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하원의 사법위원회(Judiciary Committee)는 연방 법원에서의 방송 카메라와 마이크 사용 및 법정에서의 사진 촬영을 허용하는 제안을 지난달 12대 6으로 승인하였다. 공화당의 스티브 채봇(Steve Chabot) 의원과 민주당의 찰스 셔머(Charles Schumer) 의원이 공동으로 제안한 'Sunshine in the Courtroom Act'에 의하면 판사, 변호사들만 참석하는 연방 항소심의 경우 배심 판사는 스스로의 신중한 판단에 따라 방송 카메라의 접근을 허용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대법원과 연방지방법원(Federal District Court)에서의 카메라 사용이 전적으로 금지되었다. 이 때문에 재판에 대한 접근권을 요구해 온 사람들은 이번 결정으로 정부의 투명성을 한 단계 높이게 되었다고 환영하는 분위기이다.

현재 재판 과정에 대한 텔레비전 및 라디오방송의 접근을 허용하고 있는 모든 주에서 별도의 지침을 마련하여 취재 범위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실정이다. 거의 모든 주에서 배심 판사의 허가를 받도록 요구하고 있고, 많은 주에서 촬영 허가서의 사전 제출을 의무화하고 있다.

재판의 성격 역시 카메라 취재 허용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청소년 관련 사건, 가사(家事) 관련 사건, 성범죄, 기업 비밀을 다루고 있는 사건들은 재판 과정에 대해 취재할 수 없다. 그 밖에도 공정한 판결을 내리는 데 방해가 된다는 판사의 판단이 있을 경우 미디어의 접근이 불가능하다. 배심원들에 대해서는 신변 보호를 위해 거의 모든 주에서 취재를 금하거나 극히 제한하고 있다. 알라바마, 알래스카, 알칸사스, 유타, 미주리, 오레곤 등 대부분의 주에서 재판 참석자들의 동의를 의무조항으로 명시하고 있고, 오하이오와 오클라호마 주에서는 원하지 않는 사람의 얼굴을 비추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들 지침은 설치 가능한 장비, 조명, 카메라 종류, 카메라 설치 위치 등에 관한 규정까지 상세히 담고 있다.

사법부를 공중의 감시하에

1977년 하원에 이어 1986년부터 상원 회의 상황을 중계방송할 수 있게 되면서 입법과 관련된 다양한 이슈들에 대해 국민들의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이에 고무되어 사법부도 뉴스 미디어를 통해 공중의 감시하에 두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C-Span과 같은 공공문제(public affairs) 전문채널들은 의회의 회의 진행 상황을 시청자들에게 여과 없이 보여 줌으로써 현실 정치 과정의 단면을 이해하도록 돕고, 더 효과적으로 정치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왔다. 이제 다음 단계로 국민들로 하여금 주요한 민사, 형사 사건들의 재판과정을 지켜보면서 헌법에 명시된 자신들의 권리 및 의무를 확인하게 해 주자는 것이다. 실제로 28개 주에서 행한 실험 연구에서 재판 중계 방송이 사회적, 교육적으로 유익한 효과를 가져왔다는 결과가 나왔다. 좁게는 구체적인 재판 절차에 대한 지식을 높이고 나아가 민주주의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매스 미디어의 접근을 막아서는 안된다는 것이 법정 개방론자들의 논리이다.

또한 형사 사건의 경우 피해자들의 요구도 만만치 않다. 비근한 예로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 사건의 경우 희생자 가족들은 자신들뿐 아니라 전세계가 재판 과정을 지켜보아야 한다며 중계방송을 요구하고 나선 바 있다.

법정에서의 카메라 사용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텔레비전 뉴스에서 사진 대신 이용되고 있는 법정 스케치가 오히려 카메라보다 더 주관적일 수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카메라가 금지되어 있는 법정에서 스케치는 이미지를 제공하는 유일한 정보원의 역할을 하는데, 이는 재판 전 과정에 걸쳐 일어난 사실들을 한 장의 그림으로 압축해서 묘사하기 때문에 삽화가의 해석과 감정적 요소를 다분히 포함하고 있으며 삽화가들의 존재 자체가 카메라만큼이나 참석자들의 주의를 흩뜨린다는 것이다.

여론재판 분위기로 공정한 재판을 저해할 우려

이와는 반대로 법정 내의 카메라 사용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매스 미디어의 개입이 재판 결과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우려한다. 오 제이 심슨 사건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듯, 매스 미디어들이 일상적인 법적 절차를 대중들의 흥미에 영합하는 '볼거리'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여론재판 분위기를 조성하여, 결과적으로 배심원들의 공정한 판결을 저해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또한 증인과 배심원들이 카메라 앞에서 심적 중압감을 느끼거나 주의가 산만해져 정상적인 재판 진행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도 재판 중계를 반대하는 요인이다. 특히 증인들이 공개 재판에서 프라이버시와 신변 안전을 이유로 증언을 꺼리기 때문에 증인 확보가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현재 CBS는 5월 6일부터 시작되는 수잔 커밍스(Susan Cummings) 사건의 재판에 대한 촬영 허가를 신청해 놓은 상태이다. 국제 무기상의 딸이 남자 친구를 총으로 쏘아 죽였다는 혐의 아래 일급 살인죄로 기소된 이 사건은 극적인 요소들을 고루 갖추고 있어 같은 뉴스 매거진 프로그램에서 이미 소재로 다루었을 만큼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1992년 버지니아 법은 정지 카메라 사용과 비디오 폐쇄 회로의 설치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으나 지금까지 해당 법정에서 형사 재판의 녹화를 허가한 전례는 없다. 보다 폭넓은 미디어 접근권을 인정함으로써 투명한 정부를 지향하는 하원의 결의 내용이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주목해 볼 만하다.

<이은주/미국통신원>