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5일 미 의회 법사위원회는 인터넷 음악 라이선싱을 재규정하는 ‘Copyright Modernization Act’를 최종 문서화할 계획이었으나, 시민단체뿐만 아니라 거대 메이저 음반 산업, 음악가, 작곡가들의 교차된 이해관계와 압력 때문에 이를 연기하였다. 미국 시민감시단체인 Public know- ledge의 대표 지지 손(Gigi Sohn)은 이 제안된 법안이 궁극적으로 모든 음악인들을 거대 음반 산업의 이윤 창출을 위한 제단에 희생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이 법안의 주요 쟁점들 중 가장 첫째는 가수나 작사․작곡가들에 대한 음반사들의 로열티 지급과 관련이 있다. 이 법안 아래에서는 음악저작물을 관리하는 지목된 에이전트들(designated agents)의 대부분이 궁극적으로 음반 산업을 대표하는데, 이들은 음악가들이나 작사․작곡가들에게 지급되어야 할 ‘기계적 로열티(mechanical royalties)'를 재분배할 권한을 갖는다. 더구나 음반 산업에 연관된 각종 로비 기금의 상당수를 기계적 로열티 안에 포함시킴으로써 음반판매를 통해 음악가들과 작곡․작사가들이 얻게 될 이윤의 중요한 부분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게 지지 손의 지적이다. 음반판매 수익의 불과 3~5%만을 분배받으면서도 대부분 이러한 저작권의 로열티 수익을 통해서 음악 활동을 벌이는 대부분의 음악인들의 입장에서는 생존의 터전이 위협받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저작물 이용 방식을 제한하는 기술 개발 현재 문화 산업 전반에서는 이처럼 저작권 혹은 지적재산권을 중심으로 문화생산의 구조와 관련된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뿐만 아니라 문화소비의 방식과 구체적으로 연관된 기술적 장치를 개발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디지털 저작권 관리(Digital Rights Management, DRM)이다. DRM의 기본 목적은 저작권 이용자가 승인하지 않는 방식으로 해당 디지털 콘텐츠를 이용하거나 배포하는 기술적 능력을 제한하는 것인데, 달리 말하면 시장을 분할하거나 각기 다른 디지털 콘텐츠 배포 창구를 창출하거나 강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가령, DVD 산업에서 지역 코딩(regional coding) 방식을 채택하여 한국과 미국에서 각각 출시된 영화 DVD가 각기 해당 지역 코딩에 상응하는 DVD 플레이어에서만 재생 가능한 것이 그 한 예이다. 또 다른 예로, 인터넷 음악 웹 사이트 냅스터(Napster)를 통해서 다운로드 받은 음악 파일들을 미국 최대 인기 MP3와 동영상 플레이어 아이파드(iPod)에서는 들을 수가 없다. 각기 다른 DRM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DRM 옹호자들은 DRM이 새로운 멀티미디어 시장에서 디지털 콘텐츠의 안전한 배포와 더불어 디지털과 인터넷의 기술적 파워를 최대한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사업 모델을 형성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 DRM 비판자들은 디지털 콘텐츠의 보호라는 커다란 대의에는 기본적으로 찬성하지만, DRM이 불법 디지털 콘텐츠 복제와 생산에 관하여 할 수 있는 일이 (해킹 등에 의해) 기술적으로 거의 없으며, 결국 DRM이 가져올 파급효과는 디지털 콘텐츠 소비자들의 이용범위를 불필요하게 제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시민감시단체인 ‘민주주의와 테크놀로지 연구소(Center for Democracy and Technology)’는 현재 소비자들의 DRM에 대한 이해 정도가 어떠한지에 관한 연구나 시장조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DRM 시스템의 기술과 사회적 이용범위를 설정하는 주요한 역할이 현실적인 의미에서 정부보다는 디지털 콘텐츠 생산을 담당하는 기업들, 즉 시장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디지털 콘텐츠 이용자들에 대한 DRM의 사회적 효과와 파급력을 제대로 측정할 만한 지표(metrics)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 연구소는 따라서 DRM의 사회적 효용성 평가를 위한 주요한 지표로서 투명성, 이용자에 대한 사회적 효과, 개인정보 보호, 새로운 디지털 콘텐츠 소비 개념 창출 등을 제안하고 있다. 이 4가지 안을 바탕으로 현재 디지털 문화산업 전반의 핵심적인 논제로 부상하고 있는 지적재산권을 다루는 DRM 시스템의 현황을 살펴본다.
