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 한국의 외환 위기 당시 많은 국민들이 실망과 좌절감에 빠져 있을 때, 그나마 국민들에게 많은 위안을 안겨주었던 것은 미국으로 건너갔던 메이저리거 박찬호와 프로골퍼 박세리의 승전 소식이었다. 특히, 당시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경기 중계권을 독점하였던 경인방송은 박찬호 출장 경기의 중계만으로도 방송사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스포츠 경기 중계권은 오늘날 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회사로서의 방송국에게는 전형적인 황금광에 비유될 만큼 큰 시장으로 성장했다. 2002년 이후 미국 메이저리그의 박찬호 선수와 프로골퍼 박세리 선수의 선전이 다소 뜸해지고, 한일 월드컵이 스포츠 시장의 판도를 바꾸면서 국내 스포츠 방송 시장은 축구 중계권에 많은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특히, 네덜란드리그의 박지성·이영표 선수, 벨기에 리그의 설기현 선수 등이 축구의 종주국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하자, 각 방송사들은 프리미어리그 독점 중계권을 따내기 위해 전쟁을 방불케 하는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이러한 일은 비단 한국 프리미어리거들에 열광하는 한국 방송 시장의 문제만은 아니다. 2007년까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자국 텔레비전을 통해 중계하는 국가는 총 208개국이었으며, 이들 국가들에서 중계권 판매로 벌어들인 수익만 6억 2,500만 파운드(한화 약 1조 3,000억 원)에 이른다. 이번 호에서는 최근 전 세계가 열광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방송 중계 시장의 규모와 중계권에 얽힌 영국 방송국들 간의 함수 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중계 시장의 규모
프리미어리그 집행부는 2008년 2월 7일자 보도자료를 통해 '프리미어리그가 향후 10경기 정도를 외국에서 치르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이를 통해 TV 중계권료과 경기 수당으로 약 2억 4,000만 파운드(한화 약 4,200억 원)의 추가 이익이 발생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0년까지 계약이 체결되어 있는 영국 내 프리미어리그 중계권 수익은 연간 17억 파운드(한화 약 3조 2,000억 원) 규모이며,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중계권 수익은 약 6억 2,500만 파운드(한화 약 1조 3,000억 원) 정도이다. 이를 경기당 중계료로 환산하면, 영국에서만 매 경기당 중계료가 평균 410만 파운드인데, 연간 92경기의 중계권을 확보하고 있는 BSkyB가 경기당 470만 파운드를 지불하고 있고, 연간 46경기를 중계하는 Setanta Sports가 경기당 280만 파운드를 지불하고 있다. 여기에 인터넷 중계와 모바일 TV 시장(올해 1월에 Vodafone과 Orange 등의 통신회사들이 서비스 개시 발표)까지 포함하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가 연간 벌어들이는 수익은 약 21억 파운드(한화 약 4조 원) 규모에 이른다. 이는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언급한 영어 공교육 완성에 예상되는 국비 지원 규모와 맞먹는 정도의 엄청난 금액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의 최근 몇 년간 해외 방송 시장에 대한 공격적인 마케팅에 힘입어 프리미어리그 구단들의 수입 총액도 전년 대비 증가하는 추세로 나타났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리는 축구 구단은 레알 마드리드(스페인 프리메라리가)로 2007년 한 해 동안 2억 3,620만 파운드를 벌어들였고, 이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가 2억 1,200만 파운드로 2위를 기록했다. 2007년 통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부분은 수익 상위 5개 팀 중 3팀[맨체스터 유나이티드(전년 4위→2위), 첼시(전년 6위→4위), 아스날(전년 9위→5위)], 상위 15개 팀 중 6개 팀(리버풀 8위, 토튼넘 11위, 뉴캐슬 14위)이 프리미어리그 소속팀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구단의 수익 증가에는 국내외의 TV 중계권료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팬클럽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우 전 세계 330만 명의 팬들과 139만 명의 역동적인 서포터즈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이들이 TV를 통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프리미어리그와 맨체스터 구단은 엄청난 수익을 올리게 되는 것이다.
프리미어리그 중계권을 둘러싼 갈등
영국에서의 축구 중계방송은 1955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물론 그 이전에도 간혹 축구 경기를 TV를 통해 시청할 수 있었지만, 여러 가지 방송의 질적·양적 수준을 놓고 볼 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영국 축구 방송의 원년을 1955년으로 본다). 축구가 TV를 통해 본격적으로 중계되자 축구는 광고, 중계권료 등을 통해 엄청난 부수적인 수익을 올리게 되었다. 이러한 TV 중계 수익의 급증으로 인해 당시 영국 프로축구협회와 선수 노동조합 간에 갈등이 생겼고, 이로 인해 파업을 경험하게 되었다. 다행히 이 파업은 축구협회가 선수들에게 복지·교육·훈련 등을 위한 기금 조성 명목으로 방송 중계 수입의 7.5%를 제공하기로 하면서 수습되었고, 1967년에는 이 지분이 10%로 인상되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프리미어리그가 출범하였고, 동시에 BSkyB 같은 대형 위성 방송사가 등장하면서 방송국들의 중계방송 광고 수익이 큰 폭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프리미어리그 구단으로 구성된 구단협회는 각 방송사들과의 협의를 통해 중계 수익을 대폭 인상할 수 있었다. 2000년대 초반에 방송사와 구단협회 그리고 축구협회 사이에 체결된 TV 중계권 협약으로, 프리미어리그의 연간 수익은 1억 5,000만 파운드에서 5억 파운드(약 9,500억 원), 구단협회의 수익은 2,500만 파운드에서 1억 1,500만 파운드, 축구협회의 수익도 2,500만 파운드에서 1억 1,500만 파운드로 각각 증가했다.
