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내용
1. 연예 매니지먼트사의 종합 엔터테인먼트 추구 - 과거 가수, 코미디언 등 개별 영역을 중심으로 전문 영역에 특화 - 다미디어 현상, 연예인 수요의 급증과 전문 방송인의 프리랜서 선언 - 하나의 매니지먼트사가 연예인의 발굴, 교육, 육성까지 담당 1) 텔레비전 드라마 6대 메이저 ; 쟈니즈사무소, 켄온, 케이닷슈, 버닝프로덕션, 스타더스트프로모션, 오스카프로모션 - 텔레비전 드라마 편성의 대부분을 장악, 타 매니지먼트사의 진출 막아 2) 코미디 분야 ; 요시모토흥업, 일본 연예 매니지먼트사의 시초 - 소극장 설립 ; 신인 발굴과 공연사업에 이용 - 요시모토종합예술학교 설립 ; 1년간 연예인으로서 필요한 연기, 노래, 춤 등 기초교육 실시. 이후 발표회나 오디션 기회 제공 3) 음악 분야 ;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2. 일본 연예 엔터테인먼트사의 특성 - 권력집중형 매니지먼트사, 방송국 이상의 권력 행사 - 기업형 매니지먼트사, 종합 엔터테인먼트사로 발전 - 통합형 비즈니스모델 구축 - 육성형 매니지먼트사, 자체 인재 발굴, 육성 시스템 보유, 교효율 교육환경 제공
흔히 연예 사무소나 연예 프로덕션으로 불리는 일본 연예 매니지먼트사는 본래의 기능인 소속 연예인의 매니지먼트 업무 외에도 프로그램 제작이나, 프로그램과 관련된 권리처리, 부동산 사업, 극장 운영, 관련 교육기관의 운영 등 다각적인 사업 확장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 최대의 연예 매니지먼트사로 알려진 요지모토흥업(吉本興業)은 역으로 방송국에 자본 투자를 하거나 커뮤니티 FM 방송국 경영, 식당 경영 등 업종을 불문하고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주로 음악 분야의 매니지먼트 사업을 해 온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는 음악 소프트를 비롯해 영화, 게임 등 폭넓은 사업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디지털 기술이 방송에 도입되고 다채널·다미디어화가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그 존재 가치를 높여온 일본의 연예 매니지먼트사들은 다양한 업종으로 영역을 확대하여 종합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주체로 성장·발전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미디어가 다양화되고 발달함에 따라 연예 매니지먼트사의 사업도 다양화되고 있는 일본의 대형 연예 매니지먼트사의 현황과 문제점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그러나 작고 큰 무수히 많은 연예 매니지먼트사가 존재하고 있는 일본에서 모든 연예 매니지먼트사를 다루기는 어렵다. 이에 드라마와 오와라이(お笑い: 개그), 음악 분야로 나눠서 종합 엔터테인먼트화되고 있는 대표적인 매니지먼트사를 대상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연예 매니지먼트 사업의 태동
일본에서 연예 매니지먼트 사업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이른바 라디오나 텔레비전 같은 매스미디어가 일본 사회에 보편화되기 훨씬 전의 일이다. 물론 분명한 기준이 없는 관계로 제2차 세계대전 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으나 그 시작의 기초는 1910년대에 세워졌다고 볼 수 있다. 요시모토 키치베(吉本 吉兵衛)·요시모토 세이(吉本 せい) 부부가 1912년 4월 1일 요시모토흥업의 기반이 되는 ‘제2문예관(第二文芸館)’을 오사카(大阪)에 설립했다. 이곳은 만담이나 야담, 요술, 노래 등의 대중 연예를 흥행하는 연예장으로 주로 만담을 중심으로 공연이 이루어졌다. 