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시장의 세계 평균 성장률은 5.2%지만, 국내 성장률은 2.3%에 그치고 있다." 이는 미국의 조사 회사의 자료를 바탕으로 '디지털 콘텐츠 협회'가 정리한 결과ld다. 이 협회는 6월 18일 도쿄에서 열린 <디지털 콘텐츠 백서 2004> 발행에 맞춰 열린 기자회견장에서 이와 같은 결과를 공표했다. 2002년의 콘텐츠 산업(영화, 음악, 게임, 출판, 인터넷, 정보 서비스 등)의 세계 시장 규모는 124조 엔으로, 이 중 약 40%인 51.7조 엔을 미국이 점유하고 있다. 일본은 10.3%인 12.7조 엔, 중국은 1.7%인 2.1조 엔, 한국은 1.2%인 1.5조 엔으로 각각 나타났다. 전년 대비 성장률로 보면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인 국가가 중국으로, 13.1%였으며, 다음으로 한국이 6.5%였다. 일본은 2.3%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데에 그쳤다.
"미국은 할리우드를 필두로 한 영화 산업이 전통적으로 세계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유지해 왔으며, 중국은 압도적인 인구로 거대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한국은 콘텐츠 산업을 국가 전략으로 진흥하여, 성과가 나타나나고 있다"고 각국의 높은 점유율과 성장률의 요인을 이 협회 기획조사부 시마모토 연구주임은 분석한다. 한편, 일본 국내 시장은 출판이나 신문 등 아날로그 콘텐츠가 저조하고, 방송 분야의 콘텐츠도 겨우 현상을 유지하는 상황으로, 디지털 콘텐츠의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고 시마모토 씨는 지적했다.
이 협회가 정리한 작년 일본 국내 콘텐츠 시장 규모는 12조 7,096억 엔으로, 전년 대비 1.4% 증가를 보였고, 이 중 디지털 콘텐츠 시장의 성장은 9.2%인 2조 1,499억 엔이었다. 디지털 시장의 성장은 영상 계열 콘텐츠의 31.4% 성장률이 견인하고 있지만, CD 등 음악이나 게임 콘텐츠는 전년보다 감소하여 성장률 신장에 타격을 주었다. 또한 일본의 콘텐츠 업계는 해외 수출 분야에서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국내의 방송 업계는 현상태로 먹고 살 만하다는 인식 때문에, 콘텐츠 해외 수출 등의 새로운 전개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시마모토 씨는 말했다. 경제산업성은 일본 국내 콘텐츠 수출액을 2010년에는 1조 4,928억 엔(2001년의 약 4.5배)으로 늘릴 것을 목표로 삼고 있으나, 달성은 곤란한 정세다.
이와 같은 저조한 성장의 큰 원인은 국내 시장에만 의존해 온 콘텐츠 업계의 관행 때문이지만, 지상파 민방의 광고료에 의존한 수익 구조가 디지털화된 환경으로 인해 확대된 콘텐츠 산업에 적용될 수 없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즉, 디지털화된 미디어 환경 속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콘텐츠 업체는 자사의 콘텐츠를 소비자들에게 팔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매력적인 콘텐츠의 제작이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기존의 민방이 방영권 구매에서 콘텐츠 제작으로 방향 전환하고 있는 흐름과 반대로, 새롭게 콘텐츠 사업에 진출한 업체들은 기존의 관행, 즉 방영권 구매에 매달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사업 방식이 개선되지 않는 이상 디지털 거품이 꺼질 것이고, 국내시장과 국제 시장 전체에서 일본 콘텐츠 사업이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일본의 신규 콘텐츠 업체의 문제점
디지털화, 브로드밴드화 등 미디어 사업에서의 인프라가 급격하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콘텐츠 업계의 최대 과제는 변화하는 인프라에 맞춘 콘텐츠의 양과 질을 높이는 일이다. 하지만 일본의 콘텐츠 업계에 새로 진입한 사업자는 '콘텐츠 투자'와 '방영권 매수'를 착각하여 자금을 낭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NHK와 민방 각 사에 의한 지상파 방송이 널리 보급되어 있기 때문에, 'TV 방송 시청'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할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신작 영화가 개봉하면 영화관에 가서 돈을 내고 영화를 보고, 개봉이 끝난 영화는 비디오 대여점에서 돈을 내고 빌리지만, 집에서 TV를 볼 때는 일부러 대가를 지불하려고 하지 않죠. 지금까지는 광고수익이 제한된 방송국의 수지를 맞춰 줬으니 그럴 수 있었지만, 지금부터는 미디어 주변에서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이런 수익 모델이 불가능"하다고 콘텐츠 업체 간부 이하라 씨는 말하면서, "새롭게 콘텐츠 사업에 뛰어든 업체에서도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다시 한 번 원점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새롭게 변화한 미디어 환경에 신규 가입한 업체들은 대부분 인프라 공급 업체들이다. 고도의 인프라를 제공할 자금력을 갖추고 있는 이 업체들은, '원칙적으로는' 우수한 콘텐츠를 준비해야 비즈니스가 성공하리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광고수입을 주된 수입원으로 생각하면 기득권을 가진 지상파 민방을 적으로 돌리게 되므로, 콘텐츠 시청의 유료 모델을 검토하고 있다. 따라서 기존의 지상파 민방 각 사들이 직면하지 않았던 문제점, 즉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대가를 지불하게 만들 것인가"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문제점에 신규 콘텐츠 업체들은 직면하고 있는 셈이다.