이후 2001년 8월부터 시작된 프리미어리그 사무국과 프로축구선수협의회(Professional Footballers' Association) 간의 갈등으로 인해 자칫 프리미어리그 경기가 무산될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당시, 해외 방송권의 판매 증가 등을 통해 방송 수익이 급증하자 프리미어리그 사무국 측은 기존의 선수협의회가 보유하고 있던 지분율 5%를 인하할 것을 선수들에게 요구하였고, 선수협의회 측은 프리미어리그의 인기가 급상승한 만큼 선수들이 보유한 지분은 유지하되 액면가를 인상해야 한다는 안을 놓고 양자가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양측 간의 협상이 지연되자 선수협의회는 투표를 통해 파업을 결정하였고, 12월까지 의견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프리미어리그 경기가 취소될 위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파업 1주일 전 선수협의회가 향후 3년간의 방송 계약 기간 동안 5,220만 파운드를 받기로 합의함에 따라 파업은 피할 수 있었다.
영국 내 축구 중계권의 분할 구도
현재 영국 내에서 TV를 통해 중계해 주는 주요 축구 경기는 프리미어리그, FA Cup, Carling Cup, UEFA Cup, UEFA Champions League 등이며, 이외에도 2부 리그와 3부 리그 경기, 이탈리아의 Serie A, 국가 대표팀 간의 A 매치, 아프리카 네이션스 컵 등 매우 다양한 경기를 TV를 통해 중계하고 있다.
이 중 가장 많은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는 리그는 프리미어리그이다. 8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20개 프로팀들이 Home & Away 방식으로 팀별 38경기, 리그 전체적으로 볼 때 총 380경기를 소화하는 방식이다. 2007년 현재 프리미어리그에 대한 중계권은 언론 재벌 머독이 소유한 Sky Sports와 아일랜드계 회사인 Setanta Sports가 분할 소유하고 있다. 중계권은 중계 팀, 날짜, 시간에 따라 A~F까지 총 6개의 패키지로 분류되며, 이 중 A·B·E·F 패키지는 Sky Sports가 소유하고, C·D 패키지에 대한 소유권은 Setanta Sports가 갖는다.
<표 1>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TV 중계권 현황(2007~2010년)
위의 표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현재 Sky Sports가 92경기에 대한 중계권을, Setanta Sports가 46경기에 대한 중계권을 가지고 있는 형국이다. Sky Sports가 프리미어리그 협회에 중계권 명목으로 납부하는 금액은 연간 총 13억 1,400만 파운드이며 Setanta Sports가 납부하는 중계료는 연간 3억 9,200만 파운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각 구단별 수입으로 환산해 보면 약 2,800만 파운드로 계산된다.
한편, BBC는 내년 2009년부터 2부 리그 격인 Championship League 10경기와 칼링컵 결승전 등 보다 많은 축구 중계권을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총 2억 6,400만 파운드에 체결된 이 계약으로 BBC는 현재 보유하고 있는 국가대표 간 A 매치 중계권과 해외 국가대표별 경기(예: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등)뿐 아니라 국내 프로팀 경기 중계권 시장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 전망이다. 특히 현재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 축구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유럽 축구 클럽들 간의 최대 이벤트인 Champions League가 엄청난 방송 시장으로 떠오르면서 현재 중계권을 획득하고 있는 ITV뿐 아니라 BBC, Sky Sports도 계약 만료와 동시에 거금을 투자해 중계권을 따내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또한 현재 UEFA Cup 중계권을 보유하고 있는 Five 역시 보다 많은 축구 중계권을 획득하고자 하는 사업 전망을 천명하고 있어서, 영국 내에서의 축구 중계권 시장은 보다 과열될 전망이다.
