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가 미디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이는 시청자가 얼마나 그 미디어를 신뢰할 수 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척도가 되곤 한다. BBC Trust는 지난 6월 18일 <시소에서 수레바퀴로: 21세기, 공정성 지키기(From seesaw to wagon wheel, Safeguarding impartiality in 21stcentury)>라는 제목으로 BBC의 공정성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그 동안 BBC의 공정성이 얼마나 잘 지켜졌는지에 대해 살펴보면서,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환경과 미디어 기술의 발전 과정에서 BBC가 더욱 공정한 방송사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BBC, 공정성의 위기
2004년 1월, BBC 저널리즘의 최대 위기로 기억되고 있는 ‘허튼 보고서’ 사건 이후로 BBC는 ‘공정성’이라는 단어에 어느 때보다 집착하고 있는 모습이다. 당시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을 두고 토니 블레어 정부와 정면으로 부딪쳤던 BBC는 ‘허튼 보고서’가 정부의 손을 들어주면서 그렉 다이크 사장과 앤드류 길리건 기자가 사퇴하는 수모를 겪었다. 정부는 BBC 저널리즘을 빈약한 논리와 넘겨짚기 식 취재 관행으로 가득하다며 깎아내렸다. 청문회를 통해 길리건 기자의 취재 방식의 문제점이 드러났고 BBC 편집 팀의 뉴스 취재/선택 기준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됐다.
물론 허튼 보고서 자체의 허점과 정부에 대한 대중의 불신이 어느 정도 팽배해 있었기 때문에, 이 사건을 통해 시청자들이 BBC의 공정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BBC는 이런 기회를 이미지 개선의 기회로 삼았다. 2004년 1월에 방영된 ‘허튼 보고서’에 대한 탐사보도 프로그램 <파노라마>는 사실과 증거에 입각해 당시 사건의 핵심을 담담한 어조로 재조명했고, 같은 해 3월에는 BBC의 비대화?상업화의 문제에 대해 심층 보도하면서 BBC의 정체성 재정립과 자신감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BBC의 공정성 기준에 대한 시험은 2005년 의외의 곳에서 더 크게 논란이 되었다. 2005년 7월, 런던 하이드파크에서 벌어진 <라이브 8> 공연은 BBC를 난처한 위치에 처하게 했다. 같은 시기 스코틀랜드에서 열렸던 G8 콘퍼런스에 모인 각국 정상들에게 정치적인 압력을 주기 위해 기획된 <라이브 8> 공연은 아프리카의 빈곤 문제에 대한 세계적인 인식을 높이고, 선진국들이 아프리카의 빈곤 해소를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다분히 정치적인 공연이었다. BBC는 당시 채널 4에 라이브 중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중계를 강행했고, 결국 공연을 생중계하는 방송사이면서 동시에 그 행사의 정치적인 목소리와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애매한 위치에 처하게 된다. 당시 중계에 참가한 모든 스태프에게 나누어진 BBC의 중계 지침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BBC는 <라이브 8>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주체가 아니라 중계방송 파트너다. - BBC는 세계 빈곤 문제에 대해 하나의 해결책만 알려서는 안 된다. - BBC는 ‘빈곤을 역사 속 일로 만들자(Make Poverty History)’ 운동의 어떤 메시지도 방송해서는 안 된다. - BBC의 방송 도중 어떤 진행자나 BBC의 스태프도 시청자나 청취자에게 운동에 참여하거나 행렬에 참가하도록 권해서는 안 된다. - 모든 인터뷰는 행사의 특수성과 함께 반드시 BBC의 편집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 방송 진행자는 무대 위에서 공연자나 행사의 일부분으로 등장해서는 안 된다. - <라이브 8>과 행사의 취지를 설명할 때, BBC 스태프는 ‘우리’라는 단어를 피하고 ‘그들’ 혹은 ‘행사 기획자’들이라는 단어를 써야 한다. - BBC는 프로그램 내 적절한 문맥에서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 티켓 판매 수 정보를 표현하지 않는다. - 영국 전역에 대형 화면으로 공연을 보여 주는 장소는 집회 홍보 목적으로 사용돼서는 안 되고, BBC와 지역 유관 기관은 공공 안전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면 즉시 화면을 통한 방송을 중지할 수 있다.
