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튼 조사 보고서 이후에 전임 이사장 개빈 데이비스(Gavyn Davies)와 사장 그렉 다이크(Greg Dyke)가 연이어 사임하고 길리건 사건에 대한 내부 조사를 실시하는 등 2개월 동안 BBC는 도덕적으로 엄청난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약 2개월여에 걸쳐 이사장직은 공석으로 남아 있었고, 사장직은 마크 바이포드(Mark Byford)가 직무대행을 하고 있었다. 지난 4월 2일 BBC의 신임 이사장으로 마이클 그레이드(Michael Grade)가 임명되면서 그에게 거는 BBC 안팎의 기대가 크다.
BBC 전(全) 직원들은 마이클 그레이드의 새 이사장 임명을 대환영하는 분위기다. 왜냐하면 그가 정부로부터 BBC의 편집권 독립을 지켜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BBC 관계자들에 따르면 마이클 그레이드는 전임 사장 그렉(Greg)의 요인, 즉 프로그램 제작자이며 비전을 갖고 있고 창의적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으며, 정치적으로도 모든 정당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는 평이다. BBC의 전임 이사장인 개빈 데이비스도 그레이드에게 축하 메시지를 전하면서 그를 "강력하고 독립적이며 인기 있는 사람"으로 평했다. 또한 마이클 그레이드의 지도력하에 BBC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것이라는 기대를 내비쳤다.
BBC 이사장은 어떻게 임명되는가?
BBC의 이사장은 12명의 이사회 이사들과 마찬가지로 공식적으로는 영국 여왕이 임명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정부가 임명을 결정한다. 마이클 그레이드와 그 전임자 개빈 데이비스는 문화부 장관 테사 조엘(Tessa Jowell)이 선발하고 수상이 최종 승인을 한 후에 그 안이 여왕에게 제출되었다.
이번 이사장직은 적합한 후보자를 찾기 위해 가능한 최대한의 방법을 동원해 광고가 행해졌다. 문화부 차관 수 스트리트(Sue Street)가 이끄는 패널들이 우선 지원자들의 원서를 검토하여 소수의 후보자들을 선발한 다음 면접을 통해 결정된 최종 후보자 명단을 문화부 장관 테사 조엘에게 제출했다. 테사 조엘은 마이클 그레이드의 선출에 대해 최근에 행해진 절차는 아주 정당하고 독립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녀는 "개빈 데이비스는 이러한 완전히 독립적인 절차에 따라 BBC 이사장에 최초로 임명되었다. 독립적이고 투명한 임명 과정을 확립시키기 위해 매우 견고하게 확립된 규칙들에 따라 이사장 선출의 전과정이 행해졌음"을 분명히 했다.
마이클 그레이드는 어떤 인물?
일반적으로 마이클 그레이드는 카리스마적인 이단자라는 평판이 나 있다. Channel 4의 사장이자 연예업(show business) 명문가 출신이라는 화려한 경력을 가진 그는 Channel 4의 일부 프로그램 내용으로 인해 한때 영국의 '최고 포르노그라퍼'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그는 Pinewood-Shepperton 필름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고, 복권 회사 Camelot의 이사장이기도 하다. 그는 BBC Television과 London Weeend Television에서 프로그램 디렉터로 일했고, 그 이후에 Pinewood-Shepperton 필름 스튜디오의 사장이 되었다. 1980년대에 BBC 1의 콘트롤러로서 현재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드라마 <이스트앤더스(EastEnders)> 방송을 시작했던 인물이다.
그는 BBC 이사장으로 임명되면서 복권 회사 Camelot과 미디어 기업 SMG의 이사직을 포함해 과거에 그가 가졌던 수많은 상업적 이해관계들을 포기할 것이다. 그러나 Pinewood-Shepperton과 Hemscott Group Plc의 이사장직은 그대로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문화부 장관 테사 조엘은 그의 이사장 임명을 두고 "마이클은 적당한 시기에 적합한 인물이다. 그는 방송, 특히 공익 방송 서비스에 열의를 갖고 있다. 또한 BBC를 훌륭하게 이끌어갈 수 있는 에너지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BBC의 독립과 통합을 지켜낼 수 있는 인물"이라고 호평했다. 마이클 그레이드는 BBC의 하위 직원에서부터 최고위 관계자들까지 실추됐던 전 직원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자신감을 고취시킬 수 있는 적임자로 평가되고 있다.