DRM의 사회적 효과에 대한 투명성 DRM 시스템이 만들어 내는 사회적 효과에 대한 투명성이란, 소비자들이 과연 자신들이 이용하는 MP3 음악 파일이나 디지털 비디오 영상의 이용범위와 능력을 제한하는 DRM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고 있는가의 문제이다. 가령, MP3 음악 다운로드 웹 사이트 냅스터(Napster)의 경우 한 달에 15달러라는 저렴한 이용료와 함께 무제한 음악 스트리밍과 다운로드 서비스에 가입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MP3 플레이어나 컴퓨터 운용 시스템에서만 자신이 가입한 서비스를 제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왜냐하면, 이 경우 가입자는 음원에 대한 소유권(ownership)을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음원에 대한 접근권(access)을 구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냅스터 이용자가 갖는 당혹감은 DRM을 디지털 콘텐츠 이용의 기술적 부담 장치로 폄하할 수 있는 쉬운 근거가 될 것이다. 따라서 DRM 시스템 정보의 구체적인 제공 시기와 정보 제공 방식, 그리고 해당 디지털 콘텐츠(즉, 음악 파일이나 비디오) 구입이나 이용 후 DRM 관리와 업데이트 등에 관한 정보를 어떻게 소비자들에게 전달할 것인지에 관해 보다 상세하고 투명하게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민주주의와 테크놀로지 연구소’의 주장이다.
디지털 콘텐츠 이용에 관한 DRM 효과의 구체적 측정을 위한 소비자들의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 이용 행태 1) 디지털 콘텐츠의 개인적 활용과 복제 디지털 콘텐츠가 이용자들에게 가져올 수 있는 시간적‧공간적 범위 활용의 이점(time and place shifting), 비상업적 공정 이용(fair use), 그리고 디지털 콘텐츠가 궁극적으로 이용자들의 문화적 창의성 발향에 어떻게 도움을 주는가의 여부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먼저, 위에서 예를 들었던 냅스터 음악 서비스의 경우를 다시 한 번 들어 보면,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개인정보를 통하여 로그인을 하고 반드시 자신의 컴퓨터가 인터넷에 접속되어 있어야 한다. 게다가 서비스에 접속하기 위해서 이용 중인 컴퓨터는 자신의 냅스터 계정을 통해 반드시 등록되어 있어야만 한다. 이와 같은 사례는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 이용의 가장 커다란 이점인 시공간 활용을 제한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상호작용성에 기반한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 시장의 기본 목표를 저해하는 것일 수 있다. 게다가 소비자들은 ‘Audio Home Recording Act’에 의거 비상업적, 개인적 용도의 제한된 저작물의 복제를 허용 받고 있다. 하지만 DVD의 경우 자신의 컴퓨터 하드웨어나 다른 복사용 장치에 복제하는 것이 애초부터 제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특정 부분을 발췌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음악용 CD에서도 최근 몇몇 음반사들은 굽기(burn) 기능을 허락하기도 하지만, 원칙상 저작권 소유자의 별도 허가와 특정 소프트웨어 없이는 음악 중 특정 부분을 발췌하는 것이 현행 ‘Digital Millennium Copy- right Act’에서는 불법에 해당한다.
2) 소비자 선택과 DRM의 호환성(interoperability) 애플사의 MP3 플레이어 아이파드에서는 냅스터를 통해 다운로드 받은 음악 파일을 들을 수 없다. 또한 영화 제작사의 세계 지역별 시장 공략 전략을 위해 DVD 영화는 지역별 코드(region code)를 갖는다. 한국 DVD 시장에서 출시한 영화 <다빈치 코드>를 미국에서 구입한 DVD 플레이어에서는 시청할 수가 없다. 이처럼 DRM이 제한하는 상호작용성의 문제는 소비자의 선택을 어떤 정도에서는 불필요하게 제한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DRM의 기본적인 목적과 디지털 기기 플랫폼의 다양성을 고려한다면, DRM을 통한 모든 디지털 콘텐츠 서비스가 각기 완벽한 호환성을 갖추는 것은 실제로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앞으로 DRM의 적정한 디지털 콘텐츠 보호 기능과 더불어 최대한의 호환성을 고려하는, 최근 미국의 디지털 산업에서 진행되고 있는 DRM 호환성의 방식 및 현황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먼저, 모두 같은 DRM 플랫폼을 채택하는 방식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DRM 시스템이 이것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는데, 상당수의 디지털 음악 다운로드 웹 사이트나 휴대용 디지털 기기(가령, PDAs) 기업들이 디지털 파일을 작동시키는 플랫폼으로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DRM의 호환성을 위하여 단일한 플랫폼을 사용하는 것은 자칫 시스템 구축의 폐쇄성과 독점의 이슈를 만들 수 있다. 두 번째, 일련의 디지털 콘텐츠 기업들이 합동 DRM 표준을 구축할 수 있다. 지난 5월 인터트러스트(Intertrust), 소니, 필립스, 마쓰시다, 삼성 등 소비 가전 기업들은 ‘Marline Developer Group’이라는 합동 DRM 표준 개발을 위한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첫 번째 구체적 기획안을 발표하였다. 이와 같은 합동 표준 DRM 구축은 첫 번째의 단일 DRM 방식 채택에 비해 유연성을 갖지만, 표준 DRM 구축을 위한 시장 경쟁의 부담을 소비자들에게 전가시킬 수 있는 소지가 있을 수 있다. 세 번째, 최근의 Open Media Commons(www.openmediacommons.org)는 공개적이고 로열티를 부과하지 않는 라이선스 공유 방식을 목적으로 한 DRM 시스템 개발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컴퓨터 OS 시스템에서의 리눅스나 협동적인 저작권 사용 방식인 Creative Commons처럼 공개적이고 유연한 대중적인 참여가 가능하지만, 이미 거대 자본에 의해 구축된 DRM 시장 경쟁에서 인지도와 안정성을 어떻게 획득하는가 등이 중요한 과제라 하겠다. 네 번째, ‘민주주의와 기술 연구소’가 마지막으로 제안하고 있는 방식은 각기 다른 DRM 플랫폼을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는 표준 인터페이스나 프로토콜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는 특정한 디지털 콘텐츠(가령, 냅스터를 통해 다운로드 받은 음악 파일)를 획득하기 위해 필요한 이용자의 개인정보, 권리 등과 연관된 정보를 어떤 표준 포맷 아래 저장케 한 후, 이 정보를 기반으로 표준 정보처리 방식을 공유하는 각기 다른 DRM과 쉽게 호환하는 방식이다. 최근 선마이크로시스템의 Project DReaM이 여기에 해당한다.