비록 많은 대중들이 <라이브 8>의 기획 목적에 열광했지만, BBC는 <라이브 8> 공연에 대한 회의론은 반영하지 않은 채 하루 종일 무대 위 가수들의 욕설과 날 선 정치적 발언들을 별다른 여과 없이 내보냈다. 행사 총기획자 밥 겔도프가 캐나다의 총리였던 폴 마틴에 대해 “당신은 여기에서 환영받지 못 한다”라고 하는 모습 등은 영국인 모두의 시선을 대변하는 듯했고, 공연은 마치 일반 콘서트와 같은 수준으로 방송됐다. 당시 야외 중계 팀을 이끌던 프로듀서는 “마치 정당 대회를 중계하는 것 같았다”고 평했다. 이 날 공연은 밥 겔도프 등 행사를 기획했던 사람들에게는 성공적인 정치 운동이 됐고, 공연한 가수들에게는 사회의식이 투영된 새로운 이미지를 선보일 수 있는 무대였지만, 정치적 발언으로부터의 독립을 지켜야 하는 BBC에게는 공정한 언론으로서의 이미지에 먹칠을 한 날이 돼 버렸다.
BBC의 <라이브 8> 생중계가 정치 중립성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비난을 받으면서 BBC의 보도 문화가 중립적이기보다는 진보주의적인 성향이 크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주장은 <라이브 8>이 있기 한 주 전에 BBC가 영국 최대의 음악 축제인 ‘글래스톤베리 축제(Glastonbury Festi- val)’를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생중계한 반면, 비슷한 기간에 열린 ‘국제 관함식(International Fleet Review)’은 중계하지 않은 점으로 더욱 설득력을 얻었다. ‘국제 관함식’은 당시 75만여 명의 시민이 구경했다. 이는 ‘글래스톤베리 축제’ 관중의 6배에 달하는 숫자였고, <라이브 8>의 3배에 달하는 관중이었다. 관함식이 열린 시간에 편성된 프로그램이 특별한 것이 없었음에도 BBC가 ‘관함식’은 진부한 행사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중계 편성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05년 9월에는 News Corp.의 루퍼트 머독과 토니 블레어, 그리고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대한 BBC 월드의 뉴스 보도가 미국에 대한 증오로 가득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2006년 2월에는 야당인 보수당수가 시민의 야유를 받았다고 보도하면서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야유를 받았던 여당 노동당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됐다.
BBC, 공정성에 대해 재검토하다 2005년 6월, ‘허튼 리포트’ 사건 이후 BBC는 자체적으로 작성한 ‘닐 리포트(Neil Report)’를 발표한다. 닐 리포트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허튼 리포트의 교훈
- BBC는 공공의 관심과 합당한 취재 방식을 통한 경우 계속해서 단일 취재원의 이야기를 뉴스에 이용한다. 물론 편집 과정에서 면밀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 편집장들은 그들이 지휘하는 스태프들이 BBC의 저널리즘 가치를 지키는지에 대해 일상적인 책임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 정확하고 믿을 수 있는 녹취는 BBC 기자 훈련의 일부분이 되어야 한다. BBC나 제3자가 허위 주장을 하는지에 대해 명확히 해야 한다. - 공평함, 열려 있음, 명확한 태도는 BBC 저널리즘의 기반이다. 중요한 주장에 대해 사람들은 반박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 - 양방향 생중계 리포트는 중요하지만,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속보성 뉴스에 대한 양방향 생중계 리포트는 적절하지 않다. - 주요 뉴스 분야에 법률가를 배치한다.
2. BBC의 핵심 가치
- 사실과 정확성: BBC의 저널리즘은 최고의 정확도, 합당한 취재 방식, 확증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 공공의 이익에 봉사한다: 시청자들을 위해 중요도에 따라 뉴스를 선정하고, 공적인 인물을 취재할 때에는 강하면서 공평해야 한다. - 공정과 의견의 다양성: 주장보다는 문맥에 맞는 사실을 보도해야 하고, 다양한 의견을 통해 증거를 검증한다. - 독립성: 권력가와 기관에 대한 독립적 감시자 역할을 해야 하며, 이때 상업적인 기준이 아닌 편집 기준에 맞추어 뉴스를 결정한다. - 신뢰성: 실수에 대해 열린 자세를 갖고, 실수에 대해 사과하고 그로부터 배움으로써 시청자의 신뢰를 지켜 가야 한다.
