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통권 84호] 디지털화와 방송 문화 (시청자와 표현자의 관점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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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기타 | 등록일 | 99.12.18 | ||||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 조회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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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마지막 해를 맞아 방송은 디지털화의 거센 파도에 밀려 그 근본부터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역으로 디지털화의 흐름을 잘 활용하여 텔레비전과
라디오의 가능성을 확대해 가는 기회가 도래한 것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일본의 방송업계에서는 전반적으로 보아 전자와 같은 생각이
중심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디지털화라는 '이양선(異樣船)'의 도래에 고도 경제
성장기에 멋대로 놀아도 좋다고 생각하던 방송국 간부들이 우왕좌왕하며, 비극적,
소극적이 되고 있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물론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현재 업계에서 그 수는 아주 적다. 이 논문의 목적은 방송이라는 미디어와 디지털화의 관계를 어떻게 파악하면 좋을까 하는 점을 정보 기술의 논리에서가 아니라 시청자와 표현자의 문화라는 관점에서 우직하게, 그리고 조금은 도발적으로 되돌아보고자 하는 데 있다. 개별적 동향을 추적해 볼만한 지면이 없는 관계로 기본적인 시점을 제기하는 데 그치고자 한다. 방송만이 아니라 사회 구석구석까지 영향을 미치는 디지털화 우선 먼저 디지털화라고 하는 것은 사회 정보화의 한 단계 혹은 위상이라는
식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즉 디지털화라는 말은 '디지털 정보화'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정보화라는 단어는 1960년대 이후의 정보사회론 속에서 생겨난 것이긴
하지만, 그 연장선상에서 디지털화를 파악해야만 할 것이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실은 정보화는 그 훨씬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20세기 초엽에는 이른바 '電化(electronic화)', 결국 전신, 전화, 라디오, 텔레비전,
기타 다양한 가전 제품을 만들어내는 '전기 정보화'가 일어났다. 그런데 이 디지털 정보화는 방송을 비롯한 미디어 업계에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근본적인 파도로서 밀려오고 있는 현상이다. 방송업계는
이 점을 크게 간과하고 있어 업계의 이해 관계에만 관심을 보이며 부분적인 디지털
정보화만을 논의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예를 들면, 디지털 기술의 도입을 통한 디지털화, 고화질화는 틀림없이
방송국의 과제일 것이다. 그리고 구미의 거대 미디어 자본과 방송의 산업적인 역학
관계 또한 방송업계의 중대 사건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디지털 정보화를 그러한
관점에서만 파악하면 인터넷에서의 포털(portal) 사이트의 급성장이나 텔레비전 게임이
지닌 엄청난 잠재력은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예를 들어 '포털 사이트의 미래와 이른바 디지털 텔레비전은 어떻게
겹쳐지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방송의 정체성(identity)을 되묻는 근본적인 문제이다.
