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007년 3월 할리우드 콘텐츠 제공업자들은 디지털 레코딩 서비스를 시행해 온 케이블비전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와 관련하여 뉴욕주의 남부지법으로부터 승소 판결을 받아 냈었다. 케이블비전은 가입자들에게 일종의 '원거리 디지털 콘텐츠 저장 시스템(Remote-Storage DVR system, RS-DVR )'을 제공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티보(TiVo)와 같은 디지털 레코딩 서비스는 가입자의 가정 내에 셋톱박스를 설치하고 이를 통해 가입자가 케이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녹화, 저장, 재생할 수 있도 록하는 서비스이지만, 케이블비전의 서비스는 가정 내의 셋톱박스 대신 케이블비전사 내에 디지털 콘텐츠 저장기기를 설치하고 이로부터 가입자가 가정 내에서 자신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녹화, 저장, 재생하는 서비스이다.
이 과정에서 케이블비전의 서비스는 어떤 "가입자에 의해 선택된"(바로 "누가" 디지털 콘텐츠를 선택, 녹화, 재생, 전송을 요청하는지가 이후에서 토론되는 것처럼 이번 연방법원의 판결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디지털 콘텐츠로부터 두 가지 종류의 스트리밍을 만들게 된다. 가입자가 실시간으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경우에 만들어지는 스트리밍이 하나이고, 또 다른 하나가 선택된 콘텐츠의 프로그래밍 데이터를 버퍼링하고 이를 저장하는 스트리밍이다.
당시 법원은 케이블비전의 서비스 이용자가 프로그램을 저장하고 재생할 때, 케이블비전의 원거리 디지털 콘텐츠 저장 시스템이 저작권 소유자의 배타적인 콘텐츠 복제, 재생, 전송에 관한 권한을 침해한다는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손을 들어 주었다. 그 이유는 첫째 '0.1초'의 버퍼링의 과정에서 디지털 콘텐츠의 복제물들이 만들어진다는 점, 둘째, 위에서 말한 두 번째 스트리밍을 통해 저장된 콘텐츠의 데이터가 저작권 소유자의 재생 권한(reproduction right)을 침해한다는 점, 셋째, 가입자가 케이블비전의 시스템 위에서 녹화, 재생, 전송을 요청한 콘텐츠의 전송이 콘텐츠의 공공 상연(public performance)에 관한 저작권자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뉴욕 남부지법의 결정을 연방항소법원이 뒤집었다. 바로 위에서 논의한 세 가지 주요한 저작권 침해 사례들에 관한 연방항소법원의 결정을 차례대로 살펴보면, 첫째, 연방항소법원은 소위 "버퍼 복제물"은 저작권 침해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 이유는 버퍼 복제물은 0.1초라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복제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저작권 침해를 구성할 만한 복제물의 요건을 갖추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현행 미국의 저작권법이 정의하고 있는 "복제"에 대한 정의에 기반한 판단이다.
즉, "'복제'란 단순 기록 이외의 물질적 대상들로서, 그 복제물들 내에는 어떤 저작물이 현재 알려져 있는 혹은 이후 지속적으로 개발될 방법에 의해 '고정'되어 있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그 해당 복제물에서는 원저작물이 인지되고, 재생되고, 어떤 다른 방식에서 운용되는 것을 나타낸다…"(17 U.S.C. 101). 그렇다면 '복제물이 고정(fixed)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역시 현행 저작권법에 따르면, 그것은 '실체가 있는 매체로 구현'되어 '일시적인 시간 이상 인지, 재생, 운용된다'는 것을 말한다.
지난해 뉴욕 남부지법의 "버퍼에 의한 저작물의 복제 역시 복제"라는 판결은 1993년 이루어진 판례로부터 나왔다. 당시 9차 순회항소법원은 컴퓨터의 램(RAM)에 운용되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은 복제물이라고 판결을 하였다. 하지만 이와 달리 이번 연방항소법원은 버퍼 복제물이 작동하는 원리가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그것과 반드시 같지 않다고 보면서, 모든 디지털 데이터는 근본적으로 복제와 관련하여서는 버퍼의 과정을 거치고 그로부터 복제물이 전송된다는 점을 고려하였다.
유투브와 같은 곳에서의 동영상 재생 과정을 생각해 보면 이러한 과정에 대한 이해는 보다 쉬울 것이다. 우리가 인터넷 상에서 어떤 동영상을 볼 때, 이는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스트리밍을 만드는 것이며, 이는 궁극적으로 복제물을 만드는 행위이다. 하지만 해당 콘텐츠의 유통이 저작권법에 위반되지 않는 한, 이것 자체가 저작권 침해 사례를 구성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셔윈 사이에 따르면,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의 주장대로라면, 케이블비전은 자사가 이미 보유하고 있는 디지털 콘텐츠의 방송에 대한 라이선스뿐만 아니라 스트리밍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버퍼 복제물들에 대한 라이선스도 구입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 저작권자의 '재생권한' 침해에 대한 연방항소법원의 판결을 보자. 이는 위에서 언급한 바로 '누가 저작권 침해에 대한 책임을 갖는 주체인가'하는 질문과 연관된다. 지난 1984년 소위 <소니-베타맥스 판결>에서 연방법원은 소니에게 가정 내에서 VCR을 통해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녹화되어 공유까지 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저작권 침해 가능성을 통제할 수 있는 것과 관련하여 2차적인 책임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런데 이번 소송에서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케이블비전에게 이와 같은 2차적인 책임이 아니라 1차적인 책임, 즉 케이블비전 스스로가 버퍼링 복제물을 만들고 전송함으로써 저작권 침해의 1차적인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번 연방항소법원은 케이블비전의 디지털 콘텐츠 재생 서비스와 일반적인 책 복사 서비스 사업을 견주었다. 가령 어떤 대학 교재의 일부를 복사하는 경우 해당 행위자가 복사물의 범위와 그 복사 행위를 결정하는 것처럼, 케이블비전의 서비스에서도 디지털 콘텐츠의 녹화, 재생, 전송의 행위자는 케이블비전이 아닌 서비스 가입자이기 때문에, 케이블비전에게 저작권 침해와 관련한 1차적인 책임이 있다는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연방항소법원은 판결하였다.
