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시행된 하청법의 정식 명칭은 '하청대금 지불지연 방지법'으로 지불 연기나 사후 가격 조정 등의, 하청업자의 약점을 이용한 부당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지금까지는 적용 분야가 제조·수리에 관련된 거래에만 한정되었으나, 4월의 개정법 시행으로 방송계와 소프트웨어 업계 등 지식산업 관련 거래에도 적용된다.
개정 하청법이 시행되면, 방송계와 소프트웨어 업계의 제작발주사는 하청업자에게 발주와 동시에 3조서면(3條書面)이라 불리는 문서를 작성해야만 한다. 3조서면이란 주문내용, 검사, 지불방법 등을 명기한 서류를 말한다.
이번 개정에서는 하청법의 적용범위를 '정보성과물의 작성', '서비스의 제공', '제조 부문'의 3가지 부문으로 확대시켰고, 개정범위는 TV 등의 방송계뿐만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디자인 등의 분야까지를 아우르고 있다. 확대된 적용/개정 범위에는 납품된 성과물이나 서비스의 품질과 관련된 트러블이나, 정보성과물 자체가 지적재산권을 포함하고 있다는 문제가 포함되었기 때문에, 법이 시행되고 운용이 본격화하면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원래 하청법은 독점금지법의 보조입법으로 제정되었다. 독점금지법에서는 발주자(강한 자)와 하청업자(약한 자)가 대립하게 됨으로, 하청업체로부터의 신고를 기대하기 힘들다. 따라서 하청법을 제정하여 공정거래위원회와 중소기업청이 각 하청사업자에 대한 서류조회를 통해 하청법 위반 혐의를 조사하고, 위반 사실이 있을 경우 조사에 착수하는 시스템을 제정했다.
하청법의 운용 현황을 보면, 2002년 현재 전국에서 조사된 발주자는 1만 7,385사업체, 하청업체는 9만 9,481사업체였다. 그리고 이들 사업체 사이에서 하청법 위반 혐의 사건은 1,427건, 권고를 받은 사건이 4건, 경고 1,362건, 무혐의 60건이었다. 하청법 개정으로 적용대상이 방대해짐에 따라, 공정거래위원회와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서류조회를 받는 사업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방송사 및 광고회사, 하청법 적용 확대에 불만
작년 말에 공시된 <하청대금 지불지연 등의 방지법에 관한 운용기준>에는 컴퓨터 프로그램, 디자인 등과 함께, 영화, 방송 프로그램 및 기타 영상 또는 음성/음향에 의해 만들어진 상품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열거되어 있다. '예: TV 프로그램, TV 광고, 라디오 프로그램, 영화, 애니메이션' 등이 '정보성과물'에 포함되는 것이다.
또 '정보성과물의 작성행위 전부 혹은 일부를 다른 사업자에게 위탁하는 일'이란 '정보성과물의 제작 중 1) 정보성과물 자체의 제작, 2) 해당 정보성과물을 구성하는 정보성과물의 제작을 다른 사업자에게 위탁하는 것을 말한다'고 규정하면서 다음과 같은 예를 들고 있다. '예: 코너 프로그램(한 프로그램 안의 한 꼭지를 별도로 발주해서 만든 것), 프로그램의 타이틀 컴퓨터 그래픽, BGM 등의 음향 자료, 각본, 오리지널 테마곡의 악보' 등이 정보성과물의 작성행위의 위탁에 포함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주목되는 부분은 '정보성과물을 구성하는 정보성과물'이라는 부분일 것이다. 각본이나 음악이 '정보성과물을 제작하기 위한 정보성과물'이라는 사실은, 프로그램의 납품이 정보성과물의 납품이 아니라, 그것을 제작하기 위해 의뢰한 코너나 컴퓨터 그래픽 타이틀이나 각본, 음악도 정보성과물이라는 것을 전제한다. 즉, 복잡하게 '2차 하청', '3차 하청'이 얽혀 있는 방송계나 소프트웨어 업계가 이번 하청법 개정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방송 업계의 발주자라 할 수 있는 방송사나 광고회사는, 제작 프로덕션을 하청업체라고 생각하지 않고 파트너라고 생각하고 있다면서, 이번 하청법의 적용범위 확대에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하고 있기도 하다.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방송 프로그램 제작간의 특수성 무시에 비판
NHK의 한 프로듀서는 "컴퓨터 업계 등의 프로그래밍과 방송 등의 프로그램 제작 세계의 문화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정보작성물이 복수의 정보성과물이나 기타 성과물로부터 구성된다는 점이 외면상 똑같아 보이지만, 사실 이러한 사고방식은 프로그래밍의 시스템 중시의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개정 하청법의 정보작성물에 대한 규정을 비판한다.
그는 또한 프로그래밍 등 업무수행을 시스템 중심으로 생각하는 제작방식은 방송 프로그램 제작과 전혀 다르다며 개정 하청법의 발상이 방송 업계에 적용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방송 제작은 각 공정이 최초 설계된 시간축에 따라 진행된다는 보장이 없고, 프로그래밍과 같이 각 공정이 체계적인 수직관계로 결합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방송 업계의 이러한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개정 하청법은 운용 과정에서 커다란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일본의 경제상황이 호조였고 전체 업계가 성장을 계속한 시대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발주-하청 사이의 문제가, 경제불황과 전반적인 업계의 위축으로 인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 금번 하청법 개정의 가장 큰 원인이다. 즉, 경제적 변화로 인해 약한 자가 일방적으로 리스크를 떠맡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보다 공정한 제도가 요청된 것이다. 디지털화가 진행되고 있는 일본의 방송계에 금번 '개정 하청법'은, 장기적으로 방송 업계의 제작업무를 크게 변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위에서 열거한 방송 업계의 불만이 개정 하청법 시행을 통해 혼란으로 나타날지, 아니면 방송 업계의 제작 과정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지 앞으로도 주목해 나가야 한다.
○ 참조 : 방송연구 2004. 3. 산케이신문 2004. 3. 19. 요미우리신문 2004. 3. 20.
○ 작성 : 김 항(일본 통신원, ssanai7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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