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본격적인 디지털 텔레비전 시대의 개막을 앞두고 있는 미국은 그에 걸맞은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의 하부구조를 위한 산업적 재정비를 서두르고 있다. 연방통신위원회는 3월 20일 디지털 텔레비전으로의 전환 이후 남게 될 700메가헤르츠 대역의 아날로그 전파에 대한 경매 결과를 발표하였다. 이번 전파 경매는, 그동안 여러 번 토론되어 왔던 것처럼, 미국 브로드밴드 산업의 모델을 재정의하게 될 의미 있는 사건일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현재 에이티엔티와 버라이즌이라는 두 공룡 기업에 의해 독과점 되고 있는 무선 브로드밴드 시장의 서비스가 보다 소비자 중심으로 만들어지기를 바랐던 기대는 여전히 불확실할 것으로 이번 전파 경매를 통해 나타났다.
이번 전파 경매를 통해서 연방통신위원회는 무려 190억 5,920만 달러의 경매 수익을 거둬들였다. 이는 경매 전 예상했던 액수인 100억 1,820만 달러보다 무려 187% 가량 증가한 것이라는 발표다. 연방통신위원회 역사상 최고의 경매 수익을 기록했다고 한다. 가장 관심을 모았던 미국 전역의 주요 12개 지역 서비스 망을 구축하게 될 Block C의 라이선스는 47억 4,000만 달러를 제시한 버라이즌에 낙찰되었다. 에이티엔티는 734개의 지역 서비스를 위한 Block B의 경매에서 227개의 라이선스를 낙찰 받았다. 총 1,099개의 라이선스를 배당했던 지역 응급무선 서비스 등의 공공 이용을 위한 Block D는 이번 경매에서 유찰되었다.
연방통신위원회는 이번 경매를 통해서 75명의 새로운 무선 브로드밴드 사업자들이 미국 전역의 305개 비도시 재역에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으며, 전파 라이선스를 낙찰 받은 사업자들의 55%가 소규모 지역사업을 위해 브로드밴드 서비스를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이번 경매를 통해서 현재 미국 전역에 무선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에이티엔티, 버라이즌, 스프린트 등 이외의 99명의 입찰자들이 총 754개의 라이선스를 낙찰 받아, 이번 전파 경매를 통해 판매된 1,090개의 전파 라이선스에서 70%를 차지함으로써, 미국의 브로드밴드 시장이 '제3의 파이프라인'을 얻게 되었다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현재 미시건 대학교 법학대학원 방문교수인 수전 크로포드는 이번 전파 경매에서 연방통신위원회의 '제3의 파이프라인' 주장이 현실을 상당히 왜곡하는 것임을 지적한다. 무엇보다 단적으로 미국의 유선과 무선 브로드밴드 시장 모두 에이티엔티와 버라이즌에 의하여 실질적으로 지배되어 있기 때문에 이번 전파 경매를 통해서 새롭게 진입한 사업자들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시장 침투를 이루어낼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크로포드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무선통신 서비스 시장에서 두 최대 사업자들인 에이티엔티와 버라이즌은 DSL이나 케이블 같은 유선통신 서비스의 속도와 가격이라는 측면에서 직접적인 경쟁 관계에 놓여 있지 않다.
현재 미국 주거지역의 96%는 지역 서비스 사업자들에 의해 시장이 지배되고 있으며, 에이티엔티나 버라이즌이 이 지역 유선 브로드밴드 시장에 진입하는 것은 가격이나 속도 경쟁력 측면에서 이들 지역 사업자들을 앞설 수 없다. 게다가 더욱 중요한 것은 에이티엔티나 버라이즌 모두 실질적으로 지역 유선 브로드밴드 서비스의 지배적 사업자들에 의해 통제되고 있으며(가령, 에이티엔티는 다수의 지역 전화 사업자들로 분할되었다가 최근 다시 하나의 회사로 합병되었다), 에이티엔티나 버라이즌이 제공하는 인터넷 텔레비전, 전화, 인터넷 서비스 등 모두 대개는 지역 브로드밴드 서비스의 패키지의 일부나 또는 그의 부가적 서비스로 기능하고 있다. 다시 한 번 단적으로 말해서, 이번 전파 경매를 통해서 지역 브로드밴드 시장에 진입하게 될 새로운 서비스 사업자들이 실질적으로 발 디딜 틈은 별로 없는 듯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다 의미 있게 다루어야 할 문제는 바로 버라이즌이나 에이티엔티가 왜 이번 전파 경매에 참여했는가 하는 점이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현재 미국 전국과 지역 무선 브로드밴드 서비스 모두 현존 사업자들에 의해 철옹성과 같은 독과점 시장 구조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시장 참여자가 산업적 성공을 거둘 충만한 조건이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에이티엔티와 버라이즌의 경매 참여는 기존 시장 구조를 더욱 확고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이러한 측면 때문에 많은 시민단체들과 특히 구글처럼 서비스 시장에 진입하려고 했던 브로드밴드 후발 주자들이 적어도 Block C를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에서 보다 오픈 된 체제로 만들어야 함을 강조했었던 것이다(현재 미국 무선통신 서비스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각 서비스 사업자가 제공하는 특정 전화기기와 소프트웨어를 이용해야만 하는데, 이것이 서비스 경쟁의 공정성과 소비자의 서비스 선택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연방통신위원회는 버라이즌이 향후 Block C의 서비스에서 보다 공개된 네트워크 구축을 약속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 역시 사업자의 '일리 있는 네트워크 관리와 보호'라는 측면에서 이루어질 것임은 쉽게 예측된다. 최근 컴캐스트가 파일공유 서비스와 관해 서비스 간섭을 네트워크 관리라는 이름 아래 수행했던 사례가 버라이즌의 새로운 서비스에서도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단정은 할 수 없다.
