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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로서의 비디오 게임
마이클 세이먼 (Michaël Samyn) 가마수트라 등록일(2011. 02. 16)
http://www.gamasutra.com/view/feature/6287/video_games_as_media.php
[Tale of Tales(The Path)의 마이클 세이먼 씨가 개발자들이 현재 자신이 작업하고 있는 미디어의 구성요소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할 것을 촉구하면서 게임과 기존 미디어 간의 상호작용에 대해 살펴본다.]
프랭크 란츠(Frank Lantz) 교수는 한때 게임은 미디어가 아니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게임은 “어떤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아이디어를 전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이 말에 어느 정도는 공감하지만 이 한 마디를 덧붙이고 싶다. “비디오 게임은 게임이 아니다.”
다양한 게임의 종류
전통 게임(보드 게임, 카드 게임 및 어린이용 게임과 스포츠 및 댄싱 등)에 대해서는 란츠 교수의 말이 확실히 옳다.
게임은 인간이 놀이를 할 수 있는 일련의 조건을 수립한다. 게임에서 흘러나오는 의미나 메시지는 플레이어들에 의해 생성되는 것이지 게임의 디자인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비디오 게임은 오래 동안 전통 게임과 유사한 측면을 보여왔다. 그러나 항상 두드러진 차이점이 있었는데, 여러 비디오 게임은 그 시작부터 한 사람 혼자의 힘으로 플레이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전통 게임이 그러하듯, 비디오 게임 역시 파트너나 적수가 필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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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전통 게임 중 일부는 작자 미상인 경우가 많다.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소녀들. 사진: Jacques Lessard.)
비디오 게임은 또한 개인이나 팀에 의해 거의 독점적으로 디자인되어 왔다. 최고의 전통게임 중 여러 게임의 기원은 모호하고 복잡하며 거의 작자 미상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최소한 10 년 전에 이미 컴퓨터에 나타나는 비디오 게임의 모양은 상당히 정교하며 다른 어떤 게임에서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세련됐다. 많은 비디오 게임은 임의의 토큰을 통해 표현될 수 있다.
개발자들은 비디오 게임의 시각적 표현을 “아이 캔디(보기에만 좋은 사탕)” 또는 “스키닝(skinning)” 또는 대규모 시장에 어필하기 위해 필요한 악마라고 무시하는 경향이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표현을 진지하게 생각해본다면 어떨까? 우리가 비디오 게임을 가상 리얼리티의 시뮬레이션, 인간과 인간 행동의 표현, 이미지와 사운드, 텍스와 모션의 심미적 광경으로 살펴본다면 어떨까? 게임이 미디어와 아주 유사하게 보이기 시작하지 않을까?
다른 것과는 다른 미디어
물론, 비디오 게임은 이전의 다른 미디어와 확실히 다르다. 플레이어의 중심적인 역할과 상호작용 능력 및 표현을 변화시키는 능력은 우리가 미디어와 관련하여 사용하는 표현 또는 정보 예술에 대해 비디오 게임을 오히려 부적합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 능력을 제한이 아닌 일종의 기회로 본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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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 주변에 가상 세계 조성. (Ubisoft: Assassin's Creed)
왜 우리는 다른 미디어처럼 솔직한 스토리를 말하려 하는 것일까? 최근에 할리우드 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외관상으로는, 모든 스토리가 다 똑같다. 이렇게 같은 스토리를 우리가 다시 말해야 할까? 보다 예술적인 디렉터와 작가들이 자신의 스토리를 잘라내고 플롯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터무니없는 연결을 만들려는 무모한 시도는 어떤가? 참으로 애처롭다! 그러나 적어도 이들은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단지 해결책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 뿐.
그리고 우리 역시 그렇다.
아직까지.
새로운 미디어 경험
란츠 교수에 따르면 “미디어”라는 단어에는 “출처에서 목적지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 단어가 미디어를 살펴보는 데 있어 너무 유물론적이고 실용위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미디어는 단순히 메시지의 전달 경로가 아니다.
필자는 예술가들이 자신의 음악이나 그림,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 하는 명확한 메시지를 갖고 있는지에 상당한 의문을 품고 있다. 그 뿐 아니라 관객이 경험하는 미디어는 정보와는 거의 관련이 없다.
거대한 스크린에 투사되는 HD 액션 영화의 메시지에 누가 관심을 기울이나? 우리가 한 작곡가의 작품을 들을 때 그 작곡가의 목표에 관심을 기울이나? 미디어를 경험한다는 것은 나의 내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이지 출처나 메시지, 미디어와는 거의 관련이 없다.
그러나 란츠 교수의 말대로 미디어가 완고하고 직접적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그 방식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가? 컴퓨터 기술이 미치는 영향을 볼 때 미디어가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신기술로부터 완전히 새로운 미디어가 탄생할 가능성 또한 상당히 높다. 영화가 그림에서 탄생했고 출판(인쇄) 문자가 대리석 조각에서 탄생한 것처럼 다른 것들과는 완전히 다른 미디어가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다채로운 기술에서 새로운 미디어가 발전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다고 할 수 있다.
새 미디어는 새로운 속성과 새로운 파라미터를 가지고 있다. 란츠 교수의 용어를 빌리자면, 플레이어들에게서 새로운 태도를 요구하는 새 미디어는 미디어와 상호작용하고 미디어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새로운 방법이다.
Gridlock 분석
필자는 게임은 미디어가 아니다라는 란츠 교수의 말에 동의한다. 그리고 게임과 관련된 개발자들은 게임을 미디어와 연결시키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면 플레이 활동이 희석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뮬레이션과 스토리 측면에서 비디오 게임의 표현적 품질에 관심이 있는 개발자들이라면 란츠 교수의 충고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게임은 미디어가 아니지만 그럼에도 비디오 게임의 미디어 품질과 관련이 있다면, 전통적인 게임 관례를 벗어 던지는 편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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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세한 내용은 첨부(PDF)화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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