이 판결은 1995년 로부터 연유한다. 당시 지방법원은 저작물의 재생과 관련한 침해 행위는 그 행위의 '의지(volition)'가 누구로부터 비롯되는지와 연관되어야 한다고 판결하였다. 법원은 Netcom의 ISPs가 저작물을 자동으로 재생하는 시스템에 있었기 때문에 원고인 의 저작물 복제권한의 침해에 대한 주장을 기각하였다. 이번 연방항소법원이 인용한 또 다른 판례는 2004년 4차 순회법원이 Netcom의 판례를 언급하며 내린 판결이다. 여기서 법원은 저작권 침해행위는 '충분히 밀접하고 인과적인 연결고리(a nexus sufficiently close and causal to the illegal copying)'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판결하였다.
셋째, '공공 상연'과 관련하여 이번 연방항소법원은 재생되어 전송되는 디지털 콘텐츠가 어떻게 공공 상연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먼저 살핀다. 즉, 사이가 정리하는 것처럼, 문제는 '상연'이 '공공'에게 이루어지는지의 문제이다. 케이블비전의 원거리 디지털 콘텐츠 서비스가 콘텐츠를 가입자들에게 전송하는 것은 공공 상연의 범주에 들어간다. 하지만 초점은 케이블비전이 어떤 서비스 가입자가 녹화하여 전송을 요청한 콘텐츠는 다른 사람이 아닌 '같은 사람', 즉 어떤 프로그램의 첫 방송을 본 후 이를 녹화하여 재생하는 사람은 다른 3자가 아니라 같은 서비스 가입자이기 때문에, '녹화와 재생의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전송'은 공공 상연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케이블비전의 원거리 디지털 콘텐츠 녹화 서비스에 대한 저적권 침해 소송에서 연방항소법원의 이번 판결은 디지털 콘텐츠의 이용과 관련하여 상당한 사회적 의미와 산업적 파급력을 가져올 수 있다. 가장 먼저 이번 소송은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디지털 콘텐츠의 본성뿐만 아니라 나아가 문화가 구성되는 방식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디지털 콘텐츠가 사회적으로 혁신적인 문화이용 매체로 그 힘을 발휘하는 주된 이유는 복제의 무한한 가능성이다. 물론 이 때문에 어떤 심각한 사회적 문제들이 나오기도 한다. 저작권 침해가 그 가장 큰 한 부분을 구성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하지만 문제는 저작권 침해를 구성할 만한 행위의 범위를 어떻게 누가 규정하는 것이다. 0.1초의 버퍼링에 의한 순간적인 복제물의 구성을 저작권 침해로 간주하고 이를 산업의 지배력을 확장하고 서비스 가입자들에 대한 콘텐츠 통제방식으로 운용하는 것은 법원의 판결은 차치하더라도 상식적인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기 어렵다.
스트리밍에 의한 디지털 콘텐츠의 유통이 저작권을 보호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면서(얼마 전 미국의 방송사인 에이비씨도 한국의 방송국들처럼 스트리밍을 통한 지난 방송 보기 서비스를 개시하였다는 점을 상기해 보자), 미국 저작권 사무소는 '디지털 음성기록 전달(Digital Phonorecord Delivery)'을 음악 CD 한 장을 판매하는 것과 같은 행위로 정의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번 연방항소법원의 판결이 미국 디지털 콘텐츠 시장과 산업에 미칠 영향을 또 한 번 예측할 수 있는 대목이 바로 여기이기도 하다. 스트리밍 방식의 시장화가 디지털 콘텐츠의 쉽고 간편한 이용방식으로 만들어지기보다 이윤 창출의 발판으로 인식되는 것은 상당히 서글픈 현실이 될 것이다.
디지털 문화가 가져올 더 많은 혁신적인 기술적, 사회적 가능성은 서비스의 제공자의 이해와 관리를 위해 존재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능성을 만들 많은 디지털 콘텐츠의 이용자들에게 우선 인식되어야 한다. 얼마 전 미국 연방통신위원회가 네트워크 관리라는 명목 아래 케이블 거대기업인 컴캐스트가 행한 특정 인터넷 흐름의 차단(즉 '빗토렌트 사건')에 대해 빨간 신호등을 내건 이유도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보다 많은 사회적 환영을 받고 있는 것임이 분명하다.
◦ 참고 : - Richard Koman, "The Cablevision decision, part 1: Buffering is not copying," "Cablevision, part 2: Is RS-DVR like a VCR or a copy shop?" August 5, 2008, http://government.zdnet.com/?p=3919. - Sherwin Siy, "Why the Cablevision Decision Matters," August 7, 2008, http://www.publicknowledge.org/node/1700.
◦ 작성 : 성민규(미국 아이오와 대학교 커뮤니케이션 스터디즈학과 박사과정, MinkyuS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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