크로포드는 이번 전파 경매가 미국의 브로드밴드 산업을 비디오, 텔레비전, 기타 데이터 서비스 등을 보다 혁신적으로 제공할 네트워크로 만들어 줄 수도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서비스의 가입과 이용에 따라 요금을 부과하는 '무선전화 사업 모델'로 구축하는 시발점이라고 평가한다. 현재 '인터넷 모델'에서는 서비스 네트워크에 가입하면 유료 콘텐츠 서비스를 제외하고는 기본적인 정보 접근이 보장된다. 하지만 '무선전화 모델'에서는 기본적인 정보 접근부터 서비스 이용 요금이 부과되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는 네트워크 가입에 더한 이중의 소비지출 부담을 주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보다 논의가 필요한 것이 바로 네트워크 중립성의 문제이다. 향후 이렇게 공고화될 디지털 무선 브로드밴드 시장에서 네트워크 중립성 기본 내용은 흔들릴 것이고, 이것이 무선 브로드밴드 시장에도 적용될 것은 현재 거대 네트워크 사업자들의 지난 시도들에서도 읽을 수 있다. 이와 같은 미국 브로드밴드 시장에 대한 향후 논란에도 불구하고, 해롤드 펠드 역시 지적하는 것처럼, 이번 연방통신위원회의 전파 경매에서 '익명 입찰' 방식을 도입한 것은 과거 전파 경매에 비교하여 경매의 공정성과 경쟁력을 높이고 거대 미디어 기업이 자신 시장 지배에 대한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는 방식으로 이해될 필요도 있다.
미국의 인터넷 서비스가 아시아와 유럽의 경쟁국들에 비해 뒤떨어져 있다는 그동안의 사회적 비판을 불식시키기 위해서 1996년 개정된 연방통신법 이후 지난 10여 년 동안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3월 19일에 발표된 초고속 브로드밴드 서비스 보급률의 최근 신장에 관한 연방통신위원회의 통계는 현재 미국 인구의 82%와 96%가 각각 초고속 브로드밴드 서비스와 케이블 텔레비전 서비스에 가입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수치가 현재 미국 인구의 오직 22%만이 초고속 브로드밴드 서비스에 가입되어 있다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연방통신법이 규정하고 있는 서비스 보급률이란 실제 서비스 이용자의 수가 아니라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는 인프라의 준비 정도를 말하기 때문에, 연방통신위원회의 이번 통계 발표가 미국의 디지털 시대의 전면적 개막을 위한 준비 정도를 정확히 반영한다고 볼 수는 없다는 비판이 있다. 관료적 부풀리기보다 더욱 절실히 필요한 것은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브로드밴드, 케이블, 텔레비전 등의 미디어 시장에서 기술발전의 혜택을 공정한 서비스 경쟁을 통해서 분배하는 것이다.
◦ 참고 : - FCC, "Auction 73: 700 MHZ Band", http://wireless.fcc.gov/auctions/default.htm?job=auction_factsheet&id=73. - Harold Feld, "700 MHZ Auction Mostly Over", http://www.publicknowledge.org/node/1463. - Susan Crawford, "Why C Block Matters", http://scrawford.net/blog/why-block-c-matters/1136. - Art Brodsky, "Catching Up With the FCC, Broadband and Competition", http://www.publicknowledge.org/node/1467. - FCC, "Announcement of the Auction 73 results,30 March 2008", http://hraunfoss.fcc.gov/edocs_public/attachmatch/DOC-280968A1.pdf.
◦ 작성 : 성민규(미국 아이오와 대학교 커뮤니케이션 스터디즈학과 박사과정, MinkyuSung@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