3. BBC의 다음 단계는?
- BBC의 보도는 학문적인 원칙에 기반을 둔 저널리즘 대학의 설립을 통해 강화돼야 한다. - 경력 개발에 대한 접근법이 변화하는 것과 발맞추어 ‘투명한 경쟁’에 기반을 둔 승진 체계를 갖춘다. - BBC는 모든 직급의 직원들에게 어려움과 실수로부터 배울 수 있도록 평생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 불만에 대한 ‘빠른 해명과 명확한 수정’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한다. 모든 불만은 불만을 제기한 사람에 상관없이 똑같은 방식을 통해 처리돼야 한다.
‘닐 리포트’의 권유에 따라 BBC는 2005년 8월 ‘BBC 저널리즘 대학’을 설립했다. 대부분의 교육 프로그램과 세미나는 BBC 뉴스의 기자와 스태프를 대상으로 하며 교육 과정은 거의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해마다 정기적으로 세미나를 열어 보도 과정의 문제에 대한 토론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BBC의 저널리즘 원칙을 정립해 간다는 측면에서 ‘BBC 저널리즘 대학’은 BBC 내부뿐만 아니라 영국 내 다른 언론 매체로부터 긍정적으로 평가받았다.
일련의 세미나를 통해 얻은 결과와 외부 전문가들의 의견을 정리한 것이 BBC Trust가 발표한 이번 리포트다. <시소에서 수레바퀴로>는 BBC가 지켜야 할 공정성의 개념이 변화했음을 시사한다. BBC는 다양한 정치 세력들과 경제 주체들 사이에서 시소의 균형을 잡듯이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것에 만족하는 전통적인 공정성은 더 이상 현대 사회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다양한 문화, 믿음, 정체성이 혼재한 현재의 영국 속에서 공정성은 결론이 담보된 닫힌 내러티브 구조가 아니라 열린 과정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열린 과정으로서의 공정성을 가능케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뉴미디어다. 선형적이고 한정된 텔레비전의 편성 공간을 넘어 논쟁을 지속 가능케 하는 인터넷을 BBC의 공정성을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으로 인식한 것이다. BBC는 이 리포트에서 21세기에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12가지 원칙을 내세웠다.
12개 공정성 원칙
BBC Trust가 발표한 <시소에서 수레바퀴로: 21세기, 공정성 지키기(From seesaw to wagon wheel, Safeguarding impartiality in 21stcentury)>에 정리된 12가지 공정성의 원칙들(principles)은 다음과 같다.
1. 정보와 즐거움을 제공하는 영국 내 선두주자이자 세계적인 방송사인 BBC에게 공정성은 항상 그 근본 가치로 지켜져야 한다. 공정성은 법적 필요조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랑스러움의 상징이 되어야 한다. BBC의 공정성은 법적인 요구보다 문화적인 필요 속에서 자란 열정적이고, 자생적인 포부에서 비롯했다. 공정성은 BBC에 책무로 부과된 것이 아니라 BBC가 스스로 발견했다. 이는 BBC 브랜드의 일부이지만, 오래된 신념들과 공유된 상식들이 사라져 버린 다원화된 현대 사회 속에서 다시 재평가돼야 한다.
2. 공정성은 BBC의 운영 재원을 공급하는 시청자와의 계약 관계에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이러한 계약 관계의 특성상, 많은 경우 시청자들의 의견이 BBC의 공정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시청자는 공정성이 무엇인지 아주 잘 알고 있으며, BBC가 공정해야 한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다. 시청자가 점점 더 제작물에 기여하게 되면서, 이러한 시청자 참여가 공정성을 판단하는 데 얼마만큼 반영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 UGC(User-generated Contents)의 빠른 성장이 뉴스 제작에 추가 자원으로 긍정적으로 이용되고 있지만, 그 출처는 분명해야 한다.
