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wledge/abroad/indu/__icsFiles/artimage/2010/11/26/Gamasutra_1.jpg)
게임 설계자의 메모장: 행진하지 말고 춤을 추어라!
어니스트 애덤스
[설계 상담역인 어니스트 애덤스는 자신의 최신 칼럼에서 게임이 복잡하고 현실적이고 보기 흉한 데 집중하는 대신 게이머에게 즐거움을 주어야 하는 이유와 "즐거움"이 "재미"와 어떻게 뚜렷하게 다른 개념인지를 설명한다.]
무심코 하는 게임이 커다란 돈뭉치로 우리들을 괴롭히기 전인 몇 년 전에는 게임 설계주기에서 감정이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그것이 그 때의 유행어였다. 많은 사람들은 비디오게임이 전람되거나 도출되면 그들은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감정이 클수록 더 많은 청중을 끌어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니는 심지어 플레이스테이션2의 CPU를 감정 엔진이라고 불렀는데 지나치기는 했지만 마케팅 담당자들은 얼굴이 두껍다.
가장 단순한 게임은 감정적으로 민감하지가 않다. 추상적인 게임은 보통 단 2가지, 승리의 "환호"와 좌절 또는 실패의 "저주"를 만들어낸다. 때로는 불안, 권태, 안도 등 다른 "환호"도 있다. 더 표상적이고 덜 추상적인 게임은 게임의 등장인물, 상황과 줄거리를 통해 추가적인 감정 즉, 거대한 예술 작품에서는 심미적 즐거움을, 슬픈 마무리에서는 애절함을 불러일으킨다.
더욱이 멀티플레이어 게임은 그들이 실제 인물과 상호 작용 즉, 질투, 분노, 보호본능을 수반하기 때문에 더 많은 자극을 준다. 감정이 더 큰 매출을 위한 최상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더 이상 없지만 게임은 계속해서 더 풍요해지고 있다.
그러나 필자에게는 마치 생략된 그 무엇이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필자는 또 다른매체에서 사례를 들면서 그것을 설명할 예정이다.
1963년으로 돌아가서 릴런드 스탠포드 주니어 대학교의 행진 밴드(LSJUMB)는 대변혁을 경험했다. 학생들은 이를 대학교에서 인계 받았다.
그들은 종래의 수사 음악과 유사 군대 유니폼(행진 밴드는 나폴레옹 1세 전쟁의 마지막 남은 흔적이다)을 제거한 다음에 거대한 록앤롤 레퍼토리와 단연코 비획일적인 옷차림으로 대체했는데 그 중의 한 가지 요소는 손에 닿을 수 있는 가장 못생긴 넥타이다. 새로운 악기가 등장했는데 드럼 부분은 이제 정지 표지, 나무로 된 맥주통과 부엌 싱크대도 포함되어 있다.
LSJUMB가 정밀성이 부족하면 풍요로 보상이 된다. 그들은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도 집단으로 승무원의 안전 명령을 모방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들은 어디든지 달려가고 의외의 장소에서 연주하기 위해 경고 없이 나타난다.
그들이 스스로 선택한 대표적인 곡은 환희를 위해 베토벤의 송가의 일부분을 가미한 프리의 "지금은 괜찮아요" 인데 이는 대학 축구에서 가장 덜 공격적인 "시합" 노래임이 틀림없다. 이 밴드의 마스코트는 대학교의 로고에서 도입한 춤추는 소나무인데 그것은 다시 보통의 곰, 불독 및 트로이의 병사와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그들은 예의가 없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시끄러우며 특히 그들은 행진을 하지 않고 춤을 춘다.
![](/knowledge/abroad/indu/__icsFiles/artimage/2010/11/26/4_2.jpg)
스탠포드 밴드는 대개 음악과 즐거움이다. 비디오 게임에 음악이 많이 도입되지만 매우 즐거움을 주는 것은 없는 것 같다. 필자는 비디오 게임을 할 때 마지막으로 경험한 순수한 즐거움을 기억하지 못한다. 행진이 너무 많고 춤은 부족하다.
