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퍼트 머독(Rupert Murdoch)이 지배하는 세계적인 미디어 그룹인 News Corp.은 지난 11월 23일 유럽 전역에 걸쳐 텔레비전과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확장하고 다른 미디어 기업이 자신의 사업에 투자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머독은 다른 미디어 회사들이 신설되는 News Corp. Europe 지분을 20% 범위 안에서 인수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신설 자회사의 경영은 이탈리아의 공영방송사 RAI의 전임 회장인 레테치아 모라티(Letizia Moratti)가 담당하게 된다.

이 계획은 News Corp.이 이탈리아의 신규 디지털 유료TV 서비스의 지분 39%를 인수한다는 기본 합의와 함께 발표되었다. 이 신규 유료TV 서비스의 대주주는 이탈리아의 국영 텔레콤 그룹인 Telecom Italia이다.
프랑스의 텔레비전 그룹인 TF1은 신규 사업 지분의 10%를 소유함으로써 Telepiu 지분의 90%를 소유하고 있는 Canal Plus와 이탈리아에서도 경쟁 관계에 서게 되었다.
TF1과 News Corp.은 프랑스에서 청소년 텔레비전 채널을 출범시킬 계획이어서 프랑스 내에서도 Canal Plus와 경쟁 관계로 맞설 상황이다. 머독이 TF1과의 파트너 관계를 공표한 지난 11월 23일 Canal Plus의 주가는 8.5% 포인트나 떨어지기도 했다.
머독과 TF1이 손을 잡음으로써 프랑스와 이탈리아 시장에서 강력한 경쟁을 형성할 것을 우려한 까닭이다.

유럽 시장 확장은 머독의 오랜 숙원

머독은 몇년전부터 유럽 대륙에서 세를 확장하려는 노력을 해 왔다. 그리고 마침내 유럽에서 유료TV와 다른 미디어 사업에 진출하기 위한 자회사를 설립한다고 발표함으로써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유럽 대륙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구축하려는 목표를 향해 일보를 내딛게 된 것이다.

자회사를 설립하여 이탈리아의 신설 유료TV 기업에 대한 소규모 지분을 인수한 사실 그 자체는 머독이 그간 전세계에 걸쳐 펼친 인수 경력에 비하면 특별히 언급할 만한 것은 못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머독의 유럽 대륙 진입 시도가 매번 어려움을 겪었고 그 성과가 극히 미미한 데 비하면 이번의 결과는 나름대로 가능성을 보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머독이 이탈리아의 주도적인 상업방송사인 Mediaset를 인수하려는 노력은 올 초에 실패로 끝나고 말았고 오랜 시간을 끌고 있는 Kirch와의 협상은 여전히 어떤 구체적인 합의도 도출해내지 못한 상태이다.

News Corp. Europe의 설립은 머독이 가지고 있는 유럽 대륙에 대한 야망의 전시적인 성격이 강하다. 머독은 "세계에는 두 개의 큰 시장이 있다. 하나는 북미이고 다른 하나는 유럽이다. 그 둘은 규모가 거의 같고 유럽에서 주요 활동을 하지 않은 회사는 지구화할(globalise) 수 없다."고 말했다.
머독에게는 유럽 텔레비전 시장에 파고드는 것보다는 Fox 스튜디오와 텔레비전 네트워크로 미국에 침투하는 것이 용이했다. 영국의 BSkyB의 주식 40%를 소유하고 있는 것은 예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유럽 대륙의 만만치 않은 저항

그의 첫번째 어려움은 유럽 각국에서 자신이 미디어 지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일이었다. 독일의 텔레비전 채널인 Vox와 같이 적자를 보는 회사만이 협상에 적극적이었다. 머독은 Vox의 지분 49.9%를 소유하고 있는데 이는 Bertelsmann 기업으로부터 인수한 것이다. Vox는 이제 겨우 손익 분기점에 근접하고 있고, News Corp.은 사업을 확장하고 싶어하지만 Bertelsmann은 더 이상의 투자를 달가워 하지 않는 상황이다. 머독은 Telecom Italia와도 불확실한 관계에 있다. Telecom Italia가 최근에 사장으로 영입한 프랑코 베르나메(Franco Bernabe)가 머독과의 협상에서 그다지 호락호락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문제 또한 만만치 않다. 머독의 유럽 시장 진출은 정치적으로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그의 시장 진입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탈리아의 통신부 장관인 살바토레 카르디날레(Salvatore Cardinale)는 머독의 계획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이 때문에 머독은 Telecom Italia와의 벤처 사업에서 '이차적인 파트너'에 불과함을 누누이 강조했다.
회의의 근원은 News Corp.이 소유하고 있는 BSkyB의 주식은 40%에 불과하지만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적자에 허덕이던 BSkyB를 흑자로 전환한 News Corp.의 경력은 파트너들의 관심을 촉발시키는 데는 충분하다.

News Corp. Europe의 설립은 두 가지 측면에서 머독의 야심을 펼치는 데 도움이 된다.
우선 모라티 휘하의 자회사 설립으로 머독은 이탈리아 정계의 승인을 얻을 가능성이 커진다. 모라티는 RAI를 벤처 사업에 끌어들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는 Canal Plus가 이탈리아에서 추진하고 있는 사업인 Telepiu와의 경쟁에서 신뢰성과 편성상의 강점을 부여할 것이다.

둘째로 News Corp. Europe은 다른 파트너를 유인하는 수단이 될 것이다. 머독은 자회사 지분의 20%까지를 Leo Kirch와 같은 유럽내의 다른 미디어 사업자에게 매각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럴 경우 정치적으로 보다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고 외국인 소유 제한 논쟁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게 News Corp.의 시각이다.

머독이 유럽에서 희망을 걸 수 있는 것은 적어도 유럽위원회의 카렐 반 미르트(Karel Van Miert)가 그의 편이라는 점이다. 미르트는 지속적으로 유료TV 분야의 경쟁을 촉진시키려고 노력해 왔다. 그 같은 관점에서 Telepiu의 경쟁자로 머독의 등장은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성숙희/정보분석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