3. 공정성은 정당정치와 산업 분야의 논쟁에 대해 계속적으로 적용돼야 한다. 하지만, 현대의 다원화된 정치적?사회적?문화적 환경 속에서 공정성은 더욱 광범위하고 깊이 있게 적용돼야 한다. 오늘날 정치적?문화적 지형은 크게 변화했다. 투표율은 낮아지고 있고, 정당정치의 성향도 경계가 불분명해졌으며, 영국 의회도 여타 민주적 움직임들과 경쟁하고 있다. 인터넷, 블로그, 온라인 청원 등은 현대 민주정치의 활동 무대가 정당정치 형태에서 멀어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현대적인 공정성은 보다 광범위한 의견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4. 공정성은 다양한 관점을 포용해야 하며, 일정 관점을 생략해 버리면 파괴될 수 있다. 공정성을 항상 중간 지점에서 찾을 필요는 없다. 영국 사회의 계속적인 변화는 ‘정상’과 ‘극단’을 판단하는 기준이 변화했다는 것을 뜻한다. 중간자의 위치에서 보도하는 것은 종종 잘못된 위치에 처하게 될 위험이 있다. 공정함이라는 것이 모든 관점에 대해 같은 크기의 장소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정 관점이 이성적이고 진실하게 표현되고 공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표현의 공간이 제공돼야 한다.
5. 공정성은 무미건조한 제작물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다. 공정성은, 선임 기자와 다큐멘터리 제작자의 공정하고 사실에 근거한 판단과, 외부제작자와 작가들의 논쟁적 이고 열정적이고 모험적인 주장들을 담을 수 있는 여지를 지니고 확보해야 한다. 사실에 근거해 결론을 내릴 수 없다면, 제작물들은 지루하고 무미건조할 것이다. 그것을 방지하는 것은 BBC의 선임기자와 다큐멘터리 제작자의 임무다. 또한, 원작자가 분명하고, 시간을 두고 지성적인 의견이 충분히 균형을 이룬다면, 작가 정신이 담긴 논쟁적인 작품을 위한 영역도 확보돼야 한다.
6. 공정성은 BBC가 운영하는 모든 플랫폼과 모든 종류의 프로그램에 적용된다. 어떤 장르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하지만, 공정성에 대한 판단은 각기 다른 장르마다 다르게 적용돼야 한다. 공정성은 모든 제작 분야에 걸쳐 적용되는 요소다. 하지만, 이는 각자 장르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 왜냐하면, 시청자가 분명히 차이를 인식하고 있고, 각 장르가 다르게 공정성을 적용할 수 있는 기회와 도전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오락 분야에서, 공정성은 예전에는 어떤 이유에서든 빈 채로 남겨졌던 창조성의 캔버스 사이사이에 채워질 수 있다.
7. 공정성은 공공 분야의 논쟁을 다룰 경우 가장 명백한 위험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제작물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는 합의를 담거나 사회운동에 가담하는 경우 이러한 공정성의 위협은 가시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욱 주의를 요한다. 사회운동은 항상 조심스럽게 접근돼야 한다. 특히 그것이 논쟁의 여지가 적어 보이는 경우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BBC는 정치적인 주장이 매체를 통해 무임승차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BBC는 국가적 상상력을 표현하는 주요 행사에 충분히 참여해야 한다.
8. 공정성은 쉽지 않은 선택을 동반한다. 어려운 딜레마에 대한 첨예한 내부 논의 과정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지혜로운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BBC가 가지고 있는 저널리즘 분야의 전문성은 모든 부서에서 본받을 수 있는 자원이다. 공정성을 정확하게 규정할 수 없는 만큼, 공정성을 적용할 때 BBC 내부적으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공정성에 대한 BBC 세미나 같은 가상적인 상황을 통해 여러 난제에 대한 기준 적용 훈련을 했다. 이를 통해 편집국장 사이에 일정한 공정성 판단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9. 프로그램 제작자의 입장과 경험에 따라 공정성에 대한 판단은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제작자는 스스로의 상식과 가정들을 끊임없이 시험하고 도전에 처하게 해야 한다.
프로그램 제작자들은 자신의 입장과 믿음이 시청자와 어떤 관계선상에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공정성 세미나에서 BBC의 제작자들 간에 공유된 기준이 있는가에 대해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었다. 새롭고, 비주류적이고, 독창적인 생각이 충분히 많을 수는 없기 때문에, 이러한 신선한 생각을 장려하는 것은 프로그램 편집자와 시리즈 프로듀서들의 의무다.
10. 공정성은 BBC 조직의 가치에 대해 살펴보도록 요구하고 있으며, 이러한 가치가 시 청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평가하도록 요구한다.
방송사로서, 프로그램 제작사로서 BBC는 비인간적일 수 없다. BBC가 개성과 어떤 자세를 갖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BBC는 현재 공공의 목적들을 부여받았다. BBC의 집단적인 행동과 제작 정책은 시청자에게 알게 모르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으며, 이것이 공정성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11. 공정성은 과정이다. BBC가 시청자에게 정직하고 투명하게 보여 주어야 하는 과정이다. 이는 프로그램 제작 결정에 있어 더 과감한 시도를 허용할 것이다. 하지만, 공 정성은 모든 사람들을 만족할 만큼 적용될 수 없다. BBC는 이러한 문제를 숨기지 않고, 공정성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이를 인정하고 수정해야 한다.