혹은 텔레비전 게임이 지시하는 디지털 영상 엔터테인먼트의 장래 모습은 과연 방송의
디지털 기술과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의 모습에 어떠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인가 하는
점도 지나칠 수 없는 과제이다. 디지털 정보화는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 영향을 미치며, 그 영향은 서로 관련성을 지니고 있다. 그 상관 관계의 전체 상을 바탕으로, 방송의 디지털화를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전제할 때 방송의 디지털화는 몇 개의 차원으로 나누어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방송파의 디지털화'와 '방송국 내의 디지털화' 방송산업론자인 쓰나가와 히로요시(砂川浩慶)는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전파 이용을 디지털 전송 형식으로 하는 '방송파의 디지털화'와 프로그램 제작에
관한 '방송국 내의 디지털화'로 나누어 논하고 있다. '방송파의 디지털화'와의 관계에서는 우정성이 2001년까지 전국에
광대역 광케이블망을 설치함과 동시에 지상파, 위성, 케이블TV 등 모든 방송 미디어를
디지털화하려 하고 있다. 또 지상파 방송에서는 2003년에 도쿄, 오사카, 나고야에서,
2006년에 그 이외의 지역에서 디지털화를 실시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쓰나가와는 이 청사진 자체에도 커다란 문제와 미해결 부분이 있음을
지적함과 동시에 중요한 '방송국 내의 디지털화'에 의해 어떠한 프로그램 제작이
행해질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너무 적다는 점, 시청자의 이점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실제 현재 일본의 방송 관계자들 사이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방송과
디지털화의 관계는 쓰나가와가 말하는 '방송파의 디지털화'에만 지나치게 중점이
주어져 있다고 보아야 한다. 바탕이 되는 기술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것이
'방송국 내의 디지털화'와 어떤 관련이 있으며, 송신자의 표현 문화와 시청자 문화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는 거의 논의되고 있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디지털화가 방송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면, 시민사회
속에서의 디지털화의 실태를 논의의 범위에 넣어야 한다. 그 점에서는 쓰나가와가 말하는 '방송파의 디지털화', '방송국 내의
디지털화'에 더해 '방송 시청 공간의 디지털화' 혹은 '방송 단말의 디지털화'라는
차원을 상정할 수 있다. 즉 휴대 전화, 디지털 오디오, 텔레비전 게임, PC 등 디지털
정보 기기로 넘치는 주거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 문화의 디지털
변용이라는 차원이다. 예를 들면 <젤다의 전설>, <화이널 환타지 IV> 등 롤
플레잉 게임에 매료된 아이들은 몇 푼 안 되는 제작비로 프로덕션에 제작한 애니메이션
프로그램(게다가 쌍방향성도 없다)을 우리들 세대에 비해 훨씬 깨인 눈으로 보기
시작하고 있다. 디지털 8밀리 비디오로 영상을 촬영하는 데 흥미를 갖게 된 사람들은
틀림없이 텔레비전 뉴스나 와이드 쇼의 영상에 회의를 갖기 시작할 것이다. 인터넷을
시작한 사람들은 적어도 취미나 지역 정보, 기호품의 쇼핑 정보에 대해 방송에 기대하지
않게 된다. 그렇지만 이처럼 일상 생활 속에서의 미세한 변화를 방송국 안에서 바쁘게
일하는 송신자 집단들이 의식하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다른 입장에 서서 보면 현재 진행중인 디지털 정보화에는 두 개의
위상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는 '방송파의 디지털화'로 대표되는 미디어 산업론으로,
정치경제적인 논의처럼 디지털 정보화를 거시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방송과
디지털화의 관계는 이러한 거시적 인식을 통해서만은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방송
프로그램의 제작 현장과 시청자 문화를 자세히 살펴보면 디지털화에 따라 새로운
기기가 등장하고 수용과 표현의 새로운 문화가 계속 생겨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디지털 정보화의 미시적 인식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 이러한 입장에 서서 이야기할 때, 현재 일본의 방송업계는 디지털 정보화의 거시적 인식만을 소리 높여 이야기할 뿐 방송인과 시민 사이의 미시적 인식에는 눈을 돌리지 않는 불균형한 상태에 놓여 있다고 본다. 100년 전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했을 때의 시점에서 생각하자 방송과 디지털화의 관계를 이처럼 몇 가지 차원 혹은 위상으로 이해하는
것이 당장은 유효하다고 해 두자. 그리고 이 관계를 다시 롱숏(long shot)으로 파악하면
그 배경에는 미디어 역사라는 커다란 흐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디지털 정보화는 이 흐름의 가장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것이기 때문에 언뜻 별
관계없는 듯이 보일지 모르지만, 역사적인 관점을 갖지 않으면 여기저기에서 단편적으로