연예장 경영에 성공한 요시모토 부부는 연예장을 체인화하면서 연예장 사업을 확장시켰다. 당시 대부분의 인기 만담가는 요시모토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 뒤 1929년의 세계대공황과 제2차 세계 대전의 영향으로 요시모토흥업을 비롯한 일본의 연예장 사업계는 커다란 타격을 받았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일어난 연예 붐은 요시모토흥업을 비롯해 새로운 관련 사업자들에게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요시모토흥업은 연예 사업의 재기를 위하여 관련 사업인 영화관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이에 성공을 하면서 다시 경영 기반의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한편, 요시모토흥업과 함께 쇼치쿠연예(松竹演芸)도 오와라이 연예를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요시모토흥업은 1935년 당시로서는 흔하지 않은 문예부라는 부서를 사내에 두고 대본 작가를 조직화하여 관리하기 시작했다. 이 문예부를 통해 만담의 소재가 제공되었다. 1937년에는 ‘만담학교’를 설립하면서 신인 육성을 위한 조직적인 노력에도 힘을 쏟았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부터는 패전으로 일본에 주둔하게 된 미군을 중심으로 일본의 연예 사업이 확장하기 시작한다. 미군 기지를 중심으로 공연 문화가 확대되기 시작했고, 이 무대를 기반으로 일본의 스타 연예인들이 배출되기 시작했다. 현재 일본의 대표적인 대형 매니지먼트사도 이 시기에 많이 설립되었다. 1948년에는 요시모토흥업이 주식회사화되었으며, 1955년에는 일본 연예 매니지먼트 사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와타나베프로덕션(渡辺プロダクション)이 음악 예능을 중심으로 설립되었다. 와타나베프로덕션에 소속된 연예인들이 업계를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와타나베프로덕션의 영향력과 사업 영역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텔레비전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부터는 그 영향력이 더욱 강화·확대되기 시작했다. 당시 와타나베프로덕션 산하에는 10개의 주식회사가 있었으며, 1개의 학교법인도 보유하고 있었다. 또한 240명의 계약 연예인을 확보하면서 거대 조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연예 매니지먼트사의 거대한 영향력은 텔레비전계를 비롯해 영화계와 음악계로 확대되기 시작했으며, 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요시모토흥업이나 니시노발레단(西野バレエ団)과 같이 칸사이(関西) 지방을 중심으로 그 영향력의 확대가 두드러졌으나 민간방송국의 다양화와 도쿄 키스테이션을 중심으로 네트워크화가 형성되면서 도쿄로 사업을 확장하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연예 매니지먼트사의 현황
일본의 연예 매니지먼트사들은 주로 연예인의 주력 업종을 중심으로 발전되어 왔다. 크게 배우를 비롯해 가수, 코미디언 등 개별 영역을 중심으로 각사가 전문 영역에 특화된 사업자가 많았다. 이러한 현상은 다(多)미디어 현상의 영향으로 연예인 수요의 급증과 아나운서와 같은 특정한 전문 방송인까지 프리랜서를 선언하면서 연예 매니지먼트사에 소속되는 경우가 급증하면서 연예 매니지먼트사들이 종합 엔터테인먼트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확대·발전되고 있다. 최근에는 연예 매니지먼트 사업 초기의 요시모토흥업이나 와타나베프로덕션과 같이 연예인의 발굴과 교육, 육성까지 하나의 매니지먼트사에서 이루어지는 경향이 늘어가고 있다.
