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도쿄의 인기 만화 프로그램인 (일명 포케몬)를 시청하고 있던 어린이들이 강렬한 섬광 및 점멸 등의 영향으로 680명 이상(가벼운 증상까지 포함하면 만 명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이나 입원한 이른바 '포케몬 사건'은 4월 8일 NHK와 민간방송연맹이 자율규제 차원에서 표현기법에 대한 지침을 마련함으로써 일단 수습의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다. 사회적 파장이 컸던 사건인 만큼 지침을 준수해야 한다는 데에는 각계가 공통된 의견을 보이고 있지만, 강제력이 없어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제작 현장에서는 자주 이용하는 표현기법이기 때문에 대응에 곤혹감을 드러내고 있다.

<포케몬> 사건이 발생한 것은 작년 12월 16일이다. <포켓 몬스터>는 매주 화요일 오후 6시 30분부터 7시까지 방영되는 TV도쿄의 고시청률 간판 프로그램이다. 문제가 된 장면은 후반부에 전자두뇌를 가진 전사 '포리온'이 미사일 공격을 받아 폭발하는 장면이다. 짧은 시간에 색조가 변화무쌍한 섬광 및 점멸 장면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등장하는데 이를 지켜본 어린이들이 의식을 잃거나 구토, 경련, 발작 증세를 일으켜 병원에 긴급 후송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초기에는 <포케몬> 시청과 이상 증세간의 인과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견해도 방송 관계자들 사이에 있었다. 그러나 조사가 진행되면서 TV도쿄는 프로그램 방영 금지 조치 및 피해자에 대한 위로금 지급을 표명하기도 했다. 방송계도 '어린이에게 자극을 주는 표현은 최대한 주의를 요한다.'는 서한을 회원사에 발송했고 지침 제정을 서두르기로 결의했다.

우정성은 TV도쿄 관계자를 소환, 청문회를 개최하였고 우정성 내부에 '방송과 시청각 기능에 관한 검토회'를 설치하여, 사례 연구 및 구체적인 대책을 강구하기로 했다. 후생성 또한 光과민성 발작 등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연구반을 발족시켜 의학적 접근을 통해 적합한 TV 시청환경에 대한 연구결과를 연내에 마련키로 했다.

光과민성의 문제

우정성의 '방송과 시청각 기능에 관한 검토회'는 4월 6일 <포케몬> 사건에 관련한 중간 보고서를 발표하고 만화 프로그램의 영상 표현에 대해 방송사업자가 '과학적으로 뒷받침된 가급적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자율적으로 마련할 것을 요청했다. 아울러 컴퓨터 그래픽 및 광고 영상 표현에 대해서도 최종 보고서에서 검토할 의향임을 덧붙였다.

중간 보고서는 '<포케몬> 문제는 光과민성에서 기인한다.'고 분석하고 점멸 광선 횟수 및 규칙적인 영상 패턴, 붉은 색조, 빛의 강도에 대한 규정을 자율 지침에 삽입할 것을 제언했다. 우정성은 중간 보고서를 토대로 <포케몬>을 방송한 TV도쿄와 '97년 3월 일부 아동들이 신체적 이상을 호소한 바 있는 만화영화 을 방송한 NHK, 그리고 민방련에 대해 지침 마련 등의 재발 방지책을 강구하도록 요청했다.

또한 자율 지침만으로는 이른바 '안전한 영상'을 지향할 수 없다는 관점에서 시청자의 시청환경에도 각별한 주의를 환기시키도록 당부했다. 특히 어두운 방이나 TV로부터 1미터 이내에서 <포켓몬>을 시청한 어린이에게 신체적 이상이 많았다는 점을 고려, 방을 밝게 하거나 TV에서 떨어지도록 하는 등 바람직한 시청환경을 위한 정보 제공, 계몽 활동에도 만전을 기하도록 제언하고 있다.

이러한 자율 규제 요청에 따라 4월 8일 NHK와 민방련은 빛의 점멸 회수 및 줄무늬 등 규칙적인 모양 사용 등을 제한하는 자율 지침을 발표했다. 이를 토대로 방송국은 내규를 마련하게 된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만화 등의 영상 수법에 관한 지침(NHK, 민방련)

1. 원칙적으로 1초간에 3회를 초과하는 영상 및 빛의 점멸은 피한다. 특히 '선명한 적색'의 점멸은 금지한다. 선명한 적색이 아닐 경우에도

. 1초에 5회를 넘는 점멸은 금지

. 밝기(輝度)의 변화 폭은 20% 이하

. 점멸 시간은 연속해서 2초 이내

2. 대비가 강한 화면의 반전 및 급격한 장면 전환은 원칙적으로 1초간에 3회를 초과하지 않는다.

3. 줄무늬, 소용돌이, 동심원(同心圓) 등의 규칙적인 패턴으로 화면의 대부 분을 채우는 것은 피한다.

획기적이지만 실효성에 의문

이 지침은 기본적으로 TV라는 매체 특성상 인체에 미치는 빛의 악영향을 완전히 차단하기는 어렵지만, 몇 가지만 주의하면 어느 정도는 회피할 수 있다는 측면을 반영한 것이다. 더구나 영국의 ITC가 마련한 지침보다 엄격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TV 게임으로 인한 경련 등을 문제 삼아 '93년 영국의 ITC가 제정한 지침과 비교해 볼 때, NHK와 민방련의 지침은 특히 적색을 신중히 취급하도록 요청하고 점멸 영상 및 대비가 강렬한 화면 전환에 대해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 제한하고 있는 점이 큰 특징이다. 또한 규제 대상을 만화에 한정치 않고 광고나 영화와 같은 일반 프로그램 전반으로 확대해 적용할 방침이다. TV 영상의 표현 기법에 대해 자율 지침을 제정하는 것은 방송사상 획기적인 일로, 다채널 시대를 맞이해 만화 프로그램의 재이용도가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 비춰봐서도 시기적절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실효성에는 의문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영국에서는 행정기관이 표현 기법의 기준을 강제할 수 있는 사법적 구속력을 가지고 있지만 일본의 경우 지침 준수가 방송국에 일임되어 있어 실효성에 회의적인 견해도 있다. 방송평론가 사또가 미쯔오는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방송국에서는 표현 기법이 한층 자극적인 방향으로 치닫는 경향이 있다. 자율 규제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고 문제가 발생한 후 규제를 강화하는 형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제작 현장에서도 인기 프로그램 위주의 분위기로 보아 지침에서 언급하지 않은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잠재해 있다고 우려한다.

NHK는 지침을 토대로 독자적인 내규를 마련하여 현장에 주지시키는 한편 자체 홍보 프로그램인 <당신의 목소리에 대답합니다>를 통해 이 문제에 대해 시청자에게 설명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또한 지침에 저촉되는 영상을 발견했을 경우 경고를 발하는 '참고 계측기'를 자체 제작하여 시험운용하고 있다.

<포케몬>을 방영한 TV도쿄는 자율 지침에 입각하여 4월 9일 내규를 마련했다. 또한 '아니메 첵커'라는 화면의 光주기 변화를 검출·해석하는 장치를 개발하여 7월부터 정식으로 도입할 예정이다.

세계 시장의 65%를 석권하고 있는 일본 만화계는 이번의 자율 지침 마련으로 일본 만화에서 <포케몬>과 같은 '위험한 이미지'를 일소할 것이라며 기대를 걸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방송국에 대한 발언권이 약한 만화업계가 지침 운용에 따른 부담을 일방적으로 떠맡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김영덕/일본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