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미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의 제작 및 편성상에 나타났던 두드러진 특징들을 몇 가지 꼽자면, 실화에 바탕을 둔 저가(低價) 프로그램의 증가, 다큐멘타리 및 토크 프로그램의 활성화, 어린이 시청자를 겨냥한 경쟁 가속화, 청소년 드라마 및 성인 애니메이션의 인기, 케이블 네트워크의 자체 제작 영화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 법정 드라마의 부활 등을 생각할 수 있겠다.
프로그램 제작 예산 삭감 - 저가 프로그램의 증가
사실 케이블 네트워크로부터의 도전이 점점 거세지면서 시청자 수는 감소하고, 그에 따라 광고료 수입 역시 해마다 줄어드는 데도, 일부 스타들의 고액 출연료 요구로 인해 프로그램 제작비는 지속적으로 인상되어 왔다.
예컨대 가장 인기있는 시리즈물인 의 경우, 편당 제작비가 130만 달러 이상 소요되고, 나 와 같은 드라마의 경우 시청률 하락에도 불구하고 연기자들의 출연료는 인상을 거듭, 주연 배우들의 경우 편당 100만 달러를 상회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주요 지상파 네트워크 방송사들이 취한 전략은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저렴한 프로그램 장르를 집중 육성하는 것이었다.
, 등 시청자들 사이에 상당한 인기를 누렸지만 제작비가 많이 소요되던 프로그램들을 종영하는 대신, 처럼 재미있는 상황을 설정,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반응을 보거나, 와 같이 몰래 카메라에 담긴 장면들을 해설을 곁들여 보여 주는 프로그램 등 실화에 바탕을 둔 저렴한 쇼들을 중점적으로 지원한 결과, 작년 가을 5편에 불과하던 이같은 장르의 프로그램들이 금년에는 8편으로 증가했다. 이번 가을 개편에서 뉴스 매거진이 12개로(Dateline NBC의 5개 edition, 20/20의 4개 edition, 60 minutes 2개 edition, 48 Hours) 갑자기 늘어난 것도 제작비 절감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뉴스 매거진의 경우 시청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어 왔을 뿐 아니라 드라마의 50∼75%에 해당되는 제작비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예산 부족으로 허덕이는 방송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프로그램 수가 급증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작 예산은 오히려 줄었기 때문에 적은 예산으로 내용 메꾸기에 급급해서 오보가 많아지고 프로그램의 질적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다큐멘터리와 토크 쇼의 활성화
프로그램 장르상에 나타난 또다른 특징 중 하나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과 토크 쇼의 제작이 활기를 띤 것이다.
먼저 다큐멘터리의 경우,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스타 연예인들의 터무니 없는 고액 출연료 요구로 드라마 제작비가 폭등하게 되면서 방송사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로 만들 수 있는 다른 장르로 눈을 돌린 탓도 있으나, 이전과 달리 시청자들의 높은 관심과 호응에 힘입은 바 크다.
더욱이 20세기의 종언을 앞두고 한 세기, 나아가 지난 1000년을 회고하고 정리한다는 의미에서 역사 및 인물 다큐멘터리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하겠다.
이전에는 PBS, Discovery Channel, The Learning Channel 등이 다큐멘터리의 주요 무대였으나 A&E, CNN, Lifetime, American Movie Channel 등 각종 케이블 채널들이 다양한 주제의 다큐멘터리들을 선보이게 되면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양적으로 증가했을 뿐 아니라 주제와 포맷에 있어서도 다양성을 확보하게 되었다.
한편 토크 쇼의 천국이라는 명성에 어울리게, 올 한해도 역시 많은 토크 쇼들이 생겨나고 기존의 토크 프로그램들은 그 강세를 이어갔다.
유명 인사들을 초대,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버라이어티성 토크 쇼들이 우후 죽순격으로 생겨났고(예컨대 , 등), 그 중 일부는(, , 등) 조기 종영하는 가운데 , , , 등 실화에 기반을 둔, 보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이슈 중심 토크 프로그램들은 시청자들의 지속적인 사랑을 받는데 성공했다.
새로운 토크 쇼들의 실패 요인으로는, 스포츠 스타 혹은 인기 연예인을 사회자로 내세우기만 하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포맷이나 주제 면에서 다른 프로그램들과의 차별성을 띠지 못한 채 비슷비슷한 초대 손님 유치 경쟁에만 치중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한편 출연자들간의 감정적 대립과 갈등을 여과없이 보여 줌으로써 '대결 쇼(confrontational show)'라는 새로운 장르를 형성할 정도로 화제가 되어 온 의 경우 출연자들간의 다툼을 조장하고 연기를 지시했다는 사실이 폭로되고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폭력성과 선정성에 대한 거센 반발이 계속되면서 다소 수위를 조정하는 듯 했으나 여전히 시청률에서는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 경쟁 가속
8월 15일 Fox Family Channel 출범을 계기로 Nickelodeon, Disney Channel, Cartoon Network의 3파전 양상을 보이던 어린이 방송 시장이 더욱 치열한 경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주로 50대 이상의 시청자들에게 소구하던 Family Channel을 인수하여 어린이 중심의 가족 채널을 지향하며 새롭게 선보인 Fox Family Channel은 Spice Girls, Hanson Brothers 등 10대들에게 특히 어필하는 연예인들을 특집으로 다루는 등 어린이 및 청소년들의 취향과 흥미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려는 노력 외에도 50억 달러를 26개 오리지날 프로그램의 제작비로 투자하는 과감성을 보였다.
