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통권 243호] 시민 저널리즘의 기수 길모어가 꿈꾸는 세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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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기타 | 등록일 | 06.11.15 | ||||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 조회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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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Bloger) 대 언론인(Journalist). 지금도 이런 식의 분류를 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일까? 상당수의 언론인들이 스스로의 블로그를 만들어 정보를 생산하고 있고, 그렇지 않은 일반인들도 다양한 블로그를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과 정보를 게재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자연재해가 발생한 최근 몇 년 동안 블로거들이 그 어떤 언론인들보다도 놀라운 정보제공 능력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블로거와 언론인을 굳이 나눌 필요가 있을까? 뉴욕 대학의 언론학 교수인 제이 로젠(Jay Rosen)도 같은 생각이었다. 2년 전, 그는 그의 블로그 PressThink에 “블로그와 언론인을 구별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라는 글을 남겼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저항도 만만치 않아서 여전히 블로거와 언론인을 구별하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즉, 블로거 대 언론인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인 셈이다. 거기에 앤 길모어(Dan Gillmor)가 있었다. 55세의 전직 기술 관련 전문 칼럼리스트이자 전문 음악인인 그는 겸손한 사람이기에 소위 언론의 재창조(the reinvention of journalism)란 혁명에 동참할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다. 시민미디어센터(the Center for Citizen Media)의 창립자로서 길모어는 블로거 찬미자와 블로거 폄하자의 중간자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길모어를 그리 만만하게 볼 정도는 못 된다. 그가 세운 시민미디어센터는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애송이에 불과하지만 하버드 대학 법대의 버크만 인터넷 사회 센터(Berkman Center for Internet & Society)와 연합 관계를 맺고 있는 싱크탱크였던 것이다. 그는 센터를 설립하면서 이제 막 꽃을 피우려고 하는 시민 저널리즘이 새로운 기준을 정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것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또한 주류 언론기관들이 기술을 보다 폭넓게 활용해서 그가 이야기하는 ‘바람직한 독자(former audience)’들과 교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하였다. 길모어는 2004년 《우리가 미디어: 사람들에 의한 그리고 사람들을 위한 풀뿌리 언론》이란 책을 집필했다. 이 책에서 쓰고 있는 시민 저널리즘이란 용어는 현재 새로운 미디어 환경을 설명하는 하나의 신조어가 되었다. 그리고 전국적인 정치 웹 사이트에서부터 특정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소한 일들을 언급하는 아담한 웹 사이트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이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점에서 대해서는 크게 개념치 않았다. 워터타운 지역을 커버하고 있으면서 시민 저널리즘을 대변하는 블로거로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지고 있는 H2otown의 창립자이자 편집자인 리사 윌리엄스(Lisa Williams)도 그중의 한 사람이었다. “길모어는 2004년 그가 쓴 책 덕분에 시민 저널리즘의 고유명사와 같은 사람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시민 저널리즘에 대해서 물어봐야 한다면, 그 대상은 바로 길모어일 겁니다”라고 리사는 말하고 있다. 확실한 것은 길모어의 신념이 여러 경계선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과연 현실적으로 그게 가능한 일일까? 그의 말마따나 일반 대중들이 전문 언론인들보다 보다 나은 지식으로 무장되어 있을 순 있다. 그러나 과연 하루를 단위로 벌어지는 언론인들의 삶에서 일반대중들과 전문 언론인들의 협력 관계가 형성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언론인들이 이들 일반 전문가들을 찾아서 인터뷰하고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이 언론인들의 역할인가란 대목에서는 대답이 마땅치 않을 법도 하다. 길모어는 전문 언론인들과 시민들이 서로 협력하는 새로운 형태의 저널리즘을 구상하고 있다. 일단 기자가 관련 기사를 올린 뒤에 시민들은 그 기사에 살을 붙이고 오류를 지적하면서 점점 정확하고 의미 있는 기사로 발전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과정을 남김없이 볼 수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학습 효과도 발생하게 된다. 길모어가 꿈꾸는 세상이 혁명적인 것으로 여겨진다면, 그것은 기존의 저널리즘이 지나치게 협소하고 근시안적인 산업 영역으로 머물러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19세기 현대적 의미의 신문이 등장한 이래로 신문기업과 언론인들의 역할은 크게 변한 게 없다. 하버드 대학에 위치한 니만 언론재단(Nieman Foundation for Journalism)의 감독인 로버트 질즈(Robert Giles)는 그가 나이트 라이더(Knight Ridder)와 가네트(Gannett)에 근무하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신문 사주들이 염두에 두는 경제 마인드가 지나치게 협소하고 건방져서, 종종 혁신이라는 것을 회피하는 경향이 짙다”고 말한다. 또한 “새로운 기술 등장으로 새로운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주들은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에 집착한다”고 밝히고 있다. 즉, 단기적으로는 성과를 거두지만, 장기적으로는 손해를 보는 그런 장사를 한다는 것이다. 제이 로젠은 길모어의 참여언론(participatory-journalism)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해석했다. 현재 로젠은 시민언론센터의 자문위원이다. 그는 시민들이 공조해서 주류 언론들이 무시하는 주제를 발굴하고 새롭게 이슈화시키고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보면, 시민언론센터는 단지 인큐베이터일 뿐이다. 저널리즘의 미래가 어떠해야 한다는 단정적인 신념을 가지고 그 신념 하에 움직이고 있는 그런 곳이 아니다. 1980년대 길모어를 비상주 통신원으로 고용했던 톰 스타이츠(Tom Stities)는 길모어가 일종의 촉매제 역할을 수행한다고 평가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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