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독일 방송계는 스포츠 관련 보도 및 특집 다큐멘터리로 붐을 이루고 있다. 올해 2004년은 독일이 스위스 베른에서 월드컵 우승자가 된 지 50년이 되는 기념적인 해이면서 동시에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이 개최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특히 독일의 제1, 제2 공영방송인 ARD와 ZDF는 다른 상업방송사 못지않게 스포츠 관련 프로그램에 방송시간을 대폭 할애할 계획을 마쳤다. 이를 위해 기존의 문화, 정보 관련 주요 방송 프로그램들이 스포츠 생중계 방송을 위해 잠정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도 신설된 디지털 채널들은 올림픽 방송을 위해 총동원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공영방송의 스포츠 방송의 대대적인 확대 편성 계획에 대해 언론 비평가들은 우려의 시선을 던지고 있다.
공영방송이 가뜩이나 오락뿐 아니라 정보 프로그램에서조차 상업성을 노골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지금, 공영방송의 스포츠 집약 편성 계획 역시 이 상업성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공영방송의 현주소를 가늠할 수 있는 '공영성'에 대한 평가 척도가 재요구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여기서는 공영방송의 스포츠 방송의 대대적인 확대 계획에 대해 조망하고, 이러한 스포츠 집약 방송 편성이 갖는 문제점 등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ARD와 ZDF의 스포츠 관련 방송의 확대 편성
축구 유럽선수권대회 방송에 50시간, 프랑스 여행에 관한 방송에 50시간, 올림픽 게임 방송에 150시간. ZDF는 1월에 개최했던 연두 기자회견에서 이러한 각도에서 올해의 TV방송의 방향을 정하고 방송의 책임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 즉, 연거푸 스포츠 생방송을 내보낸다는 방침이다. 특히 ARD와 ZDF는 이미 올해에 전례 없이 수차례에 걸쳐 대대적인 올림픽 생방송 보도를 실시할 것임을 자랑해 왔다. 이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과연 그 모든 스포츠 생방송 보도를 누가 시청하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이런 의문이 무색할 정도로 ARD와 ZDF는 앞으로 다가올 올림픽 생방송 중계 계획뿐 아니라, 과거 축구사에 한 획을 그었던 '대사건'들을 대거 부각시킬 방송 프로그램들을 실제로 준비해 놓고 있다. 왜냐하면, 올해 7월 4일은 독일 축구팀이 1954년 스위스 축구 월드컵 경기에서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헝가리 축구팀을 제압하고 '베른의 기적'을 일으킨 지 50주년이 되는 축구사의 기념비적인 날인데다, 초여름과 여름철에는 올해 내보낼 계획이었던 스포츠 다큐멘터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기 때문이다.
현재 ARD와 ZDF는 1954년 스위스의 축구 월드컵 경기 이후 세계 축구계의 황태자로 명성을 높일 수 있었던 당시 독일의 환희를 재확인할 수 있는 50주년 기념 특집방송들을 준비하고 있고, 뿐만 아니라 1974년 7월 6일에 있었던 독일 뮌헨의 월드컵 대회 성공담에 대한 ARD의 다큐멘터리 역시 대기 중에 있다.
한편, 이러한 공영방송의 대대적인 올 여름 스포츠 방송 계획은 상업성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과거의 역사적인 스포츠 사건들을 재기념하는 방송에는 자세한 배경 보도가 없이 환희에 싸인 배경 무대만이 무의미하게 제시된다는 지적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다. 비평가 라이너 브라운(Rainer Braun)은 3월 30일자 <방송정보Funkkorrespondenz)>지에서 "공영방송이 자체적으로 현행 규칙 안에서 제시하는 스포츠 저널리즘은 상업적인 경쟁사들과 비교할 때 결코 질적으로 높은 수준이 아니다"라며 공영방송의 스포츠 방송 관행에 대해 비판을 제기했다. 이러한 비판이 겨냥한 것은, 스포츠 사건이 갖는 시사성과 역사성에 대해 TV 책임자들이 무관심하다는 점이다.
Arte는 최고의 스포츠 방송
배경 보도는 오늘날 '매우 어렵게' 실행되어지고 언제나 제2, 제3방송 영역에서 이루어진다고 MDR의 편집장 볼프강 판트리히(Wolfgang Fandrich)가 <방송정보>지와의 인터뷰에서 언급했다. MDR은 '세기의 시합'을 공동 제작했고, 이는 지금까지도 방송사상 최고의 스포츠 다큐멘터리로 평가된다. 미국의 감독인 바락 구트만(Barak Goodman)의 주도 아래 제작된 이 다큐멘터리는 과거 헤비급 권투선수였던 조 루이스(Joe Louis)와 막스 슈멜링(Max Schmeling)에 관한 것으로, 특히 1938년 6월에 개최된 그들의 시합을 집중 조명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2월 29일 독불 공영 문화예술 채널인 Arte의 저녁 방송에서 아주 핵심적인 주제로 다뤄졌다. 특히 여기서 부가적으로 조명된 측면은 히틀러의 나치 독재시대에 저명인사 슈멜링이 한 역할에 관한 것이다.
구트만 감독은 당시 개최된 시합을 스포츠 역사의 의미심장한 정치적 사건으로 표현했는데, 그 이유는 흑인 선수 루이스가 한 남성 백인을 KO패로 쓰러뜨렸기 때문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스포츠의 한 현장을 능동적이고 비판적인 정치적 시선으로 접근한 좋은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그 밖에도 축구 현대사에 대한 배경 보도 차원에서 여러 스포츠 다큐멘터리들이 제작되었다. 일차적으로 2003년 말에 Arte에서 방송되었던 영화 <운명의 장난: 이라크의 베른트 슈탕에(Schicksalsspiel: Bernd Stange im Irak)>가 올해 4월 12일 MDR TV에서 재방송되었다. 이는 이라크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던 독일 코치에 관한 이야기를 주제로 하고 있다.