나타나는 여러 현상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역사란 이른바 방송史, 텔레비전史만을 가지고는
추적할 수 없는 깊은 부분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일본에서는
1925년 도쿄 아다고야마(愛宕山)에서 라디오 방송을 시작하고 태평양 전쟁 이전에
일본방송협회가 설립되어 전국 방송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전후에는 민간
방송이 시작되고, 1953년에 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되어 라디오 방송을 추월하며, NHK과
민간 방송 네트워크가 일본을 뒤덮듯이 발전해 갔다. 그 네트워크 위에서 뉴스나
드라마, 버라이어티, 스포츠 등의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이들 프로그램
문화와 밀접하게 연결되면서 대중 소비사회가 생성되었다. 이것이 일본의 방송사,
텔레비전사이다. 그러나 디지털 정보화의 진원지는 훨씬 깊다. 즉 일본의 방송사,
텔레비전사가 전제로 삼아 온 국민국가적이며 고도 경제 성장을 기축으로 상승 곡선만을
그려 온 평화로운 분위기가 성립되기 이전의 상황, 그 토대가 만들어진 차원을 다시
묻고자 하는 역사적 관점이 필요하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이라는 방송 기술이 사회에
모습을 나타낸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축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성급하게 이야기하자면, 방송을 뒷받침하고 있는 통신 기술은 유선
통신 기술과의 긴밀한 관계성 속에서 19세기 후반에 모습을 나타내고 20세기 초엽에
구미 각지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실험되고 활용되게 되었다. 당초는 마을의 호사가,
발명가라는 사람들이 종교적임과 동시에 과학적인 흥미를 안고 취미로 실험과 연구를
시작했다. 결국 무선은 유선 통신으로는 미치지 않는 선박, 산악 지역에서의 통신과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하는 군사 연락 등 상당히 특수한 영역에서 이용되었다.
그러나 1920년대 후반이 되자, 아마추어 사이에서는 지역과 국경을 초월한 개인적이고
쌍방향 공동체를 만들어 내는 미디어, 마치 오늘날의 인터넷과 같은 미디어로 인식되어
활용되기 시작되었다. 한편, 전화 사업자는 무선을 전화의 연장선상에 두고 그에 관한 권익을
확보하기에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한 가운데 구미와 일본에서는 1920년대
전반에 라디오 방송이라는 무선 이용 형태가 나타나 보급되었다. 중요한 점은 방송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현재의 방송이라는
미디어 양식은 당연한 귀결이 아니라, 형태와 그림자도 사라져 마침내는 전체 전기
미디어 속에 자리한 하나의 형태라는 점에까지 이르게 되고 만다는 사실이다. 1920년대 전후의 단계에서는 영어의 'broadcasting'이라는 단어는
아직 '물건을 여기저기 흩뿌리다', '씨뿌리기를 하다'는 등의 행위를 의미할 뿐,
'전파로 메시지를 널리 전한다'고 하는 비유적인 의미로는 통용되지 않았다. 마치
1990년대 전후의 사람들이 인터넷에서의 웹(web)라는 단어를 '거미집'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아마추어 무선가, 전화 사업자, 영화 사업자, 전기기기 메이커,
군부, 국가 등의 다양한 사회 집단은 제각기 무선 미디어의 형태와 활용 방법을 떠올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상호 작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무선은 라디오 방송이라는
형태로 변용되었던 것이다. 적어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방송 사업이 시작된 미국에서는
그러한 과정이 있었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일본의 방송 역사는 이 형태가 성립된
이후의 상황을 그려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들이 논의하고 실천하고 있는 방송이란 이처럼 약 1세기
전에 정보 기술과 사회의 복합적인 관계 속에서 생성되었다. 라디오가 등장하기 조금
전에 전화, 축음기, 영화 등이 등장했지만, 그들 미디어 역시 결국 처음부터 오늘날과
같이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형태는 아니었다. 또한 전기 조명, 다리미, 냉장고 등 가전 제품의 등장과 병행하여
라디오가 그리고 텔레비전이 주거 공간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대 변혁기인 지금이야말로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해야 1920년대 이후, 라디오는 방송으로서 확립되어 독자적인 표현 기법과
제작자 집단을 거느리게 되고,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텔레비전을 자신의 후임자로
결정한다. 무선 기술을 토대로 한 방송 기술과 방송 사업은 세계 각지의 국가와 사회
속에서 독자적인 형태를 취하면서 발전하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전반에 걸쳐 최초의 이변이
발생하게 된다. 방송에서 위성 통신을 응용하기 시작하고, 비디오 카메라가 등장하며,
컴퓨터 그래픽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뉴미디어 붐'이 일어났다.
