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통권 192호] 영국의 방송 콘텐츠 시장과 BBC의 위상 | ||||||
---|---|---|---|---|---|---|---|
분류 | 기타 | 등록일 | 04.03.22 | ||||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 조회수 | 0
|
||||
방송 시장에 있어 전세계적으로 매체 내 그리고 매체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방송의 공익적 의무가 상업적 논리에 의해 등한시되어 가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이는 BBC라는 세계적인 공영방송이 건재해 있는 영국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디지털 시대에 들어오며 매체 수와 채널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상업적 부문이 증가하면서 영국 방송 정책이 강조해 왔던 방송 시장에서의 기본원칙에 대한 도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BBC에서는 기타 다른 영상산업 부문과는 달리 미국의 거센 압력으로부터 영국 방송 부문을 굳건히 지킬 수 있는 동력이 바로 BBC를 포함한 지상파 방송 시장의 프로그램에의 높은 투자관행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상업 부문으로부터의 경쟁이 수신료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정부의 개입을 거부하려는 움직임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는 견해를 발표하였다. 다음의 글은 이와 같은 내용을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가며 설명하고 있는 보고서로 BBC가 한 연구소에 의뢰하여 발표한 글을 중심으로 정리해 본 것이다. 2004년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방송의 공영성에 대한 논의와 이를 지키기 위한 방법으로 대두되고 있는 정부의 개입과 그에 따른 새로운 채널에 대한 논의가 서서히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가운데 이번 보고서는 디지털 시대의 정책적 개입에 대한 효율성과 필요성에 대한 해답을 조금은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영국 TV 시장에서는 영국 프로그램 우위 TV산업은 다른 영상산업 부문과 마찬가지로 규모의 경제논리에 지배를 받는다. 따라서 미국은 스스로가 가진 시장도 그 누구보다도 크지만, 또한 전세계를 자신의 시장으로 삼아 영상물과 오락산업을 국가 기간산업으로 규정하면서 엄청난 자본을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기 때문에 그 경쟁력이 막강하다고 하겠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자신의 나라에서 생산된 프로그램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규모의 경제논리에 밀려 많은 자본이 요구되는 심층 다큐멘터리나 드라마, 양질의 코미디 등과 같은 좋은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데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다. 미국에서 수입되는 프로그램들이 가격 면에서도 매우 저렴하기 때문에 그러한 유혹을 벗어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특히 같은 문화적 뿌리와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면 이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영국의 영화 시장을 포함한 모든 영상산업 시장, 게임 시장 등이 이미 미국 산업의 영향력 아래 있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귀결일지 모른다. 그런데 유독 텔레비전 프로그램 시장에 있어서만큼은, 특히 지상파 시장에 있어, 영국의 자국 프로그램이 월등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그래서 주목할 만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영국 방송 시장에서 수입에 지출되는 돈보다 프로그램 제작에 지출되는 돈이 더 많다는 데서 요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영국에서 1년간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제작비로 쓰이는 돈은 약 30억 파운드(한화 약 6조 원)에 이른다. 미국산(産) 콘텐츠가 음악, 게임, 영화 등의 모든 영상산업 부문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데 반해 영국에서 방영되는 지상파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4분의 3 정도가 영국의 문화와 태도, 영국 사회와 영국의 가치를 반영하는 영국 내 프로그램인 것은 좋은 대조를 보여준다. 게다가 영국에서 제작되는 프로그램들의 상당수가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장르들인 드라마, 양질의 코미디 그리고 심층 다큐멘터리, 국제 시사 뉴스들인 점은 더욱 고무적이다. 통계에 따르면 영국 국민 1인당 연간 프로그램 제작에 대한 지출은 75파운드(한화 약 15만 원)에 달하는데, 이는 어느 나라보다도 높은 수치이다. 영국이 텔레비전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이 가장 높은 나라 중의 하나라는 점에도 그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주요 지상파 방송사들로 하여금 수익의 55%에 이르는 엄청난 금액을 프로그램에 재투자하도록 하는 영국 방송의 구조적 특성에서 그 요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BBC가 영국의 영상산업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막강하다. 영국에서 소비되는 모든 음악과 영상 콘텐츠에 연간 17억 파운드(한화 약 3조 4,000억 원)를 투자한다. 