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를 비롯한 텔레비전 방송사의 외주 제작률을 비롯해 프로그램에 대한 방송사와 독립 제작사간의 권리를 규정하는 새 거래 조항(new terms of trade)에 대한 협상이 이 달 말경에 최종 마무리될 것으로 보여 양측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양측의 가장 첨예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새로운 영업 규약의 골자는 BBC가 프로그램의 50%를 독립 제작사에게 외주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새로운 조항에 대해 가장 강력한 반대 입장을 보이는 것이 BBC이다. 이 조항이 시행되면 방송 시장은 커다란 혁신을 맞이하게 될 것이며, BBC는 사내 프로덕션 규모를 대폭 축소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지난 1월 중순 <가디언(Guardian)>과 공공정책연구소(Institute of Public Policy Research)가 공동 주최한 옥스퍼드 미디어 컨벤션에서 Ofcom의 회장 스테판 카터(Stephen Carter)는 "Ofcom의 목표는 독립 제작사가 실질적인 다원성과 혁신을 창조적인 거래업무와 제작 과정에 투입시킬 수 있도록 힘을 키워 주는 것"이라며 이 새로운 조항에 대한 의견을 간접적으로 시사한 바 있다. 한편, Ofcom의 대변인은 "현행 외주 제작률의 상향 조정안에 대해서는 광범위한 협의 과정이 필요하며, Ofcom의 기본적인 정책방향은 탈규제"로 "자유롭고 경쟁적인 시장은 소비자들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뿐만 아니라 보다 폭넓은 사회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실행 조항을 둘러싸고 BBC와 독립 제작사 간 이견
BBC는 한마디로 반대다. 가장 큰 이유는 수백, 아니 심지어 수천 명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BBC 종사자 2만 5,000여 명의 대부분이 직·간접적으로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작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독립 제작사에 자사 프로그램의 25%만을 위탁하는 현행 조항이 그대로 유지되기를 바란다.
BBC는 다른 방송사들과 마찬가지로 최근 독립 제작사와 거래하는 방식에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즉, 각 외주 제작 프로그램 장르에 대한 요금표(tariff of prices) 발행이 그것인데, 요지는 '프로그램 제작 요금의 할인 불가'로 이의 실행에 대해서는 Ofcom의 규제를 받게 돼 있다. 또한 독립 프로그램 제작사가 수익성 높은 프로그램의 이윤을 더 많이 가질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한편, 텔레비전 방송 독립 제작사들을 비롯해 '칙허장 개정과 BBC의 향후 전망'을 주제로 연구를 이끌었던 방송정책그룹(Broadcasting Policy Group)의 회장 데이비드 엘스테인(David Elstein)은 새로운 거래 조항에 대해 적극적인 찬성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엘스테인 회장은 보고서에서 "80년간 지속된 오랜 자금 기제, 즉 수신료에 대한 BBC의 의존과 조직의 수직적인 통합 구조는 BBC뿐만 아니라 영국의 창의적인 경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또한 "사내 제작에 대한 필요는 비용이익이 부가적으로 산출되지 않는 디지털 시대에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 그런데 BBC는 사내 제작에 매년 4억 파운드를 지출하고 있어 다양성을 위협할 수 있으며, 전체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있어서도 BBC의 점유는 다원성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BBC가 독립 제작사의 모든 권리를 관리하는 현행 제도는 직접적인 경제착취일 뿐만 아니라 전략적 통제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본다. "드라마와 코미디 부문에서 영국이 미국에 뒤지는 것은 주요 작가와 프로듀서, 감독들이 관례적으로 배급 시장을 개발할 돈과 자유를 BBC에 빼앗기고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핵심 권리는 독립 제작사들의 몫이 되어야 하며, 처럼 장기간 방영되는 BBC의 특정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그 공훈에 따라 사내 제작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엘스테인 회장은 입장을 밝혔다.
BBC와 독립 제작사간의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로 지적되는 것이 BBC의 배급사 BBC Worldwide이다. BBC Worldwide는 제2의 권리에 해당하는 배급문제를 독립 제작 위탁의 성사조건으로 제시하기 때문이다. 또한 BBC는 지난 3년간 독립 제작사에 대한 프로그램 외주 쿼터 25%를 채우지 못하였다. 예를 들어, 지난 한 해 동안 BBC는 영국의 236개 독립 제작사에 3억 560만 파운드를 투자했지만, 이는 최소 외주 쿼터 의무에 4% 정도 미달한 수준으로, 공정거래청(Office of Fair Trading)이 외주 쿼터를 감독해 온 이래 가장 큰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영국 최대 독립 제작사이자 로 유명한 Endemol을 경영하는 피터 바잘게트(Peter Bazalgette)는, BBC는 최선의 아이디어를 고안해 내기보다는 사내에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데 더 노력하는 것 같다고 비난했다. 전(前) ITV 프로그램 이사이자 현재는 독립 텔레비전 제작사에 몸담고 있는 데이비드 리디먼트(David Liddiment)는 "독립 제작 부문의 생명력을 믿고 있으며, BBC의 독립 외주 쿼터의 50% 상향 조정은 이러한 생명력을 증대시킬 수 있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Ofcom의 일부 관계자들도 BBC가 사내 제작 프로그램으로 방송시간을 다 채우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50% 외주 쿼터제로 인해 BBC는 독립 제작 부문을 진지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방송사와 독립 제작사의 프로그램 권리 변화
새로운 거래 조항이 최종 확정될 경우 프로그램과 관련하여 방송사가 거의 독식하다시피 하던 기존 권리들은 대폭 축소되는 대신 독립 제작사의 경영 자율권이 어느 정도 확보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방송사들이 독립 제작사의 프로그램 제작비용을 대는 대가로 커미션과 관련된 모든 권한을 독차지했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독립 제작사가 프로그램과 관련된 권리를 보유하며, 종전에 방송사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던 배급사를 이제는 독립 제작사가 직접 고를 수 있게 된다. 방송사가 제작비용을 대는 대가로 제1, 제2의 권리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 이제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 대신 각 권리에 대한 소유 여부와 그 범위는 개별 협상을 통해 결정된다.