그러나 즐거움은 다른 이름으로 단지 재미가 아닌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즐거움은 순수한 즐거움이다. 재미는 더욱 복잡하다. 그것은 어둠과 위험을 포함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공포 영화관에 가는 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하지만 공포 영화는 즐거움을 이끌어내지는 않는다. 여흥은 훨씬 더 풍요로워서 결코 재미있을 필요가 없다. 쉰들러 리스트와 같은 딱딱한 영화나 로리타와 같은 딱딱한 책은 재미가 없고 훨씬 덜 즐겁지만 그러나 그들은 즐긴다. 비디오 게임은 중간에 속하는 것 같다.
무엇이 즐거움을 앗아 가는가? 거의 무엇이든지 정말 그것은 허약하다. 게임에서는 모든 이중성 거부 조건(Twinkie Denial
Condition)이 즐거움을 앗아갈 것이다(그리고 이중성 거부조건을 언급한 12월의 칼럼은 이중성을 정리하는 연례 행사다. 그래서 독자에게 그런 생각이 있다면 지워버리기 바란다. 행진은 분쇄하고 좌절시키고 반복시켜서 즐거움을 앗아간다. 그래서 추악. 잔학. 공포. 죽음 등 부정성을 야기한다. 이들 부정성은 우리가 하드코어 게임, 그리고 즐거움이 진정으로 세련되지 못한 감정일 뿐인 십대 소년들을 위해 만들어진 게임과 결부시키는 특질들이다.
독자는 재미로 충분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어렵다면 왜 즐거움을 찾기 위해 더욱 노력을 하는가? 첫 번째 답변은 정확하게는 그것이 어렵기 때문에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빠라빠 더 래퍼와 비브 리본 제작자인 마사야 마츠우라와 같은 게임설계자들에게 필자가 자주 사용하는 인용문 가운데 하나다. "이상하고 어려운 작업을 하라". 마츠우라는 그렇게 하지 않고서도 상당히 많은 돈을 모았다.
그러나 그것이 도전이라는 사실을 떠나서 매체의 전체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들은 눈여겨 보지 않는 분야를 탐색해야 한다.
필자는 몇 년 전에 게임세트워치(GameSetWatch)에 속하는 마이 퍼펙트 게임(My Perfect Game) 시리즈의 일부분을 기고했는데 거기서 필자는 즐거움을 주는 게임은 어떤 느낌이 드는지에 대해 기술했다. 이후에 제안한 설명 중의 하나는 그것이 헤로인과 일종의 환각제의 혼합물과 같았다.
필자는 그것을 찬사로 생각하는데 특히 그 기고는 사무엘 테일러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로부터 영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비디오 게임이 위험한 화학물질 없이도 즐거움을 창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스탠포드 밴드의 접근 방식에서 차용한 바와 같이 즐거움을 주는 게임을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계속 춤을 추어라. LSJUMB는 스탠포드 팀이 경기에 지고 있을 때에도 이기고 있을 때와 똑같은 열정으로 연주한다. 왜 그럴까? 왜냐하면 핵심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연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임에서 선수가 도전에 실패하더라도 게임 하는 즐거움을 파괴하도록 내버려두지 말라. 계속 게임을 하라. 보조와 리듬에 맞춰 게임을 계속하라.
2. 크고 낙천적인 콘텐츠를 많이 확보하라. 다수의 행진 밴드들은 그들이 자주 연주하는 곡 몇 가지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Stanford 밴드의 또 다른 특색은 1,000개가 넘는 라이브러리 중에서 항상 69곡의 노래 첩을 가지고 다니면서 "이제 괜찮아"를 제외하고는 결코 같은 노래를 두 번 연주하지 않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너무 많은 게임이 같은 게임 플레이를 여러 번 제공한다. 여러분이 즐거움을 주는 게임을 하고 싶다면 보고 따라 할 수 있도록 불가사의한 사물로 꽉 채우도록 하라. 이것은 필자가 게임세트워치 기고에서 보여주려고 애썼던 바로 그 것이었다. 다수의 개발 프로젝트는 여러가지 형태의 사악함을 창출하기 위해 연간 수십 명의 인력을 동원한다. 우리들이 동일한 노력을 즐거움을 도출하는데 쏟아 부으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knowledge/abroad/indu/__icsFiles/artimage/2010/11/26/5_1.jpg)
※ 자세한 내용은 첨부(PDF)화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인쇄](/images/common/btn/btn_print.gi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