특히 텔레비전 시장으로 좁혀서 살펴보면 전체 투자되는 금액의 40%를 BBC가 담당하고 있다. 시장의 실패와 정책적 개입의 필요성 지금껏 세계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을 보거나 경제이론으로 보더라도 상업 텔레비전 시장을 시장의 논리에만 맡겨놓았을 때 제작비가 많이 드는 프로그램을 점차 적게 생산하거나 아니면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굳이 자국 내에서 생산하기보다는 비용 대비 면에서 유리한 수입 프로그램을 들여오고, 반면에 자국의 프로그램들은 제작비가 저렴한 리얼리티 프로그램, 오락물, 값싼 드라마 등으로 채워가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영국의 유료 채널들도 이러한 경로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지 못한다. 이들은 오히려 영화나 주요 스포츠 이벤트 프로그램들의 가격을 올려놓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즉, 이들은 프로그램의 생산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의 유통에 더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2001년 한 해 동안 영국의 유료 텔레비전 매출액이 34억 파운드(한화 약 6조 8,000억 원)였는데 이 중 고작 1억 파운드(한화 약 2,000억 원) 정도만이 영국 내에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데 투자되었다. 이는 지상파 방송사들의 55% 재투자율에 비하면 형편없는 비율인 3%도 채 안 되는 낮은 비율이며, 영국의 유료 TV 시장의 문제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의 TV 시장에서의 자국 프로그램의 우세는 우연히 일어난 사건은 아니다. 오히려 전통적으로 강조되어 왔던 방송정책의 3가지 커다란 기조에서 기인한다. 이는 다양성, 투자 그리고 범위의 문제라고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다양성(diversity)'은 서비스의 다양성을 말하는 것인데, 채널이나 방송사에서 염두에 두는 시청자층의 다양성을 뜻한다. 프로그램 콘텐츠에 대한 투자는 자국내 프로그램 생산에 대한 재투자를 말하는데, 특히 많은 재정을 필요로 하는 국내 프로그램의 형태와 포맷 등에도 투자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범위(range)'는 하나의 채널이나 네트워크 안에서 보여지는 다양한 프로그램 장르나 주제, 관점 등을 강조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상업적 텔레비전들이 서비스의 다양성과 제작비가 많이 드는 프로그램에 투자하는 경우는 있겠지만, 이 또한 국내 시장이 작은 경우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이야기이며, 위의 2가지를 동시에 제공하는 경우는 지극히 어려울 것이다. 나아가 범위에 있어서도 시청자가 요구하는 다양한 시각과 주제들을 섭렵하여 제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세 개념을 동시에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텔레비전 시장에 대한 정책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이는 시장의 진입, 특정한 쿼터 그리고 공적 자금의 지원 등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이 중 그 어느 하나도 단독적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시장 진입에 대한 정책적 개입은 기존의 아날로그 시대에서는 유효한 정책이었다. 이는 아날로그 주파수가 희소하기 때문에 상업적 텔레비전에 대해서도 공익적 의무를 부과하기가 용이했기 때문이다. 쿼터제도 또한 다양하게 사용될 수 있는데, 자국 프로그램 편성 비율, 특정 장르 편성 비율 등을 통해 다양성과 프로그램 투자 등의 정책적 목적에 부합되도록 방송사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ITV, Channel 4, Channel 5는 모두 나름대로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점 또한 이러한 정책이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개입정책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특히 ITV처럼 정책적으로 정해져 있는 편성 비율을 20%나 초과하면서까지 자국내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있는 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공공 재원의 역할 공공 기금(수신료)으로 운영되는 유일한 방송사인 BBC는 ITV와 Channel 4와 경쟁하고 있는데, 이는 경쟁상대들로 하여금 시청률 경쟁을 하기 위해서라도 프로그램에 많은 투자를 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 또한 공공 재원의 프로그램에 대한 높은 투자는 오히려 상업적 텔레비전 시장의 진입에 대한 장벽으로 작용하면서 다시 상업적 텔레비전 부문에서의 프로그램 예산에 대한 압박 요인으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거대한 공영방송사 구조와 몇몇 사람에게만 편집권과 위탁권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은 비효율성과 혁신을 저해하는 요인을 낳는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로케이션 드라마와 양질의 코미디를 제작하는 것은 항상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하는 것이지만, 여전히 이 과정에 있어 효율성의 문제는 남는다고 할 수 있다. 독립제작자들에게 프로그램 제작 과정을 공개하거나, 자금의 효율적 운용에 대한 문제 또한 주요한 이슈들이다. 미래에 대한 도전과 영국 방송의 이슈들 영국적 방식으로 시장에 개입해 왔던 것이 지금까지는 성공적이었다 하더라도 급격한 환경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디지털 시대에 있어서도 이러한 방식이 효과적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가용한 스펙트럼이 보다 많아지고 시장 진입에 대한 장벽도 낮아진 것은 디지털 환경의 특징이라고 했을 때, 앞에서 제시했던 영국 방송정책의 근본적인 기조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뜻한다고 하겠다. 