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를 이용한 방송 매체의 영향력이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고 한다. 지상파 TV는 케이블 및 위성 방송은 물론이고 새로운 매체가 속속 등장하면서 예전의 힘을 과시하지 못하고 있고, 지상파 라디오의 경우에는 위성 라디오나 파드캐스팅(podcasting) 등으로 인해 갈수록 성장력이 둔화되고 있다. 더구나 상업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공영’ 이름의 방송은 ‘대안(Al- ternative)’란 이름이 없다면 생존하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다. 그렇다면 ‘공영’이란 단어와 ‘지상파 라디오’란 단어가 합쳐지면 그 결과는 뻔하지 않을까?
이러한 예상을 맥없게 하는 것이 바로 미국의 공영 라디오 방송인 NPR(National Public Radio)다. 지난 몇 년 동안 NPR은 폭발적인 청취율 증가를 보이다가 최근 들어 안정을 찾은 것처럼 보인다. 최근 청취율 조사기구인 아비트론(Arbitron)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 봄 현재, NPR의 라디오 방송을 청취하는 청취자 수는 2,550만에 이르고 있고, 이는 2005년 동일 기간에 비해서 1% 증가한 수치다.
NPR의 간판 뉴스 프로그램인 <모닝 에디션(Morning Edition)>과 <고려사항(All thing Considered)>의 청취자 수는 2005년과 별반 차이가 없었던 반면, 뉴스 매거진 포맷으로 새롭게 등장한 <날이면 날마다(Day to Day)>의 청취자 수는 무려 7% 증가했다.
그러나 NPR의 성과, 즉 전년도에 비해서 청취자 수가 1% 증가했다는 것은 단순히 1%의 의미를 훨씬 뛰어넘고 있다. 전년도에 비해서 올해 전반적인 라디오 청취율이 2% 감소했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라디오 방송국들이 힘겨운 나날을 보내는 가운데 거둔 성과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매우 큰 것이다. 1985년 당시와 비교하면 현재 NPR의 청취자 수는 무려 세 배나 증가한 것이고, 2000년도와 비교해도 1.5배가 증가한 수치다.
유독 NPR이 이런 성장세를 보이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이중에서 지역 라디오 방송사들이 점차 뉴스 보도를 꺼리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뉴스 프로그램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 NPR이 부상했다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지금 NPR의 청취자 수가 최고점일까? 한쪽에서는 NPR이 최정상에 도착했고, 이제는 다른 라디오 방송사와 마찬가지로 하락할 길만 남아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의견은 NPR의 도전적인 경영을 생각하면 틀린 이야기이다. NPR는 기존 상업 라디오 방송에서조차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을 때, 인터넷이나 관련 매체의 동태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그 어느 상업 라디오 방송사보다도 잘 구축된 NPR 웹 사이트, 그리고 다른 방송사에서 우물쭈물하는 하는 동안 과감히 진행했던 파드캐스팅 등은 현재 대세가 되었다. 통상 상업방송이 길을 만들면 공영방송이 그 길을 따라가는 형태였던 미국의 방송사에서 NPR은 공영방송사가 앞장서서 길을 열었던 첫 사례가 된 셈이다.
이번 조사 결과를 살펴볼 때 NPR은 현재 매우 건강한 상태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한 가지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 있다. 그건 바로 NPR의 청취자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성이다. 퓨 리서치 연구소가 이번 여름 조사한 것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민주당원의 수가 급격하게 늘고 있다. 2006년 현재, 민주당원의 22%는 정기적으로 NPR을 청취하고 있는 반면, 공화당의 13%만이 NPR을 정기적으로 청취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10년 전 1996년 유사 조사에서는 민주당의 15%, 그리고 공화당원의 11%가 NPR을 청취한다고 답했다. 지난 10년 동안 공화당원은 불과 2% 성장에 그친 반면, 민주당원의 경우에는 무려 7%가 증가한 셈이다. NPR이 지나치게 진보적이라는 세간의 평가와 맥락을 같이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는 질문에 NPR의 대변인은 조사결과와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 대변인은 앞서의 자료가 민주당원이냐 공화당원이냐는 당성으로 구분하였기 때문에 그런 조사가 나왔다고 이야기하면서,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NPR의 청취자는 진보, 중도 그리고 보수가 골고루 적당한 분포를 이루고 있다고 답변하고 있다. 부디 이러한 내용이 사실이길 바란다. 소중한 NPR이 정치적으로 편향되었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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