'유료' 서비스를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우량한 콘텐츠가 필요하다. 그랬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영화, 음악, 스포츠 등의 장르인데, 방송 사업자가 아닌 이상 이러한 장르의 콘텐츠를 구비하기 위해 갑자기 '만든다'는 발상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상응한 대가를 지불하여 방영권을 구매한다는 모델이 콘텐츠 사업의 일차적인 방법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기존의 방송 사업자도 처음부터 콘텐츠를 제작한 것은 아니고, 지금도 해외에서 콘텐츠를 사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방영권 구매가 차지하는 비율은 확실히 줄고 있고, 사업자 자신이 제작-저작권을 가질 수 있는 형태, 즉 멀티 유즈(multi use)의 전개를 시야에 넣고 콘텐츠 제작에 주력하고 있다.
민방의 콘텐츠 제작으로의 방향 전환
지상파 민방들이 콘텐츠 제작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스스로의 제작력으로 충분히 우수한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국제적인 스포츠 이벤트나 할리우드 영화의 방영권료가 갈수록 높아져 투자비를 회수하는 일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물론 스포츠 이벤트 등을 방영하는 것은 지상파 방송의 '사명'이기 때문에 비즈니스 감각으로만 생각할 수는 없으나, 스포츠·영화·음악 등의 방영권을 사들이는 일만으로는 투자비용 회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금력이 있는 거대 민방도 방영권 구입만으로 콘텐츠 투자에서 이익을 올릴 수 없게 된 것이다.
화제를 불러일으킨다는 효과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예전처럼 할리우드 초대작의 방영권을 30억 엔이나 주고 구매한다면 민방도 적자에 허덕이게 될 것이다. 3,000만 엔의 광고주를 12사 정도 확보해도 3억 6,000만 엔의 수입으로 그치기 때문이다. 30억 엔의 투자비용을 회수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셈이다. 치열한 시청률 경쟁 때문에 불가피하게 비싼 방영권을 지불하고 대작을 구매하는 경우가 있지만, 적자를 각오하고 시청율 경쟁에서 이기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다소의 리스크는 있더라도 직접 제작하는 편이 자금 회수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 나온다. 유료 재방송 TV의 콘텐츠로 2차 사용하는 것은 물론, 본방송 때는 시청률이 낮았던 작품도 DVD로 출시하면 대히트를 기록하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현재 급속도로 보급되는 브로드밴드 방송의 최대 난점이 콘텐츠 확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직접 제작한 콘텐츠의 판매처는 다각화되고 있는 경향이다. 이렇듯 자금 회수의 경로를 다수 확보해 둠으로써 콘텐츠의 성공 여부에 따른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상파 민방의 콘텐츠 투자의 중점은 이러한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러나 새롭게 미디어 산업에 참여하기 시작한 인프라 계열 사업자들은, 회사 규모가 큰 탓도 있어 방영권 구매에 열을 올리고 있는 실정이다. 할리우드 영화 등을 둘러싸고 일본 회사끼리 방영권을 다투어 요금을 올리는 일이 허다하고, 이러한 사정을 꿰뚫고 있는 할리우드측은 일본 사업자와는 처음부터 높은 가격으로 흥정을 시작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물론 후발 업자인 인프라 사업자의 비즈니스 전개가 어렵지만, '콘텐츠 사업=방영권 구매'는 아니라는 사실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고 이하라 씨는 지적한다. 이러한 신규 사업자의 비즈니스 모델을 방영권 구매에서 콘텐츠 제작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기존의 중소 제작 프로덕션을 활용해야 한다고 이하라 씨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일본의 콘텐츠 제작을 현장에서 담당하고 있는 프로덕션은, 오랫동안 방송국의 하청으로 만족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각 프로덕션의 경쟁력은 약화일로를 걸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브로드밴드 사업자의 거대 자본력과 중소 프로덕션의 제작 노하우가 결합된다면, 위에서 지적한 콘텐츠 사업의 문제점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 브로드밴드 사업자는 IP 통신 계열에서 방영할 수 있는 콘텐츠를 원하고 있으며, 중소 프로덕션은 그러한 콘텐츠를 제작할 노하우를 충분히 축적하고 있다.
프로덕션을 강하게 하기 위해서 자금을 투자하는 일을 '콘텐츠 자주 제작'으로 파악한다면, 지상파 민방이 아니더라도 방영권 구매로 사업 모델을 세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일본 콘텐츠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점은 개선될 전망이다. 나아가 성장 둔화가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 일본 콘텐츠 산업도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개선될 수 있다. 방영권 구매에 투자되던 자금이 다수의 중소 프로덕션에 흘러들어가 우수한 콘텐츠를 제작하면, 콘텐츠 수입이 아니라 수출로 사업의 체질을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물론, 중국, 한국에도 뒤처지기 시작한 일본의 콘텐츠 산업은 이러한 체질 개선을 통해 국내의 미디어 산업 경기를 되살리려 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듯 일본에서 통용되어 온 '콘텐츠 투자=방영권 구매'라는 등식은 지상파 민방을 시작으로 변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으며, 이제 사업 모델을 정비해 나가고 있는 신규 업체들도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 예상된다. 하지만 급속하게 확대되는 콘텐츠 산업의 세계화, 디지털화에 발맞추어 일본 미디어 업계의 체질이 개선될지 여부는 당분간 지켜봐야 한다고 일본 '디지털 콘텐츠 협회'의 시마모토 씨는 지적한다.
○ 참조 : http://www.itmedia.co.jp 아사히신문 2004. 6. 13. 일본산업신문 2004. 6. 7., 6. 19.
○ 작성 : 김 항(일본 통신원, ssanai7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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