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케이블 시장에 새로운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기존에 존재하던 유력한 지역 네트워크들의 합병 인수 작업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케이블 통합 기업의 출현 이면에는 독일 최대의 케이블 네트워크사인 카벨 도이칠란트(Kabel Deutschland GmbH, KDG)가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대규모 인수 합병에 대해 주매체기구 회장단은 우려와 비판을 표현하고 나섰다. 또한 일각에서는 이런 대대적인 흡수 합병이 카르텔법상으로 인가될 수 있는지, 그리고 이에 대한 감독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 등 법적인 절차들에 대해 문제제기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강력한 통합의 조짐 속에서 현재 네트워크 기업들은 일련의 혼란을 겪고 있지만, 새로운 디지털TV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여러 가지 대안들 역시 함께 모색되고 있다. 여기서는 독일 케이블 시장의 신질서 구축 동향과 그와 관련된 견해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카벨 도이칠란트의 거대 독점화
현재 독일에서는 1,800만 가구가 케이블TV를 이용하고 있다. 디지털TV 환경에 따른 새로운 질서의 구축, 이것은 이제 비단 지상파 방송만의 문제가 아니다. 독일의 케이블 시장 역시 새로운 질서에 진입했다. 독일 최대의 케이블 네트워크사인 카벨 도이칠란트의 우산 아래 다른 지역 네트워크를 합병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제시된 것이다.
뮌헨에 소재한 독일의 케이블 네트워크사 카벨 도이칠란트는 다른 지역 케이블 기업인 카벨 BW(바덴 뷔템베르크 주 소재), lesy(헤센 주 소재) 그리고 Ish(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소재)에 대한 인수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카벨 도이칠란트는 우선적으로 lesy사의 매입에 앞서 기업에 대한 최종 평가를 마쳤고, 카벨 BW에 대해서는 인수 체결 전에 기업에 대한 감독 절차를 남겨두고 있다.
한편 언론 보도에 따르면, 카벨 도이칠란트사는 Ish사의 인수를 위해 약 13억 유로를 제시했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에 소재한 케이블 네트워크사인 Ish는 지난 2002년 7월에 발생했던 NRW 케이블사의 파산 이후 약 30개의 은행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에 소속되어 있다. 이 컨소시엄에 속해 있는 은행들은 Ish 외에 도이체 방크(Deutsche Bank), 시티그룹(Citigroup) 그리고 베스트(West) LB 등을 들 수 있다. 이 금융기관들은 카벨 도이칠란트사와 매매가를 놓고 흥정하고 있고, 이에 따라 2월 말부터 케이블 네트워크 시장이 새롭게 재편됨으로써 케이블 업계의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최근 상황에서 유추될 수 있는 지각변동은, 앞으로 독일에서 대규모 시장지배를 행하고 있는 제3네트워크 부문의 케이블 네트워크사가 독일 최대 케이블 기업인 카벨 도이칠란트사의 지배 아래 편입된다는 것이다. 물론 의문의 여지가 있는 것은, 이러한 독점 콘체른이 카르텔법에 준하여 인가가 될 수 있는지 그리고 독일이나 유럽의 카르텔청이 감독을 할 권한이 있는지 하는 점이다. 2002년 초에 연방 카르텔 감독청은 미국 기업인 Liberty Media를 통한 도이체 텔레콤(Deutsche Telekom)사의 6개 케이블 기업 인수에 대해 경쟁법에 준하여 금지조처를 취한 바 있다. Liberty Media는 인수를 통해 상당수의 네트워크 분야에 대한 시장 지배력을 관철시키려 했지만, 당시 경쟁에 대한 감독관들의 반대 입장에 부딪혀 수포로 돌아간 바 있다.
인가를 받을 수 있는 독점인가?
그러나 최근의 상황은 이전과 다른 게 사실이다. 전문 영역별로 구성된 제3네트워크 부문에 처음으로 새로운 구조가 구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최종 고객 보호 등이 중시되는 제4네트워크 부문의 역할 역시 이슈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2월 중순에 이러한 일련의 합병 문제에 대한 방송 전문지 <방송정보(Funkkorrespondenz)>의 질문에 대해, 연방 카르텔청은 제3네트워크 부문에서는 어떠한 합병 계약도 체결하지 않고 있다고 카르텔청 대변인이 답변한 바 있다. 이 대변인은 시장 지배적인 케이블 기업이 인가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케이블 업계의 입장은 독일에서 케이블 네트워크사의 신질서 구축이 필요하다는 데 모아지고 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연방 카르텔청이 의도했던 시장의 분배는 케이블 네트워크의 발전적이고 광범위한 디지털화를 가능케 하는 진정한 경쟁을 유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도가 있다면, 모든 케이블 네트워크의 확대 및 발전이 더욱 수월하게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입장이다.