사례 ① 텔레비전(드라마): 6대 메이저 연예 매니지먼트사 이미 유명 연예 매니지먼트사를 제외하고는 드라마를 제작할 수 없는 것이 현실화되었다. 드라마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배우를 확보하고 있는 연예 매니지먼트사 중 6대 메이저로 불리는 곳은 쟈니즈(ジャニーズ) 사무소, 켄온(研音), 케이닷슈(ケイダッシュ), 버닝프로덕션(バーニングプロダクション), 스타더스트프로모션(スターダストプロモーション), 오스카프로모션(オスカープロモーション)이다. 이러한 대형 연예 매니지먼트사는 대형 광고대리점이 각 방송국의 황금시간대 편성을 사들여서 스폰서에 다시 팔아넘기고 있는 것처럼 텔레비전 드라마 편성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다른 매니지먼트사가 들어오기 어렵게 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른바 드라마계의 덴츠(電通)나 하쿠호도(博報堂)와 같은 존재다. 일본의 연예계는 1995년에 전환기를 맞이했다. 그 이유는 쟈니즈 사무소의 그해 법인신고소득이 오와라이를 중심으로 하는 당시 업계의 선두를 달리던 요시모토흥업을 넘어서서 업계의 수위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쟈니즈 사무소는 6대 메이저 중에서도 최강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SMAP나 TOKIO, V6, Kinki kids 등의 유명 그룹이 소속되어 있다. 쟈니즈 사무소는 니혼테레비의 토요일 저녁 9s 드라마 편성의 많은 부분을 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개편 시기에도 이러한 상황에는 커다란 변화가 없다. 또한 드라마에 삽입되는 테마송 등도 쟈니즈 사무소가 원하는 곡이 채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쟈니즈 사무소와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 곳이 켄온이다. 주로 니혼테레비 계열의 드라마에 많이 관여하고 있다. 토요일 9시대 드라마에서는 쟈니즈 사무소와 상호 교대로 주연 배우를 내보내고 있다. 아마미 유키(天海 祐希)를 비롯해 이토 미사키(伊東 美咲), 칸노 미호(菅野 美穂), 타케노우치 유타카(竹野内 豊) 등 인기 남녀 배우를 다수 확보하고 있다. 케이닷슈는 세계적으로 지명도가 높은 와타나베 켄(渡辺 謙)이나 많은 여성 팬을 확보하고 있는 사카구치 켄지(坂口 憲二), 타카하시 카츠노리(高橋 克典) 등이 소속되어 있다. 테레비아사히(テレビ朝日)에서 방송하는 타카하시 카츠노리 주연의 <특명계장 타다노 히토시(特命係長只野仁)> 등과 같은 히트작도 있지만 케이닷슈는 특히 영화계에서의 영향력이 매우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버닝프로덕션은 텔레비전 방송계 전반에 강점을 나타내고 있다. 경쟁 매니지먼트사보다는 소속 연예인이 적은 편이나 확실하고 충실한 매니지먼트를 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기라성 같은 계열 예능 프로덕션을 뒤에서 조정하는 힘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 히로미(郷 ひろみ), 우치다 유키(内田 有紀), 이나모리 이즈미(稲森 いずみ) 등이 소속되어 있다. 한편, 토키와 타카코(常磐 貴子)나 사와지리 에리카(沢尻 エリカ), 린카(梨花) 등의 인기배우가 소속되어 있는 스타더스트프로모션은 주로 TBS와의 관계가 다른 매니지먼트사보다 두텁다. 또한 오스카프로모션은 다른 경쟁 방송국에 비해 드라마 부분이 취약했던 테레비아사히와 팀이 되어 많은 드라마를 성공시켰다. 요네쿠라 료코(米倉 涼子)와 우에토 아야(上戸 彩), 키쿠카와 레이(菊川 怜), 타마루 마키(田丸 麻紀) 등이 소속되어 있다. <검은 가축의 수첩(黒革の手帳)>이나 <나쁜 녀석들(わるいやつら)> 등이 테레비아사히와 작업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사례 ② 텔레비전(오와라이): 요시모토흥업 전술한 바와 같이 요시모토흥업은 일본 연예 매니지먼트사의 시초라고도 볼 수 있다. 주로 오와라이 계열을 중심으로 매니지먼트 사업을 발전시켜 왔으나 그 경영 수단과 신인 발굴 방식은 경쟁 연예 매니지먼트사들에 많은 영향을 끼쳐왔다. 요시모토흥업은 1980년 후지테레비(フジテレビ)의 의 붐으로 커다란 성장을 이룬다. 그 뒤 붐이 서서히 식기 시작하면서 요시모토흥업의 경영 시모도 약간 주춤하기는 하나 아카시야 산마(明石家 さんま)를 비롯해 시마다 신스케(島田 紳助), 다운타운(ダウンタウン), 나인티나인(ナインティナイン) 등 인기 스타를 계속 배출하면서 정상의 궤도를 되찾았다. 1994년 3월에는 <긴자7초메극장(銀座7丁目劇場)>을, 그리고 1995년 3월에는<시부야공원길극장(渋谷公園通り劇場)>을 오픈하면서 신인 발굴과 공연 사업에 이용할 수 있는 소극장을 설립했다. 140석과 230석밖에 없는 작은 극장이지만 텔레비전 방송 스튜디오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모든 장비를 갖춘 극장이다. 이 극장에서는 일반인을 대상으로도 공연을 하면서 프로그램을 수록·방송하고 있다. 