투명성은 공정성의 필수적인 부분이고, BBC의 의사 결정 과정에 자신을 가지고 시청자들을 참가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 시청자는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게 될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신뢰의 관계가 보장될 것이다.
12. 공정성은 프로그램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데 참가하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이는 제작보조요원부터 BBC 사장에게까지 똑같이 적용된다. 하지만, 편집장과 실무 프로듀서들은 그들의 팀을 이끌어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은 프로그램 계획 단계부터 제작 전 단계에 걸쳐 공정성의 과정이 유지될 수 있도록 책임져야 한다. 최종 승인 단계까지 공정성에 대한 판단을 미룬다면 너무 늦게 된다.
공정성에 대한 문제점은 대부분은 제작 초기에 나타나고, 프로그램 제작 아이디어가 처음 이야기되는 시점에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공정성의 문제가 딜레마를 야기하면,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고, 이러한 인식은 훈련과 장르와 플랫폼에 대한 이해를 높임으로써 가능하다.
앞으로의 시험들
당장 BBC는 다음달 <라이브 어스(Live Earth)> 공연을 중계하면서 2005년 <라이브 8> 공연과 비슷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시소에서 수레바퀴로> 리포트에 따르면, ‘BBC는 많은 공적인 가치를 추구하지만, 지구를 구하기 위한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그러한 가치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계속된 세미나와 과학자들의 조언에 따라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 문제에 대한 합의를 인정하고, 그에 반대하는 의견에 대해 똑같은 중요도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물론, BBC의 임무는 논의를 마무리 짓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반대 의견에 대한 문은 항상 열려 있다고 덧붙였다.
BBC가 균형을 맞추려는 정적인 시소의 이미지에서 탈피해 끝없는 대화를 통해 덜그럭거리듯 굴러가는 수레바퀴의 이미지를 새로운 시대의 공정성의 이미지로 채택한 것은 아마도 BBC가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자신들의 미래를 결정할 가장 중요한 매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보고서는 대부분의 주요 전국 일간지들을 통해 알려졌고, 인터넷 공간에서는 계속 토론의 소재가 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보고서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수많은 공개 세미나와 합의 과정, 그리고 BBC 공보 팀이 보고서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KBS의 수신료 인상안의 명분 찾기 노력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참고 :
- BBC Trust, From Seesaw to Wagon Wheel: safeguarding impartiality in the 21st century (http://www.bbc.co.uk/bbctrust/research/impartiality.html) - BBC News, http://news.bbc.co.uk/1/hi/entertainment/6763205.stm - BBC News, http://news.bbc.co.uk/1/hi/entertainment/6764779.stm - BBC News, http://news.bbc.co.uk/1/hi/entertainment/6764279.stm - BBC News, http://news.bbc.co.uk/1/hi/uk_politics/4280122.stm - BBC News, http://news.bbc.co.uk/1/hi/uk/4630895.stm Guardian Unlimited, http://media.guardian.co.uk/broadcast/story/0,,2105886,00.html - Guardian Unlimited, http://media.guardian.co.uk/broadcast/story/0,,2105644,00.html - Guardian Unlimited, http://media.guardian.co.uk/broadcast/story/0,,2105655,00.html - Guardian Unlimited, http://media.guardian.co.uk/broadcast/comment/0,,2106813,00.html - Guardian Unlimited, http://media.guardian.co.uk/columnists/story/0,,2099792,00.html - Times Online, http://news.bbc.co.uk/1/hi/entertainment/4723884.stm Times Online, http://business.timesonline.co.uk/tol/business/industry_sectors/media/article1968952.ece - Times Online, http://entertainment.timesonline.co.uk/tol/arts_and_entertainment/tv_and_radio/article1945850.ece - Times Online, http://www.timesonline.co.uk/tol/comment/columnists/libby_purves/article1951185.ece - Broadcast Now, http://www.broadcastnow.co.uk/broadcastnowarticle.aspx?intStoryID=169556
○작성 : 성민제(프리랜서 PD / UCL 영화학 석사: ludologis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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