3) 디지털 콘텐츠의 단순 소비와 창의성 현재 소비자들이 이용하는 대부분의 DRM 시스템에서는 디지털 콘텐츠의 단순 소비가 주된 디지털 콘텐츠 이용 방식이다. 책이나 비디오테이프 등을 단순한 개인적 목적으로 빌려 주거나 중고시장에 팔 수 있는 방식이 현재의 DRM 시스템 아래에서 구입된 DVD, CD, MP3 음악 파일에는 적용될 수 없다. 이와 같은 디지털 콘텐츠의 단순 소비는 디지털 시스템의 사회적 유용화 목적과 부합되지 않는 오히려 아날로그 시대보다도 뒤처진 문화소비 방식이다. 현재의 지적재산권이나 저작권법에 적합한 디지털 콘텐츠의 상호교환, 발췌, 재이용 등이 진지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DRM과 개인정보 보호의 문제 DRM은 디지털 콘텐츠의 접속과 이용을 위해 해당 이용자의 구체적인 개인정보를 기록, 전송, 교환한다. 하지만 가령 한 인터넷 음악 다운로드 웹 사이트로부터 소비자의 개인정보가 유출된다면 사회적 피해에 관한 합의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는 상당히 논쟁적인 사안이다. 실제로 2005년 가을 최대 음반 메이저인 소니 BMG는 자사가 발매한 수백만 장의 CD의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였다. 하지만 이것이 룻킷(rootkit)이라 불리는 스파이웨어에 상당한 테크닉을 이용하여 설치된 컴퓨터 속에서 보안상의 취약점을 드러내었던 사례가 있다. 당시 소니 BMG사는 상당수의 법률적 소송에 직면했었고, 결국 해당 소프트웨어의 사용을 중단해야만 했다. 또한 최근 서비스를 시작한 구글의 <구글 비디오>를 통해서 구입된 비디오에 암호화된 개인정보를 입력하고 이용자가 비디오를 볼 때마다 이 정보를 구글에 전송한다. 훨씬 정교하게 타킷화된 개인정보의 관리가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DRM의 목적과 부합하는 소비자 이익 개념의 창출 디지털 콘텐츠의 지적재산권 소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DRM이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문화 선택의 개념을 제공하고 있는지 질문할 필요가 있다. 가령, DRM을 통해서 시장은 이윤창출 범위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는 반면에, 소비자들은 여전히 전통적인 시장 모델 DRM 시장의 입장에서는 소비자들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은 시장 모델 속에서 갇혀 있는지에 관한 문제이다. 최근 미국의 할리우드 스튜디오는 인터넷 다운로드 서비스를 통해서 저장한 영화를 DVD에 복제하여 텔레비전을 통해 시청할 수 있는 DVD 영상 복제 완화 방침을 계획 중이다. 이 경우도 DRM이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용자들은 다운로드 받은 영상을 제한된 수만큼 DVD에 복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조치는 디지털 콘텐츠 소비의 보다 진전된 개념을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환영받을 만하다.
◦ 참조 : - Center for Democracy and Technology, Evaluating DRM: Building a Marketplace for the Convergent World, Version 1.0, retrieved 15 September 2006. - Gigi Sohn, Copyright Modernization Act: Also Bad for Musicians and Songwriters, at http://www.publicknowledge.org/node/625. ◦ 작성 : 성민규(미국 아이오와 대학교 커뮤니케이션 스터디즈학과 박사과정, MinkyuS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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