이러한 극장 사업은 요시모토흥업의 전체 매출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등의 미디어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거나 소속 연예인들의 방송 출연에 의한 수입이 요시모토흥업 전체 매출의 70%를 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외 나머지 30%는 극장 사업이나 부동산 사업 등으로 인한 수입이다. 또한 요시모토흥업은 신인 발굴을 위한 또 하나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바로 1982년에 오사카에 설립된 ‘요시모토종합예술학원(吉本総合芸術学院, NSC)’이다. NSC는 1년 동안 연예인으로서 필요한 연기에서부터 노래, 춤 등 다양한 기초 교육을 실시한다. 기초 교육이 끝나면 발표회나 오디션의 기회가 주어진다. 현재에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다운타운은 NSC의 1기생이었다. 지금은 만담 이외에도 교양 프로그램의 사회를 맡고 있는 시마다 신스케 등의 영향으로 텔레비전 뉴스 캐스터 등 폭넓은 연예 지망생들도 NSC에 입학하고 있는 상황이다. 1995년에는 도쿄에도 학원이 설립되었다. 그러나 현재 약 800명의 연예인(사원은 286명)이 소속되어 있는 요시모토흥업은 실제로 소속 계약을 해서 고정적으로 계약금이 지불되는 연예인은 소수에 불과하다고 한다. 최고의 금액을 받고 있는 아카시야 산마나 다운타운의 마츠모토 히토시(松本 人志), 하마다 마사토시(浜田 雅功) 등은 약 2억∼4억 엔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최저 금액의 경우는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한다. 그만큼 요시모토흥업의 인기 연예인들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현재 약 20편에 가까운 프로그램에 요시모토흥업의 인기 연예인들이 레귤러로 출연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아카시야 산마나 시마다 신스케, 다운타운 등은 복수의 인기 프로그램에서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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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요시모토흥업은 본업인 연예 매니지먼트 사업 이외에도 다각적인 사업 확장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아무리 유명한 연예인과 프로듀서를 확보하고 있어도 항상 리스크가 큰 프로그램 제작 이외에도 매출을 보충해 줄 수 있는 타 업종으로의 사업 확장에 여러모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극장 운영과 이벤트 사업, 광고 사업, 스포츠 매니지먼트, 부동산 사업, 쇼 비즈니스, 그리고 기타 상업 시설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사업도 하고 있다. 또한 요시모토흥업은 연예인 확보와 콘텐츠 제작, 유통에 이르기까지 관련 그룹을 수직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여 운영 중에 있다.
사례 ③ 음악: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Sony Music Entertainment) 1999년 주식회사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SME)는 일본 음반 업계의 수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시기는 일본 음반 업계의 전체적인 불황이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SME는 1999년 3월 결산기에 연결 결산에서는 매출액 22억 6,700억 엔(전년도에 비해 약간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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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이익이 359억 엔(전년도비 84% 증가)이었지만 단독 결산에서는 매출액 10억 8,200억 엔(전년도비 8% 감소), 영업손실 3억 엔(전년 109억 엔 영업이익), 경영이익은 22억 엔으로 떨어졌다. 대형 음악 매니지먼트사 중에서 유일하게 호조를 보인 곳은 신흥 avex(매출액 509억 엔, 경영이익 55억 엔) 정도였다. 2009년 3월기 소니 뮤직 그룹의 연결 매출액은 1,669억 5,300만 엔으로 집계되고 있다. 음악 CD의 매출이 감소하기 시작한 것은 핸드폰이나 게임, 온라인상의 불법 다운로드 등의 영향이 큰 것으로 SME는 분석하고 있었다. 한편, SME는 음반 사업을 주로 하면서 대규모의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발전·성장했지만 조직 자체는 소집단화·분산화되어 있다. 작은 단위로 서로 좋은 의미에서 경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직의 기본 방침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이에 조직이 커지면 분할하여 별도의 조직으로 독립시키거나 다른 조직과 합병하여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다. 