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19일, 일본 총무성 산하 “통신/방송의 종합적 법체계에 관한 연구회”는 중간보고서를 공표했다. 이 보고서에서는 통신과 방송으로 이분되어 왔던 종래의 구조가 디지털 및 IP화에 더 이상 대응할 수 없게 된 현 상황을 두고, 통신/방송 관련 법제도를 시급히 재편해야 한다는 제언이 담겼다. 이 보서는 향후 통신/방송 법체계를 “콘텐츠”, “플랫폼”, “전송 인프라”, “전송 서비스”, “전송 설비” 등의 레이어 형 구조로 전호시켜, 새롭게 “정보통신법(가칭)”으로 통합할 것을 제언했다.
또한 이 보고서는 현행법에서 방송(전파)과 통신(인터넷)으로 송신수단별로 분류되어 있는 통신/방송 콘텐츠에 대해, 사회적 기능이나 영향력에 기초한 유형으로 규제할 것을 제안했다. 언론기관으로서 강력한 여론형성 기능을 보유하고 재해방송 등 시민생활에 중요한 전달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지상방송을 “특별 미디어 서비스”, 전용단말기를 이용하여 지상 방송과 비슷한 접근 형태를 취할 수 있는 CS방송이나 유선방송을 “일반 미디어 서비스”, 인터넷 송신 등 그 외의 콘텐츠를 “공연통신(公然通信)”으로 분류하자는 것이다.
총무성은 7월20일까지 일반으로부터의 의견을 모집하고 12월을 기점으로 최종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총무성은 2010년까지 통신/방송의 융합/제휴에 대응한 새로운 법제도의 제정을 실현시킬 전망이다.
신 정보통신법안의 논점
이번 보고서에서 제시된 “정보통신법”은 통신과 방송의 융합을 촉진시킬 것으로 기대되는 한 편, 인터넷 콘텐츠의 규제강화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21세기에 들어 시작된 일본의 ICT 혁명은 현재 정부의 강력한 주도 하에 전개되고 있다. 정부의 e-Japan 전략의 기본 방침은 유비쿼터스 네트워크화의 실현을 목표로 삼는 것으로, 인터넷이 전 세계의 PC와 PC를 연결했다면, 나아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을 언제 어디서나 네트워크가 연결시키는 ICT 패러다임의 구축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일본의 유비쿼터스 네트워크화는 FMC(고정과 휴대의 제휴), 트리플 플레이(전화, 방송, 인터넷 접속의 일원화), 정보가전의 네트워크화, ITS(고도 도로정보통신망), 전자 태그의 네트워크화, 그리고 NGN(차세대 네트워크)의 정비 등, 개별과제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총무성의 “통신/방송의 종합적인 법체계에 관한 연구회”는 2010년대의 풀 디지털/IP화 시대의 도래에 발맞추어, 방송과 통신이 융합하는 ICT 이용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법체계 정비의 기본 방침을 제시할 목적으로 설치된 기구이다. 일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유비쿼터스 네트워크화는 매우 다양한 방향성을 가진 ICT 이용 환경의 혁명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제도는 통신과 방송뿐만 아니라 통신과 영화, 게임, 인터넷 카메라, 전자 태그, 센서 네트워크, 그리고 앞으로 로봇과도 새로운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
이런 환경 하에서 인터넷 공간에서 접근할 수 있는 콘텐츠는 엔터테인멘트 계열로부터 생명이나 재산에 직결될 수 있는 것까지를 포괄할 수 있다. 이 콘텐츠들이 다양한 플랫폼을 경유하여 이용자의 필요에 따라 네트워크 인프라에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나 유통될 때, 중요한 것은 이용의 편리함에 기반이 되는 보안 정책 및 인프라 전체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는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중간보고서는 이런 전제 하에 통신과 방송의 융합과 관련된 방송법, 전기통신사업법, 전파법, NTT법 등 9개의 기본적 법률을 검토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따라서 전자 태그나 센서 네트워크 등의 문제는 장래의 과제라고 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콘텐츠 문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담당관청이 다른 저작권법은 검토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또한 영상 콘텐츠가 주요 검토 대상인 관계로 신문 등 종이 미디어도 제외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유비쿼터스 사회의 확립을 위해 이번 검토는 커다란 한 걸음임에는 틀림없으나, 여전히 이 분야의 낡은 구분이 잔존되어 있음을 확인해주는 징후이기도 하다. 일본 정부가 구상하는 ICT 세계는 “네트워크”, “플랫폼”, “콘텐츠”가 서로 쌍이 되어 TV나 휴대전화 등의 네트워크 레이어가 콘텐츠를 규정하는 구조이다. 따라서 콘텐츠나 플랫폼이 이용자에게 가져다줄 이익에 맞춰 이들 세 가지 레이어 사이에서 자유로운 조합이 가능한 구조로 이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변화에 대응하는 법체계 재편의 방향성은 전송 인프라, 플랫폼, 콘텐츠의 세 가지 레이어 구조 아래에서 전체를 통합해야 하는 커다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노무라 종합연구소의 무라카미 이사장은 “이 방향성이야말로 레이어마다 다채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신구의 다양한 사업자 사이의 공정경쟁을 통하여 현재 일본에 가장 필요한 지속적인 혁신을 가능케 하는 기반구축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라카미 씨는 이를 위해 규제를 최소 필요한 수준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소 필요 수준의 규제