빠르게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특화된 채널들의 설립으로 상업적 텔레비전 방송사들의 시청률과 매출액들이 감소하게 된다. 이러한 경향들은 상업방송들로 하여금 막강한 재정으로 프로그램에 투자하면서 다양성을 추구해 왔던 기존의 경향에 대한 위협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테마 채널들의 성장은 기존의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던 방송사들의 시청률을 잠식함으로써 광고매출액을 감소시키고,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저해하기 때문에 결국 콘텐츠 제작을 위해 많은 자금을 투자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악순환은 궁극적으로 상업방송사들에게 커다란 경제적 압력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고, 이는 방송사들이 다양성과 차별화, 높은 프로그램에의 재투자 등의 기존 기조를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편성 쿼터 자체만으로는 효율적인 정책을 만들어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매출액에 대비한 일정 비율의 자금을 투자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 더욱 효율적이 될 것이다. 새로운 법을 통해 가능하게 된 소유의 집중과 다매체간의 교차 소유 역시 위와 같은 문제를 더욱 우려하게 만든다. 이들 매체 소유자들은 콘텐츠에의 투자를 통해 다양성을 추구하기보다는 채널과 매체간의 차이만을 위해 자금을 투자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금의 상황에서 공적 기금의 지원은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것이다.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상황들 향후 10년 동안 영국의 콘텐츠 시장에 대한 투자의 향배를 결정할 요인으로는 증가하는 다채널 매체들에 의한 시청률 분배 양상과, 상업방송사들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현재까지 ITV와 Channel 4가 주로 양분하고 있는(Channel 5도 일정 정도 지분을 확보하고는 있지만) 광고 시장 구도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중심 네트워크 시장에 새롭게 진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어느 정도 열려 있는가 하는 2가지 문제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2가지 시나리오를 가상해 본 것이다. 우선, 2012년까지 다채널 방송의 침투율은 75%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이 중 유료 채널의 비율은 55%이며, 무료 채널은 20%의 비중을 차지할 것임). 네트워크의 이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디지털 시장에서는 'Channel 6'이 새로이 등장할 가능성이 많다. 새로운 채널은 더 많은 프로그램에의 투자와 종합편성으로 시청자들을 공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영국의 상업방송시장에 비추어볼 때 매우 가능성 있는 이야기이다. Channel 4와 ITV가 매출액이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프로그램에 대한 투자를 줄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Channel 5와 새롭게 생기는 Channel 6으로부터의 경쟁과, BBC로부터의 직접적인 경쟁 때문에라도 최소한 매년 2.5%씩 프로그램에 대한 투자를 증가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이는 새로운 채널도 하나 더 생기면서 각 방송사들도 프로그램 투자를 늘려가며 경쟁하는 가장 이상적인 경우를 상정한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시나리오의 결과는 조금 다르다. 네트워크들의 광고매출액과 시청률이 PVR 시스템으로 인해 심각하게 영향을 받으면서 줄어든다면, 콘텐츠 시장으로서는 그리 희망적이지 않은 미래를 맞이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요 네트워크들은 프로그램에 대한 투자를 대대적으로 삭감할 것이며, 앞에서 설명했듯이 새롭게 부를 창출할 PVR 채널들이나 테마 채널들은 프로그램 그 자체에 투자하기보다는 유통에 보다 더 신경을 쓸 것이기 때문이다. BBC의 수신료를 프로그램 펀드로 돌려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은? 미래의 방송구도에서 상업방송사들이 제작비가 많이 들면서도 상업적으로는 큰 가치를 갖지 않을 수도 있는 프로그램 장르나 포맷 등에 제작비를 투자해야 하는 압력을 느낀다면 그 해결책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아마 가장 손쉬운 방법은 자신들에게 부과된 편성비율을 지키기 위해서는 공적 자금을 지원해 달라는 제안이 나오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공적 자금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새로운 자금을 조성하지 않는다면, 유용 가능한 공적 자금이란 BBC의 수신료를 분배하여 사용하는 길일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과연 영국의 방송 시장을 위해 바람직한 것인가? 그러나 연구에 의하면 이러한 시도는 궁극적으로 영국의 방송 시장 전체에 투자되는 재원을 줄임으로 인해 콘텐츠 품질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한다. 