소니 레코드에서 분리된 EPIC레코드가 그러한 경우에 해당된다. 2001년 1월에는 레코드 제작의 일부를 주식회사 Defstar레코드로서 분리했다. 이와 같이 소집단화와 분산화를 반복하면서 시대의 변화와 기술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주요 연결 대상 회사를 제1·제2·제3그룹을 비롯해 비주얼 비즈니스 그룹, 미디어 비즈니스 그룹,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 출판 비즈니스 그룹, 마케팅·디스트리뷰션 비즈니스 그룹 등으로 나눠서 운영하고 있다. 이와 같이 SME는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의 다양한 영역으로 사업적 가능성을 확대하여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확대·전개되고 있다. 사원들에게도 한 곳에서 한 가지 일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기회와 장이 각 사업장에서 주어진다. 이를 통해 전체적인 기업적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다양한 분야로의 사업 확장은 요시모토흥업의 수직 통합적인 비즈니스 모델과 같은 통합적인 비즈니스의 전개가 가능하다. 출판하는 잡지의 소재가 영화화되고, 그 영화의 주제가를 SME 관련 회사에서 육성한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그 노래를 CD나 인터넷 다운로드 비즈니스로 전개시키며, 게임으로도 만들 수 있다. 또한 관련 캐릭터 상품을 만들고 그것을 소니의 CM에서도 노출시킬 수 있다. 이와 같이 상승효과를 염두에 둔 비즈니스의 전개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SME는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원래 음반 업계에서는 아티스트를 육성하는 것은 관련 프로덕션의 일이었다. 음반 회사는 프로덕션으로부터 아티스트를 공급받아서 음반을 제작하는 분업 체계 속에서 비즈니스가 이루어져 왔다. SME는 1978년에 전국 규모의 신인 발굴을 위해서 오디션 Sound Development (SD) 활동을 시작했다. 신인 발굴 제1호가 일본 최고의 여자 싱어였던 마츠다 세이코(松田 聖子)다. SME는 신인 발굴을 위해 시대의 변화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오디션을 실시해 왔다. 음악을 하는 여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걸 이벤트나 보컬 발굴 이벤트, 댄스에 소질이 있는 신인을 발굴하는 이벤트 등 다양한 분야의 신인들을 발굴하기 위해 매년 새로운 테마로 오디션을 실시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발굴된 신인들은 그룹 내의 프로덕션을 통해 기초적인 교육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아티스트로서의 실력을 쌓게 되는 것이다. 매년 다르기는 하나 보통 신인 아티스트를 통해서 거두는 수입은 매상의 8∼10% 정도라고 한다.
일본 연예 매니지먼트사의 특성과 악영향
일본의 연예 매니지먼트사의 특성에 대해서는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권력집중형 매니지먼트사라는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형 연예 매니지먼트사들은 영향력이 큰 인기 연예인들을 다수 확보하고 있는 관계로 방송국 이상의 권력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매니지먼트사로 권력이 집중되고 있다. 소속 연예인의 출연료로부터 시작해서 권리문제, 심지어 연예인 개인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일에 대해 연예 매니지먼트사가 관리하고 처리하고 있다. 둘째로는 기업형 매니지먼트사를 들 수 있다. 일본의 연예 매니지먼트사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확대·발전되어 오는 과정에서 기업형 매니지먼트사로 자리를 잡았다. 단순한 소속 연예인의 매니지먼트만을 주로 했던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에서 벗어나 다양한 관련 사업자들과의 적극적인 협력을 도모하면서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문화를 소재로 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주목받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형 매니지먼트사는 빠른 대응과 적응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인해 다양한 콘텐츠의 활용이 가능해지면서 통신회사와 제휴를 하고 있으며, 신인을 양성하여 제작에서 유통까지 통합형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산하에 관련 회사들을 설립하고 있다. 또한 주식회사로의 기업 전략도 전개되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인재 육성형 매니지먼트사다.