이번 중간보고서 작성 과정에서 포르노, 폭력, 약물, 자살 사이트 등, 이른바 유해 사이트 조사가 이루어졌다. 그 실태는 총무성 및 통신/방송계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 앞으로 가시적으로 영향범위를 넓혀 큰 사회문제로 발전될 것이라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하지만 현행법제로는 금번 보고서에서 “공연통신”으로 분류된 블로그나 게시판 등 인터넷 상의 콘텐츠에는 법률 수준의 포괄적인 규제가 없다. 현재 유해 사이트의 실태를 보면 현실 세계에는 청소년보호나 유해도서 지정 등 규율이 있는 반면, 인터넷 세계에서는 전혀 규율이 없는 실정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런 배경 하에 이번 보고서에서는 인터넷 콘텐츠에 최소한도 필요한 룰을 도입하여 규율을 확립할 것을 내용으로 담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규제가 인터넷이 발전시켜온 자유로운 표현 문화를 저해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현재 9,000만 명에 이르는 사용자가 있는 일본사회에서 인터넷은 기반 사회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 사용 빈도가 높은 이용자부터 낮은 이용자까지, 또한 인터넷에 익숙한 이용자부터 그렇지 않은 이용자까지, 모든 이용자가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위해서는 최소한도의 규제는 필수적이지만, 그 한계를 어떻게 설정한 것이냐가 논점인 셈이다. 규제강화를 우려하는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대목은, TV 급의 화면과 화질로 프로그램 편성형 방송 서비스를 전개하는 인터넷 미디어가 등장하게 되면, “특별 미디어 서비스”로 취급되어 현재 방송에 대한 규제가 적용되므로 인터넷 콘텐츠에 대해 대폭 규제가 강화되리라는 점이다. 이는 아직 보고서에서 명시되어 있지 않은 대목이라는 점에서 추측에 불과하지만, 이를 둘러싸고 여러 의견이 대립되고 있다.
인터넷 미디어의 가능성 확대
그러한 우려의 목소리를 비판하는 의견도 있다. 무라카미 노무라 종합연구소 이사장은 “중간보고서의 문구를 보고 거기까지 추측하는 통찰력은 대단하다”고 비꼰 후, “하지만 그것은 논의의 순서가 거꾸로 된 것”이라고 일축한다. 그는 “물론 이번 보고서는 그러한 형태로 가는 것까지 상정한 법체계를 제안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기존 인터넷 사업자를 관청이 마음대로 분류하고, 특별 미디어 서비스로 규정하여 현행 방송규율이 부과될 가능성은 적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그는 “오히려 향후 인터넷 미디어 사업이 성숙되면, 현행 방송 규율로 스스로를 규제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다양한 사회적 의무를 다함으로써 인터넷 상에서 신뢰할 수 있는 방송 유사 미디어 사업을 구축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이 때 다양한 사업자의 시도를 배제하지 않는 선에서 규제가 제한되어야 하는데, 이는 앞으로의 전개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며 규제강화를 미리 비판하는 의견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이러한 시각을 가진 전문가들은 인터넷 상에서의 동영상 콘텐츠 세계가 미국처럼 거대 플랫폼 기업과 군소 콘텐츠로 형성되는 것이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오히려 일본에서 필요한 것은 콘텐츠 자체의 신뢰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가장 필요하며, 이를 위해 규제강화가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관청과 기업의 협력이 시급하게 요청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의견이다.
무라카미 노무라 종합연구소 이사장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정보통신 산업의 국제경쟁은 여전히 제도간 경쟁이라는 성질을 띠고 있다. 이번 정보통신법 구상에서 알 수 있듯이, 현재 경쟁의 초점이 점차 레이어 쪽으로 무게중심을 이동시키고 있는데, 이런 흐름 속에서 정보통신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에 공헌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 분야에서는 좋은 산업에 좋은 제도가 따라 붙는다기보다는, 좋은 제도에 좋은 산업이 따라 붙기 때문이다.” 이렇듯 통신/방송을 둘러싸고 일본에서는 제도 개편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모양새이다. 이런 논의의 와중에서 디지털 방송의 복제 방식을 둘러싼 오래된 논란이 해결될 전망이어서 주목되고 있다. 기술혁신에 비해 룰 정비를 비롯한 제도개혁이 지연되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던 와중에, 이용자와 직결되는 복제문제가 드디어 해결되게 된 것이다.