새로운 스포츠 중계 시장 – 모바일 TV
한국에서는 이제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개인용 모바일 폰이나 DMB 수신 장치 등을 통해 여러 방송이나 동영상, 영화와 같은 콘텐츠에 접속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유럽의 경우 이러한 모습을 보는 것은 매우 드물고, 따라서 한국에서 DMB 사업으로 불리는 모바일 TV 시장의 여건은 매우 열악하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유럽에서의 모바일 TV 사업은 한국과 비슷한 2004년 정도에 시작되었다. 당시 많은 통신 회사들이 모바일 TV 시장에 투자를 천명했고, 실제로 Vodafone, Orange, O2, T-Mobile 등 대부분의 통신 회사들이 이 시장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모바일 TV 시장이 새로운 미디어 혁명을 가져올 것이며,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 이후 최대의 업적이라고 극찬하는 등 많은 관계자들은 흥분해 있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런던에서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전 이용자 조사에서 많은 이용자는 모바일 TV의 기능이나 휴대성에 대해 매우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으나, 그뿐이었다. 이들 중 대부분인 78%의 응답자들은 '한 달에 5파운드 이상의 돈을 모바일 TV에 투자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으며, 이 중 절반 정도인 약 35%의 응답자들은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더라도 이용할 생각이 없다고 밝혀 업계 관계자들에게 충격을 던져주었다. 실제로 유럽의 문화적·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느리고 낙천적이고 가족 중심의 문화가 지배적인 상황에서의 모바일 TV는 너무나도 이기적이고, 철없어 보이는 아이들의 오락기 정도로 취급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한국과 일본의 경우 모바일 DMB 사업은 현재 매우 보편화되어 있는 상황이고, 간혹 BBC와 같은 매체에서 해외 뉴스 중 단신 형태로 이러한 문화 현상을 보도하기도 했다. 이것은 분명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영국의 모바일 TV 시장에 마지막 구원 투수로 등장한 것이 바로 프리미어리그 콘텐츠이다. 2007년 12월 메이저 통신사 중 하나인 Orange가 월 5파운드의 가격에 Sky Sports와 Setanta Sports에서 방영하는 프리미어리그 전 경기를 시청할 수 있는 상품을 내놓았다. 'Football on your mobile'이라는 타이틀로 새롭게 선보인 이번 모바일 TV 상품마저 성공하지 못할 경우 영국의 모바일 TV 업계는 결국 한 자리수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영국 현지 전문가들의 예상은 대부분 비관적이다. 영국의 축구 시청 문화는 펍(Pub: 영국의 전통 선술집 같은 곳으로 예부터 많은 사람이 모여 맥주를 마시며 담화를 나누었던 공론의 장이었으며, 오늘날에는 대형 스크린에 축구를 방영해 주어 많은 사람들이 가볍게 맥주 한 잔을 마시며, 함께 축구를 즐기는 곳으로 발전했다) 문화와 함께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영국에서의 축구는 개인이 즐기는 엔터테인먼트의 성격보다는 많은 사람이 모여 담화를 나누며 즐기는 성향이 강하다. 이러한 문화를 100여 년이 넘게 이어온 영국인들에게 3인치 정도의 작은 스크린을 통해 혼자 시청하는 축구는 낯선 문화적 환경임에 분명하며, 특히 낡은 가치관을 좀처럼 바꾸지 않으려는 영국인들에게 변화가 일어나려면 최소 10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낙관적인 전망도 있다. 현재 영국 모바일 시장을 주도하는 16~ 24세 사이의 세대들은 소위 말하는 인터넷·게임기 세대로 분류되는데, 이들의 특징은 개인적 성향이 강하고, 새로운 문화적 환경에 쉽게 적응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문화적 주류가 되는 향후 5년 이내에 영국 미디어 시장에는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것이 모바일 TV에 대한 낙관론자들의 예상이다.
결론
현대 스포츠는 미디어를 통해 재탄생되었다는 성균관대 송해룡 교수의 언급처럼,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영국 축구 역시 미디어를 통해 새로운 장르의 엔터테인먼트로 업그레이드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위성 TV의 발달로 인해 이제 한국의 박지성·이영표·설기현 선수가 나오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한국의 안방에서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 프리미어리그는 전 세계인들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영국 축구에 자본의 영향력은 갈수록 극대화되고 있다. 상당수 영국 방송사들이 축구 중계권을 따내기 위해 막대한 금액을 경쟁적으로 쏟아 붓고 있는데, 이는 바꾸어 말하면 그만큼 다양한 양질의 프로그램 개발에 투자될 수 있는 돈이 축구에 집중되고 있다고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자본의 논리로 인해 자칫 공정하고 평등해야 할 스포츠 정신이 훼손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역사를 돌이켜볼 때, 자본이 필요 이상으로 투자되는 곳에는 반드시 기형적 형태의 비리와 부정적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 참조 : - 2007년 1월 28일자, "Barclays Premiership £900 Million broadcasting rights bonanza" - 2007년 11월 1일자, "Champions League TV battle begins" - 2008년 2월 7일자, "Premiership overseas plan 'could net £240m'" - 2008년 2월 13일자, "Premier League the moneybags of the world and poised to grow even wealthier" - http://episode.or.kr/sangmin/18?TSSESSION=74cce82c40bcfe9c6a2524뮤2953402d - http://www.sportbusinee.com
◦ 작성 : 주재원(영국 리즈 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 박사과정, csjj@leeds.ac.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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