이른바 방송, 통신, 컴퓨터 기술이 융합하여 새로운 미디어가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하게
된 것이 다양한 형태로 화제가 되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급속히 화제가 된 방송의 디지털화는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기술 융합, 뉴미디어 붐으로 이야기되는 사항의 계보 상에 있다. 결국 디지털화는 1990년대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라, 적어도 2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의 기술적 성숙과 잠복기를 거쳐 '발현'한 현상이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디지털 정보화 속에서 방송은 약 1세기 전 자신이 그 속에서
성숙한 전기정보화와 같은 정도로 깊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방송을 이처럼 롱숏으로 파악한다고 해서 당장 눈앞에 닥친 현장의
과제를 해결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지만, 사업에 대한 장기적 전망을 갖는 데는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미국의 미디어 역사가 미첼 스테펜스는 다음과 같이 미래를
예측하고 있다. 현재의 인터넷 혁명이라는 것은 오랜 미디어의 역사로 보면 영상
정보 혁명의 한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인터넷은 이른바 하이퍼 텔레비전과 같은
형태로 텔레비전 문화를 계승하여 사회에 정착되어 갈 것이다. 결국 20세기가 만들어
낸 방송 문화, 송신자와 수신자, 상업주의, 시시함, 심심풀이, 감동, 인권 침해와
휴머니즘이 섞여 있는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문화 양식 총체가 인터넷을 삼키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역사 속에서 방송의 디지털화를 자리매김하는 것은 이러한
장기적인 비전을 얻기 위해 중요하다. 이러한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디지털화는 방송의
존망에 관계하는 현상임을 새삼 인식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방송 문화를 지키려고
한다든지 그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는 역사의 두터운 흐름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렇지만은 않다. 역사의 카메라 기법에는 롱숏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클로즈업(close up)도 있다. 다시 한번 1920년대 전후의 시간대로 돌아가, 이번에는
무선 기술이 사회 속에 끼어 들어와 다양한 형태로 활용되고 있던 상황을 클로즈업해
보자. 이 시기에 활약했던 개별 인물이나 사업체의 불과 수년 간의 노력의 결과가
연쇄 화학반응을 일으켜 그 후 오랜 방송 미디어의 역사를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모델을
만들어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미국의 예를 들면, 프로그램, 편성이라고 하는 컨텐츠 양식이 생겨나고
광고 수입의 비즈니스 모델과 네트워크 방송의 기본적 메카니즘이 채 10년이
지나지 않는 사이에 만들어진 것이다. 다른 역사와 마찬가지로 미디어 역사의 동태는 군등하고 연속적인
상향 곡선 그래프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폭발기와 침체기, 연속과 단절이 교차하여
전개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디지털 미디어가 한창 폭발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방송 미디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디지털 정보화 속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역으로 말해, 이 시기를 놓치면 방송의 역사에서 커다란 변혁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지 모른다. 방송 역사를 변화시키는 것은 거대 미디어 자본, 국가만은 아니다 그리고 방송 역사의 변화를 담당하는 것은 앞에서 들었던 의미에서의