카피 원스(copy once) 정책의 수정
디지털 방송의 프로그램을 한 번에 한해 DVD 녹화 가능케 하는 “카피 원스” 정책에 대해, 총무성은 7월6일, 9번까지 복사를 인정토록 방송국에 요청할 방침을 확정했다. 당장 내년부터 대폭 복제 규제가 완화될 전망이어서, 가전 메이커는 대응 기종을 판매 개시할 예정이다. 녹화한 프로그램을 편집하거나 똑같은 프로그램을 복수의 DVD에 더빙할 수 있게 되어, 시청자의 이용 편리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카피 원스는 지상 디지털 방송이나 BS 디지털 방송의 전파에 특수한 처리를 가해, 프로그램 녹화를 한 번으로 제한한 시스템이다. 디지털 방송은 복제를 반복해도 화질이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복제한 불법 DVD 판매 등 저작권 침해를 막기 위해 방송업계와 가전업계가 2004년 자주적인 룰로 정한 것이다. 총무성은 정보통신심의회의 전문검토회가 7월12일 제시할 예정의 카피 원스 완화 의견서를 토대로 방송업계 등에 대해 이를 대폭적으로 완화할 것을 요청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난색을 표명해온 방송국이나 저작권단체도 양보할 자세를 이미 표명한 바 있다.
이번 요청에서 복제 회수를 9번까지로 한 것은, 가족 3인으로 구성된 평균적인 세대에서 각자가 DVD, 휴대전화, 휴대형 음악 플레이어 등 세 종류의 기기에 복제하는 것을 전제로 삼은 것이다. 즉 “혼자서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수준”이 9번의 복제로 판단된 셈이다.
10번째 복제했을 때, DVD 녹화기에서 하드 디스크에 녹화한 프로그램은 자동으로 소거된다. 복제한 DVD로부터 다른 DVD로 다시 복제하는 “이중 카피”나 인터넷 송신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제한된다. 현재의 카피 원스 시스템은 DVD 녹화기의 하드 디스크에 녹화한 프로그램을 1회에 한 해 “옮길 수 있다.” 단 이동과 동시에 하드 디스크 내 데이터는 소거되고, 내용이 이동된 DVD로부터 다른 DVD로 다시 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미 판매된 DVD 녹화기는 기능면에서 카피 원스 제한완화에 대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용자들 사이에서 혼란이 예측되고 있기도 하다.
원활한 디지털화 이행을 위해
디지털 방송의 “카피 원스”가 대폭 완화되게 된 데에는 현재의 복제 규제에 대한 시청자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2011년 7월의 TV 완전 디지털화를 원활하게 진행시키고 싶다는 총무성의 노림수가 큰 작용을 했다. 총무성에 따르면 녹화한 지상 디지털 방송 프로그램에 복제 규제가 있는 것은 일본뿐으로, 미국이나 프랑스나 한국은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국내 가전업계나 소비자 단체로부터 “저작권의 과잉보호”라는 지적을 받아온 것이다. DVD 녹화기의 일본 내 출하 대수는 2006년에 전년 대비 18% 감소한 348만대로 떨어졌다. “소비자가 카피 원스를 경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총무성 관계자는 말했다.
또한 작년 4월에 휴대전화용 지상 디지털 방송 “원 세그”가 시작되면서, 휴대전화나 애플사의 아이포드로 시청가능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의 카피 원스는 원 세그 보급에 큰 저해가 될 수 있다고 총무성 관계자는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현재 통신/방송을 둘러싼 일본의 법 및 제도 개혁은 더디지만 진척을 보이고 있다. 2011년까지 남은 시간이 적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총무성을 중심으로 더욱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데, 카피 원스 규제 완화에서도 드러났듯이 어떻게 이용자들의 혼란을 줄여나갈 것이냐가 큰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이미 DVD 녹화기를 구입한 이용자는 또 한 번 기기를 교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찰을 어떻게 일본 통신/방송계가 극복해 나갈지 앞으로 주목될 부분이다.
◦ 참고 : - CNET Japan 2007. 6. 20 - 닛케이 신문 2007. 7. 11 - 요미우리 신문 2007. 7. 7
◦ 작성 : 김 항(동경대학교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박사과정, lth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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