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통권 64호] 영국, 미디어의 다양성과 진실성에 의문 제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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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기타 | 등록일 | 99.12.18 | ||||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 조회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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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국 언론계에서는 다양성과 진실성이라는 미디어의 두 가지 덕목에 대한 논쟁이 일고 있다. 점점 복잡해지는 사회 속에서 미디어는 과연 본연의 모습을 제대로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회의가 지배적이다. 미디어의 다양성에 대한 논쟁은 루퍼트 머독(Rupert Murdoch)과 BBC의 존 버트(John Birt) 사장 사이에서 진행되고 있다. 존 버트 사장은 가디언誌에 '다양성의 힘'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BBC에 대한 머독의 비난(본지 98-06호 참조)을 반박하며 미디어의 다양성과 공영방송인 BBC의 존재 필요성을 피력했다. 미디어의 진실성과 관련한 논란은 영국 사회에서 '90년대를 대표할 수 있는 사회현상 중의 하나로 지목되고 있는 이른바 '스핀 닥터(Spin Doctor)'에 관한 것으로, 작가 데이비드 미치가 그 전모에 대해 자세하게 밝힌 책을 펴내면서 촉발되었다. 여론 조종에서 한발 더 나아가 언론 조종사로 불리는 스핀 닥터에 대해서는 그간 그 역할이나 영향력 등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었다. 존 버트와 데이비드 미치의 두 글은 급격하게 변화를 겪고 있는 현대 미디어들이
안고 있는 공통적인 고민에 대한 언급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존 버트, "진정한 선택은 프로그램의 다양성에서 비롯" 존 버트 사장은 기고문에서 공영방송의 본질에 관한 가장 정통적인 논리를 전개했다. 즉 다양성은 채널 수에서가 아니라 채널 편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그는 먼저 머독을 "미디어라는 정글 속에 사는 재빠르고 힘세고 광포하며 살아 있는 동물의 싱싱한 고기만 먹는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동물과 같은 인물"이라고 묘사했다. 그러면서 머독의 BBC에 대한 비판은 공공의 이익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 고집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또한 머독은, 규제 없는 미디어 시장이 모든 정보와 오락을 제공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기업의 이익에 매달리지 않는 공영방송만이 다양성을 보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즉 공영방송은 광고수익을 위해 말초적인 재미에 치중하지 않고 심층적인 취재를 통해 광범위한 내용을 다룰 수 있으며 프로그램 제작자들도 장인 정신을 가지고 질 향상에 매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영국 가정의 4분의 3이 유료채널에 가입하지 않고 있으며, 전국민의 95%가 하루에 적어도 2시간 이상 BBC를 시청하고 있다면서, 이는 프로그램의 질을 염두에 두고 영국이 직접 제작한 공영적인 프로그램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케이블TV나 위성방송이 등장했어도 지금까지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청자들의 진정한 선택은 비슷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는 다수의 채널들 가운데서가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역설했다. 다시 말해 진정한 선택은 프로그램의 다양성에서 비롯되며, 이런 다양성을 구성하는 BBC의 오리지널 드라마, 자연의 역사, 과학 기술 프로그램들은 단숨에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그는, 머독이 BBC를 비난하며 상황 근거로 제시했던 '디지털 시대'에 대한 그릇된
이해도 지적했다. 즉 머독이 주장한 디지털 시대의 다양성이란 다채널에 가입할 수 있는 부자들과 이들을 노리는 광고주들,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한 머독 자신만의 이익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진정한 다양성은 보편성에 근거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며 시청자의 10%라도 혜택을
받지 못한다면 보편성이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진실'을 왜곡하는 스핀 닥터 '다양성'과 더불어 미디어의 본질과 관련한 영국 언론의 고민 중 하나는 미디어의 '진실'에 관한 것이다. 작가 데이비드 미치가 쓴 <보이지 않는 설득자 - 스핀 닥터는 어떻게 영국의 언론을 조종하고 있나?>라는 책은 최근 영국의 언론이 어떻게 스스로 진실성을 훼손하고 있는지를 파헤친 화제작이다. 영국 정계의 일부에서는 스핀 닥터 때문에 언론에 진실을 말하기보다는 국민들에게 '잘 보이려는 행동'만 일삼는 등 정치 왜곡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자성론이 일고 있다. 스핀 닥터란 정부 각료나 정계 인물들의 측근에서 인터뷰를 비롯해 언론과 관계를 맺을 때 막후에서 그 수위와 방향을 조종함으로써 정치적인 여론 조종을 담당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이들 스핀닥터들은 기자회견 때 텔레비전 카메라가 미처 잡지 못하는 구석에 숨어서
마치 야구감독이 사인을 주거나 수화를 하듯이 각종 신호를 보내면서 정치인의 발언 수위와 방향을 지시한다. 때로는 질문을 할 수 있는 발언권을
어느 기자에게 주라는 사인까지 보내기도 한다. 스핀 닥터는 정치판에서 가장 흔하지만 이 밖에도 기업 등 평소 언론을 자주 접해야 하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영국의 언론계를 비롯해 지식인들은 이러한 스핀 닥터를 '90년대에 생긴 가장 최근의 사회
현상으로 지칭하면서 스핀 닥터 없이는 언론이 하루도 '이야기'를 생산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조직적인 여론 조종 데이비드 미치는 <보이지 않는 설득자>에서 '80년대의 가장 큰 미디어 파워는 광고였지만 '90년대에는 광고보다 한층 더 세분화되어 긍정적인 이미지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PR'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스핀 닥터는 바로 이 PR 담당자들 가운데 직접 언론과 상대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는 토니 불레어의 노동당 정권이 거둔 '96년의 승리는 바로 이 PR을 극대화시킨 스핀 닥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최근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이들 여론 조종자들의 존재와 역할을 눈치채기 시작했지만 구체적인 역할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다. 'PR 컨설턴트 연합'이라는 단체에서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경제 및 기업 뉴스의 80%, 그리고 일반 뉴스의 40∼50%는 스핀 닥터들을 주축으로 하는 PR 조직의 자료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아가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스핀 닥터들이 작성해 준 자료를 그대로 지면이나 화면에 옮기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 스핀 닥터는, 기자들이 얼마나 취재원의 홍보자료에 매달리고 있는가를 알게 된다면 경악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경우에는 기사는 물론 제목까지 그대로 베낀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의 배후에 또 다른 거대한 조직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영국의 여론은 스핀 닥터라는 개인이 아니라 어떤 조직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미치의 분석에 의하면 영국 증시에 상장된 100대 기업의 80%는 스핀 닥터를 고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스핀 닥터들을 통제하는 것은 불과 다섯 개의 PR 회사라고 한다. 데이비드 미치는 막후의 파워그룹으로 '브룬스위크' '벨 포팅거 커뮤니케이션' '파이낸셜 다이나믹스' '듀이 로저슨' '메이틀란드 컨설턴시' 등을 지적했다. 스핀 닥터들은 뉴스가 아닌 것도 뉴스처럼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 한 예를 데이비드 모리스라는 작은 도시 시장의 개설식에서 볼 수 있다. 스핀 닥터들은 지극히 평범한 일을 전국 뉴스로 만들기 위해 유명인사들을 개설식에 대거 초대했다. 그리고 기자들은 기사 가치가 별로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유명인들이 모인다는 사실 때문에 기사화하게 되는 것이다. <김근우/영국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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