또한, ZDF와 Arte에 의해 제작된 다큐멘터리 <베른의 기적-실화(Das Wunder von Bern-Die wahre Geschichte)>가 4월 27일에, 그리고 5월 20일과 6월 6일에는 후속작으로 제작된 <베른의 기적-시합(Das Wunder von Bern-Das Spiel)>이 각각 ZDF에서 방송되었다. 이 두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들은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1954년도 월드컵 축구대회에 관련된 사진들을 발견했고, 그 사진들은 독일과 유고슬라비아(2:0)의 16강 시합을 촬영한 것들이 주를 이룬다. 이는 '기적적인 것'이었다기보다는 월드컵 승자진출전(토너먼트)을 위한 많은 시합에 대해 연상하게 하는 것이었고, 이 속에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은 맥없이 간신히 빠져 나가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의문의 여지가 있는 것은, 왜 1954년에 개최되었던 월드컵 축구대회가 축구사가 아닌 중요한 역사적 의미라는 견지에서 다뤄지지 않고, 기념일에 즈음하여 축구사 차원에서만 다뤄지는가 하는 점이다.
스포츠 방송 보도의 과잉이 초래할 위험
지난 5월 5일, 서부독일방송 WDR은 비판적인 다큐멘터리 <신화, 거짓맹세, 선수권 시합-100년 Schalke 04>을 45분으로 축소했으나 5월 8일에는 Schalke 04 축구팀의 100주년 창립일을 기념하는 대중 축제에 관한 방송에는 10시간이나 할애했다. 이 때문에 독일의 비판적 일간지 <타게스차이퉁(Tageszeitung, taz)>은 "기존 서독 방송이 북한의 국영방송으로 돌변했다"고 비난했다.
NDR TV방송은 5월 6일 9시에 장년층 남자 테니스 승자진출전을 보도하며 3시간을 할애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간의 데이비스컵 경기 방송에서 NDR 스포츠 책임자 게르하르트 델링(Gerhard Delling)은 진행자로 관여했다. 그러나 NDR의 방송권역에는 장년층 시청자 중 단 17만 명(시장 점유율 4.5%)만이 이 프로그램의 시청을 원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올림픽 하계 게임에 대한 문제 역시 다시 제기될 필요가 있다. ARD와 ZDF는 아테네에서 온 시시각각 변하는 정보를 주요 프로그램에서만이 아니라 새롭게 창설한 디지털 올림픽 채널에서까지 중계 방송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4개의 채널(Eins Festival, Eins Muxx, ZDF 다큐 그리고 ZDF 극장 채널)의 정규 방송은 경기 시간 동안에 완전히 올림픽 생중계 방송으로 대체된다.
이러한 방송 기획과 함께 ARD와 ZDF는 "스포츠 방송을 위해 기존에 전례가 없는 확대 방송 편성을 시도할 것"이라고 독일의 유력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너 차이퉁(FAZ)>은 전했다. 그러나 이 무리하게 확대 편성된 스포츠 방송을 누가 시청하게 되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미지수로 남는다. 예컨대,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인 독일의 보리스 베커(Boris Becker)와 슈테피 그라프(Steffi Graf)로 인해 독일 내에서도 테니스 붐이 생겨났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테니스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가라앉았을 때 TV 방송책임자들은 당혹스러워했고, 낭패감을 맛보아야 했다. TV방송사들은 테니스 붐에 따라 테니스 스포츠 관련 방송을 대대적으로 확대 편성해 놓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한 분석에 따르면, TV 시청자들은 테니스와 관련된 TV 보도의 증가와 과포화 상태에 염증을 느낀 것으로 조사되었다. 특히 유럽 축구연맹 Uefa는 작년에 개혁의 일환으로 챔피언 리그에서 개최될 경기 수를 축소시켰다. 이는 TV방송사에서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예선전을 생방송 중계방송으로 내보냈다는 데 비판적 평가가 나온 이후에 실시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ARD와 ZDF의 올림픽 중계 방송 기획자들이 무리한 방송 편성의 확대 이전에 기존의 사례를 충분히 숙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다시 질적인 공영성의 확보로
문제는 올해 8월 13일부터 29일까지 개최될 아테네 올림픽 방송을 위해 전력을 쏟는 독일의 공영방송사가 과거의 사례, 즉 TV 스포츠 보도의 확대 팽창에 대한 시청자들의 우려와 확대 편성에 따른 정규방송의 폐해 사례에 대해 과연 관심이나 있는가 하는 점이다. ARD와 ZDF는 이미 총 1,400여 시간에 달하는 프로그램들을 확대 편성할 기획 아래 있고, 이미 지적했듯이 문화·정보에 관한 주요 핵심 프로그램들의 정규 방송을 중단시킬 계획에 있기 때문이다. 최근 독일 공영방송의 프로그램에 나타난 상업성에 대한 비판이 비평가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지금, 양적인 팽창 편성에 대응할 질적인 공영성의 척도가 새삼 요구된다 하겠다.
○ 참조 : Funkkorrespondenz 2004. 5. 28. Spiegel Online 2004. 5. 25., 5. 26.
○ 작성 : 강진숙(독일 통신원, schaffen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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