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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가마수트라] 크런치에 대한 면밀한 고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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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게임 | 등록일 | 10.07.13 | ||||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 조회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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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런치에 대한 면밀한 고찰
Dave Prout
일과 생활의 충분한 균형
지금의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혹자들은 시기에 맞지 않는 글이라 할지도 모르는 이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필자는 이 사설의 내용이 삶의 질에 관한 것이 아님을 먼저 밝히고자 한다. 크런치(crunch)의 측면에 대한 글은 이미 많이 있다. 다채로운 법률의 역사, 불행한 배우자 및 PR 와해 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 대부분에서 이러한 관행은 더 작은 수준으로든 혹은 더 큰 수준으로든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이 사설의 목적에 따라 필자는 “크런치(crunch)”를 “의무적인 무보수 초과근무(compulsory unpaid overtime)”라 정의하겠다. 열정과 의욕으로 인해 스스로 바치는 시간은 의무 사항이 아니며, 우리가 사랑하는 게임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필자는 강제적으로 지속되는 초과근무(한 달이 넘게 주말도 반납한 채 주 80시간 이상 근무하는 것)에 의존하는 현상 그리고 이러한 관행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크런치를 통한 제작물은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있는 뿌리깊은 문제점을 가지는데, 이러한 문제는 우리 업계에 훨씬 더 큰 해를 입히며 미래까지 위태롭게 한다.
필자는 몇몇 사람들에게 연락해 근본 원인을 찾아내고, 우리의 게임을 좀 더 재미있게 만들고 초과 예산을 감축하며 미래를 발전시키고 전문 인력을 계속 보유하며 크런치 또한 줄임으로써 우리의 진로를 개선해 나갈 수 있게 하는 몇 가지 솔루션을 제시하고자 한다. - 이는 결국 장단기적으로 우리의 업계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곧 창조를 향한 열정의 문제이다..."
크런치 지지자들은 크런치를 종종 창조를 향한 열정 - 초기 게임 작품의 실현에 동반되는 필수적인 의무, 희생 - 이라고 하지만 필자는 이러한 생각에 점점 회의를 느낀다.
중요도가 높은 어떤 프로젝트도 이 세상의 실제 가치의 현실성을 왜곡하고 팀 멤버를 위한 성공의 정의를 비꼬거나 팀 리더십의 창조적 우수성을 과장할 수 있다. 모든 게임이 게임 체인저는 아닌 것이다.
크런치 또한 타이틀이 히트하는 것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현재, 크런치는 큰 성공을 거둔 스튜디오에서 분명히 사용되고 있지만, 3개월 제작 셔블웨어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크런치가 형편없는 게임을 쓸어버리는 데 약간의 도움은 될 수 있지만, 게임은 여전히 별로일 것이라고들 한다. 바꾸어 말하면, 크런치가 게임을 멋지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크런치는 앞으로도 분명 계속될 것이다. 도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필자는 많은 제작 라인의 개발자들이 몇 가지 핵심 지표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있지 않은지 의심해 본다. 제작 과정은 충분히 신중하지도, 충분히 빠르지도 않았다. 피쳐 크리프가 너무 많았고 초기 턴오버는 추진력을 좌절시켰으며 게임플레이가 검증되기까지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크런치는 우리의 가장 선한 취지에서 일어난다. 제작 아티스트뿐 아니라 프로젝트 관리자였던 나에게도 크런치가 분명히 일어났으며, 솔직히 말해 크런치 옵션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게임 개발에 가끔 있을 수 있는 예상치 못한 고통 속에서 평안을 느낄 수 있었다. 크리에이티브 리더는 “끝나야 끝나는 것이지”라고 말하고 윗선에서는 “이번 분기가 마지막 기회야”라고 말할 때, 크런치는 프로젝트 관리자에게 안도책이 되며 크런치가 없는 인생은 마치 프로젝트 실패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생각될 정도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관행이 일종의 은폐라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죽음의 행진은 좀처럼 예측할 수 없으며, 이 행진이 먹어 치우는 초과근무는 무한대이다. 대신, 크런치는 크런치 실행자들에 의해 정말 굉장한 우리 업계로 들어오기 위한 진입가격으로 알려진다. 일반적인 관행이든 그렇지 않든, 그 누구도 예산과 날짜 목표에 관해 투자자에게 정직한 보장을 할 수 없다. 그 보장이라는 것이 엄청나지만 알 수 없는 양의 무보수 노동에 의해 좌우된다면 말이다.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죽음의 행진을 하고 있는 스튜디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면, 프로젝트 리더가 해당 프로젝트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른다고 생각해도 된다고. 왜냐하면 그 리더는 지금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니까. 게임플레이 경험이 실연가능하고 굉장히 재미있게 완성되지 않기 때문에 지금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모르니까. 그리고 게임을 재미있게 만들지 못하면, 급하게 제작에 들어가게 되고 리더는 해당 프로젝트에 맹목적으로 투자하게 된다.
프로젝트에 대한 맹목적인 투자는 곧 서류상으로는 절대 성공한 적이 없는 그저 그런 기능을 개발하는 데 너무 많은 돈이 낭비된다는 뜻이다. 나쁜 아이디어가 들어가면, 비용 삭감이 어물쩍하게 처리되고 프로젝트 비용은 통제할 수 없이 부풀려진다.
결국, 게임도 의도된 대로 잘 만들어지지 않고 비용은 계획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들어가며 팀은 완전 지쳐버린다(어쩌면 실업자 신세가 되거나). 프로젝트 리더는 아마 업계를 떠나려고 고민할 것이며 투자자들은 프로젝트 성과에 큰 실망을 하고 다른 투자처를 찾아 헤맬 것이다.
게임과 스튜디오? 완전 망한다. 게임 업계에서 이런 프로젝트 치명적인 상처로 남는데, 그 영향은 과히 엄청나며 오래 지속된다.
이 모든 것의 근본 원인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어떤 팀이 흥미도 없고 재미도 없는 게임플레이 경험을 가지고 제작에 돌입한다면, 볼 것 없이 문제에 부딪힌다. 크런치는 성급한 제작의 근본 원인의 증상으로, 성급한 제작 문제를 해결하면 크런치에 대한 필요성은 엄청나게 줄어들 것이다...(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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