사회적인 “사회적”게임들
등록자: 그레그 코스티키안 Greg Costikyan
가마수트라 등록일: 2011년 5월 24일
[베테랑 게임 디자이너인 그레그 코스티키안(Greg Costikyan)은 사교적 게임들은 사실상 사교적인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파헤쳐 본다. 그리고 그 형식을 해부해 보았고, 플레이어들과 개발자들에게 더욱 보상이 될 만한 게임을 만드는 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3년 전에, 나의 친구 에릭 골드버그(Eric Goldberg)는 내게 전화해서 물었다. 만약 그가 컨설팅을 하고 있고 있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리틀 웹 2.0 회사(littel Web 2.0 company)를 위해 내가 "사회적 게임"을 위해 일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지 여부를 물었다.
사회적 게임. 흠. 그것은 흥미롭게 들렸다. 나는 제한된 기한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좁은 방에서 라이브 액션 롤 플레이, 또는 집중적인 플레이 상호작용을 촉진시키는 멀티플레이 보드게임들, 또는 컴아웃(Come Out)과 플레이 페스티벌(Play Festival)을 위한 적절한 도시게임 같은 것 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었다. 아니면, 온라인 포럼과 게임플레이의 병합된 곳에서, 우리가 지니(Genie)와 우물(The Well), 메아리(Echo) 같은 프로그램에서 플레이하곤 했던 경쟁적인 워드게임 같이 동료나 친구들에게 드러내기 위해 게임을 했던 곳에 대해서 환상이 있었다.
그렇다. 게임플레이의 사회적 요소를 활성화하는 것은 매우 결실이 있을 것이다. 분명하고 재미있는 기록통신 시스템의 확장이 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분명히 이것을 위해 돈을 지불할 것이다. 아니다. 다소 의심이 가서, 나는 에릭이 의미하는 “사회적”게임의 뜻을 물었다.
허튼 소리를 조금 한 후에야, 나는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를 깨달았고, 본질을 구분했다. 아 그렇다. “나는 이제 너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네.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하는 게임을 말하는 거군. 그렇데 그게 정말 사회적인 어떤 게 있긴 하나?” 전화기 너머로 어깨를 들썩거리게 하는 것이 들렸을 수도 있다. 내가 소개를 해도 될까? 물론. 나는 그 일을 필요로 했다.
내가 열 세 살이었을 때, SPI, 아발론 힐(Avalon Hill) 같은 전쟁 게임의 열렬한 팬이었다. 전쟁게임 리스트를 나폴레오닉(Napoleonic)과 세계 2차 대전(World War II) 등으로 다른 종류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게임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내곤 하였다. 내 자신을 생각해보면, 내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기를 원했고, 그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고 싶었고, 진지하게 공부하길 원했다. 한 카테고리가 내 머리에 떠올랐는데, 나는 멀티플레이어(multiplayer) 게임들이라고 세분화하기로 결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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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에 있어서, 우리는 “멀티플레이어”를 단독실행이 아닌 것의 의미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전쟁게임에서는, 멀티플레이어는 대부분의 전쟁게임들은 양 두 편에 대항하며 싸우는 것이기 때문에 “두 사람이상 사람들을 위한 게임”이라는 의미이다.
나는 외교(Diplomacy)와 킹메이커(Kingmaker)같은 게임을 포괄하는 카테고리를 선택하였다. 일대일 게임에서 보다 훨씬 다양성을 창출하는 상호작용적 플레이의 동적인 복잡성 때문에, 그것들은 두 명의 플레이어의 전쟁게임 보다 훨씬 재미있다. 협상, 동맹, 거래, 다른 플레이의 수를 간단히 읽기 등이 중요하다. 그것이 체제와 지배에 관한 모든 것은 아니다. 나는 협상 맺기, 동맹하기, 험담하기, 다른 사람들과 거래하는 법 배우기에 긴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내가 열 네 살이었을 때, 지하 감옥과 공룡(Dungeons & Drans)이 나타났다. 나는 본질적으로 멀티플레이어이지만 협력적 게임세트는 내가 좋아하는 소설과는 다른 환상의 세상이 꾸며져 있었다. 꾸미고 협력하고 설득하는 법, 극적인 감각을 향상시키는 법 등을 배우려면 수 시간을 걸려야 했고, 다른 사람들과 협력적으로 이야기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지하 감옥과 공룡(Dungeons & Drans)은 분명하게도, 신중하고 우울하고 외로웠던 나를 건져주었고, 결국 수줍은 사춘기 시절에서 다소 매력적인 성인으로 만들어주었다. 그것은 나를 사회적 존재가 되도록 가르쳐 주었다. 기가스 앤 안네슨 사(Gygax & Arneson's)의 의도가 그랬던 것은 아니고, 그 게임플레이의 본연의 성질이 그렇게 한 것 같다.
수년 동안에, 나는 매력이 전혀 없게 느껴지는 디지털 게임에서 떠나 있었다. 지능적이지 못하고 진지함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게임들은 본연적으로 단독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대니 번튼(Dani Bunten's)의 유명한 멀티플레이어 게임인 아타리800 (Atari800)은 디지털 게임이지만 아주 사회적인 게임으로 보여 졌다.