현재 상업방송사들로 하여금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고무하고 자극하는 것은 바로 BBC로부터의 경쟁이 지속적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BBC의 재원을 분배하여 자신의 프로그램에 투자한다면 상업방송사들은 더 이상 스스로 프로그램에 투자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되고 만다. BBC 또한 재원을 나누어줌으로써 자신의 프로그램에 투자할 수 있는 제작비가 줄어들게 됨으로써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한계를 갖게 되면서 더 이상 바람직한 경쟁을 유도할 프로그램을 만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영국 전체로 보았을 때 콘텐츠 시장에 투자되는 재원 자체가 심각하게 감소됨과 동시에 프로그램의 질 저하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새로운 재원이 만들어져 BBC의 수신료는 그대로 둔 채 상업방송을 지원해 준다면, 이 역시 강력한 편성 쿼터제를 강제하지 않는다면, 상업방송사들의 주주들만 배를 불리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방송 프로그램의 질이 저하되면 이로부터 손해를 보는 것은 누구인가? 바로 시청자들이다. 공공 자금을 조성해 방송을 지원해 주는 것은 내수 시장이 지극히 작아서 상업광고로부터 방송사들이 충분히 이윤을 얻지 못하고 공영방송 또한 수신료를 주요 재원으로 하여 유지하기에는 국민들의 부담이 지나치게 클 때, 그러한 경우에는 위와 같은 방법들이 효과적일 수 있다. 뉴질랜드, 싱가포르 등이 이러한 경우에 속한다. 하지만 한 곳에서 성공한 방법이 또 다른 곳에서 반드시 성공한다고는 볼 수 없다. 각 나라들마다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정책은 그 나라의 특성을 가장 잘 반영한 것이어야만 한다. 디지털 시대에도 공영방송은 필요한가 최근 이루어진 영국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영국 국민의 약 70%는 공영방송 BBC 시청료(연간 116파운드, 약 22만 5,000원)의 폐지에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BBC가 여론조사기관인 ICM에 의뢰해 실시한 자체 조사결과, 응답자의 36%는 위성방송이나 케이블TV처럼 시청자가 가입을 신청한 채널의 수에 따라 시청료를 차등 징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나타났다. 또 31%는 "상업광고를 허용하는 대신 시청료는 폐지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기존의 시청료 제도를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31%에 불과했다. 'BBC 방송 프로그램의 내용이 다른 상업방송 프로그램과 비교해 차별성을 갖느냐'는 질문에는 과반수가 넘는 58%가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고 대답, BBC에만 시청료를 강제 납부하는 데 대해 불만을 나타냈다. 또 54%는 BBC 방송 내용의 질(質)이 떨어졌다고 지적했고, 59%는 시청률에 너무 연연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부정적인 견해에도 불구하고 영국 사람들의 대부분은 BBC가 이제껏 해왔던 역할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보내고 있으며, 자랑스러워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더 이상 영국은 BBC가 공영방송이기를 원하지 않는 것인가? '디지털 시대에도 공영방송이 필요한가' 하는 문제는 디지털 시대에서의 방송의 '공영성'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와 맞물린 논제라고 본다. 아날로그 시대에 있어서의 공영성이 '보편적 서비스(universal access)'를 강조했던 것이라면, 방송 시장에 대한 진입 장벽도 낮아지고, 디지털화로 다채널 시대가 가능해진 지금에 와서의 공영성 또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공영성은 바로 '다양성'에 있다. 이는 영국 방송이 추구하는 '다양성(diversity)'과 '범위(range)' 2가지를 다 포함하는 의미이다. 다양한 시청자를 겨냥한 다양한 시각의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함과 동시에, 프로그램의 장르, 포맷, 내용 또한 그 폭이 넓어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들을 만족시켜 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과연 이러한 공영적 역할이 상업방송사들만으로는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가 보여주고 있는 예이다. 새롭게 나타나고 있는 테마 채널들은 프로그램 자체에 제작비를 투자하여 좋은 프로그램을 보여주기보다는 입맛에 맞는 프로그램들만을 구매하여 방영함으로써 유통에 더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을 비추어볼 때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디지털 시대에서의 공영방송의 역할이 더욱 요구된다고 하겠다. 그 재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방법이 모색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방송의 공익적 의무는 디지털 시대라고 하더라도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가 요구하는 대로 변화되는 것일 뿐이다. 지금의 시대가 필요로 하는 다양성과 다원성을 유지하고 더욱 충족시켜 주기 위해서 공영방송은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또한 방송의 이러한 역할을 지키기 위해서는 다양한 차원에서의 시장 개입과 현명한 정책들 또한 필요하다는 것이 BBC의 연구를 통해서도 잘 나타나 있다고 본다. ○ 참조 : UK Television Content in the Digital Age. A Report by Oliver & Ohlbaum Associates Ltd. 조선일보 2004. 3. 8. ○ 작성: 은혜정(연구센터 책임연구원, hceun@kbi.re.kr)
|
|||||||
첨부파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