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제2 공영방송 ZDF는 올 가을이나 겨울부터 핵심 문제를 장시간 집중 방송하는 정보 프로그램을 도입할 예정이다. 이러한 계획은 지난 4월 26일과 27일 이틀 동안 개최된 제37회 마인츠 TV 비평의 날 개회사에서 마르쿠스 쉐히터(Markus Sch chter) ZDF 사장이 언급한 사항이다. 그에 따르면, ZDF 제2 공영방송은 새로운 프로그램 계획을 구현함에 있어 시사적인 정치 및 경제적인 테마(실업 실태 등)에 주력할 뿐 아니라, 그 밖에도 과학 분야 등의 주제들을 대거 다루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 행사에는 ZDF 방송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산업계 및 학계, 그리고 타방송사 관계자들이 두루 참석했고, 독일 언론학 관련 대학교수들의 TV 방송에 관련된 장기간 연구결과 및 각 분야별 프로그램 경향 분석결과, 그리고 시청자들의 시청태도 등에 대한 조사결과에 대한 발표들이 이어졌다. 쉐히터 사장의 정보 방송으로서 ZDF의 위상을 새롭게 정립한다는 향후 포부와 전망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서는 ZDF 프로그램의 탈정치화 경향과 대중 추수주의에 대한 비판들이 제기되었다. 이번 동향보고에서는 ZDF의 정보 부문 강화 계획을 살펴보고, 이 행사에서 발표되었던 학계의 방송 관련 분석들 중 간략하나마 일부를 추려 소개하고자 한다.
ZDF의 정보 부문 강화 계획
ZDF는 1968년 이래 매년 마인츠의 TV 비평의 날을 개최해 왔다. 이 ZDF의 전통적인 행사는 이틀 동안 저널리스트, 작가, 예술가, 프로그램 제공자, 비평가, 학자 그리고 정치가들이 미디어계에서 불거져 나오는 시사적인 주제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이다. 4월 26일과 27일 이틀 동안 독일 레어센베르크에 자리한 방송 센터에서 개최된 이 37번째 행사는 '오락 없는 정보? TV의 방향: 능력, 중요성, 수용'이라는 주제를 놓고 TV 방송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자리에 맞게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 자리에서 쉐히터 사장은, "ZDF는 이러한 정보 분야를 강화시키는 데 대폭 투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프로그램 개선의 배경에 대해 쉐히터 사장은, "원칙적이고 복합적이면서도 깊이 있게 진실을 파악할 수 있는 정치 및 사회적 문제에 대한 시청자들의 요구가 점증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고, 이에 따라 정보 방송과 '심층적인 정보'의 새로운 형태를 결합하고 강화하는 방안이 모색되었다고 설명했다.
쉐히터 사장은 ZDF가 타방송사에 비해 정보 방송에 주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그가 인용한 바에 따르면, "2003년에 독일의 전체 TV 방송 프로그램 중에서도 ZDF의 경우는 절반이 넘는 51.3% 정도로 정보 방송에 가장 많은 비중을 할애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쉐히터 사장의 발언은 ZDF의 자기의무선언을 의식한 것이다. 이 선언에는 공영방송으로서 상업성보다는 정보 기능을 강화 확대할 것임을 명시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고, 이 선언은 TV방송위원회에 의해 7월 9일 의결됨으로써 올해 10월 1일에 발효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위와 같이 쉐히터 사장은 자사의 우선권을 "점차 강력히 요구되고 있는 정보의 심층성과 정보범위에 대한 방향 설정"에 두고 있다. 개별 프로그램들은 정치와 경제 분야에 관련된 주제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지만, 앞으로 과학, 의학 그리고 인구동태에 관한 주제 역시 ZDF 프로그램에서 중시되어야 할 분야라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ZDF는 "배경 정보와 다큐멘터리에 질적으로 높은 시장 경쟁력을 두도록" 하고, "이러한 입지의 확대"에 힘쓸 것이라고 쉐히터 사장은 덧붙여 강조했다.
정보정책
쉐히터 사장은 1989년부터 방송되기 시작한 RTL의 정보오락 프로그램인 <모터바이크(Hei er Stuhl)>를 거론하며, 질적으로 떨어지는 TV 정보오락(Infotainment) 장르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공영방송은 이미 오래전부터 정보오락 형태를 실험했었지만, <모터바이크>와 같은 방송들과 더불어 정보오락 프로그램들은 각계의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물론 <모터바이크>를 정보방송에 포함시키는 것을 전제로 할 경우를 전제로 한 것이지만, 이 포맷이 오락 프로그램에 배치할 경우는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 쉐히터의 견해이다. 쉐히터 사장은 개회사에서 ZDF 프로그램의 정보 점유율에 대해 51.3%라는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반면, ARD 프로그램 편집자인 귄터 스트루페(G nter Struve)는 패널 토론에서 쉐히터의 발언, 즉 ZDF가 높은 정보 분야 점유율을 차지했다는 의견에 의문을 제시했다. 그가 설명하는바, 이러한 수치는 정보 방송에 포함될 수 있는 프로그램의 형태를 새롭게 정의하고 방대한 범위로 확대 분류할 때 계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ARD의 경우, 정치 토크 프로그램인 <사비네 크리스티안젠(Sabine Christiansen)>은 정보 부문이 아닌 오락 부문에 포함시킨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ZDF의 경우처럼 ARD가 정보오락류의 포맷을 정보 부문에 포함시킨다면, ARD의 정보 부문 점유율은 60%까지 올라가 선두를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기존에 문화와 교육 부문에 포함되었던 과학방송과 같은 프로그램 포맷도 이러한 문제가 제기되었지만, 현재 정보 부문에 포함시키고 있다. 마치 전 ZDF 사장 디이터 슈톨테(Dieter Stolte)가 ZDF를 문화방송으로 자리매김했던 당시에 문화 개념은 대대적으로 확대 정의되었고, 그 결과 예상치 못한 많은 프로그램들이 문화 부문을 채우게 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쉐히터 ZDF 사장 역시 현재 정보의 개념을 문화 개념의 사례처럼 확대 정의함으로써 오락성이 강한 프로그램 형태까지도 정보 분야에 포함시키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것이다.
