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통권 75호] 독일의 신설 SWR 방송사, ARD에 정식 가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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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기타 | 등록일 | 99.12.18 | ||||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 조회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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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독방송(Süddeutscher Rundfunk: SDR)과 남서방송(Südwestfunk: SWF)이 통합하여 새롭게 설립한 '남서방송'(Südwestrundfunk: SWR)이 10월 1일부터 ARD의 정식 회원 방송사가 되었다. ARD의 방송사 사장들은 9월 22일, 포츠담에서 가진 회의에서 SWR의 ARD 가입을 공식적으로 결정한 바 있다. SWR에 관한 조약 제41조에 따라 SWR는 10월 1일부터 SDR과 SWF의 법적 상속자로서 전체적인 방송 과제와 권리, 의무 그리고 책임 등을 넘겨받는다. 이로써 ARD의 회원 방송사는 이전의 11개에서 10개(NDR, RB, WDR, SFB, MDR, ORB, HR, SR, SWR, BR)로 줄어들었다. 1998년 1월 1일, SWR에 대한 방송법이 발효되어 이미 8월 30일부터 방송을 시작한 SWR는 '2개 방송사'가 통합되어, '3개의
지역(슈투트가르트, 바덴-바덴, 마인쯔)에 방송본부'를 둔, '2개 州(라인란트-팔츠, 바덴-뷔르템베르크)'의 공동방송사이다. 약 1,400만
명의 시청자와 16억 마르크의 시청료 수입, 그리고 4,280명의 종사자를 가지는 SWR는 ARD에서 WDR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의
방송사가 된다. ARD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 그 동안에도 단일 방송사 설립을 위한 두 차례의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좌절되고, 쿠르트 베크(Kurt Beck) 수상과 에르빈 터이펠(Erwin Teufel) 수상에 의한 세 번째의 시도가 성공했다. 이번 통합을 통해 바덴-뷔르템베르크州내의 독특한 '방송정책적 분단'이 종전 50여 년 만에 끝을 맺었다. SDR과 SWF의 분리 설립은 그 방송 대상지역이 고속도로를 따라 임의적으로 그어졌던 연합국 점령 정책의 유산이었다. SDR는 '라디오 슈투트가르트'라는 이름으로 1945년 미국인들에 의해 방송을 시작하여, 1949년 공영방송으로 재설립되었다. SDR은 북부 뷔르템베르크와 북부 바덴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SWF는 1946년 프랑스의 독점방송으로서 바덴-바덴에서 방송을 시작하여, 2년 후 공영방송으로 전환되었다. '50년대 초기에 이미
단일한 방송사에 대한 요구가 있었으나, 자체의 방송사를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라인란트-팔츠가 이에 반대했다. 1951년의 조약을 통해
SWF는 옛 프랑스 점령지역인 남부 바덴과 남부 뷔르템베르크 그리고 라인란트-팔츠를 대상으로 방송해 왔다. 전후 연합국 점령정책의 흔적 청산 단일 방송을 위한 구체적인 첫번째 시도는 '60년대 말 당시 州수상이었던 필빙어(Hans Filbinger)와 콜(Helmut Kohl)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1968년 이를 위해 설치한 위원회가 1년 반의 연구, 조사활동을 통해 단일한 정책 제안에 합의하지 못하자, 단지 SDR과 SWF 사이의 협조를 강화하는 데 그쳤다. '80년대 말에 시작되었던 두 번째의 시도도 과정상의 착오와 실수로 인해 실패하고, 두 방송사간의 협력조약을 맺는 것에 머물렀다. '90년대 중반 슈투트가르트에서 단일 방송사에 대한 요구가 다시 커지자, SWF의 사장 포쓰(Peter Voß)와 퓐프겔트(Hermann Fünfgeld) SDR 사장이 1996년 6월, 이에 대한 기본 입장을 발표했다. 여기에서 두 방송사 사장은 슈투트가르트, 바덴-바덴 그리고 마인츠 사이의 균형적 발전에 기반한 방송사 통합을 지지하였는데, 어떤 식으로든 2개 방송사 사장이 자신들 방송사의 통합을 지지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라인란트-팔츠州 수상인 베크와 바덴-뷔르템베르크州 수상인 터이펠은 두 방송사 사장의 제안을 기반으로 협상을 시작했다. '97년 4월 14일, 7차례에 걸친 협상을 통해 'SWR 조약'의 내용이 마련되고, '97년 5월 31일에 SWR에 관한 방송법이 정식으로 서명되었다. 터이펠 수상은 방송 통합을 '시대 요구에 대한 불가피한 적응'으로 소박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6개월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재정적으로나
방송 내용적으로 개별적 독립이 가능한 두 방송사의 통합 협상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는 사실은 매우 파격적인 것으로 독일 언론은 평가하고 있다.
ARD 사상 최초로 이루어진 방송사 통합을 일부 정치가들은 높게 평가하면서, 문제가 되고 있는 ARD 개편의 기본 모델로 상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협상의 과정과 내용에 대해서는 우려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신설 과정에서의 정치적 영향력에 대한 비판 정치적 협상의 합의 내용이 알려졌을 때 당사자인 포쓰와 퓐프겔트 두 방송사의 사장은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합의 내용이 헌법과 州 방송법에 명시되어 있는 방송의 발전 보장을 '방송 자유'라는 측면에서 충분히 보장하고 있지 않다는 점과 방송사의 조직과 결정에 대한 권한이 충분히 존중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했다. 독일 언론인 연합(DJV)의 라인란트-팔츠, 바덴-뷔르템베르크州 회장인 가이벨(Karl Geibel)과 바이스케(Josef Weiske)는 공영방송의 존속과 언론인들의 일자리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통합에 '원칙적'으로 동의하지만, 그 과정에서 州정부가 방송채널의 수와 기본적인 프로그램 구조를 통제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는 지난 9월 1일 사설을 통해 정치가들이 새로운 방송사의 구조를 구축하는 데 있어 '국가로부터의 독립'이라는 기본 명제를 철저하게 무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해당 방송사와 지역의 균형적 발전과는 전혀 무관하게 단지 방송 프로그램과 과제의 분할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의 행사' 기회로 악용했다고 비판했다. 또한 정당과 지역에 따른 '자리 안배'로 관료적 체계가 덧붙여져, 효율적으로 축소된 '날씬한 방송'을 지향한다는 '개혁'이 의미를 상실했다고 간주하는 사설은 따라서 'SWR, 개혁 모델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을 제목으로 달고 있다. <김기범/독일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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