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대부분의 대형 연예 매니지먼트사는 자사에서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시스템은 기업형으로 변화·발전되고 있는 상황에서 산하 프로덕션 등을 충분히 이용하는 효율성이 높은 교육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이에 연예 매니지먼트사의 교육기관에 들어가는 것도 무척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이들이 전부 스타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대형 연예 매니지먼트사들은 다수의 연예인을 확보하고는 있지만 간판스타가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다. 계약금나 월급(매니지먼트사마다 다르다) 등의 수입이 억(엔)대 이상인 스타들과는 달리 적은 임금으로 성과를 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주로 성과급제인 요시모토흥업과 같은 경우는 몇천 엔대의 출연료를 받는 만담가들도 있다. 이들에게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정신을 심어주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본의 연예 매니지먼트사의 효율성과 대형화의 이면에는 미디어 업계에 미치는 악영향도 존재하고 있다. 특히 권력이 집중되기 시작하면서 지나치리만큼 업계를 지배하려 한다는 지적이 많다. 자사 소속의 연예인을 대거 출연시킨다거나 간판스타 연예인의 출연 조건으로 기타 배역으로 신인의 출연을 부탁하는 식이다. 타협이 되지 않거나 다른 불협화음이 있을 경우에는 연예인의 출연을 금지시키거나 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대형 연예 매니지먼트사의 고위 간부가 저지른 불미스러운 일은 그냥 무관심 속에 흘러가는 경우도 있다. 저널리즘의 기능도 겸하고 있는 미디어라고 할지라도 기타 다른 콘텐츠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함부로 보도를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철저한 비밀주의를 고수하는 매니지먼트사도 있다. 쟈니즈 사무소와 같은 경우가 그렇다. 간부들은 철저한 비밀주의에 따라 미디어의 인터뷰 요청에도 응하지 않는다. 물론 대형 미디어들도 쟈니즈 사무소의 정보를 함부로 흘리지 않는다. 이와 같이 일본의 대형 매니지먼트사들이 일본 미디어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커져만 가고 있는 상황이다. 몇몇 대형 연예 매니지먼트사는 방송국과 대등한, 아니 방송국을 리드하는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에 프로그램에도 좋지 않은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지적도 있으나, 잠재적인 시청률을 보장하고 있는 스타급의 인기 연예인들을 다수 확보하고 있는 대형 연예 매니지먼트사는 이미 프로그램 제작에 있어 우월적인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지위는 일본 최대의 광고 대행사인 덴츠와도 비교될 정도이니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일본의 연예 매니지먼트사가 다른 업종의 사업자와 제휴 등을 통해서 기업형으로 변하고 있으며, 주식회사화되면서 조금씩 경영이 투명해지고 새로운 사업으로 눈을 돌리면서 연예 매니지먼트 사업에 있어서도 기업가 정신이 서서히 자리 잡고 있다. 기업이 투명해진다는 것은 여러 문제나 비리로부터도 투명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영세 매니지먼트사들이 생존을 위한 전략으로 이전의 잘못된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휘둘릴 우려가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앞으로 이들의 행보가 주목된다.
● 참조 : - 마루야마 노보루, 芸能プロダクションとテレビ・ポリティックス, <メディアの権力性>, 2005년. - 시마노 이사오, ザ・芸能プロ-ウラと表-, 1981년. - 시마모토 히로시, テレビ界をダメにする特定芸能プロとの癒着, , 2007년 5월호. - 야마네 타카시, コンテンツ・プロデュース機能の基盤強化に関する基礎研究-マネジメント-, 2004년. - 요시모토흥업주식회사경영・재무전략부, 吉本興業グループのビジネスモデル, 2009년 2월. - 요시모토흥업주식회사, 吉本興業株式会社2009年3月期決算説明会, 2009년 5월 29일. - 요코자와 타케시, 企業化する芸能プロ 独走!吉本興業の目指すもの, <先見経済>, 1998년 1월 5일. - 코스가 히로시, 芸能をビッグビジネスに変えた男「ジャニー喜多川」の戦略と戦術, 2007년. - 타케나카 츠토무, タレント帝国-芸能プロの内幕-, 1968년. - 각 연예 매니지먼트사의 홈페이지. - David Mcneill, ジャニーズという名の ‘神’の国-芸能界‘沈黙のフィクサー’が支配する日本のショービジネス界の光と影-, Newsweek, 2005년 6월 8일. - GEIDANKYO(芸団協), 芸能白書 2001,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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