나는 일찍 디자인과 온라인 게임하는 것으로 옮겨갔다. 심지어 인터넷이 비학문적 유저에게 개방되기 이전에 상업적 오라인 서비스에서 온라인 게임을 했다. 바로 온라인게임은 디지털 게임의 가장 큰 단점인 단독 게임플레이라는 본연적 성질을 고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나는 떠오르는 LARPs, 인디 RPGs(롤플레이 게임), 스토리게임 등에 빠졌고, 이러한 게임들은,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사교적 장소가 되고 향상시키고, 캐릭터와 플레이에서 전면과 중심을 수락하는 장소가 되기 때문이다.
사회적 게임들, 정확히 정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화(혹은 사교)를 위한 사람을 끄는 고리를 가지고 있는 게임들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러한 형태에서 진정한 예술의 창조를 위해 우리 자신의 최선의 생각을 내놓는 곳이다. 안타깝게도 사회적 게임들은 그래서 비사교적이다.
인간 조건의 기본적 모순 중의 하나는 우리는 동시에 개인적면과 사회적인 면이 있다는 것이다. 각 개인인 다른 사람을 이해하도록 해주는 표현과 언어로 인해 오로지 제한된 제한용량을 가졌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두되에 제한 내에서 각자 길을 잃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전형적으로 우리 자신의 필요와 욕구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종종 다른 사람에게 표현한다. 우리는 랜디언(Randian) 감각으로 우리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애쓰는 원자적 개인이다.
그리고 아직도 우리는 우리들의 부모님들로부터 제공받는 양육 없이는 성장할 수 없는 존재이다. 성적, 감정적 배우자를 찾기 위해 우리의 필요로 움직이며, 완전히 협력과 교환에 의지하는 문명을 세웠으며,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친구와의 교우 관계에서 종종 행복을 느끼고 있다.
우리는 사회에서 자유로우면서도 동시에 사회일원이며, 우리 주변에 대한 냉정한 관찰자이고, 어떠한 그룹의 멤버이며, 자유사상가들이고, 게릴라 혹은 경쟁자들, 협력자들이기도 하다.
우리는 개인적 자유와 공동체 또한 얻게 되었고, 우리는 단독이면서 동업조합(guild)에 가입할 수 있다. 특히, 미국인들은 개인적 자유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아직 어떤 성과를 거의 이루었다 할 수 있으나, 공통적 노력 안에서 우리를 따르는 사람들을 모집할 필요가 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살고, 죽고, 홀로남고, 우리의 뼈가 묻힌다 해도, 우리는 본연적으로 사회적 존재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종종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행복을 찾기도 한다. 우리의 배우자, 자녀들, 친구들, 그리고 넓게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추천을 받으며 행복을 찾는다. 그래서 최선을 다하고, 다른 사람들과 연결된 대부분의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게임 경험에도 영향을 미친다.
워크래프트 세계의 피에로(The fiero of a World of Warcraft)은 급속히 우리의 길드 (quildies)로 성공을 이루었다. 롤 플레이 게임(RPG)에서 게임플레이에 의해 웃음이 만들어진다. 다른 사람들과 기대하지 못했던 즉석연주(improvisation)을 통해 만들어진 스토리 게임이나 지프폼(jeepform), 유로게임에서 역동적인 힘이 있는 플레이와 도전, 심지어 친구들과 함께 전통적인 카드게임의 하면서 당신이 얻는 캐릭터 안으로 대화와 통찰을 얻게 된다. 이러한 경험들이 우리가 사람들로부터 받는 높은 평가 또는 존중이 된다.
심지어 혼자 pc게임을 하거나 콘솔 게임을 하더라도, 사람들과 게임플레이를 했던 경쟁적이었던 순간들을 회상하려고 노력한다면, 당신은 그러한 경험들을 찾게 될 것이다. 시스템을 정복하는 승리에 가까워졌다고 하기 보다는, 그러나, 그 통찰력 있는 순간에서 디자이너의 정신이 되기까지, 게임이 얻어 내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와, 게임의 주제에 대한 통찰력을 갖는데 가까이 가게 된 것이다.
그 게임에 대한 통찰이 생긴 순간, 당신이 마지막으로 이해하게 되었을 때, 다른 사람들의 창조물에 연결된 느낌, 어떠한 문화적 대화의 일부가 되었다는 느낌, 친구들과 대화하고 토론할 수 있는 그 어떤 것, 바로 그것이 최소한 중요하고 당신이 얻는 것이 된다.
이러한 경우에, 당신이 혼자 그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당신의 경험의 사회적 성질은 간접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 경험은 아주 큰 것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플레이어들과 게임을 만들어낸 창조자들 사이에서 지속적이고 사회적인 대화의 일부인 것이다.
만약 당신이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사람이라면, 당신은 게임을 하고 있겠는가?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 실재로 당신을 슬프게 만들지 않겠는가? 게임의 사회적 성질 - 그리고 게임은 사회적 연결로 깊게 들어가게 하고, 그것은 실로 예술의 한 형태이고 사람들로 하여금 거역할 수 없게 하는 어떤 영향력의 일부이다. "사회적 게임" 그렇다.
그것은 예술의 한 형태이며,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사회적 연결을 만들고 개척하도록 한다. 소위 사회 게임들은 너무 사회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처음 상업적으로 성공한 "사회적 게임들"은 사회적 네트워크 롤 플레이 게임이었다. 다양한 마피아와 뱀파이어를 주제로 하는 게임과 같은 전통적인 디지털 RPGS (롤플레이 게임)과 같은 게임들은 플레이어가 어떠한 임무를 완성하며 레벨을 올리는 주요 목적을 위해 한 가지 캐릭터를 조정하는 것이다.
※ 자세한 내용은 첨부(PDF)화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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