미디어의 탈이원화 경향
뮌스터 대학의 커뮤니케이션 이론과 미디어 문화학과 교수인 지크프리트 J. 슈미트(Siegfried J. Schmidt) 교수는 최근 프로그램 정책상의 쟁점을 넘어서 'TV 방송의 현실-체계적으로 왜곡된 논쟁'에 대해 언급했다. 그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정보 프로그램 분야의 위상에 있어 미디어의 표현 형식이 아니라 프로그램의 내용이다. 즉, '미디어 보도의 진실'을 내용상으로 어떻게 담아내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서로 독립적인 주체와 대상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이들이 빠지는 '이원론의 함정'을 비판하며, 탈이원화의 필요성을 강변했다.
한편, 같은 날 마인츠의 행사에서 슈미츠 펠트축(Schmidts Feldzug)은 구조주의적 입장에서 "방송의 객관성은 저널리스트들이 전달하는 보도의 전략적 의례"라고 지적하며, 이처럼 전략적 의례로 전락한 객관성의 오류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설파했다. 슈미트가 전제하고 있는 기본 테제는 "미디어가 미디어 외부의 현실을 묘사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단지 미디어 특유의 현실들을 형성하고 묘사할 수 있는 것일 뿐"이라는 인식에 기초한다. 또한 그는 미디어의 광범위한 생성 및 조작 가능성은 특히 책임의 잣대를 요구하게 되었고, 이 책임은 '미디어의 탈이원화 경향'의 결과라는 입장을 개진하며, 이러한 책임의 르네상스는 "도덕적 근거에 따른 것이 아니라 인식론적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TV 뉴스와 매거진 프로그램의 탈정치화
이날 행사에서 TV 프로그램에 대한 더 구체적이고 비판적인 관찰도 제시되었다. 독일 예나(Jena) 대학의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의 기초와 미디어 효과 전공의 게오르크 루어만(Georg Ruhrmann) 교수가 이에 해당되는데, 그는 TV 뉴스에 대한 실증적인 장기 연구의 결과들을 제시했다. 이 연구결과에 따르면, 뉴스는 일반적으로 비정치적인 성향을 띠게 되었고, 시청자들 중 30%는 뉴스를 시청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젊은층의 경우, 상업방송인 RTL의 뉴스를 선호하는 한편, 더 이상 뉴스 방송들 간에 질적인 차이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저학력층의 시청자들일 경우, 신문을 덜 보는 것으로 분석되었는데, 이와 관련하여 루어만은 비신문 독자층은 정리 능력이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일일거울(Tagesspiegel)>의 미디어 편집자인 요아힘 후버(Joachim Huber)는 정보 프로그램 속에 얼마나 많은 오락이 발견되는지를 분석한 연구결과를 '매거진(뉴스 해설 프로그램)의 중요성'에 관한 제목으로 발표했다. 그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ZDF의 <전선21(Frontal 21)>과 같은 매거진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혼합-매거진'이고, "여기서 정치적 테마는 주요 근간이 아니라 점들처럼 흩뿌려져 있다"고 지적되었다. 후버는 이 사례 외에도 1주일 전체의 매거진 포맷을 관찰한 결과 이와 같은 경향을 발견했다. 이러한 '파멸적인' 추세에 대해 후버는 '매거진 대중주의'로 명명했고 다른 방송사의 정치 프로그램 역시 ZDF와 유사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리모콘 사용을 통한 지각의 파편화
후버의 발표문이 합리성의 문제점을 고찰한 것이라면, 클라우스 래어만(Klaus Laermann)은 실천의 문제점을 분석한 결과를 제시했다. 베를린 자유 대학에서 새로운 독일의 문예학을 강의하는 래어만 교수는 TV 시청을 통한 현실 경험의 감소에 대해 연구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리모콘의 사용을 통한 지각의 파편화'에 주력했는데, 여기서 그는 "TV에서 방송되는 사건의 현재 혹은 존재 여부에 대한 지배권이 시청자의 수중에 들어왔다"고 설명하며, 그러나 시청자는 자유자재로 선택할 수 있는 힘을 느끼지만, 그것은 또한 실천상의 무력감을 수반하기도 한다는 논조를 제기했다. 다양한 주제 아래 발표와 토론이 이어진 이 행사 이후로도 앞으로 독일의 제2 공영방송 ZDF가 어떠한 모습으로 정보 방송으로서의 위상을 재확립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 참조 : Funkkorrespondenz 2004. 4. 30.
○ 작성 : 강진숙(독일 통신원, schaffen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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