마이클 그레이드의 비전
BBC 신임 이사장 마이클 그레이드는 지난 2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BBC는 허튼 보고서 이후로 맹렬한 비판을 받아왔으며 이제는 여기서 벗어나야 할 때이다. 내가 할 일은 BBC에 종사하고 있는 전 직원에게 긍정적인 미래를 확신시켜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자신은 정당정치의 영향에서 자유롭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BBC의 편집 독립권과 불편부당성'을 강력하게 옹호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BBC의 편집권 독립은 청취자와 시청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가장 중요하며, 그 기반이 없는 BBC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개빈 데이비스 이사장과 그렉 다이크 사장의 사임을 초래한 허튼 보고서의 결과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거부하면서 "중요한 것은 BBC가 교훈을 얻었다는 것이며, 실무자들이 그러한 교훈을 확실히 배우도록 하는 것이 이사회의 의무"라고 말했다. 그는 BBC의 변화를 촉구하면서 "이사회의 규제 역할이 어느 때보다도 명확하고 투명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그가 실제로 의미한 것은 '집행부와 이사회의 분리'이다. 그는 BBC의 투명성이 요구되며 이는 이러한 분리를 통해 구체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BBC가 계속해서 공중과 의회의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사회와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면서 "그렇게 함으로써만이 누구나 이용 가능하고 수신료의 가치를 다하는 공익 방송 서비스의 제공이 위태로워지거나 주변화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아이들과 그 후손들에게서 과거 수십 년간 우리가 BBC로부터 향유해 왔던 풍부한 경험들을 박탈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덧붙여 BBC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폭넓은 이해와 열정, 관심을 투영하면서 높은 품질의 다양한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하며, 따라서 BBC는 저질의 프로그램 방송으로 시청률을 좇지는 않을 것임을 힘주어 말했다.
BBC의 신임 사장은 누구?
기자회견에서 마이클 그레이드는 현재 바이포드가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사장직에 적합한 후보자를 찾기 위해 필요한 모든 방법을 강구하겠다는 약속을 BBC 직원들과 한 바 있듯이, 현재 그가 풀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는 위기에 처한 BBC를 훌륭하게 이끌어갈 사장 후보자를 물색하는 일일 것이다. 물론 그렉 다이크의 후임이 될 신임 사장의 본격적인 선출 과정은 그가 정식으로 이사장 업무를 시작하는 5월 17일부터 이루어지겠지만 후보자 물색작업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누가 신임 사장이 될 것인가에 대해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부 고위 정치인들과 방송관계자들은 그레이드의 이사장 임명으로 현재 사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마크 바이포드가 사장직에 임명될 가능성이 크다고 점치고 있으나, 또 일부에서는 그레이드가 자기 사람을 쓰고 싶어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즉, Channel 4에서 함께 일했던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을 두고 하는 말인데, 이에 대해 신임 이사장을 잘 알고 있는 한 TV 고위 관계자는 마이클 잭슨이 사장에 임명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현재 BBC 텔레비전 본부장으로 있는 자나 베넷(Jana Bennett)이 BBC를 이끄는 최초의 여성 사장이 될 가능성이 높은 선두주자로 부상하고 있다. 신임 이사장으로 임명된 마이클 그레이드는 업무 인수인계를 시작하는 다음달 새 사장직에 여성을 임명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는 사실이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해 준다.
그러나 새 사장으로 자나 베넷이 될 것이라고 점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일 수 있다. 왜냐하면 BBC 사장은 이사회에서 임명하기 때문이다. 현재 최고의 물망에 오르는 인물들로는 마크 톰슨(Mark Thompson), 자나 베넷, 마크 바이포드(Mark Byford)이다.
BBC의 한 고위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그레이드 신임 이사장이 자나 베넷을 그렉 다이크의 유력한 후임자로 여긴다고 해도 혼자 결정을 내릴 수는 없을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동료 이사들은 바이포드가 지금까지 사장 직무대행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고 여긴다고 전했다. 현재 BBC의 새 사장에 유력한 후보자로 부상 중인 자나 베넷은 47세로, BBC 텔레비전 본부장을 맡고 있으면서 동료 직원들에게 인기가 많고 '맹렬하게 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동시에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작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다. 최근 2년간 미국의 Discovery Channel에서 일한 바 있다. 지난 1월 아랍인을 비방하는 칼럼을 실어 논란을 일으켰던 토크쇼 진행자 로버트 킬로이실크(Rober Kilroy-Silk)를 물러나게 한 것도 베넷의 결정이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최고경영자(Chief executive)로서의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녀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검증받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또 다른 후보자로 마크 톰슨(Mark Thompson)을 들 수 있는데, 그는 46세로 현재 Channel 4의 최고경영자로 방송 분야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문화부 장관 테사 조엘을 후원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텔레비전 본부장으로서는 베넷 본부장보다 평가가 앞선다. 그가 Channel 4에 2년밖에 종사하지 않았지만 마이클 그레이드와 Channel 4와 같은 배경을 가진 탓에 'Channel 4의 인수'라는 의혹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다음으로는 현재 BBC 사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마크 바이포드(Mark Byford)인데, 45세의 나이로 World Service의 前 사장으로 경험이 풍부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와 함께 일해 온 사람들에게서 호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허튼 보고서 문제로 정부에 사과를 한 것에 대해 BBC 직원들의 원성을 사왔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BBC의 신임 이사장 마이클 그레이드가 기자회견에서 밝혔던 자신의 포부와 과제를 어떻게 실현시켜 나갈지 주목된다.
○ 참조 : Guardian 2004. 4. 2., 4. 3., 4. 4., 4. 5., 4. 6. Independent 2004. 4. 6. BBC News(http://www.bbc.co.uk) 2004. 3. 30., 4. 2., 4. 3.
○ 작성 : 김소형(영국 통신원, milena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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