제2의 변형으로서의 복점
한편, 1월경에 케이블 업계에서는 독일 케이블 시장의 신질서 구축을 위한 대안이 논의되었다. 이러한 논의 과정에서 헤센 주에 소재한 케이블 기업 lesy와 바덴 뷔템베르크 주에 있는 카벨 BW의 공동 출자자들은 매입 대상 기업인 Ish 케이블 네트워크사에 대한 공동의 인수안을 제시했다. 그 후 이 세 케이블 기업으로 구성된 합병기업은 여전히 카벨 도이칠란트사와 대결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신질서 구축의 두 번째 변형태라 할 수 있는 복점(Duopol)은 지금까지 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 변화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주매체기구는 현재 케이블 시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독점화 경향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이러한 의견의 핵심은 카벨 도이칠란트가 세 기업 lesy, 카벨 BW 그리고 Ish를 인수하는 방식은 케이블 분야를 위험한 경쟁상태로 이끌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2월 6일자 주 매체기구 회장단 회의의 보고에 따르면, 경쟁의 위험은 "독일 케이블 산업의 꾸준한 발전을 심각히 저해하는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제3네트워크 부문에 대한 카벨 도이칠란트의 독점이 이루어질 때 우려되는 것은, 한편으로 케이블 네트워크 기업들이 도이체 텔레콤 및 DSL-Technik과 함께 자사의 케이블 네트워크를 경유한 광대역 인터넷을 통해 경쟁을 강화하게 되고, 그 결과 규제정책의 원래 목적이 훼손된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카벨 도이칠란트사가 추진하고 있는 제4네트워크 부문 기업들의 후속 인수 작업은 카르텔법상으로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로써 주매체기구 회장단은 카벨 도이칠란트가 제3네트워크 부문을 통제하고 프로그램의 상품 판매자로 전락할 경우 케이블 시장의 불균형한 발전을 초래할 뿐 아니라, TV방송사들의 원활한 케이블 업계로의 진입을 차단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케이블 업계의 디지털TV를 위한 준비
이러한 일련의 복잡한 상황 속에서 카벨 도이칠란트는 2월 12일, 4월부터 디지털 프로그램을 유료화할 것이라는 계획을 공개했다. 이 속에는 유료 방송인 프레미레(Premiere)의 프로그램도 포함된다. 카벨 도이칠란트는 지금까지 각 지역별 케이블 네트워크, 예컨대 바이에른 주, 라인란트 팔츠/자르란트, 베를린/브란덴부르크, 니더작센/브레멘, 작센/작센 안할트/튀링엔 그리고 함부르크/슐레비히 홀슈타인 주 등 총 1,030만 가구(제3네트워크 부문)를 포함하는 지역 네트워크를 점유해 왔다.
콘체른의 배경에는 미국의 투자은행과 자본참여기업 Goldman Sachs, Apax Partners 그리고 Providence Equity 등이 자리하고 있는데, 2003년 초에 이들은 도이체 텔레콤의 6개 케이블 기업을 17억 2,500만 유로에 매입한 바 있다. 케이블TV 시청자들의 경우, 지금까지 케이블 수신을 위해 월 14유로 77센트를 지불했고, 이후에도 큰 변동은 없다.
헤센의 케이블 네트워크사인 lesy(130만 가구 점유)는 미국의 두 금융자본기업인 Apollo 매니지먼트와 Pequot 자본 매니지먼트의 지배를 받고 있다. 카벨 BW(230만 가구 점유)는 투자기관인 Blackstone그룹, CDP 자본 커뮤니케이션즈 그리고 미국 이쿼티 파트너(America Equity Partners) 은행에 속해 있다. 그 밖에 Ish는 은행 컨소시엄에 속해 있고,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420만 가구를 점유하고 있다. 이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기업 Ish 등의 케이블 네트워크사는 이미 적극적으로 디지털 프로그램들을 발표했다. 이 디지털 프로그램을 이용할 경우, 가장 저렴한 패킷은 월 20유로 50센트의 비용이 든다. TV 케이블을 빠른 인터넷 접속으로 이용하고자 할 경우에는 그 보다 더 비싼 총 44유로 90센트가 소요된다.
카벨 도이칠란트는 '현대 TV'라는 자체 광고를 통해 디지털 환경에 맞는 이미지를 확보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악의 있는 만우절 장난에 휘말리지 않도록 디지털TV의 출범 일정을 4월 1일에서 2일로 변경하기도 했다. 이전에 다른 케이블 회사에서 마케팅 팀장으로 재직했던 카벨 도이칠란트의 사장 롤란트 슈타인도르프(Roland Steindorf)는 현재 속도와 출발점 그리고 경쟁력 등을 강조하고 있다. '가능한 한 빠르게' 디지털화로 전환시킴으로써 새로운 서비스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가장 최선의 출발점'에서 다양한 디지털 채널을 확보함으로써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케이블의 경쟁력 여부 등에 대한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는 것 등이 그에 관한 것이다.
이처럼 산적한 문제들과 나름의 포부 등이 혼재되어 있는 케이블 시장의 새로운 질서 구축이 과연 주매체기구 등이 우려하는 대로 파행적인 독점화에 그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디지털 환경에 맞도록 재편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 참조 : Spiegel Online 2004. 3. 1. Funkkorrespondenz 2004. 3. 3. Digital Fernsehen 2004. 2. 27. ○ 작성 : 강진숙(독일 통신원, schaffen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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