따라서 이제부터 방송사는 제작비용을 댄 대가로 제1의 권한, 즉 단 5년 동안 3회에 걸쳐 영국의 공영방송 채널을 통해 해당 프로그램을 방송할 수 있는 권한만을 갖게 된다. 독립 제작사는 2가지 경우로 분류해 볼 수 있는데, 첫째 제2의 권리, 즉 배급과 관련된 권리를 가질 경우, 도서관을 설립해야 하며 해외와 부차적인 시장에서 벌어들이는 새로운 수입원을 통해 이익을 얻게 된다. 둘째, 제2의 권리를 갖지 못할 경우, 텔레비전 독립 제작사는 방송사에게 어떠한 돈도 빼앗기지 않게 되며 새로운 규약하에 방송사는 총 제작비에다 광고 제작비까지 지불해야 한다.
결국 새로운 거래 조항으로 말미암아 20년 만에 처음으로 텔레비전 독립 제작사가 자율경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그리고 방송사들에 의해 행사되던 독점적인 권력행사가 억제될 것으로 보인다.
텔레비전 독립 제작사간의 활발한 M & A 기대
새로운 거래 조항이 시행되면 독립 제작 산업 분야에 전반적으로 득이 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이지만, 프로그램 제작비용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소규모 독립 제작사들의 경우는 다르다. 이들은 전권(全權)을 확보할 수 없는 방송사로서는 예산 축소가 불가피하고, 이는 당연히 외주 제작비용 삭감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다. 또한 Ofcom이 감시견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갖고 있다.
소규모 독립 제작사들은 제휴를 하나의 방안으로 신중히 고려하고 있다. 파트너십 형성이나 합병 모색은 비단 소규모 독립 제작사들 간의 움직임만은 아니다. 가 총매출액을 기준으로 상위 135개의 독립 제작사들을 대상으로 3월에 실시한 서베이 결과에 따르면, 독립 제작사들의 거의 4분의 1이 올해 다른 제작사들과의 합병이나 파트너십 관계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대부분은 텔레비전 독립 제작 부문이 몇 년 내에 대규모 합병체로 정리될 것으로 전망했다.
텔레비전 독립 제작 산업 분야는 급속히 양극화되고 있다. 즉, 더 큰 성공을 추구하는 대규모의 전지구적인 제작사들이 있는 반면, 런던과 기타 지방에 거점을 둔 소규모의 제작사들은 제작비용 협상에 더 큰 어려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Chameleon의 경영이사인 알렌 쥬허스트(Allen Jewhurst)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런던에 거점을 둔 대규모 독립 제작사들은 지방에 위치한 강력한 제작사들에 눈독을 들일 것이 자명하다. 왜냐하면 새로운 제작회사를 설립하는 것보다 건강한 지역 제작사를 사들이는 것이 훨씬 낫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ITV의 인기 프로그램 <나쁜 여자들(Bad Girls)>와 <축구선수의 아내(Footballers' Wives)>를 제작한 Shed Productions가 BBC의 인기 퀴즈쇼 를 제작한 Hat Trick과 합병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가 진행 중이다. Hat Trick은 매년 2,000만 파운드의 총수입을 올리고 있으며, Shed는 1,420만 파운드의 수입을 거둬들이고 있어, 합병될 경우 약 8,000만 파운드의 수익가치를 합병회사에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된다. 왜냐하면 회사의 운영규모가 클수록 해외 판권과 스핀오프(spin-off)에 있어 더 큰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 회사 모두 지난 수년간 프로그램 포맷의 해외 판매에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었다.
Shed는 가 ITV의 최고 시청률을 올리자마자 회사의 입지를 굳힘과 동시에 40여 개의 국가에 수출하고 있다. Hat Trick은 Channel 4의 장기 연속 즉흥 코미디 프로그램 <어쨌든 누가 한 말이지?(Whose Line is it Anyway?)>를 미국에 팔았고, 미국의 Kumars에 그 판권을 넘겼다.
새로운 거래 조항이 가져올 외주 제작률 증가와 배급, 판매권의 확대라는 실질적인 측면에서의 변화에 대해 독립 제작사들은 자신들이 건강한 방송사를 필요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독립 제작사의 힘은 방송사의 사업에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상호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비록 새로운 거래 조항이 법으로 확정되느냐의 최종 결정은 이번 달 말일까지 며칠 더 기다려 봐야 하지만, 독립 제작사들은 누구보다도 철저한 경영 마인드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이미 운영방식을 변화시키고 있다.
○ 참조 : Broadcast 2004. 3. 19. Guardian 2004. 1. 14., 2. 24., 3. 1., 3. 5., 3. 11.
○ 작성 : 김소형(영국 통신원, milena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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