역점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인 는 1960년대 인기 시트콤인 를 3,0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컬러로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기본 케이블 오리지날 시리즈 가운데 시청률 상위 6개 프로그램에 포함되는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Fox사는 내년 The Boyz Channel, The Girlz Channel을 디지털 네트워크로 출범시키겠다는 계획을 발표, 어린이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한 경쟁이 심화되리라는 전망이다.
특히 어린이 시청자들에게 인기있는 Nickelodeon과 로 유명한 Children's Television Workshop이 합작으로 만드는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 전문 케이블 채널 Noggin이 내년 1월부터 방송을 시작할 예정임을 고려할 때 더욱 그러하다.
청소년 드라마와 성인 애니메이션 인기
10대와 20대 초반의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한 경쟁에서는 WB가 단연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했다.
NBC, CBS, ABC, Fox에 이어 제 5의 네트워크로 새롭게 부상하는 WB의 경우 주 시청자층이 10대와 20대 초반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올해 이들 청소년 시청자들을 겨냥하여 제작한 , , 등의 히트작들은 엄청난 광고료 수입을 거둬 WB의 적자 폭을 줄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가을 개편때 선보인 드라마들 중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역시 대학 신입생을 주인공으로 한 청소년 프로그램으로, 자신들만의 브랜드를 선호하고 또래 사이의 유행에 특히 민감한 18∼34세 사이의 시청자들이야말로 광고주들이 가장 선호하는 잠재 구매 집단이라는 점에서 WB의 전략 시청자 집단의 선택과 그에 따른 프로그램 개발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시청자들에게 가장 사랑받은 프로그램 중의 하나인 Comedy Central의 는 성인 애니메이션을 정착시킨 프로그램으로 꼽을 만하다. 물론 이전에도 , 과 같은 어른들을 대상으로 한 만화영화들이 인기를 누리긴 했으나, 는 지속적으로 베이직 케이블 프로그램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면서, 만화는 어린이들의 전유물이라는 일반의 인식을 바꾸어 놓는데 성공한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은 시청 시간대를 옮기면서 시청률이 다소 하락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많은 시청자들을 모으고 있다.
이처럼 애니메이션에 방송사들이 관심을 보이는 것은, 드라마나 코미디에 비해 제작비가 적절하고(의 경우 편당 제작비는 25만 달러), 거액의 출연료를 요구하거나 스캔들로 이미지를 흐리는 스타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에 수출할 경우에도 다른 장르보다 더빙이 용이하다는 점도 이점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의 경우 이미 프랑스, 영국에 진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 국제적 경쟁력을 입증받은 바 있어 성인 애니메이션 제작에 대한 관심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케이블 업계의 선전, 자사 제작 오리지날 프로그램들
올 한해 케이블 네트워크들이 주요 네트워크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한 것은 오리지날 영화 제작의 성공에 힘입은 바 크다. TNT, HBO, Lifetime Television, USA Networks, The Disney Channel, Fox Family Channel, A&E 등 많은 케이블 네트워크들이 수준 높은 자체 제작 영화를 선보였다.
USA의 경우 2,0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만든 2부작 영화 이 주시청시간대 590만 시청가구를 올리는 케이블 사상 초유의 기록을 남겼고, 영화 전문채널 HBO가 6,800만 달러를 투자하여 만든 미니시리즈 은 에미상 시상식에서 다른 어떤 작품보다 많은 17개 부문에 후보로 지명되는 쾌거를 기록했다.
케이블 채널의 경우 목표 대상 시청자 집단이 지상파 방송에 비해 세분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주제를 선택하기가 쉬워, 오리지날 영화의 성공 가능성이 일반 대중을 겨냥하여 만든 외부 제작물보다 높다는 장점이 있다.
동시에 자체 제작 프로그램을 통해 다른 채널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킬 수 있다는 점도 자체 제작 영화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Lifetime Television의 경우 자체 제작 영화들을 모아 Lifetime Movie Network라는 여성 시청자들을 타겟으로 한 영화 전문 디지탈 채널을 구상할 정도로 자체 제작 영화에 대한 케이블 네트워크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법정 드라마(court show)의 부활
마지막으로 크고 작은 민사상의 분쟁을 그린 법정 드라마의 부활도 관심을 모을 만한 변화라 할 수 있다.
현재 방송되고 있는 4개의 법정 드라마 중 인기를 주도하는 것은 로, 10월 마지막 주 시청률 6.4를 기록하면서 , 에 필적하는 기록을 남겼다.
이같은 시청률은 1년 전에 비해 100% 증가한 것으로 아직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가을 시즌에 선보인 역시 11월 둘째 주에 이미 2.5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호조를 보이고 있다.
그밖에도 , 과 같은 법정 드라마 역시 꾸준한 인기를 모으고 있어(각각 2.5, 2.7의 시청률 기록), 법정 드라마가 다시금 주요 장르의 하나로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변화에 편승, Fox는 라는 프로그램을 리메이크, 실제로 이혼 소송을 제기중인 부부들을 출연시켜 판결을 내리는 프로그램을 내년부터 방송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은주/미국통신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