디지털 정보화라는 거시적 틀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 즉 거대 미디어 자본, 국가,
대형 방송국 등만은 아니다. 디지털 정보화의 미시적 틀 속에 등장하는 인물, 즉
프로그램 제작 일선에 있는 디렉터, 배우, 카메라맨, 편집자, 혹은 자유직 비디오
저널리스트, 온라인 벤처 기업가, 그리고 미디어 리터러시를 지닌 시민 네트워크
또한 변화를 담당하고 있다. 20세기 초엽의 미국에서 당시 최첨단 미디어였던 무선에 뛰어들었던
것은 메이커나 전화 사업자, 군부만이 아니라, 백화점, 유원지의 경영자, 세탁소나
제과점 주인, 교회나 대학, 도서관 등 다양했다. 일본도 예외는 아니다. 기술에 흥미를 지닌 일반 시민, 정당, 종교
단체, 대학, 신문사 등은 커다란 흥미를 나타내고 있었다. 치안유지법 때문에 자신이
라디오를 운영할 수 없었던 사람들. 초기의 방송국에는 이러한 시민적 기반을 지닌
방송인이 적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접근해야 할 방송의 정체성, 방송 문화란 어떤
것일까. 그것은 모든 일본의 텔레비전 문화의 전통적 양식을 지키는 것을 그 하나로
포함하면서, 보다 많은 다양성, 복수성(複數性)을 감춘 것일 필요가 있다. 일본의 텔레비전 문화, 즉 NHK와 민방의 병존 체제에 의한 전국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여 전일 종합 편성을 지향하고 뉴스, 드라마, 스포츠 등 장르별로 성숙해
가며, 그로써 시청자의 대중 문화를 성립시켰고, 그러한 대중 문화 속에 매몰된 텔레비전
문화라는 것이 1950년대 후반부터 생겨나기 시작해 1980년대 전반까지에 하나의 양식을
완성시킨 것이 아닐까. 우리들이 목표해야 할 것의 하나는 이러한 텔레비전 문화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잊어서는 안 되는 것 하나는 방송 역사의 흐름 속에서
구상은 했지만 정착되지 못했던 다양한 가능적 양태를 다시 발굴하여 그것을 디지털화와
연결시켜 '발현'하려는 시도이다. 예를 들면, 민간 방송국의 초창기에 교육 전문 방송국, 과학 기술
교육을 목표로 한 텔레비전 등이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그 모습을 감추고 말았지만,
디지털 위성 시대에 그 가능성을 다시 발견할 수도 있다. 미국의 'Running Channel'이나
'Discovery Channel'이 좋은 예이다. 혹은 시민 참여형 방송국이라는 형태의 공공 방송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일까. 세계 각지의 퍼블릭 억세스의 꾸준한 활동이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전개하려는 노력을 보고 있으면 꼭 그렇다고 만은 생각되지 않는다. 위성 시대에 도태될 것같이 보이는 지방 방송국과 라디오 방송국의
미래에 시민이 미디어 표현에 종사하는 공공적인 정보 미디어가 되는 것 이외의 비전은
없을까. 미디어 평론가인 오도쓰키 히로시는 SkyPerfec TV의 방송업계에서는 지금까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일본 방송계의
형태가 디지털화의 과정에서 어떻게 변할까 하는 위기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화를 계기로 삼아 지금까지 일본의 방송사에서 잃어버렸던 가능성을 어떻게
하면 다시 살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접근할 수도 있다. 사실 그러한 실천이 비디오 저널리스트에 의해, 교육 방송에 의해,
다양한 비영리 조직(NPO)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방송의 디지털화'라는 거시적 관점의 논의는 앞으로 10년 이내에 결말이 날 수 있으나, 디지털화와의 관계 속에서 이야기되는 방송 문화는 적어도 21세기 전반 20~30년 동안 끊임없이 동요하며 여러 방면에서 거론될 것이며, 게다가 그러한 동요가 진정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이러한 상황을 유익하고 재미있는 것으로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사회 각 분야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들을 꾸준히 축적하며 발전시켜 나가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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